#169화
행운의 무지개.
언럭키가 현실에서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이자, 게임 속에서까지 따라와 스킬화 된 능력.
앞으로 벌어질 행운에 따라 그 색은 무지개색으로 표현이 됐다.
빨주노초파남보.
운이 적을수록 붉은색에 가까웠고, 운이 좋을수록 보라색에 가까웠다.
레전더리 아이템은 거의 다 보라색이었다.
그중 성능이 좀 더 좋다 싶은 아이템은 진한 보라색.
성능이 약하면 연보라색이나, 가끔은 파란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뱀파이어 공작의 비밀 창고에 있는 수십개의 아이템 중 단 하나.
가장 상석에 위치한 아이템에서는 단일색이 나오지 않았다.
무지개색으로 계속해서 오색 찬란하게 바뀌며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찬란한 빛에 저도 모르게 손이 갔다.
아이템은 한 자루의 활이었다.
[브라흐마스트라]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공격력 + 200 상승.
-‘유도샷’ 스킬 사용 가능.
-‘저격’ 스킬 사용 가능.
-‘신궁의 하수인’ 스킬 사용 가능.
-신화 속에 나오는 전설적인 활. 전승에 따르면 이 활을 손에 넣은 자는 무기의 힘으로 한 나라를 지배하고 제국의 침략을 혼자서 저지했다고 한다.
-유도샷 : 마나를 소모하여 일정 사거리 이하의 적을 100% 확률로 적을 명중시킨다.
-매드 스나이핑 : 마나를 소모하여 원거리에서 적을 저격한다. 사거리 보정, 명중률 보정, 공격력 보정, 저격의 정확도와 사거리가 극도로 증가한다. 먼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할수록 공격력이 증폭된다.
-신궁의 드루이드 : 사격 중 주인을 보호하는 동물들을 소환한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125 이상, 궁수 계열 직업 전용.
언럭키는 입을 쩍 벌렸다.
“고, 공격력이 200이 넘어?”
지금껏 얻었던 모든 레전더리 아이템을 다 뒤져봐도 200은 커녕 그 근처까지 간 것도 없었다.
공격력 200을 넘어가는 아이템을 보려면 아무리 레전더리 등급이더라도 최소한 레벨 180은 넘어가야 볼 수 있다.
게다가 어디 그뿐인가.
아이템 하나에 내장되어 있는 스킬이 3개나 되었다.
비록 직접 성능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설명만 읽어봐도 절대 범상치 않은 스킬들이었다.
‘이건…무조건 레전더리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분류된다.’
공식적으로 분류가 있는건 아니지만 성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나는 아이템이 레전더리 최상급이었다.
랭커들 중에서도 그 등수가 네자릿수 이하인 ‘하이 랭커’들.
그 정도만이 가지고 다니는 아이템이 레전더리 최상급이다.
아직까지 언럭키도 한 번도 구경조차 못 했는데, 지금에서야 보게 되었다.
“호오. 눈썰미가 좋군요. 그걸 고르다니.”
“그러게 말일세. 돌아가신 공작 저하의 보물 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인데.”
두 후작은 언럭키를 보며 감탄했다.
아까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 덕분에 얻은 게 몇 개인데. 아무리 좋은 보물이라고 해도 하나쯤 넘겨주는 건 기분 좋게 할 수 있었다.
다만 언럭키는 마지막으로 머뭇거렸다.
‘왜 하필 활이어서….’
다 좋은데 활이라는 게 문제였다.
다섯 개의 직업을 매달 바꿔가며 할 수 있는 레전더리 직업 올마스터.
다만 언럭키는 그중 궁수를 아직까지 플레이하지 않았다.
해보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건 무서울 수밖에 없다.
물론 다른 직업들처럼 궁수 역시 굉장한 성능을 뽐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했던 네크로 엠페러나 성왕 같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는…
‘잠깐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눈앞의 브라흐마스트라를 다시 보니 자신감이 차올랐다.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지?
***
연회가 끝나고 지저 세계는 본격적으로 뱀파이어들의 지배 체계 아래에서 태평성대에 접어들었다.
-띠링!
[레벨업!]
빛이 번쩍였다.
“이제 125레벨.”
지난 삼 주간 언럭키가 지저 세계에 머무르며 올린 레벨이었다.
“확실히 레벨업 속도가 많이 느려지긴 했어.”
전쟁을 막 끝났을 때의 레벨이 118이었다.
삼 주라는 시간 동안 여기 머물렀는데 올린 레벨은 7개였다.
얼핏 보면 겨우 그것밖에 안 되냐고 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있었다.
일단 몬스터가 많지 않았다.
전쟁에 패배한 이종족들은 지저의 더 깊숙한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사냥 효율이 많이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보스몹이 아니면 몬스터들의 평균 레벨은 125~127 사이였는데, 언럭키의 레벨이 높아지면서 요구 경험치량이 너무 많아졌다.
더 레벨대가 높은 사냥터가 필요했다.
‘사실 지저 세계는 전쟁이 끝났을 때 딱 벗어났어야 맞지.’
아니면 좀 더 버텨서 120레벨 정도에서 끝내는 게 맞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언럭키는 그럴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띠링!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올마스터로서 새롭게 직업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드디어 한 달이 지나 직업 체인지 메시지가 뜬 것이다.
지저 세계는 천공의 탑이랑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다른 도시로 넘어가더라도 일단 탑으로 돌아가긴 해야한다.
게이트 포탈을 거기서 타야 하기도 했고, 퀘스트 완료를 위해 헤탄을 만날 필요도 있었다.
하지만 네크로엠페러 직업을 유지한 채 천공의 탑으로 돌아간다면?
‘바로 화형당하는 거지 뭐.’
그래서 남은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 지냈다.
다만 쓸모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동안 미래 계획을 점검할 수 있었다.
유스티아의 신탁을 받았고 성검을 얻으러 검신의 전당을 가야한다.
다만 그 과정까지가 꽤 까다로웠다.
그런데 어쩌면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새로 얻은 아이템인 ‘브라흐마스트라’를 쓰기 위해서라도 다음 직업은 궁수를 선택할 생각이었다.
검신의 전당에 가기 전, 천공의 탑과 사이에 있는 곳은 ‘와이번의 공중 요새’이다.
‘거기서 궁수 계열 직업에 이 아이템을 가져가면…어쩌면 지금까지 그 어떤 직업일 때보다 가장 편할지도 모르지.’
아직까지는 짐작일 뿐이다.
[기존 직업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새로운 직업을 획득한다면 ‘네크로 엠페러’ 직업의 성장세는 현 상태에서 저장됩니다.]
[선택할 수 있는 직업]
[1. 검사]
[2. 마법사]
[3. 궁수]
[4. 암살자]
[5. 사제]
‘일단…그래도 천공의 탑에 들어가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고민을 좀 해보자.’
궁수에서 머무르는 시선을 애써 떼며, 언럭키는 선택을 유예했다.
앞으로 3일간 유예시간이 주어진다.
3일 동안 새로운 직업을 고르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존 직업이 재선택되니, 혹시 모를 경우를 생각해 끝까지 기다려 볼 생각이었다.
혹시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를지도 모르지 않나.
***
언럭키는 정들었던 지저 도시를 떠났다.
뱀파이어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잘 가라고 그를 배웅해주었다.
“그대가 우리 도시를 위해 한 업적들은 앞으로도 대대손손 기록되어 내려갈 것이다.”
“우리여 친구여. 언제든지 찾아온다면 귀빈으로서 대우해주겠네.”
다만 떠날 때는 호야와 이아손, 두히칸만 함께하고 있었다.
벨라는 샬도 후작이 제공한 대장간과 기타 지저의 광물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남아있겠다고 한 것이다.
어차피 그녀의 레벨은 또다시 언럭키와 한참 넘게 벌어져서 다음 도시로 같이 떠나지는 못한다.
‘아직도 뱀파이어들은 나보다 벨라님을 더 좋아하니 위험한 일도 없을 테고. 이만한 도시가 없네.’
최고위 귀족들조차도 벨라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는 도시.
그녀가 머물기에는 최고의 장소였다.
***
천공의 탑으로 올라오는 길은 무탈했다.
여전히 전쟁 후 뒤처리가 벌어지고 있었기에 이종족 몬스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무런 저항 없이 왔던 길 그대로 나오자, 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보스 몬스터 : 지옥의 두 번째 수문장 오론]
-레벨 : 120.
탑 10층의 보스 몬스터.
오론이 악마의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뭐지? 어떻게 거기서 나온 거냐?”
계속해서 리젠되는 보스 몬스터 같은 경우에는 과거의 기억이 사라진다.
놈은 언럭키를 못 알아봤지만 언럭키는 달랐다.
“반갑다. 햇빛도 다시 보고 그 밑에서 보는 게 그래도 나름 보스몹이라니. 지금 잡아도 경험치는 좀 주려나?”
“뭐? 지금 무슨 소리를….”
언럭키는 대답 대신 손을 까딱였다.
-덜그럭 덜그럭
해골들이 순식간에 몸을 일으키더니 오론을 둘러쌌다.
“하. 지옥의 두 번째 수문장인 나에게 이깟 해골들이 덤벼들다니. 가소롭구나!”
오론은 기가 찬 듯 날개를 퍼덕이더니 눈을 부릅떴다.
놈에게서 지옥불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해골들도 검을 휘둘렀다.
언럭키의 저주 마법이 녀석을 뒤덮은 것도 그때였다.
-푹! 푹!
-콰지지직!
기본 저주 마법과 반지의 저주에 휩쓸리고 해골들의 칼날을 두들겨 맞았다.
HP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며 놈이 비틀거렸다.
“그래도 보스몹이라고 버티긴 하는구나.”
레벨은 지저 세계의 일반몹만 못하지만, 보스몹이라서 체력은 꽤 빵빵했다.
그런 놈을 보며 언럭키가 완드를 치켜들었다.
“징벌 포격.”
머리 위에 마법진이 생기더니, 그대로 불타는 운석이 낙하해 놈을 뭉갰다.
“아….”
-콰아아앙!
오론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죽었다.
다만 경험치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보스몹이라도 이제는 레벨 차이가 너무 났다.
‘마지막 징벌 포격을 쓰기엔 나쁘지 않은 놈이었어.’
언럭키는 네크로 엠페러의 장비를 인벤토리에 전부 집어넣었다.
그리고 궁수를 선택했다.
이제는 진짜로 탑 내부로 발을 내딛는건데, 네크로 엠페러 직업을 유지했다가는 누군한테 잡혀 끌려갈지 모른다.
아무리 성왕 시절에 교단이나 추기경들과 친하게 지내놨다고 해도 이건 얘기가 다르다.
‘아깝긴 하지만, 네크로 엠페러로는 나중에 다시 돌아오던가 하자.’
충분히 시간을 두어 고민을 한 결과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하루라도 빨리 브라흐마스트라를 써보고 싶기도 했고.
-띠링!
[궁수를 선택하셨습니다.]
[한 달 동안 ‘신궁(레전더리)’ 직업이 적용됩니다.]
새로운 직업의 이름은 신궁이었다.
그 뒤로 신궁의 직업 특성이 줄줄이 나왔지만 옆으로 살짝 밀어놨다.
그건 나중에 확인하고, 우선 헤탄부터 찾아갔다.
‘헤탄님에게도 받을게 산더미니까.’
무려 한 달 가까이 매달리 퀘스트.
리바 델 레이의 성물 조각을 전부 모아오라는 퀘스트는 등급부터가 레전더리였고 수행 난이도도 굉장히 높았다.
경험치부터 퀘스트 보상까지.
아마 기대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자네 왔나.”
“예.”
오랜만에 보는 헤탄은 여전히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래. 지저 세계는 어떤 곳이었나?”
“어후. 말도 마십시오. 제가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언럭키는 그 때부터 한참 시간을 들여 지저 세계의 암울한 상황과 전쟁의 끔찍함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리바 델 레이가 천공의 탑을 공격했었던 이유입니다. 놈들의 성물이 지저 세계에 잠자고 있었죠.”
마지막으로 하나로 합쳐진 성물도 꺼내어 보여주었다.
잠자코 듣던 헤탄은 얘기가 다 끝난 다음 간단한 감상평을 말했다.
“아깝겠군.”
“예?”
언럭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여기서 어디가 아까운 게 있단 말인가?
“그레고녹의 신탁을 받지 않은 것 말이야.”
“아 그거요? 그게 왜 아까운가요? 유스티아의 신탁을 받았으니 이제 검신의 전당에 가면 성검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신탁 퀘스트 창에서부터 그렇게 보장을 해주었다.
그래서 유스티아의 신탁을 받은 것도 있었지않나.
“그렇긴한데 만약 자네가 그레고녹의 신탁을 받았으면 이 성물의 힘을 바로 쓸 수 있었을 것 아니겠나.”
“어….”
언럭키는 흠칫했다.
하나로 합쳐진 성물 조각은 이제 낡은 쇠 거울 형태였는데, 그냥 잡동사니처럼 생겼다.
이름만 성물이었지 딱히 정보창도 안 뜨고 길가에서 볼 수 있는 잡템만도 못하게 생겼는데…
“겉모습은 이래도 모르긴 몰라도 검신의 전당에 잠자고 있을 성검에 비해 절대 모자라지 않을 성능일걸?”
“…….”
“하지만 그까짓 보상에 연연하지 않고 정의를 실천하는 그 마음씨에 감동했네. 눈앞에 보물이 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다니. 그래. 악신의 교단 따위의 신탁은 받아서는 안 되지. 역시 자네는 일반 모험가들과는 다르군!”
“…….”
언럭키는 참담한 마음을 애써 억눌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