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요즘들어 언럭키는 느끼고 있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그래도 참다 견디다 보면 복이 온다는 것!
[‘베놈’이 전투에 일정 부분 기여했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베놈’이 전투에 일정 부분 기여했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
-띠링!
[레벨업!]
“살다 살다 자동 레벨업도 해보고. 아주 기분이 끝내주는군.”
언럭키가 중얼거렸다.
뱀파이어 후작들 쪽으로 보낸 베놈들은 24시간 쉴 새 없이 일을 했다.
이게 바로 소환수가 일을 하게 만든다는 걸까?
계속해서 쌓이는 경험치 덕분에 레벨업 한 번이 그냥 달성됐다.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나도 열심히 해야지.”
언럭키가 앞을 바라봤다.
“크르르….”
“크헝!”
우르고스 32마리가 거대한 공동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진격한 후작 뱀파이어들은 이종족 몬스터들 전체를 상대하고 있었다.
심할 경우엔 수십 마리에서 수백 마리까지 달려들었다.
그러나 언럭키에게는 그런 대전쟁이 펼쳐지지 않았다.
일단 파티의 인원이 소수였다.
두 발로 걷는 건 언럭키, 이아손, 두히칸 셋 뿐.(호야는 언럭키의 어깨에 타고 간다)
바꿔 말하면 대군은 다니지 못하는 좁은 통로를 오갈 수 있다는 뜻이고, 두히칸은 지저 세계의 지리를 훤히 꿰고 있었다.
소수 정예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곳으로만 다닐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32마리나 되는 적을 만나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
보통이라면 당황했겠지만…
“오. 이번엔 많네?”
언럭키는 반색했다.
몇 마리씩 처치하는 건 감질났는데, 간만에 경험치 좀 확 쓸어 담을 수 있겠다.
-덜그럭덜그럭
우르고스들에 대적해 28기의 해골들이 몸을 일으켰다.
아포피스의 축복을 베놈에게 사용하고 있어서 해골 기사 한 기가 줄어 28기였다.
여기에 두히칸과 이아손, 호야까지 합하면 서른하나.
언럭키를 포함하니 숫자가 딱 맞아 떨어졌다.
32vs32.
원래 같으면 주의해야한다.
같은 32여도 이쪽은 소환수들이 주였다.
반면에 32마리의 몬스터 중에는 정예로 분류될만한 놈들도 있었다.
“징벌 포격.”
그러나 언럭키가 중얼거린 순간, 우르고스들의 머리 위에 붉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활활 불타고 있는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다.
-콰아아앙!
“깨애애앵!”
“끼잉! 끼잉!”
우르고스들이 괴성을 지르며 날뛰었다.
반 이상이 전멸하고 살아남은 놈들도 HP가 턱없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덜그럭덜그럭
해골들이 움직인 건 그때였다.
가장 선두의 해골 기사 두 기를 시작으로, 우르르 달려들어 나머지를 싹 정리했다.
몇 번 칼을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우르고스들이 전멸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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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들어오는 경험치에 언럭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마법사는 대량 살상을 해야지.”
징벌 포격의 위력은 명불허전이었다.
다음번에는 네크로맨서가 아니고 순수 마법사 직업을 해볼까?
다만 드랍률은 별로였다.
이제 바라는 건 좋은 아이템이라도 하나 떨어져 주는 건데.
그건 너무 욕심인가 싶다.
한편, 두히칸은 두려움에 질린 눈빛으로 언럭키를 바라봤다.
‘도대체 이 괴물은…어디까지 강해지려고 하는 거지?’
처음 봤을 때도 패배를 직감하여 그 밑에 들어갔다.
언젠가 성물을 탈취하겠다는 꿈도 이제는 반쯤 포기했다.
종족의 보전과 약간의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에 옆에 계속 붙어있는 건데, 매번 믿기지가 않았다.
이렇게 끝도 없이 강해지다니!
‘인성과 실력은 반대인건가?’
“야.”
“왜, 왜 부르는가.”
그때 언럭키가 부르자 두히칸은 찔끔 해서 빠르게 대답했다.
“뭐야. 왜 그렇게 놀래. 너 속으로 내 욕했냐?”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호야한테 다 들었어.”
“뀨르!”
옆에서 끼어드는 저 고양이를 콱 쥐어박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 할 뿐, 두히칸은 감히 실행에 옮길 수는 없었다.
“지, 진짜로 지금은 네 욕한 적이 없다.”
“그럼 전에는?”
“…….”
두히칸이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거짓말을 잘 못했다.
언럭키는 두히칸의 어깨를 툭 쳤다.
“길 안내나 제대로 하라고 부른 거야. 이대로 계속 가면 우르고스의 보스몹이 있는 거 맞지?”
“…맞다. 우르고스 족장과는 몇 번이고 만나봤다.”
두히칸은 지저 세계 최고의 네비게이션이었다.
전투에서도 탱커로 쓸모가 많은데 길안내까지 완벽하니, 속으로 욕을 좀 해도 기꺼이 용서해줄 만 했다.
“좋아. 가보자고.”
대화를 하느라 1분이 지났다.
‘앞으로 29분 뒤면 또 포격 한 방 쓸 수 있겠군.’
징벌 포격의 30분 쿨타임을 맞추는 게 딜 사이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
언럭키가 우르고스의 족장을 만났을 때는, 운이 좋게도 딱 쿨타임이 지났을 때였다.
[보스 몬스터 : 우르고스 족장]
-레벨 : 130.
머리 위에 떠있는 보스몹이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포격부터 박아버렸다.
-콰아아아앙!
족장과 종족의 정예들이 지내는 넓은 땅이 포격에 산산조각 부서지고 화마에 휩쓸렸다.
“캬아아악!”
“키에엑….”
“끄윽….”
직격당한 일반몹은 전멸하고, 보스몹의 HP도 3분의1 이상이 날아갔다.
너무 큰 체력이 한 방에 빠지면서 놈은 순간적으로 몸이 굳이 기절 상태에 빠졌다.
이렇게까지 됐으면 전투는 반쯤 끝난 거나 다름없다.
-다그닥다그닥
두 기의 해골 기사가 검은 마력을 피워내며 돌진했다.
해골 기사의 차징은 진짜 기사만큼은 아니더라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콰아앙!
보스몹이 튕겨나듯 밀려났다.
그 위로 해골 기사의 검이 떨어져 내리고, 뒤편에서는 해골 궁수들의 지원 사격이 쏟아졌다.
징벌 포격의 영향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한 터라 고스란히 다 맞을 수밖에 없었다.
해골 병사들은 살아남은 일반몹들의 정리에 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학살의 현장.
두히칸의 눈꼬리가 덜덜 떨렸다.
몇 번이나 봤음에도 적응이 안 된다.
언럭키의 모습은 강력한 마법사와 네크로맨서의 모습이 합쳐진 것 같았다.
일족의 영웅이자 보스몹조차도 공포에 떨 정도의 모습!
결국 우르고스 보스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
-띠링!
[레벨업!]
또다시 스치고 지나간 하얀 빛.
“하아….”
중독될 것 같은 기분에 언럭키가 살짝 하늘을 봤다.
재밌다!
엔드로핀이 분비되다 못해 흘러넘치는 기분이다.
그의 시선이 우르고스 족장의 죽은 자리를 살폈다.
-파아앗
‘노란색 세 개, 초록색 하나…. 쯧.’
넘실거리는 빛을 보며 혀를 찼다.
정확히 보진 않았지만 색깔만 보더라도 짐작이 갔다.
레어에서 기껏해야 유니크 하급 수준.
‘더럽게 운이 없군.’
명색이 레벨 130짜리 보스몹이면서 무슨 저딴 아이템들을 줘?
어째 너무 술술 잘 풀린다 싶었다.
이 놈의 재수 옴 붙은 운명은 하나가 잘 될 땐 꼭 경계를 해야하나보다.
무언가 불운이 찾아오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언럭키는 성큼 움직여 성물 조각부터 챙겼다.
-띠링!
[성물 조각이 합쳐집니다(3/7)]
이제 세 개째.
그 다음, 그는 두히칸을 쳐다봤다.
“자. 이제 다시 출발 준비부터 하자.”
“?”
성물 조각만 챙겨 인벤토리에 챙겨 넣은 언럭키가 말했다.
두히칸은 당황했다.
“다 끝났는데 어디로 출발하라는 거냐? 도망치는 잔당들을 쫓을 생각인가?”
구석에 있어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우르고스들이 공동에 뚫려있는 통로들을 통해 도망치고 있었다.
두히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좀 힘들다. 저들이 도망가는 길은 우르고스들이나 알 법한 정말 깊숙한 지리라서 나도 잘 모르는…”
“아니. 그게 아니고 다른 종족들 있는 곳으로 가자고. 아직까지 후작들이 공략 못 끝낸 것 같으니까.”
“?”
지금도 계속해서 베놈으로부터 경험치가 들어오고 있었다.
들어오는 양은 거의 일정했다.
일반몹만 주구장창 잡고 있다는 뜻이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는데 욕심이 생겼다.
‘남은 보스몹도 가능하면 내가 잡아봐야지.’
지저 세계 몬스터의 수준은 레벨 130이 마지노선이다.
징벌 포격과 해골 군대의 조합이라면 최고 레벨의 보스몹도 그리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보스몹들을 생각하며 가만히 아쉬워만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두히칸의 길안내를 바탕으로 빠르게 간다면, 한두 마리.
정말 운이 좋다면 남은 네 마리 모두 자신이 처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 내가 운이 좋기는 힘들겠지만…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그러니까 빨리 가자고.”
“아, 알겠다.”
두히칸은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다시 열심히 앞장서서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
지저 세계의 이종족 중 하나, 벨파 족을 담당한 자는 드레이크 후작이었다.
4000년 넘게 살아온 그는 후작들 중에서도 최고령이었다.
공작을 제외하면 도시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고, 다른 후작들도 그를 원로 대우해주며 존중했다.
그러나 드레이크 후작은 사실 이 전쟁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젊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투쟁심도 많이 사라졌고, 평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후작들의 의지가 너무 확고하여 찬성하였을 뿐.
그러나 정말 좋은 기회라는 건 동의했다.
뱀파이오 종족의 비밀을 지키고 지저 세계의 패권을 잡기 위한, 수천 년에 한 번 올법한 기회.
그렇기에 탐탁지 않으면서도 기꺼이 나섰다.
또한, 그래서 베놈이 마음에 들었다.
“베놈이라고 했나? 저거 아주 괜찮은 물건이군.”
“샬도 후작 각하의 친우 분께서 준 거라고 합니다.”
“지상에서 온 인간이라고 했지? 아주 괜찮은 친구야.”
전방에서 쉴 새 없이 독무를 뿌려대는 놈 덕에, 뱀파이어들은 피해가 극히 적었다.
비록 진격 속도는 느리지만 드레이크 후작의 성미엔 이게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의 뱀파이어를 살려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다만 그것도 종족의 장을 만나게 되면 어려워지겠지.’
벨파 족을 이끄는 왕.
오만하게도 왕이라는 칭호를 쓰는 놈은, 일곱 이종족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드레이크 후작이 이 방향을 맡은 것도 그래서였다.
나이는 그냥 먹은 게 아니다.
고령의 뱀파이어는 노쇠해지는 게 아니라 더욱 강력해진다.
드레이크 후작은 벨파 왕을 상대로 이길 자신은 있었다.
다만 아군의 피해도 클 게 걱정이었다.
그나마 베놈이 있기에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는 낫겠지만…
‘어쩔 수 없지.’
드레이크 후작은 차오르는 한숨을 참았다.
노년이라 그런가. 이런 희생을 두고 보기 영 불편했다.
‘나도 너무 늙었군. 이번 전쟁을 끝으로 은퇴해야겠어.’
상념을 이어가던 드레이크 후작은 머릿속의 잡생각들을 없앴다.
“스으. 흡. 스으. 흡.”
벨파 왕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어두운 피부, 팔 대신 솟아있는 4개의 기다란 칼날.
놈은 날렵하게 생겨서 기묘한 숨소리를 내며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우묵한 눈빛이 드레이크 후작과 맞부딪친다.
벨파는 공격력만큼은 지저의 종족들 중 으뜸이었다.
방어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기에 베놈의 독무에 훨씬 큰 피해를 입었지만, 벨파 왕에게까지 통할 정도는 아니다.
-챙!
드레이크 후작이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붉은 오러가 넘실거리며 솟구쳤다.
“자랑스러운 뱀파이어 종족이여. 지저의 패자가 되기 위해 싸워라!”
드레이크 후작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힘이 있었다.
“와아아아!”
“후작 각하를 따라 저들을 무찔러라!”
뱀파이어들이 용기백배하여 돌진했다.
후작 역시 오러가 넘실거리는 검으로 벨파 왕과 부딪쳤다.
폭발음과 충격파가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덜그럭덜그럭
-덜그럭덜그럭
언럭키의 해골 군대가 도착했을 때는 바로 그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