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전투는 순식간에 시작되었다.
해골 기사들이 유령마를 타고 돌진했다.
“미친 것이냐?”
페블보 대장군은 깜짝 놀랐다.
해골들의 숫자가 많다고 그래 봐야 다른 파티원들과 합쳐서 서른 명 조금 더 된다.
반면에 히사렛들은 백이 넘어갔다.
그런데도 대놓고 돌진하다니.
놈의 시선이 두히칸을 바라봤다.
저런 자살 특공대와 함께하다니.
“페블보 족의 운명도 끝났구나. 이끄는 자의 판단력이 저 정도밖에 안 되다니.”
히사렛 대장군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쾅!
해골 기사와 히사렛들이 부딪치면서 전투가 시작됐다.
-쾅! 쾅! 쾅!
마치 덤프트럭에 치인 듯 저 멀리 튕겨날아가는 히사렛들.
해골 기사 세 기의 돌진을 막기에 히사렛들은 너무 약했다.
그들의 장기는 은신인데, 여기는 그들의 본진이라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히사렛 대장군은 그걸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아이들아. 가서 저 괴상한 괴물들을 다시 흙 속으로 보내주어라.”
“캬아앗!”
“캬아!”
본진과 연결되어 있는 통로로부터 계속해서 히사렛들이 안으로 유입되고 있었다.
언럭키가 처음 봤던 백이 넘는 숫자는 이백…삼백…이런 식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강해봤자 우리 종족 전체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히사렛 대장군도 동족들이 어떻게 당했는지는 알고 있었다.
숫자로 몰아붙이는데 심지어 강하기까지 해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해골들이랬지.
그러나 수백이 넘는 히사렛들에게 끊임없이 공격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덜그럭 덜그럭.
해골들과 히사렛들이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전투가 벌어졌다.
해골 기사들은 새카만 기운이 뭉클거리는 칼로 히사렛들을 마구 베어댔는데, 그럼에도 달려드는 숫자가 많았다.
심지어 장군급 히사렛은 기사들도 쉽게 이길 수 없었다.
해골들과 히사렛들의 대치 상황. 지지부진한 전투가 이어졌다.
히사렛 대장군은 가만히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자신들의 숫자가 더 많긴 하지만 해골들을 쉽게 뚫기는 힘들어보였다.
게다가 두히칸도 장군급들을 상대로 날뛰고 있었다.
실력의 차이가 뚜렷했다.
이대로 가다간 이기더라도 자신들의 피해도 클 터.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언럭키였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인 저 이종족 놈을 해치우면 끝이겠어.’
해골을 소환하고 부리는 주체가 언럭키라는 것을 알았다.
놈이 손을 까딱이자 히사렛 몇 마리가 은신하더니 언럭키를 향해 달려들었다.
29기의 해골들은 정말 많은 숫자였지만, 전방위에서 몰아치는 히사렛들과 싸우고 있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살짝씩 빈틈이 생겼는데 거기로 은신한 히사렛들이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흡!? 위험하다!”
장군급 세 마리를 묶어놓고 패던 두히칸이 뒤늦게 깨닫고 소리쳤다.
그때 언럭키가 훌쩍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크허헝!”
어느새 전투폼으로 변신한 호야를 타고 공동 위쪽까지 날아오른 것이다.
히사렛들은 닭 쫓던 개마냥 고개만 꺾어 쳐다봤다.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언럭키가 슬쩍 웃었다.
이건 언럭키가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생각했었던 전략이다.
네크로 엠페러라고 해봤자 그 원류는 네크로맨서.
소환수들에게 보호받지 못한다면 위험하다.
히사렛들의 본진에는 숫자가 엄청나게 많을 테니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크헝!”
그래서 떠올린 게, 귀여움 담당이었던 호야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허공을 박차고 날아다닐 수 있는 호야는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정신을 차린 히사렛들이 어떻게든 닿기 위해 점프라도 해봤다.
그런 놈들을 반긴 건 그레고녹의 홀이었다.
-퍼억!
“나이스 샷.”
덤덤히 중얼거린 언럭키.
그레고녹의 홀은 거의 우레 망치만큼 단단하기에 둔기로 딱이다.
직업을 바꿨지만 힘 스텟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강력한 힘으로 한 방 얻어맞은 히사렛은 그대로 기절해 땅으로 떨어졌다.
-콰직!
-서걱!
그러면 해골들의 밥이 될 뿐이었다.
하늘에서 언럭키는 판세를 세세히 읽어내렸다.
“쪼그라드는 근육, 체력 약화, 둔화.”
기본 디버프를 전체 지역에 깔아주고.
“부패의 저주, 침식의 저주, 맹독의 저주.”
횟수 제한이 있는 저주들은 대장군과 장군급들에게만 뿌려주었다.
“다크 힐, 다크 배리어.”
위험해 보이는 해골들이나 쓰러지기 직전의 놈들은 방어막을 걸어주고 회복도 시켰다.
살짝 밀리던 해골들의 기세가 다시금 흉흉하게 솟구쳤다.
“내가 마나량 하나는 어디 가서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많거든. 어디 너희 종족의 숫자가 많은지 내 마나량이 이기는지 해보자고.”
슬쩍 웃는 언럭키.
그에게서 시커먼 마력이 풍겨 나가며 주변 해골들을 뒤덮었다.
-덜그럭 덜그럭
‘진혼의 오오라’ 까지 발동된 것!
속도마저 빨라진 해골들이 히사렛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히사렛 대장군의 당황한 눈동자와 언럭키의 눈빛이 허공에서 잠시간 부딪쳤다.
서서히 열기가 더해져 가는 상황.
해골들의 기세는 잔뜩 올라간 반면에, 히사렛들은 당황했다.
한 번 마음이 꺾이면 이길 전투도 못 이기는 법.
이미 그들은 반쯤 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이놈과는 절대 싸우면 안 되겠군!’
두히칸은 역시나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전투는 꽤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한계에 한계를 거듭하는 과정이 이어졌으며, 결국 결판이 났다.
“커허억….”
히사렛 대장군이 원통하다는 표정과 함께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띠링!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업!]
“후우.”
언럭키가 가쁜 숨을 토해냈다.
방금 건 그에게도 꽤 힘든 전투였다.
그 많던 마나통이 텅텅 비었다.
조금만 더 지속됐다면 먼저 지치는 건 이쪽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 전에 히사렛 대장군을 처치하자, 살아남아 있던 히사렛들이 도망쳤다.
‘아마 그놈들이 대장군의 복수를 하겠답시고 달려들었으면 처음으로 죽었을지도 모르겠어.’
그만큼 힘겨운 전투였다.
그 대신 그만한 보상을 얻었다.
우선 레벨업.
하도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잡고 거기에 보스몹까지 잡았다.
두히칸과 이아손이 있었다지만 전투의 마무리 대부분은 언럭키가 했기에 레벨이 2개나 올랐다.
현재 레벨은 112.
레벨 100이 훌쩍 넘은 상황에서, 경험치 올리는 난이도는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어려워졌다.
보통 일반적인 유저라면 일주일에 하나 올리기도 벅찬 것이다.
그걸 한순간에 2레벨이나 올리다니.
‘좋군.’
꽤 힘들었지만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잡은 몬스터가 워낙 많다 보니 바닥에 떨어진 골드와 잡템들이 많았다.
“뀨르! 뀨르!”
호야가 신난다는 듯 열심히 잡템 수거하며 돌아다녔다.
이걸 많이 모아갈수록 언럭키가 고기 간식을 준다는 걸 교육받았기에 다리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파앗!
‘노란색이 2개. 초록색도 하나 있군.’
언럭키의 시선에 그 중 세 개의 아이템이 눈에 띄었다.
행운의 무지개 능력으로 대충 아이템의 효능이 짐작됐다.
히사렛의 발톱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클로 2개와 유니크 등급의 갑옷 한 개.
“고맙다 호야.”
“뀨르!”
호야가 물고온 걸 확인해보니 클로는 레어 아이템이었고 갑옷은 유니크였는데, 갑옷의 옵션에는 거래 가능 효과까지 붙어있었다.
‘팔면 짭짤하겠는데?’
클로도 해골 병사에게 끼워주기에는 애매해서 나중에 거래 가능 물약을 발라 싹 다 팔아버릴 생각이었다.
골드와 잡템, 괜찮은 아이템들까지.
고작 몇 시간의 전투에 얻은 물건들이라고 하기에는 그 결과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이 모든 것들은 곁가지였다.
[리바 델 레이의 부서진 성물 조각]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오래전 부서진 리바 델 레이의 성물 조각이다. 종족의 대장군과 장군들을 탄생시키느라 지금은 그 힘을 완전히 잃었다.
-모든 조각을 모아 특별한 비술을 실천하다면 온전한 성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히사렛들이 다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건 검은색 금속이었다.
낡고 오래되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은 금속.
자신들의 대장군까지 당한 뒤라 이걸 챙겨갈 정신도 없었던 모양이다.
‘이건 조각이 더 크군.’
성물 조각은 페블보족에게서 얻은 것보다 더 컸다.
아마 그래서 이놈들은 보스몹인 대장군과, 그보다 좀 더 약한 장군급까지 다수 만들 수 있었던 모양.
기존에 두히칸에게서 얻은 성물 조각에 갖다대자 달칵 소리와 함께 하나로 이어졌다.
-띠링!
[성물 조각이 합쳐집니다(2/7)]
남은 성물 조각은 이제 5개.
“우, 우리 페블보 종족의 성물이….”
합쳐진 성물 조각을 보며 두히칸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언럭키 파티는 도시로 복귀했다.
곧장 샬도 후작을 찾아가 이번 작전의 성공을 알렸다.
-띠링!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레벨업!]
또 한 번의 레벨업.
‘오늘 하루만에 레벨업 3번이라니. 실화냐 이거.’
엄청난 속도였다.
“대단하군. 역시 내가 친우로 인정한 자 다워. 설마 히사렛 종족의 대장군까지 잡아내다니.”
“별거 아니었습니다.”
“아니야. 그게 쉬웠으면 우리 뱀파이어들이 아직까지 그놈들과 싸우고 있었겠나.”
샬도 후작은 언럭키를 크게 칭찬했다.
“이건 자네가 내 부탁을 성공한 것에 대한 보답일세.”
“이건…?”
샬도 후작은 커다란 주머니를 건넸다.
살짝 열어보니 안에는 금화가 가득했다.
-띠링!
[100,000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10만 골드?’
골드 시세는 보통 100골드에 만원 언저리이다.
계속해서 변하긴 하지만 거의 그 정도에서 거래했다.
즉, 10만 골드라면 현금 천만 원인 셈!
“정말 감사합니다. 샬도 후작님.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시죠!”
“우리의 우정은 영원히 변치 않을걸세.”
껄껄 웃는 샬도 후작의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
‘퀘스트 하나 했다고 보상으로 천만 원을 턱 주다니.’
역시 이런 인간이건 뱀파이어건 상관없이 귀족 NPC들과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 일이다.
그들의 기준에서 떡고물만 좀 떨어지더라도 언럭키에게는 감지덕지였으니까 말이다.
***
[언럭키님. 일단 답신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최대한 좋은 물건의 목록을 보내드리려고 했지만 간부들의 반대로 실패했습니다.]
벨라의 친오빠인 김동엽. 크라비온 길드장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길드에서 줄 수 있는 아이템 목록이 정리된 첨부파일과 함께였다.
‘실패했다더니. 거의 다 레전더리네.’
별 생각 없이 목록을 보던 백현은 혀를 내둘렀다.
수십개의 아이템 목록은 거의 다 레전더리였다.
다만 레전더리 중에서도 최하급 정도라고 볼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우레 망치 같은 더 특별한 성능의 레전더리는 없었다.
크라비온 같은 1티어 길드장의 눈에 이 정도 아이템들은 그리 좋은 게 아닌가 보다.
물론 백현에게는 감지덕지였다.
이런 레전더리 아이템이라고 해도 최소 수천만 원대부터 가격이 형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요즘 돈복이 좀 터지는 것 같은데?’
지난달 정산받은 게 1억이 좀 넘어서 이번 달은 그 정도까지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는 형세를 보아하니 이번 달도 만만치 않겠다.
월드 사가에서도 꽤 쏠쏠하게 돈 될 아이템과 골드를 얻었는데 크라비온 길드까지 도와주다니.
물론 크라비온 길드장의 보답은 굳이 팔 생각은 없었다.
1차적으로는 자신이 쓸 걸 먼저 고르고, 그럴만한 게 없다면 가장 비싼 걸 골라야겠지.
‘어라?’
그렇게 목록을 슬슬 훑어보던 백현의 눈에 들어온 건 레전더리 등급의 스킬북이었다.
특이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네크로맨서 전용?’
그건 네크로맨서 전용으로서, 일반적으로는 굉장히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