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전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다.
엘리트 몬스터 히사렛 장군이라길래 나름 진심으로 움직였건만.
‘역시 다구리에는 장사 없군.’
총합 27기의 해골들의 공격을 혼자서 막는 건 보스몹이었던 두히칸도 못 했던 짓이다.
고작 엘리트 몬스터는 반항 좀 하다가 쓰러질 뿐이다.
“뀨르.”
“음? 호야 왜. 심심해? 간식 줄까?”
그때 호야가 종아리를 톡톡 건드리자 언럭키는 인벤토리에서 작게 자른 고기조각을 꺼냈다.
호야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뀨르! 뀨르르!”
한쪽 발로 두히칸을 가리키더니 짜증난 표정으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는 호야.
몇 번을 반복하니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두히칸이 배신하려고 했다는 거야? 히사렛 장군과 붙어먹으려고 했다고?”
“뀨르!”
올바르게 이해했는지 호야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맨 앞에서 싸우고 있던 두히칸이 움찔거리더니 크게 소리쳤다.
“아, 아니다! 오해다!”
“…아직 별말 하지도 않았는데?”
두히칸이 소리치자 언럭키는 어이가 없었다.
한참 히사렛 장군과 싸우는 와중에 자신이 호야와 대화하는 얘기를 엿듣다니.
얼마나 여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으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겠는가.
이 쪽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얘기다.
“찔리는 게 있다는 거구만.”
“저, 정말 아니다!”
“호야 얘기가 맞았어.”
“그건…. 호야가 뭔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이놈! 죽어라!”
두히칸은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겠다는 듯 히사렛 장군을 더욱 열심히 두들겨 팼다.
해골 기사들보다 더 열심히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것 같은데…
“멈춰 이 자식아! 적당히 나대야지. 그러다 내 경험치 줄어들면 책임질 거야?”
“미, 미안하다.”
언럭키의 타박에 두히칸이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저러다 잘못해서 놈이 계획 이상의 딜을 넣거나 막타라도 때리면, 소중한 경험치가 팍 줄어들 터.
두히칸과 이아손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에 그쳐야했다.
“너한테 뭐라고 안할 테니까 전투에 집중해. 괜히 정신 딴 데 팔지 말고.”
“저, 정말인가? 그 약속 지켜야한다!”
문제삼지 않겠다는 말에 두히칸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놈이 배신하려고 했다지만 사실 언럭키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두히칸과 뭐 얼마나 믿음으로 맺어진 사이라고.
당장 언럭키도 언제든 놈을 버릴 마음이 있었다.
처음엔 퀘스트 때문에 봐줬던 거고 그 다음엔 탱커 파티원의 필요성 때문에 함께 다녔다.
‘탱커가 있으면 좋긴 하지만 없어도 뭐 크게 상관은 없지.’
조금 더 편해지는 것일 뿐.
자신이 뒤에서 전력으로 서포트하면 해골 기사만으로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한편 두히칸도 언럭키의 눈치를 봤다.
전투 중에도 계속 힐끔힐끔 눈동자가 움직였다.
‘저 빌어먹을 고양이 녀석.’
설마 그 말을 알아듣고 냅다 가서 일러바칠 줄이야.
짜증이 확 났다.
‘그냥 아까 그 녀석 말대로 정말 편을 바꿔버릴 걸 그랬나?’
그러나 이미 늦었다.
히사렛 장군은 해골 기사들에게 난도질당해 죽기 직전이었다.
처음 놈이 등장했을 때 빠르게 판단을 내려 움직였으면 모를까,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니면…지금이라도 해 봐?’
두히칸의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러는 사이에 히사렛 장군이 쓰러졌다.
해골 기사들의 검격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
-띠링!
[레벨업!]
언럭키의 몸에서 하얀 빛이 잠깐 번쩍이고 지나갔다.
레벨 110을 달성했다는 증명의 빛이다.
그리고 이번 레벨업은 일반적으로 레벨 한 개 오른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
-덜그럭덜그럭
바닥에서 검은 뼈를 지닌 해골 병사 한 기와 해골 궁수 한 기가 새롭게 몸을 일으켰다.
레벨이 110이 되면서 소환 가능한 기초 해골의 개수가 하나씩 더 늘어난 것!
도합 29기의 해골들이 서늘한 기세를 풍겨댔다.
더 늘어난 언럭키의 해골 군대를 보며 두히칸은 굳게 결심을 내렸다.
“나는 더 열심히 앞장서서 길을 뚫겠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이 한 몸 바쳐 나아가겠다는 두히칸을 보며 언럭키는 코웃음을 쳤다.
***
두히칸이 있어서 다행인 점은 어둠 속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두히칸은 지저 세계의 변방을 오래 돌아다녔다.
“정확한 길은 몰라도 방향을 찾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이 쪽으로 가면 히사렛들의 영역 깊숙한 곳이다.”
두히칸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듯 온갖 노력을 다했다.
“캬아아!”
당연히 더 많은 히사렛들이 등장했다.
이아손이 굳이 몰이를 할 필요 없을 정도로 수두룩했다.
가장 위험했던 때는 장군 2마리와 히사렛 15마리가 동시에 습격했을 때였다.
“총령 각하!”
“크헝!”
이아손과 전투 폼으로 변신한 호야까지 전투에 참여했다.
솔직히 두히칸은 여기서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이번이 진짜 기회 아닐까?’
그러나 힐끗 언럭키를 본 순간 그 마음을 접었다.
이아손이나 호야와 달리 언럭키의 눈에 위기의식은 없었다.
고요한 호수처럼 히사렛들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중얼거릴 뿐이었다.
오히려 반갑다는 듯 살짝 웃기까지 했다.
“부패의 저주, 침식의 저주, 맹독의 저주.”
-띠링!
[히사렛 장군이 부패의 저주에 적중했습니다. 방어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히사렛 장군이 침식의 저주에 적중했습니다. 이동 속도가 크게 감소합니다.]
[히사렛 장군이 맹독의 저주에 적중했습니다. 상태이상 ‘중독’이 활성화됩니다.]
10번의 제한이 있는 저주를 히사렛 장군들에게 집중시키고.
“쪼그라드는 근육, 체력 약화, 둔화.”
일반 저주 공격들은 히사렛들에게 걸어주었다.
놈들이 괴로워하는지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언럭키의 로브가 한 차례 펄럭이더니 동심원을 그리며 검은 기운이 퍼져나갔다.
-띠링!
[진혼의 오오라가 발동됩니다.]
[반경 110m 범위에 오오라가 퍼집니다. 오오라에 닿은 아군 언데드들의 이동 속도가 10% 상승합니다. 오오라는 시전자의 마나가 전부 소모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레전더리 아이템 ‘아라베크의 진혼 로브’에 붙어있는 진혼의 오오라 스킬까지 발동했다.
지금까지는 굳이 쓸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전력을 다 할 때였다.
오오라가 퍼져나가며 해골들의 스피드가 올라갔다.
10%의 상승은 단순히 전투력 10% 증가가 아니다.
-덜그럭덜그럭.
훨씬 더 유기적인 연계가 가능해지고 못했던 무형의 공격마저 성공한다.
1+1이 5가 되고 10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해골 기사 같은 강력한 개체는 이런 버프가 훨씬 더 와 닿았다.
-다그닥 다그닥
유령마를 타고 돌진하는 속도가 10% 증가했으니, 그로 인한 차징의 위력은 훨씬 더 강력해진 것이다.
-꽈앙!
장군급 2마리가 해골 기사 3기에게 맥을 못 추며 밀려났다.
히사렛들도 해골 병사들에게 막히고, 전투 사이사이에 화살이 계속 날아들었다.
“다크 배리어. 다크 힐.”
어디 그뿐일까.
중간 중간 언럭키가 방어막도 걸어주고 부서진 해골들을 회복까지 시켜주었다.
죽지 않는 불사의 군대.
히사렛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
.
꽤 많은 경험치가 한 번에 차오르자 언럭키가 살짝 웃었다.
‘이런 게 몰이 사냥의 진가지.’
놈들의 영역 중심부까지 가면 어쩌면 레벨업을 한 번 더 할지도 모르겠다.
[현재까지 처치한 히사렛 장군 숫자 : 5/5]
[현재까지 처치한 히사렛 숫자 : 500/500]
[퀘스트 성공!]
[샬도 후작을 찾아가 보상을 받으십시오]
샬도 후작의 퀘스트도 완료했겠다, 남은 건 성물을 얻어가는 것뿐이었다.
만족스럽게 웃는 언럭키를 보며, 두히칸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 괴물 같은….’
***
히사렛 영역을 더 깊이 갈수록 언럭키는 두히칸의 쓸모를 강하게 체감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군. 두히칸이 없었으면 한참을 헤맸…아니, 아예 여기까지 오는 게 불가능했겠어.’
길이 수십 갈래도 넘게 계속 갈라지는데, 주위는 어둡고 비슷하게 생겼다.
추적술의 대가인 이아손조차 어느 순간부터 도시로 가는 길과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을 정도였다.
뱀파이어들이 왜 히사렛을 완벽하게 퇴치하지 못했는지도 이해했다.
이 넓은 영역 전체를 제압하는 건 아무리 병력이 강해도 무리였을 터.
“아마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히사렛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 나올 거다.”
“고생했다. 조금만 더 수고를 부탁하지.”
“별거 아니었다. 나만 믿어라.”
두히칸은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듯 더욱 힘차게 나아갔다.
강한 탱커의 존재는 파티를 편하게 만드는 법.
하물며 그 탱커가 길안내까지 잘 하니, 언럭키는 꽤 느긋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어두운 통로를 하나 통과하자, 꽤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뱀파이어들의 도시 급은 아니지만, 끝이 거의 보이지 않는 천장에 박혀있는 빛을 내는 광물들.
그 아래에는 이족 보행 쥐를 닮은 히사렛들이 굉장히 걸어 다니고 있었다.
히사렛들의 중심지에 도착한 것이다.
“저기. 저놈이 아마 나 같이 종족을 이끄는 자 같군.”
두히칸이 가리킨 곳에는 히사렛 장군들 다섯과, 그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대한 히사렛이 있었다.
[보스 몬스터 : 히사렛 대장군]
-레벨 : 130.
페블보 족의 영웅이었던 두히칸과 같은 급의 보스 몬스터.
“!”
그 순간, 히사렛 대장군과 눈이 마주쳤다.
놈이 살짝 고개를 돌렸는데 정확히 이 쪽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총령 각하. 놈들이 저희를 알아챈 것 같습니다.”
이아손이 긴장한 채 말했다.
어느새 수많은 히사렛들이 붉은 눈동자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블보 족의 영웅아.”
히사렛 대장군이 입을 열었다.
놈은 마치 두히칸처럼 다른 히사렛과 달리 사람의 말을 할 수 있었다.
웅웅거리는 외침이 어찌나 큰지 고막을 징징 울렸다.
“우리 히사렛 족과 페블보 족은 암묵적인 동맹 관계일 텐데. 너는 어째서 우리를 적대하는가.”
“…….”
“여기 온 것은 실수라고 생각해 눈감아 주겠다. 피부 하얀 이 종족은 모두 다 죽여야 하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이 쪽으로 넘어오라. 우리와 함께 적들을 없애는 거다.”
히사렛 장군처럼 대장군 역시 두히칸으 회유하려 했다.
얼핏 보면 승산은 저쪽이 훨씬 높아보였다.
최대 열 몇 마리가 달려들었던 때와 다르게, 지금 이곳에 있는 히사렛 숫자는 100마리도 훌쩍 넘었다.
거기에 장군급이 다섯에 대장군까지 있었으니, 고작 넷밖에 안 되는 언럭키의 파티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보이리라.
그러나 두히칸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닥쳐라!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 턱주가리를 당장 박살 내 주겠다!”
커다란 모욕이라도 받은 것처럼 씩씩대며 분노하는 두히칸.
“뀨릉!”
호야가 뒤에서 그런 놈을 보며 웃기지도 않는지 콧방귀를 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