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이아손과 다시 만난 후, 언럭키는 우선 다시 도시로 찾아갔다.
“친우여. 어서 오게.”
샬도 후작은 언럭키를 꽤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지금껏 올린 명예 수치가 헛되지 않아, 친구로 대해준 것이다.
물론…
‘명예 보다는 내가 벨라님의 동료라는 게 훨씬 더 큰 점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듣기로 벨라는 샬도 후작에게 좋은 대장간을 하나 대여받아서 거기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 주변에는 뭐 심부름이라도 할 게 없을까 하며 뱀파이어들이 우글거린다고 한다.
어쨌거나 지금 상황에서는 좋았다.
“후작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혹시 출입증 3개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아손과 호야를 위한 출입증이 필요했다.
혹시 모를 전투 전 포션 구입이나 기타 정비가 필요한데, 그 둘만 도시 바깥에 버리고 올 수는 없지 않은가.
“어렵지 않은 일이지.”
샬도 후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벡스 때처럼 귀찮게 퀘스트를 할 필요도 없었다.
이럴 때 써먹을 권력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크흠. 그런데 친우여.”
“네?”
돌아가려던 언럭키를 샬도 후작이 붙잡았다.
“혹시 레이디 벨라께 부탁드려 피 좀 받을 수 없겠나?”
“…….”
“내가 뭐 더 필요한 게 없냐고 여쭤봤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하시더군. 요즘엔 눈만 감으면 그 피의 황홀한 맛이 아른거린단 말일세.
“…한번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정말 고맙네! 자네와 나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지는 것 같군!”
***
출입증은 바로 발급받았다.
이아손과 호야, 두히칸까지 함께 데리고 도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페블보 족? 저놈 페블보 족 아니야?”
“저 바위 같은 피부에 군데군데 난 보석까지…맞는 것 같은데?”
“허어. 페블보를 도시 안에서 보다니. 거 참 신기하군.”
“근데 저렇게 큰 페블보도 있나? 마치 우리 뱀파이어처럼 두 발로 걷는 것도 이상하고.”
“저 흰 고양이는 귀엽네.”
일행은 꽤나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페블보 족의 영웅인 두히칸은 어찌 보면 뱀파이어들의 적.
도시 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언럭키를 보자 다들 물러갔다.
“저자는 샬도 후작님의 친구분이시군.”
“요즘 귀족들과 친하다던데. 명예롭다는 소문이 자자해.”
“그런 분의 일행이라면, 도시 내에서 사고를 치지는 않겠지.”
어느덧 도시 내에서 신뢰도가 꽤 높아진 언럭키였다.
출입증을 발급시켜준 데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샬도 후작을 찾아갔다.
다른 뱀파이어들과 달리, 샬도 후작은 두히칸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봤다.
“페블보 족? 흠. 일반 페블보는 아니고, 어떤 힘으로 진화한 녀석이군.”
“…….”
두히칸은 샬도 후작을 노려보았다.
그의 입장에서 뱀파이어는 적.
그러나 여기 오기 전 언럭키가 단단히 주의를 주었기에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샬도 후작의 관심도 딱 그 정도까지였다.
그가 다시 언럭키를 쳐다봤다.
“히사렛의 영토 깊숙이 들어가겠다고?”
“예.”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출입증에 대한 감사 인사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얘기하다가 알려주었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
“히사렛은 위험한 놈들이야. 한 마리 한 마리는 손쉽게 찢어 죽일 수 있지만 어둠 속에서 뭉쳐 있는 놈들의 근거지는 우리들도 두려워하지.”
한두 마리의 히사렛은 별거 없다.
선공을 당해도 역으로 공격해 죽이면 되니까.
그러나 히사렛의 본거지는 지저 세계의 깊숙한 곳.
빛 한 점 없는 곳이라 은신을 쓸 줄 아는 놈들의 홈그라운드 이점이 굉장히 컸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언럭키는 별걱정이 없었다.
혼자 다닐 때도 할 필요가 없던 걱정인데, 지금은 추가로 파티원들까지 생겼다.
“흠. 그런가. 명예로운 자네가 하는 말이니 신뢰가 가는군.”
샬도 후작은 언럭키의 말에 뭐라고 더 꼬리를 잡지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의뢰도 받을 생각이 있나?”
“의뢰요?”
“조만간 내 병사들을 시켜서 히사렛들의 숫자를 줄이고 놈들을 이끄는 ‘히사렛 장군’들을 좀 줄일 생각이었네.”
히사렛 종족의 엘리트 몬스터로 분류되는 히사렛 장군.
그 장군급의 숫자가 최근에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뱀파이어 종족의 골치를 썩이고 있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히사렛 종족 전체의 숫자가 늘어나고 영역을 크게 넓혀가는 등.
여러모로 부딪치고 있었다.
언럭키가 지저 세계 초입부에서 히사렛들의 숫자를 줄이라는 퀘스트를 받았던 것 역시 그 일환이었다.
‘이것도 성물의 영향일 수 있겠군.’
멀쩡하던 종족이 갑자기 세력을 넓힌다면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기 마련.
“알겠습니다.”
“고맙네.”
-띠링!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퀘스트 : 리바 델 레이 부제 처치.]
-퀘스트 등급 : 레어.
-퀘스트 설명 : 히사렛들의 개체 수와 영역이 너무 늘어나고 있다. 히사렛과 중간 보스격인 히사렛 장군을 처치하라.
-퀘스트 목표 : 히사렛 장군 처치 (0/5), 히사렛 처치 (0/500).
-퀘스트 보상 : 적정량의 경험치, 샬도 후작의 보답.
***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
-저벅저벅.
거기를 언럭키와 그의 파티원들이 걷고 있었다.
가장 앞에서는 탱커인 두히칸이 횃불을 든 채 나아가고 있었고, 언러키와 이아손, 호야가 그 뒤를 따랐다.
‘역시 지저 세계에서 꿀 빨 수 있는 직업은 성왕인데.’
언럭키는 걷는 내내 참 아쉬웠다.
성왕 때였다면 굳이 횃불 같은 걸 들고 올 필요도 없다.
디바인 포스로 빛을 밝히면 되고, 또 그 빛은 어둠 속에 사는 히사렛들에게 직접적인 데미지까지 준다.
얼마 전에 공개되었던 지저 세계 초반부 영상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성왕은 그야말로 깡패 같은 직업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아쉽긴 하군.’
그러나 사람이 어찌 원하는 걸 다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직업을 바꾼 대신 샬도 후작과 인연을 쌓고 뱀파이어 도시를 탐험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네크로 엠페러가 그렇게 뒤쳐지는 직업도 아니고.’
잘만 활용하면 성왕보다 나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말이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
.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는데도 경험치가 오른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해골 병사 12기, 해골 궁수 12기, 해골 기사 3기.
도합 27기의 해골들이 파티가 나아가는 전 방향을 커버하고 있었다.
“또 덤벼보아라 이놈들!”
맨 앞에서 두히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냥 고함이 아닌, 적의 어그로를 약하게 끄는 외침이었다.
약한 어그로라고 하지만 이성이 없는 몬스터에게는 그만한 게 없다.
어둠 속에서 히사렛들이 튀어나와 두히칸을 공격했다.
-캉!
-카가각!
-퍽!
단단한 피부로 맞아주며 반격.
두히칸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일단 히사렛들의 첫 한 방을 막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해골들이 처치했다.
뼈 화살이 날아가고 뼈 칼이 휘둘러진다.
굳이 해골 기사까지 나갈 것도 없었다.
히사렛들은 한번에 3~5마리가 등장했는데, 해골 궁수들이 일격에 발사하는 화살의 숫자는 12개였다.
화살에 벌집이 되고 이어서 12개의 칼날에 베이다 보면 목숨을 잃는 건 금방이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
.
한차례 전투가 끝났지만 휴식 같은 건 없었다.
“총령 각하. 이번엔 두 무리를 끌고 왔습니다. 곧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수고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나 보고한 이아손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다시 사라졌다.
이아손의 역할은 몰이였다.
히사렛보다 더 뛰어난 은신 능력으로 놈들을 자극하고 여기까지 데려오는 것.
언럭키가 원하는 몬스터 생성 메크로를 이아손이 해주고 있었다.
파티는 굉장히 체계적으로 돌아갔다.
두히칸은 탱커, 이아손은 몰이 담당, 언럭키는 딜러.
그리고 호야는…
“뀨르.”
“그래. 너는 귀여움 담당해라.”
“뀨르르르!”
다리에 머리를 부비적거리는 호야를 보며 언럭키가 피식 웃었다.
호야도 할 땐 하지만, 굳이 지금 호야의 도움까지는 필요 없었다.
언럭키가 구석에 있는 메시지 창을 힐끗 봤다.
[현재까지 처치한 히사렛 장군 숫자 : 0/5]
[현재까지 처치한 히사렛 숫자 : 87/500]
‘장군급도 슬슬 한번 보고 싶은데.’
일반 히사렛은 많이 잡아봤는데 장군은 어떤 놈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히사렛 영토의 중심부로 가고 있으니 언제 보기는 보겠다만…
“캬아아아!”
“히사렛 장군이다!”
그때 앞에서 괴성과 두히칸의 외침이 함께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보인 것은 두터운 갑옷을 입고 한 자루 창을 든 거대한 히사렛이었다.
히사렛은 사람만 한 크기의 이족보행 쥐를 닮았는데, 장군은 그보다 1.5배는 더 커 보였다.
거기에 사무라이들이나 입을 법한 형태의 갑옷과 긴 창을 들고 있으니, 위압감이 상당했다.
[엘리트 몬스터 : 히사렛 장군]
-레벨 : 127.
레벨은 127.
보스몹은 아니고 일반몹과 그 사이의 중간 단계인 엘리트 몬스터였다.
“전투 준비!”
언럭키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지시를 내렸다.
-덜그럭덜그럭
해골들이 한 데 정렬했다.
활을 쏠 준비를 하고 뼈 칼로 놈을 겨누었으며, 가장 앞에는 유령마를 탄 해골 기사들이 대기했다.
히사렛 장군은 살기 넘치는 눈으로 언럭키 파티를 노려봤다.
붉은 그의 눈동자가 두히칸에게 가서 닿았다.
“캬아?(넌 페블보 족의 영웅 아닌가?)”
“…….”
인간에게는 단순한 괴성으로 들리겠지만 두히칸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
알아들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종족은 다르다지만 지금 적대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캬아아!(거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손을 잡자.”
“…뭐?”
“캬아!(지금 당장 네 뒤에 있는 그 이종족을 공격해라! 주먹으로 후려쳐! 그러면 우리는 손쉽게 승리할 수 있다!)”
히사렛 장군은 해골 군대와 맞서는 지금 상황이 꽤 섬뜩했기에 두히칸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그리고 그 말에 두히칸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 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언럭키는 두히칸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다.
해골 군대의 힘이라면 모를까 본인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던데, 이대로 뒤돌아 싸우면 쉽게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빼앗긴 종족의 성물도 되찾을 수 있을 텐데.
두히칸의 마음이 반 이상 히사렛 영웅 쪽으로 기울었다.
그 순간이었다.
“가라.”
언럭키가 중얼거리자 유령마가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번개처럼 공간을 돌파하더니, 해골 기사 세 기가 그대로 히사렛 영웅을 때려박았다.
-콰앙!
-콰지직!
“캬아아악!”
차징 한 방에 히사렛 영웅의 HP가 미친 듯이 떨어졌다.
검은 기운을 뭉클거리며 휘두르는 해골 기사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두히칸의 눈빛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죽어라!”
“캬아!(이 멍청한 놈이!)”
열심히 히사렛 장군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날린 것이다!
바보같이 언럭키를 적대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죽어! 죽어!”
심지어 최대한 빨리 죽이기 위해 애썼다.
잠시나마 흔들린 자신의 마음을 언럭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훌륭한 판단이었다.
다만….
“뀨르르….”
뒤편에서 호야가 짜게 식은 눈으로 그런 두히칸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