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페블보 족은 지저 세계의 여러 종족에게 꽤나 시달리는 편이다.
광물을 주식으로 삼으며 몸에서 그 광물을 키워낸다는 특성.
단단한 바위 같은 피부를 갖게 되지만, 극소수의 보석이나 희귀 광물들도 피부의 일부가 된다.
그렇기에 노리는 자가 많았다.
당장 뱀파이어들도 아름다운 보석을 얻기 위해 페블보 사냥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페블보들은 영역에 대한 집착이 심했는데, 두히칸은 그런 페블보 종족에서 오랜만에 나타난 영웅이었다.
심지어 역대 최고의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페블보 종족 특유의 방어력에 뱀파이어처럼 커다란 키, 빠른 속도, 단단함에 스피드를 결합하여 만들어낸 공격력까지.
공방일체의 완벽한 전사가 탄생한 것이다.
“나는 영웅 두히칸이다! 그런 내가 너희같은 해골들에게 밀릴 것 같으냐!”
그렇기에 두히칸은 유령마를 타고 달려오는 해골 기사들을 상대로도 겁내지 않았다.
다시금 양 주먹을 꽝 부딪쳐 불꽃을 튀긴 다음 공격했다.
자신의 강력함이라면 앞선 해골들처럼 손쉽게 부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콰쾅!
“?”
다음 순간 두히칸은 당황했다.
‘가, 강하다!’
해골 기사들은 해골 병사들과 질적으로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고수들은 딱 한 수만 겨뤄봐도 실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두히칸의 주먹질을 해골 기사들은 방패로 비켜내고 반격했다.
동족들보다 더 우월한 방어력 탓에 큰 피해는 입진 않았지만…
‘내가 상처를 입다니?’
오랜만에 느껴지는 아픔이었다.
뱀파이어 병사들을 상대했을 때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던 몸이건만.
두히칸은 신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전투가 진행됐다.
해골 기사들은 두히칸을 삼 면에서 포위한 채 서서히 조여 들어갔다.
-카가각!
-쾅! 쾅!
“크윽….”
시간이 흐를수록 두히칸은 계속 밀렸다.
열심히 막고 반격하기를 반복했지만, 기술적 숙련도에서 많이 부족했다.
해골 기사는 그래도 명색이 ‘기사’라는 명칭이 붙어있는 놈이다.
아무리 두히칸이 보스 몬스터라고 하지만 힘과 체력 면에서는 모를까, 기술적 능력에서는 넘어설 수 없었다.
-콰직!
-퍼엉!
마치 체스를 두듯 한 발자국씩 압박하며 해골 기사들은 차분하게 두히칸의 HP를 깎아냈다.
가끔씩 두히칸이 괴력을 발휘해 반전을 꾀할 때도 있었지만, 언럭키가 적절한 때에 개입해 디버프와 배리어, 힐을 걸었다.
“크윽. 비겁하구나. 정정당당히 싸우자!”
“원래 싸움은 비겁한 거야.”
결국 두히칸이 소리쳤지만 언럭키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스포츠도 아니고 무슨 정정당당이란 말인가.
세상이 그렇게 정정당당했으면 언럭키가 빚쟁이가 될 일도 없었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거기에 24기의 일반 해골들도 끼어들었다.
해골 병사들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틈이 보일 때마다 한 번씩 검을 찔렀다.
큰 피해는 입히지 못해도 신경을 분산시킬 수는 있다.
-핑! 핑! 핑!
해골 궁수들의 화살도 마찬가지였다.
맞을 때마다 움찔거린다.
두히칸의 행동반경이 점점 더 줄어들었다.
그러면서도 언럭키는 방심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놈이네.’
탱커 타입의 보스몹.
이렇게나 두들겨댔는데도 HP는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방어력 하나만큼은 굉장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시간 문제지.’
계속 관찰하고 있었지만 두히칸에게 특별한 방법은 없어 보였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그런 공격들로는 해골 기사의 방패술을 뚫어낼 수 없다.
“잠깐! 잠깐만!”
그때, 두히칸이 훌쩍 뒤로 물러났다.
해골 기사들의 검이 등 뒤에 몇 방 박혔지만 그것까지 감수하며 물러난 거라 약간의 시간을 벌었다.
놈이 숨을 헐떡이며 언럭키를 쳐다봤다.
“우리 대화로 하자!”
“…뭐?”
“생각해보니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넌 뱀파이어도 아니라면서, 어째서 우리 동족을 괴롭히는 것이냐? 문제가 있다면 대화로 풀어보자.”
“…….”
어이가 없었지만, 언럭키는 잠시 공격을 멈췄다.
-띠링!
[사이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사이드 퀘스트 : 두히칸과의 대화.]
-퀘스트 등급 : X.
-퀘스트 설명 : 페블보 족의 영웅 두히칸은 당신의 강함을 깨닫고 대화로 풀고 싶어한다. 대화로 타협을 해보자.
-퀘스트 보상 : 적정량의 경험치, 기타 추가 보상.
그의 눈앞에 사이드 퀘스트가 나타났던 것이다.
‘아니 뭔 이런 퀘스트가….’
***
두히칸은 성물의 축복을 받아 진화한 페블보 족의 일원이었다.
힘은 물론이고 지능 역시 몇 단계는 높아졌다.
지저 세계에서 뱀파이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이성이 없는데, 두히칸은 강력한 힘과 똑똑한 머리로 주변의 패자로 거듭났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이번만큼은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놈은 절대 이길 수 없다.’
처음에 봤던 검은 해골들은 별거 아니었다.
평범한 동족들은 그놈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지만, 자신은 별로 아프지도 않고 그리 어렵지 않게 이길 만했다.
그러나 해골 기사.
검과 방패를 들고 갑옷으로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달려오는 그 세 놈은 너무나 달랐다.
하나같이 괴물이었던 것!
‘한 기…어쩌면 두 기까지는 해볼 만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야.’
게다가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약한 해골들도 주변에서 계속 귀찮게 했다.
약하다고 하지만 방심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그런 놈들이 스물이 넘게 둘러싸인 것만으로도 마음에 큰 짐이 되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두히칸은 무조건 죽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과감하게 방향을 틀었다.
높아진 지능 덕에 무조건 싸우기만 해서 될 게 아니라는 판단도 할 수 있었다.
“너!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언럭키다.”
“언럭키? 이상한 이름이군.”
“…….”
“어쨌거나, 인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대화로 풀어보자. 도대체 왜 우리 동족들을 죽이고 있었던 거냐? 너도 뱀파이어들처럼 우리 몸에 붙어있는 보석을 원하나?”
이름을 물어봤으면서 두히칸은 그냥 인간이라고 호칭했다.
두히칸의 물음에 언럭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너희 종족의 가장 소중한 물건을 원한다.”
“소, 소중한 물건? 설마…성물?”
두히칸이 당황하자 언럭키가 눈을 반짝였다.
‘확실히 뭐가 있긴 한가 보군.’
“그래. 그거.”
“그건….”
안 되는데….
그러나 두히칸은 뒷말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덜그럭 덜그럭.
해골 기사들이 유령마를 타고 두히칸의 삼 면을 포위했다.
지금은 차가운 귀화를 뿜어내며 그저 쳐다볼 뿐이었지만, 협상이 결렬되는 순간, 아까 같은 무시무시한 검격이 날아오겠지.
결국,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성물은 왜 찾고 있는 거냐?”
“그게 내가 찾는 보물인지 확인을 좀 해보고 싶거든.”
“찾는 보물이 아니라면?”
“그럼 그냥 물러나겠지?”
그 말에 두히칸의 얼굴이 환해졌다.
인간이라고 했지만 뱀파이어와 거의 비슷해 보인다.
분명 반짝이고 희귀한 것을 좋아할 터.
종족의 성물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좋다. 그 약속 분명히 지켜라. 그렇다면 성물을 한번 네게 보여 줄 수 있다.”
“그러지. 좋은 협상이었다.”
“협상? 그게 뭔가? 먹는 건가?”
“…….”
***
‘운이 좋군.’
언럭키는 앞서가는 두히칸을 보며 슬쩍 웃었다.
보스몹을 잡으면 얻는 건 분명 있겠지만, 지금은 자신이 찾는 물건에 집중할 때였다.
지저 세계는 아무런 탐사가 안 된 곳이기에 널린 게 몬스터고, 보스 몬스터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터.
차라리 어딘가에 있을 보물을 안전하게 안내받는 게 더 좋았다.
‘보스몹은 지성이 있어서 일정 확률로 이런 일이 가능한 모양이군.’
대화가 통하는 보스몹.
생각해보면 이전 리바 델 레이의 분타주이자 몬시뇰이었던 에토 역시 전투 중에 퀘스트가 나타났었다.
그때도 어쩌다 보니 놈과 한 팀이 되었고, 지금도 동료가 된 채 떠나갔다.
리바 델 레이 본진에 잠입한다고 했는데, 첫 정보를 전해주기로 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쨌거나 꽤 신기하긴 하네. 말하는 보스몹이라니.’
월벤에서 알게 된 정보에 이런 건 없었는데.
물론 남들이 알기 어려운 정보일 테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처음 알았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 고급 정보라서 아는 사람끼리만 아는 그런 거였겠지.’
어쨌거나 두히칸과 가다 보니 더이상 페블보들의 습격은 받지 않았다.
빨리 갈 수 있어서 좋다는 마음과 경험치가 끊겨서 아쉬운 마음이 공존했다.
“여기다. 우리 종족의 중심지에 성물이 있다.”
여러 번의 갈림길을 건너가 도착한 곳은 넓은 공동이었다.
페블보 족이 굉장히 많았는데, 경계하는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공격하지는 않는군?”
“당연하다. 영웅인 내가 데려왔는데 그렇게 함부로 할 놈 없다.”
이것도 신기했다.
보스몹이 온전히 종족의 몬스터를 통제하다니.
보통은 이성이 없기에 무작정 달려들었을 것이다.
‘두히칸은 거의 몬스터가 아니라 NPC라고 봐야겠어.’
사이드 퀘스트가 발동했던 것도 그렇고,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놈이었다.
두히칸은 성큼성큼 종족의 중심부로 걸어갔다.
“크릉? 크릉!? (아니? 종족의 학살자가 여기에!?)”
“크르릉!(영웅이시여!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페블보들이 두히칸의 앞을 막아서며 항의하는 듯했다.
비록 언럭키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눈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괜찮다. 이놈은 뱀파이어 아니고 인간이다. 우리의 성물이 어떤지 한 번 확인만 해보고 돌려준다고 했다.”
‘자신이 찾던 보물이 아니라면’이라는 수식어를 달긴 했지만, 두히칸의 머릿속에는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성물은 반짝이지도 않았고 예전과 같은 이상한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족들도 과거의 영광 때문에 모시는 것일 뿐, 어느 누가 봐도 특별한 건 없으리라.
그렇기에 두히칸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동족들이여. 이게 바로 대화와 협상이라는 거다. 단순히 무력으로 적과 싸우는 게 전부는 아니지.”
“크르릉!(오오! 대화와 협상!)”
“크릉?(먹는 건가?)”
“크릉 크릉!(먹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대단해 보인다!)”
깨알같이 언럭키에게 들은 지식을 자랑하자 종족들은 환호했다.
단순한 페블보들은 영웅의 말이라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믿어주었다.
게다가 결과만 봐도 좋았다.
어쨌거나 더 이상 동족들이 죽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동족들의 환대를 받으며 두히칸은 조심스럽게 어떤 물건을 가져왔다.
“자. 어떠냐. 네가 찾던 보물이 아니지?”
성물.
두히칸은 언럭키의 눈치를 힐끗 보더니 성물을 보여 주었다.
“…….”
언럭키는 그걸 빤히 쳐다봤다.
확실히 겉모습은 볼품없었다.
깨진 금속 조각 같았는데, 굉장히 오래되었는지 여기저기 때 타 있고 더러웠다.
그냥 길바닥에 떨어져 있다면 신발 밑창이 더러워질까 봐 살짝 피해갈 정도.
그러나 언럭키는 속지 않았다.
[리바 델 레이의 부서진 성물 조각]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오래전 부서진 리바 델 레이의 성물 조각이다. 종족의 영웅을 탄생시키느라 지금은 그 힘을 완전히 잃었다.
-모든 조각을 모아 특별한 비술을 실천한다면 온전한 성물로 재탄생시킬 수 있다.
아이템 정보를 읽어본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찾던 게 맞군. 이건 챙겨가겠다.”
“뭐, 뭐…?”
성물 조각을 곧장 집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두히칸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