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해골 병사와 해골 궁수는 기초 계급의 소환수이다.
네크로 엠페러 직업 특전으로 검은 뼈를 지닌 그 해골들은 레벨 10당 1기씩 소환할 수 있었다.
현재 언럭키의 레벨은 108.
정상적이라면 해골 병사와 해골 궁수를 각각 11기씩 소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월드 사가는 직업빨, 템빨, 스킬빨 게임이지.’
돈과 운이 모두 있어야만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밸런스 망 게임.
엄청나게 욕을 먹으면서도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그 모든 걸 커버하는 게임.
그게 월드 사가였다.
그레고녹의 홀 효과로 기초 체급 해골 소환수들의 숫자가 +1 증가하였다.
그 결과 현재 레벨에서 소환할 수 있는 해골 병사와 궁수의 숫자는 총 24기.
-서걱! 콰직!
-핑! 핑! 핑!
놈들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뽐내며 전진했다.
페블보의 단단한 외부 껍데기는 언럭키가 건 저주 마법들로 인해 무용지물 되었다.
뼈로 된 칼과 화살로도 충분히 짓이길 만큼 물렁물렁 하다는 뜻이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
.
메시지를 보며 언럭키가 웃었다.
‘크. 그래. 이거거든.’
한 차례 페블보들을 싹 정리하자 만족할만한 경험치가 들어왔다.
다른 건 몰라도 직업 특성에 붙어있는 저 10% 경험치 보너스는 꽤나 그리웠다.
사냥과 성장에 그 무엇보다 특화된 직업이었다.
‘이대로면 110레벨도 금방이겠군.’
그러면 또다시 소환 가능한 해골의 숫자가 늘어날 테고….
네크로 엠페러의 장점.
뒤에서 구경만 하는데도 전투 속도는 압도적일 정도로 빠르다!
“크륵.”
“크르르륵.”
다만 계속 똑같은 방법으로 싸울 수는 없다.
‘서서히 침식하는 저주’로 사용할 수 있는 저주들은 각각 열 번씩이다.
그 후에는 하루의 쿨타임이 필요하다.
‘아무 사냥에서나 함부로 쓸 수 없다는 뜻이지.’
게다가 굳이 닭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이 필요하지도 않다.
페블보를 몇 번 잡아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일지 감이 왔다.
“쪼그라드는 근육, 체력 약화, 둔화.”
왕홀을 휘두르며 중얼거리자 사이한 검은빛이 번쩍이며 페블보들에게 가서 닿았다.
네크로 엠페러가 되면서 생긴 기본 저주 스킬들이다.
이것만으로는 페블보의 단단한 방어력을 낮추기는 어려웠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덜그럭 덜그럭.
-캉! 캉! 카드득!
원래도 느려 터진 페블보들이 더 느려지자, 해골 병사들은 놈들 주위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마구 두들겨댔다.
공격력이 약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네크로 엠페러의 특징인 검은 뼈의 해골들은 평범한 해골처럼 뚝딱거리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펼쳐지는 검술.
그 앞에서 저주로 느려진 페블보는 단단한 샌드백에 지나지 않았다.
-서거걱!
게다가 그중 일부는 뼈 칼이 아닌 꽤 좋은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명예의 시작 롱소드, 챔피언 검투사의 영광적인 숏소드 등이었다.
추가 공격력을 지닌 해골들은 페블보의 HP를 뚝뚝 깎아냈다.
‘모든 아이템을 정리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지금 해골들이 착용한 아이템마저 다 팔았으면 성 팀장에게 1.5억이 아니라 2억 이상의 빚을 갚았겠지만, 그랬다면 지금 사냥이 더 어려웠으리라.
굳이 무리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
그게 지금 할 일이었다.
***
언럭키는 페블보의 영역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리바 델 레이가 노리는 어떤 물건을 찾기 위함이었지만, 당연히 경험치도 놓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보는 족족 페블보를 사냥했고, 안 보이면 일부러 찾아 나가서 사냥했다.
부릴 수 있는 해골들의 숫자가 스물이 넘다 보니 정찰병까지 운영해서 넓은 범위의 사냥터를 전부 통제하는 게 가능했다.
성왕이 공방 밸런스는 더 강할지언정, 이런 떼거지 사냥은 네크로 엠페러가 더 나았다.
하물며 경험치 10% 보너스까지 있었으니.
“크륵! 크륵!”
“크르륵! 크륵!”
그런 언럭키의 진격에 놀란 페블보들의 영역 중심에서는 회의가 열렸다.
“크르륵!(뱀파이어 놈들이 우리의 성물을 노리고 또 찾아왔다!)”
“크륵!(당장 가서 뭉개 죽여야 한다!)”
“크르르….(하지만 놈은 너무 강하다. 벌써 우리 동족들이 엄청나게 죽었다.)”
“크락!(우리에게는 영웅이 있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페블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페블보의 생김새란 단단한 구 형태의 바위에, 조그마한 팔다리가 나와있는 생김새였다.
하지만 거기엔 거대한 덩치의, 마치 사람처럼 생긴 페블보가 있었다.
사람과 거의 비슷한 외형에 피부 대신 단단한 바위가 입혀져 있는 페블보의 영웅!
“그렇다. 성물의 힘을 받은 나 두히칸이 적을 물리치겠다!”
두히칸이 양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그 웅장한 외침에 페블보들이 화답했다.
“크륵! 크륵!(오! 두히칸!)”
“크르륵!(영웅이여!)”
일반 페블보들 사이에서 태어난 돌연변이.
언젠가부터 그들이 모시던 성물의 힘을 받아 더 크고 강력해졌으며, 말까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종족의 영웅.
그게 두히칸이었다.
-쿵! 쿵!
동족들의 환호를 받으며 두히칸이 출발했다.
***
새로운 몬스터와의 전투는 처음이 가장 어렵다.
익숙하지 않은 패턴을 상대하고 그에 맞춰 전략을 짜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건 모니터 속 2D 게임도 아니고 직접 몸을 움직여야 했기에 훨씬 더 피로감이 심했다.
월벤을 통해 미리 정보 조사를 해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곳은 알려지지 않은 지저 도시.
당연히 첫 전투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지금.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
.
.
언럭키는 말 그대로 경험치를 쓸어 담고 있었다.
“자동 사냥하는 기분이군.”
마치 스마트폰을 켜두기만 하면 알아서 레벨업이 되는 것 같은 이 편안함.
성왕 시절의 강력함도 좋았지만, 네크로 엠페러 시절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거기까지다.”
그러나 여유롭게 경험치를 쌓으며 나아가던 언럭키의 발걸음이 처음으로 멈췄다.
저 멀찍이서 이쪽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친 놈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보스 몬스터 : 페블보 족의 영웅 ‘두히칸’]
-레벨 : 130.
‘보스 몬스터?’
상당히 의외였다.
보통 보스몹은 보스룸 안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아무런 준비 없이 마주치면 유저 입장에서는 재앙에 가깝다.
레벨 차이도 크고 능력 차이도 엄청날 텐데, 뜬금없이 등장하면 죽으라는 것밖에 더 되지 않겠는가.
‘아주 유저들 엿먹이기에 최적화된 게임이라니까.’
물론.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지금 언럭키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떡이 굴러온 것 같은 상황이었다.
“너! 뱀파이어!”
“뱀파이어 아닌데?”
“…?”
두히칸은 살짝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싸워왔던 뱀파이어들과는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피부가 창백하리만치 하얗지도 않았고, 송곳니도 없었다.
“그럼 넌 뭐지?”
“인간이다.”
“인간…? 혹시 너도 다른 이 종족의 영웅 같은 거냐? 성물의 힘을 받아 말을 할 수 있는?”
성물의 힘?
“보스몹이 무슨 대화를 이렇게 유창하게 하나 했더니. 뭔가 있긴 있었군.”
언럭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게다가 심상치 않은 말을 들었다.
성물의 힘이라니.
어쩌면 그게 자신이 찾는 물건일지 모른다.
아니더라도 일단 눈앞에 보인 이상 놓칠 생각은 없고.
언럭키는 더 이상 대화를 하는 대신, 해골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가만히 서서 대기하고 있던 22기의 해골 병사와 궁수들이 즉각 귀화를 뿜어내며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흥! 이깟 해골바가지들은 내 동족들은 괴롭혔을지언정 나에게까지 통하지 않는다!”
두히칸은 두 주먹을 쾅 하고 부딪쳤다.
금속에 가까운 경도라 불꽃이 튀었다.
“쪼그라드는 근육, 체력 약화, 둔화.”
기본적인 저주 스킬들을 쓰고.
“부패의 저주, 침식의 저주, 맹독의 저주.”
반지에 들어있는 스킬까지 발동시켰다.
검은빛이 번쩍였다.
-띠링!
[영웅 두히칸이 부패의 저주에 적중했습니다. 방어력이 크게 감소합니다.]
[영웅 두히칸이 침식의 저주에 적중했습니다. 이동 속도가 크게 감소합니다.]
[영웅 두히칸이 맹독의 저주에 적중했습니다. 상태 이상 ‘중독’이 활성화됩니다.]
“크윽. 내 동족들을 괴롭힌 사악한 마법이 이것이던가!”
두히칸은 머리를 휘휘 젓더니 분노를 표출했다.
“나는 이까짓 것에 굴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훌쩍 뛰어 해골 병사들 사이로 오히려 뛰어들었다.
-카캉!
-콰직!
놀랍게도 부서지는 건 해골 병사였다.
두히칸은 특별히 무기를 쓰지 않았다. 온몸이 무기였다.
단단한 외피는 그 자체로 무기도 되었기에, 주먹을 뻗고 발차기를 날리는 것만으로도 해골들이 바스러졌다.
“다크 배리어. 다크 힐.”
-우웅!
언럭키가 급하게 그레고녹의 홀에 있는 추가 버프를 끼얹었다.
지금까지는 굳이 쓸 필요가 없었다만, 지금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부서진 해골들이 회복되고, 놈들의 앞에 방어막이 생겼다.
-쾅! 쾅!
“이까짓 것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두히칸은 오히려 더욱 열 내며 돌진했다.
해골들의 방어력이 높아지고 회복도 된다지만 전투의 양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해골의 공격은 두히칸에게 거의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나마 좋은 무기를 낀 놈들이 활약을 펼치고 있었지만, 두히칸은 속도도 꽤 빨랐기에
‘성왕 시절의 나를 상대하던 보스몹들이 저런 기분이었을까?’
단단한데 강하다.
회복력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다시 보니 내 성왕 시절이 더 괴물 같군.’
새삼 직업을 바꾼 게 이럴 때는 아쉽다.
성왕이었다면 훨씬 더 재밌게 싸울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언럭키는 진심으로 나가기로 했다.
“해골 기사 소환.”
현재 다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소환수.
-덜그럭 덜그럭.
유령마를 탄 해골 기사가 ‘세 기’가 서서히 땅에서 솟구쳤다.
일반 해골들과 다르게 단단히 무장하고 유령마까지 타고 있는 괴물.
놈들에게서 뿜어지는 무시무시한 살의가 주변 공간을 잠식했다.
100레벨 단위당 1기를 소환할 수 있는 해골 기사.
100레벨 이전에는 1기밖에 못 썼지만, 지금은 두 기를 소환할 수 있다.
게다가 레전더리 스킬 ‘아포피스의 축복’으로 해골 기사는 한 기를 더 소환할 수 있었다.
‘가슴이 웅장해지는군.’
해골 기사의 파괴력이 어떤지는 수도 없이 겪어봤다.
그런 해골 기사가 더 늘어난 지금은, 이놈들이 얼마나 강력할지 두근거렸다.
두히칸도 해골들을 박살 내는걸 멈추고 해골 기사를 노려봤다.
“말 탄 해골! 너도 없애주마!”
두히칸이 소리친 순간.
-다그닥 다그닥.
해골 기사들이 유령마를 이끌고 먼저 돌진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