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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152화 (152/218)

#152화

샬도 후작은 뱀파이어들의 도시 ‘리아퀴른’의 고위 귀족 중 한 명이었다.

최고 귀족인 공작을 제외하고 존재하는 4명의 후작 가운데 하나였으니, 손꼽히는 권력자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아무나 만나고 싶다고 해서 찾아갈 수 없다.

그러나 샬도 후작은 벨라가 문을 두드렸을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직접 몸을 움직였다.

2층 집무실에서 바람처럼 대문까지 직접 움직인 것이다.

‘이런 향은 처음 맡아본다.’

벨라에게서 풍기는 신선한 피냄새는 3천 년간 살아온 샬도 후작으로서도 처음 느낄 만큼 강렬한 유혹이었다.

길거리의 뱀파이어들도 벨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 심했다.

고위 귀족이라 피에 민감했기에 더욱 강력하게 느꼈다.

평소에 보인 적 없던 친절함으로 그녀를 안내했고 손수 차까지 따라주었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얘기하며 그 대가로 손바닥에 상처를 내었을 때.

“이거라면…괜찮아요?”

샬도 후작은 완전히 함락되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충분하오.”

벨라의 피는 후작이 오랜 세월 살아온 삶에서 먹어본 것 중 최고라고 할 만큼 맛있었다.

* * *

“에휴.”

힘 빠진 한숨과 함께 언럭키가 터덜터덜 거리를 내걸었다.

“내가 그렇게 냄새가 심한가?”

팔을 들어 냄새를 킁킁 맡아보지만 당연히 아무런 냄새도 안 났다.

여러 뱀파이어들을 만나며 알아보니, 이건 단순한 냄새가 아니었다.

그보다 조금 더 근본적이었다.

언럭키가 다루는 신성력. 레전더리 직업인 ‘성왕’.

그 모든 것들이 어둠 속성인 뱀파이어들에게 강력한 악취로 느껴지는 것이다.

심지어 가만히 있어서 악취였지, 스킬이라도 쓰면 곧장 데미지를 입혔다.

도시에서 스킬을 썼다간 바로 뱀파이어들에게 공격당할 터.

‘젠장. 악취가 난다고 상대를 안 해주니 기껏 올려둔 명예 수치도 그리 쓸모가 없고.’

대화의 물꼬를 틀어야 뭘 하든 말든 할 텐데, 시작조차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길거리를 걷다가 가끔씩 마주치는 뱀파이어들이 화들짝 놀라 멀어졌다.

몇 번이나 본 모습인데도 계속 저러니까 슬슬 상처받을 것 같다.

“에휴.”

더 크게 한숨을 쉬며 언럭키는 처음 출발했던 중앙 광장에 도착했다.

‘벨라님은…아직 안 오셨나.’

생각보다 탐문을 열심히 하고 계신가보다.

그럼에도 언럭키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벨라는 뱀파이어들에게 악취를 풍기진 않겠지만, 명예 수치가 그리 높지 않을 터였다.

뱀파이어라도 NPC이기에 첫 대화를 하는 것엔 명예 수치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하물며 뱀파이어 귀족들에게는 더더욱 그러겠지.

‘벨라님은 언제 오려나.’

그렇게 하염없이 광장에 왕따처럼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척. 척. 척.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군대가 이쪽으로 진군해왔다.

멋드러진 정복을 입은 뱀파이어 군대였다.

“어?”

그러나 언럭키는 곧이어 깜짝 놀랐다.

그 군대의 맨 앞에 벨라가 있었던 것이다!

뱀파이어들은 광장에 멈춰 섰다.

언럭키를 보더니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왠 거지같은 놈이…. 썩 꺼져라.”

“제…동료에요.”

“헛!? 그렇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윽박질렀던 뱀파이어는 벨라의 말에 벌벌 떨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알았어요. 용서할 테니 수색에…열중해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뱀파이어는 허리 숙여 인사하더니 움직였다.

다른 뱀파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부터 수상쩍은 물건을 찾는다. 다른 저택들 탐문 조사 실시하고. 귀족들의 저택은 샬도 후작님께서 직접 방문하신다고 하셨으니 내버려둔다. 이해했나?”

“네!”

“그럼 당장 움직이도록!”

뱀파이어들이 일사분란하게 흩어지며 주변 저택을 찾아가거나 수상쩍은 공간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언럭키는 혼란스런 눈빛으로 벨라를 쳐다봤다.

말은 하지 않아도 이게 어떻게 된건지 설명해달라는 의미가 눈빛에 담겨있었다.

벨라는 어색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뱀파이어들이…이상하게 제 피를 좋아해서요. 피 한 모금 씩 빨게 해준다고 하니까…수색을 도와주기로 하셨어요.”

“아니 뭔…피가 금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거예요?”

“글쎄요….”

벨라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아. 오늘도 언럭키 영상 재밌었네.”

김동엽은 미튜브로 언럭키의 솔로 레이드 영상을 보고는 기지개를 쭉 폈다.

“천공의 탑 보스몹을 혼자서 잡다니. 진짜 재능 있는 친구란 말이야.”

우연찮게 미튜브에서 영상이 뜬 걸로 입문했던 스트리머 언럭키.

재능 넘치는 유망주라고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생각이 조금 바꼈다.

“준랭커…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지.”

아직 랭커라고 부르기에는 레벨을 포함해 많은 것들이 부족하다.

일단 레벨 자체가 랭킹권에 진입하지도 못했고, 아이템 수준이나 스킬 수준, 실력 또한 살짝 못 미친다고 판단됐다.

하지만 언럭키의 놀라운 점은 지금이 성장 중이라는 것이다.

이 속도로 볼 때, 랭커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김동엽에게 언럭키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화영이가 밤에 통화했던 남자가…아마 그 사람이겠지.”

며칠 전, 어머니가 우연찮게 밤에 통화하는 여동생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예전의 사고 이후로 가족 전체가 항상 그녀를 걱정해왔는데, 타인과 통화까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다니.

김동엽은 엄청나게 감격했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행복한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모를 정도야.’

그래서 어떻게든 언럭키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다.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단순히 돈을 주는 건 싫어할 가능성이 높다.

‘바쁜 일도 처리됐고…차라리 따로 원하는 게 있는지 물어봐야겠군.’

김동엽도 월드 사가에서 길드를 운영하는 입장이었는데, 최근에 여러 가지 이슈들이 많아서 굉장히 바빴다.

정신없이 월드 사가에서의 일처리를 하느라 좀 늦어졌지만, 더 늦출 수는 없다.

김동엽은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 적혀있는 이메일에 연락을 넣었다.

* * *

벨라에게 그간 있었던 자초지종을 설명 들었을 때, 언럭키는 깜짝 놀랐다.

“그냥 귀족도 아니고 뱀파이어 후작이 도와주고 있다고요?”

“…네.”

언럭키는 단순히 탐문 조사만 한 게 아니었다.

이 곳 뱀파이어 도시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알아보고 다녔다.

대놓고 질문하면 당연히 냄새난다며 욕이나 듣기에, 다른 뱀파이어들이 하는 말들을 최대한 멀리서 엿들었다.

‘후작이면 분명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귀족이랬지.’

도시 최고의 권력자라는 뜻이었다.

그런 귀족의 협조를 받는다면 퀘스트 완료까지 성큼 나아가는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벨라님.”

언럭키가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솔직히 벨라에게 별 기대를 안했는데 이런 대어를 물어올 줄이야.

“레이디.”

그때 샬도 후작이 벨라에게 다가왔다.

“보셨겠지만 내 휘하에 있는 친구들은 믿고 맡겨볼만하오. 바람이 찬데 레이디께서 굳이 나와 계실 필요 없다는 뜻이지. 이만 내 저택에 가서 차나 한 잔 더 하시는 게 어떻소?”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벨라를 대했다.

옆에 있던 언럭키는 아직 통성명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이 자가 고위 귀족 뱀파이어라는 걸 알아챘다.

몸에 밴 자신감이나 태도, 표정이나 몸짓 등.

‘최소 호르헤른님과 같은 급이야.’

태생부터 귀족이었던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아우라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벨라님의 동료인 언럭키라고 합니다.”

언럭키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뱀파이어들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도 싫어하지만, 그래도 인사를 안 할 수는 없었다.

“흠. 레이디의 동료라는 자가 그 쪽이었군….”

샬도 후작은 처음에 잠깐 인상을 찡그렸지만, 곧이어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며 악수를 청했다.

“레이디가 자네를 엄청 따르더군. 별로 인기 많은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거 신기하군. 어쨌거나 반갑소. 샬도 후작이라고 하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언럭키입니다.”

언럭키는 감격했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경험들로 뱀파이어들이 자신 앞에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봤다.

그런 상황에서 표정 관리를 하며 악수까지 청하다니.

실로 대귀족이라 칭할 만했다.

“레이디의 동료라니 자네도 내 집으로 초대하지. 가서 함께 만찬을 즐기게.”

“감사합니다!”

언럭키가 넙죽 고개를 숙였다.

귀족 NPC와의 접점은 만들면 만들수록 좋은 것이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다니.

언럭키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벨라를 쳐다봤다.

마치 은은한 후광이 뿜어지는 것 같다.

언럭키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벨라님…. 제가 믿고 있었던 것 알죠?”

“…….”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 벨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샬도 후작의 저택으로 갔다.

수색이야 후작의 부하들이 열심히 해줄 것이다.

도시에 처음 온 언럭키가 하는 것보다야 그들이 하는 게 훨씬 더 성공 확률이 높을 터.

‘너무 좋군.’

이대로 만찬을 즐기면서 샬도 후작과 친해진 다음, 그에게도 퀘스트 같은것 좀 받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비싼걸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면 좋겠는데 말이지.’

저택에 찾아가니 후작 휘하의 몇몇 뱀파이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작 각하를 뵙습…크흠.”

“아니 이게 왠 쓰레기 냄새….”

“으윽. 우우웁.”

언럭키는 할 말을 잃었다.

“…….”

그들은 샬도 후작처럼 표정 관리를 잘 하지 못했다.

“손님 앞에서 이 무슨 추태인가 자네들.”

“죄, 죄송합니다….”

“내가 대신 사과하지. 들어가게. 레이디도 들어가시지요.”

샬도 후작은 손수 벨라와 언럭키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맛있는 음식들이 잔뜩 차려진 식탁에 앉았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기다란 식탁이었다.

다른 뱀파이어들도 각자 자리에 앉았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게.”

샬도 후작의 말과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식사 자리는 순순히 흘러가지 않았다.

뱀파이어들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진 것이다.

원래 악취라는 게 실내에 있으면 더욱 강력해지는데, 그런 악취 속에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는 게 쉬울 리 없다.

샬도 후작도 위장 관리까지는 못 하겠는지 가만히 포크와 나이프만 들고 있었다.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벨라와 언럭키도 뭘 잘 먹지 못했고.

“후우….”

샬도 후작은 고민하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손님으로 데려왔는데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자네를 위해 따로 만찬을 차려줄 테니 다른 곳으로 가줄 수 있나?”

“…알겠습니다.”

언럭키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 누구도 잘못은 없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래. 식사가 끝나고 얘기를 나눌 때 다시 부르겠네. 티타임은 가질 수 있겠지.”

샬도 후작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이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띠링!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올마스터로서 새롭게 직업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기존 직업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새로운 직업을 획득한다면 ‘성왕’ 직업의 성장세는 현 상태에서 저장됩니다.]

[선택할 수 있는 직업]

[1. 검사]

[2. 마법사]

[3. 궁수]

[4. 암살자]

[5. 사제]

‘아…오늘이 그 날이었구나.’

오늘이 성왕을 선택한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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