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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151화 (151/218)

#151화

“따라오게. 우리들의 도시 ‘리아퀴른’으로 안내해 주지.”

뱀파이어 벡스는 언럭키와 벨라를 데리고 앞장섰다.

출입증까지 생겼겠다, 거리낄 것도 없었다.

지저 도시에 가는 길에 언럭키는 내심 기대했다.

과연 이 도시에서는 어떤 이벤트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와아….”

“…….”

그리고 지저 도시에 도착했을 때, 언럭키와 벨라는 감탄했다.

빛 한 점 없는 지하임에도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광원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 아래로 펼쳐진 도시는 바깥에서 봐왔던 다른 도시들과 달랐다.

월드 사가 대부분의 도시는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영주성을 중심으로 구조가 짜여 있다.

그러나 지저 도시 ‘리아퀴른’은 고풍스러운 저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저의 천장을 찌를 듯 높이 솟구친 첨탑들이 너무 많았고, 각자 자신들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언럭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간단했다.

‘저렇게 화려한 집들이 많으면, 여기 있는 뱀파이어 NPC들은 하나같이 부자겠는데?’

NPC와 관계 한 번 잘 맺으면 온갖 떡고물이 떨어지는 법이다.

호르헤른 가문과도 그렇게 인연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언럭키는 결심했다.

도시 안에서 열심히 싸바싸바를 잘 하고 다니겠다고!

전투적인 마음으로 언럭키는 지저 도시의 성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장 처음 본 뱀파이어를 향해 다가가 넙죽 인사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뵙게 되어 반갑습…”

“크윽. 냄새. 무슨 이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거야?”

“……?”

그러나 인사를 끝내기도 전에 상대 뱀파이어는 코를 막으며 도망쳤다.

언럭키는 당황스러웠다.

뭐 엄청난 환영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그리고 도시 내부를 거닐수록 훨씬 더 극심한 차별의 눈빛을 겪었다.

“으윽. 젠장맞을. 이게 뭔 역겨운 냄새지? 600년간 살아오면서 처음 맡아보는 냄샌데.

“어떤 쓰레기가 도시 안에 저딴 걸 데려온 거지? 출입증은 있는 건가?”

“당장 한 줌의 핏물로 만들어버리고 싶군.”

“경비는 뭐하는 거야!”

뱀파이어들의 적대적인 시선이 언럭키를 향했다.

언럭키는 슬쩍 벡스의 뒤로 숨었다.

“내가 말했잖아. 우리 도시 시민들이 자네를 별로 안 좋아할 거라고.”

“…저한테서 정말 그렇게 안 좋은 냄새가 나나요?”

“좀 심하긴 하지. 그리고 혹시 몰라 얘기하는데 전에 썼던 그 신성력의 빛은 절대 쓰지 말게. 지금이야 저 친구들이 인상만 찌푸리지만 그 땐 정말로 공격해올지도 몰라.”

벡스의 충고에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아하니 스킬 쓰는 것도 정말로 조심해야겠다.

그러다보니 새삼 벡스가 다르게 보였다.

다른 뱀파이어들은 아예 접근조차 안하려고 하는데, 그는 그래도 처음부터 말도 걸어주고 퀘스트도 주고 했지 않은가.

“저한테 냄새가 나는데 벡스님은 그걸 참고 다가와주신거군요. 벡스님은 성품이 참 선하신 뱀파이어인 것 같습니다.”

“응? 아니야. 난 비염이라 원래 피냄새 빼면 다른 냄새를 잘 못 맡아. 그런 나한테도 악취가 풍길 정도면 말 다했지 뭐.”

“…….”

벡스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언럭키는 도저히 같이 웃을 수 없었다.

* * *

본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벡스는 꽤나 친절한 뱀파이어였다.

도시 내부를 돌아다니며 어디에 뭐가 있는지 설명해 줬고, 주의할 점도 알려 주었다.

“지상의 도시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별로 위험하지 않아. 오히려 굉장히 안전한 편이지.”

뱀파이어들의 도시라고 해서 약간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여러 귀족들이 통치하는 도시이기에 오히려 규율이 단단히 잡혀 있었다.

도시 내에서 서로 싸웠다간 중형으로 다스려지는 것이다.

최소한 출입증이 있다면 도시 내에서 공격받거나 할 일은 없어보였다.

“그럼 슬슬 여기서 헤어지자고. 히사렛들 처치한걸 보고도 하고 돌아가서 쉬고 싶거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벡스님.”

“그래. 다음 기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어.”

벡스는 언럭키에게 그렇기 말한 뒤, 휙 몸을 돌려 벨라를 쳐다봤다.

“그 쪽 아가씨는 다음에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주게. 딱 10초…아니, 5초만 피를 빨게 해주면 내 무엇이든 해주지!”

“…….”

“부, 부담스러우면 한 모금…아니 반 모금만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스읍.”

“어후. 얼른 가세요 좀.”

“아, 알겠네.”

언럭키는 억지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벡스는 맛을 한 번 다시더니 끝까지 벨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떠나갔다.

둘이 남은 언럭키 일행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고심했다.

리바 델 레이는 많고 많은 도시 중 일부러 천공의 탑 주변에 악마를 풀었다.

어째서 천공의 탑을 점령하려 했을까.

헤탄의 추측은 지저 도시에 무언가 그들이 원하는 게 숨겨져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언럭키도 거기에 동의했고, 도시에 입성한 지금부터 그게 뭔지 찾아봐야했다.

“그래서 말인데 벨라님.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언럭키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구하자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언럭키를 따라온 이유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뱀파이어들의 도시에서 수상쩍은 물건 찾기라니.

이만한 경험은 돈 주고도 못한다.

“그럼 구역을 서로 나누죠. 저는 이쪽으로 갈 테니 벨라님은 반대편으로 수색해주세요.”

대충 도시의 중앙 광장 같은 곳에서 절반은 언럭키가, 나머지 절반은 벨라가 맡기로 했다.

물론 언럭키는 그녀를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평소에 입도 잘 안 여는 사람인데 탐문 수색을 어떻게 하겠어.’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니 부탁한 것일 뿐, 그녀의 담당 구역까지 나중에 언럭키가 다시금 돌아볼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구역을 나눈 다음, 언럭키는 탐문을 시작했다.

고풍스러운 저택들이 줄지어 늘어진 거리.

그중 첫 번째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녕하세요. 말씀 좀 여쭙고 싶은데요.”

세상 친절한 목소리로 말하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누구…으읍.”

그러나 문을 열어준 뱀파이어는 언럭키를 보고 황급히 코를 막았다.

“어디서 거지같은 놈이 찾아온 거야!”

-쾅!

면전에서 문이 닫혔다.

-썩 꺼져. 앞마당 오염시키지 말고!

“…….”

닫힌 문 안쪽에서 들린 소리에 언럭키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뭐. 아무것도 못하겠는데?

‘아니. 포기하지말자.’

그러나 언럭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인생이 언제 쉽게 풀린 적 있었던가.

고난과 역경은 친구처럼 늘 함께했다.

노력하다보면 안 되는 일은 없는 법.

언럭키는 씩씩하게 다음 집으로 나아갔다.

* * *

한편, 벨라 역시 언럭키처럼 탐문을 시작했다.

걸어가면서 그녀는 속으로 걱정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언럭키가 예상했던 것과 똑같은 걱정을 본인역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남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웠다.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며 고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언럭키와도 제대로 의사소통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탐문 수사라니.

그러나 벨라는 힘을 냈다.

‘언럭키님은…날 믿고 이런 일을 맡기신거니까.’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 이외에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인지 모르겠다.

벨라는 이걸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사박 사박.

언럭키가 가장 가까운 저택부터 탐문한 것과 달리, 그녀는 가만히 길을 걸었다.

집은 워낙 많았고 아무거나 들어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길거리에 있는 뱀파이어들의 시선이 꼬였다.

언럭키를 쳐다볼 때의 적대감 어리던 눈빛과는 명백히 달랐다.

“킁킁. 어디선가 아주 달콤한 향기가 나는군.”

“피냄새…. 그것도 천상의 맛을 자랑하는 피냄새인 것 같은데….”

벨라가 지나갈 때마다 뱀파이어들이 저도 모르게 그녀를 뒤돌아봤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할까 생각에 빠진 벨라는 뱀파이어들이 자신을 뒤따르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렇게 시선들을 끌고 다니던 와중, 그녀는 엄청난 크기의 저택 앞에서 멈춰 섰다.

가만히 보니 주변에 있는 저택 여러 개를 합친 것처럼 커다란 크기였다.

‘여기라면…뭔가 있을 것 같은데.’

-똑똑.

벨라는 고풍스러운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나온 것은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중년의 뱀파이어였다.

각진 얼굴의 그는 굉장히 냉정한 인상을 풍겼는데, 가만히 벨라를 쳐다봤다.

“흐음.”

“…안녕…하세요.”

“그래. 좋은 밤이오.”

남자가 싱긋 웃었다.

“처음 뵙는 레이디인 것 같은데. 본인은 샬도 후작이라고 하오만, 그 쪽은 이름은 어떻게 되나?”

“…벨라.”

“벨라. 그대에게서는 엄청나게 좋은 향이 나는군. 들어오게. 내 손님인 것 같은데 차 한 잔 대접해 드리겠네.”

뱀파이어 후작 샬도는 문을 열어 벨라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

그러면서 바깥 길거리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한 번 쳐다봤는데, 그들은 샬도 후작의 날카로운 눈빛에 엇 뜨거라 하면서 물러났다.

“실례…할게요.”

“얼마든지.”

샬도 후작은 뱀파어어들을 쳐다볼 때와 달리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벨라를 대했다.

그는 응접실로 안내한 다음 손수 차를 내왔다.

“드시오. 나쁘지 않을 거요. 내가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다도로 꽤 정평 있거든.”

벨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볍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친김에 그가 같이 내온 쿠키도 먹었다.

언럭키가 맡긴 임무의 첫 발을 잘 떼었기 때문일까,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단 게 몸속에 들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아. 그럼 레이디께서 내 집에 온 이유를 한 번 들어볼까?”

그녀의 얼굴이 좋아보이자 샬도 후작은 싱긋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벨라는 고민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그녀는 한참을 말할 듯 말듯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조리 있게 말하는 걸 오랫동안 안해 봤기에 어떻게 서두를 꺼내야할지 모르겠다.

“천천히 얘기하시오 레이디.”

“찾고 있는 게…있어요.”

다행히 상대가 NPC라 생각이 드니 어찌어찌 얘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샬도 후작은 이해심이 많았다. 벨라의 말을 찬찬히 들어주었다.

리바 델 레이가 지상의 천공의 탑을 공격한 것.

그 이유가 지저 도시에 있을 무언가라고 추측한 것.

그걸 찾고 있다는 것까지.

한참을 걸려 설명했다.

“흠. 레이디께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했소.”

샬도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아쉽게도 나한테는 그런 물건이 없소. 그런 커다란 단체가 노릴만한 거라면 필시 귀물일 텐데 딱히 들어본 적은 없군.”

“그렇…군요.”

“하지만 내가 아는 다른 귀족들은 어떻게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르지.”

“혹시…찾는 걸 도와줄 수…있나요?”

“아무런 대가도 없이?”

“…….”

벨라가 입을 다물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그녀는 조그만 단검을 하나 꺼냈다.

예전에 암살자 시절의 언럭키를 생각하며 만든 물건이었는데 지금은 직업이 바뀌어 그대로 자신의 인벤토리에 넣어놨던 것이다.

그걸로 가볍게 손바닥을 베었다.

HP가 조금 소모되며 핏물이 방울방울 올라왔다.

“이건…어때요?”

출입증을 줬던 뱀파이어 벡스는 피 한 번 빨고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뱀파이어들은 자신의 피를 좋아하는 것 같다.

눈앞의 샬도 후작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 예상이 맞았는지 샬도 후작의 눈빛이 변했다.

“하아….”

그의 살짝 붉어진 눈동자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벨라의 새하얀 팔뚝에서 떨어질 생각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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