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언럭키가 이미 지저 도시의 입구를 발견했다는 말에 헤탄은 상당히 당황했다.
“아, 아니…. 어떻게 그걸 찾았나?”
명색이 정보원인 자신조차도 발견하지 못한걸 이미 찾아오다니?
물론 언럭키도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다.
“그냥 뭐…어쩌다 보니 발견하게 됐습니다.”
“허어. 자넨 참 운이 좋군.”
“하하….”
‘지저 도시 입구를 발견한 걸 이렇게 써먹는군.’
시간 남아서 해본 보스몹 레이드 결과가 이렇게 이어지게 될 줄이야.
어쨌거나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시간 낭비 없이 바로 사이드 퀘스트를 성공하면서 경험치를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여간 잘됐군. 그렇다면 부탁하겠네. 지저 도시의 존재를 확인하고, 어째서 리바 델 레이가 그 곳을 노렸던 건지 알아봐 주게.”
“알겠습니다.”
* * *
불과 땀이 공존하는 대장간.
청년부터 노인까지. 불에 그을려 구릿빛의 피부를 지닌 근육질의 남자들이 열심히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에 이질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 채, 가볍게 민소매만 입은 하얀 머리카락의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한 번이라도 보면 반드시 한 번 더 되돌아볼 만한 미모의 소유자인 벨라였다.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서 있었는데, 주변 대장장이들은 감히 그녀의 공간을 침범하지 못했다.
순전히 실력으로 대장장이들의 존경을 얻어내었기에, 장인들은 그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작 벨라는 지금 남의 시선이 어떻건 간에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 놓여 있는 건 언럭키가 맡긴 ‘악의 정수’였다.
제대로 다루기만 하면 그녀의 커리어 하이를 찍을 만한 물건을 만들 재료.
“하아….”
잠시 망치를 들고 고민한 그녀는 옅은 한숨과 함께 악의 정수를 다시 인벤토리에 챙겼다.
“허허. 벽에 가로막히셨습니까?”
그때 늙수그레한 장인이 웃으며 다가왔다.
벨라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요. 저도 살면서 그만한 재료를 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아무리 벨라님이라고 하셔도 쉽사리 다룰 수 없는 물건이지요.”
노인은 이 대장간의 주인인 블랙스미스 마스터였다.
벨라가 자유롭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데에는 마스터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미천하지만 제가 그래도 벨라님보다 경험은 많을 텐데, 조언 하나 드려도 괜찮을까요?”
“미천하지…않아요. 경청할게요.”
“얼핏 보아하니 벨라님의 능력이라면 이걸로 작품을 만드는 것도 가능은 할 겁니다. 맞습니까?”
벨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들 수는 있었다.
문제는 다른 거였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이 재료를 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벨라가 이번에는 두 번 끄덕거렸다.
정확했다.
악의 정수는 워낙 좋은 재료였기에 이걸 이용하면 레전더리 아이템 정도는 무난하게 나올 것이다.
벨라의 실력이면 그건 확실했다.
하지만 재료의 잠재성을 완전히 뽑아내지 못한다는 건 그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누군가는 별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그녀에게는 중요했다.
“흐흠. 저도 그런 일이 있었죠. 솔직히 말하면 많이 겪었습니다. 저는 벨라님처럼 재능이 좋지 않았거든요. 좌절도 많이 겪었고 운이 좋아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겁니다.”
“그러면…해결책도…있으세요?”
“물론이죠.”
블랙스미스 마스터는 아무렇지 않게 끄덕였다.
벨라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당장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리고 더 많은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경험….”
“다양한 경험은 때때로 장인에게 생각지 못한 해법을 주기도 하죠. 여행을 가는 것도 좋고 안하던 것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다보면 제작에 도움이 되는 다른 재료들을 얻기도 할 테고요.”
벨라는 블랙스미스 마스터의 말에 집중했는데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스터는 연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천재적인 장인들 중에는 독선적인 사람이 많다.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으니 남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벨라는 그런 게 전혀 없었기에, 선배 장인으로서 흐뭇할 뿐이었다.
“혹시 지금 매달리는 작품이 주인이 정해진 것입니까?”
“…네.”
“그렇다면 그 주인도 한 번 관찰해보십시오. 쓸 사람의 자세, 습관, 생각이나 가치관. 이런 것들을 보다보면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 주인의 관찰.
벨라는 그의 말을 한동안 가만히 곱씹었다.
블랙스미스 마스터는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얼마 후, 벨라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허허. 아닙니다. 제 조언이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대화가 끝난 뒤, 벨라는 곧장 짐을 챙겨 움직였다.
여기 가만히 틀어박혀 있어서는 답이 안 나온다고 느꼈다.
* * *
“그러니까…저랑 같이 다니고 싶으시다 고요?”
“…….”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럭키는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아니 다짜고짜 찾아오셔서 하시는 말이 그거라니….”
그는 언제든지 지저 도시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벨라가 자기만 믿어보라고 했으니 완성된 아이템을 받기만 하면 바로 헤어지고 헤탄의 의뢰를 수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
물론 그걸 따질 수는 없다.
대장장이와 유저 사이의 관계는 명확하게 갑을관계가 나뉜다.
당연히 대장장이가 갑이다.
심지어 벨라처럼 레전더리 등급의 직업에다가 실력까지 좋은 대장장이라면?
“하하. 그럴 수 있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으시다니. 제가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슈퍼 갑이다.
언럭키는 웃으면서 그녀를 대했다.
그녀가 괜히 기분이라도 나빠져서 대충 재료를 쓸 일은 없겠지만…좋은 사이로 지내야 하지 않겠는가.
파티원 한 명 정도 데리고 다니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벨라는 언럭키의 반응을 보고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 싫어하지는 않으시네. 다행이다.’
그녀가 아는 유저 중에 여러 가지 경험을 시켜줄만한 사람은 언럭키 뿐이다.
미튜브만 봐도 알 수 있고 함께 다녀보기도 했는데,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블랙스미스 마스터가 조언한데로, 언럭키를 관찰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싶기도 했다.
여러모로 보아 함께 다녀야했는데, 그의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행히 제가 이번에 새로운 지역을 탐사하러 가게 됩니다. 같이 가시면 참…좋겠네요.”
언럭키는 웃는 얼굴을 유지한 자신의 페이스 메이킹을 자화자찬했다.
역시 사회생활을 좀 해봤기에 이런 게 되는 구나!
‘…그래. 차라리 잘됐어. 같이 다니면 재료 아이템 먹튀는 못하겠지.’
언럭키는 애써 그렇게 좋은 생각을 했다.
‘같이 다니면 카메라맨 역할도 한번 씩 부탁드려보자. 그래…그러면 되는 거야.’
사실 따져보면 그녀와 함께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대장장이지만 그녀의 장비빨은 언럭키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우위에 있다.
갑작스러운 전투에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오히려 그녀가 경험치를 빼앗아 가지 않도록 지켜봐만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수도 있겠지.
“잘 부탁드려요.”
“네…저도요.”
그렇게 두 사람은 파티를 맺고 출발했다.
* * *
지저 도시로 들어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입구 자체가 천공의 탑 10층 보스룸에 있다 보니, 일단 보스부터 잡아야한다.
10층에는 여전히 유저들이 얼마 없었다.
지금 시기는 한창 모든 유저들이 개척자가 되어 바깥을 탐사하는 시기.
사냥하기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혹시 미발견된 던전이나 보물 같은 게 있는지 찾아다녔다.
이런 상황에서 한가롭게 보스몹 레이드를 뛰는 자는 없었다.
보스몹이 뭐 특별한 아이템이나 보상을 드랍하는 거면 모를까.
탑 10층의 보스몹은 그저 일반몹보다 좀 더 많은 경험치를 주는 것뿐이었다.
언럭키의 보스몹 솔로 레이드 영상을 보고 레이드에 호기심을 갖고 온 유저들도 좀 있긴 했지만, 그들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띠링!
[천공의 탑 10층 보스룸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경고! 보스 몬스터는 굉장히 강력합니다. 전력을 갖춰서 입장하시는걸 추천합니다.]
[Y/N]
그렇기에 이번에도 언럭키는 혼자서 보스룸에 입장했다.
정확히는 벨라와 둘이서이긴 했다.
그러나 전투는 혼자 담당했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띠링!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쓰러져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지옥의 두 번째 수문장 오론’을 보는 언럭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번에는 레벨업도 안 되는군.’
그래도 레벨 차이가 아직 10개 넘게 나는데 레벨업 한 번이 안 되다니.
확실히 보스몹 중 최약체라고 할만 했다.
물론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언럭키가 불타는 보스룸 구석 쪽으로 갔다.
지난번처럼 남색으로 빛나는 벽돌이 보인다.
발로 몇 번 그 자리를 툭툭 건들다가, 그대로 망치를 몇 번이고 휘둘러 부쉈다.
-쾅! 쾅! 쾅!
굉장히 단단해서 몇 번을 반복해야 부서졌다.
돌이 완벽히 부서지고 뻥 뚫린 지저도시로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럭키가 살짝 가슴을 펴며 뒤에 있는 벨라를 쳐다봤다.
“여기가 지저 도시로 가는 입구입니다.”
“그렇군요.”
“어…안 놀라시네요?”
“…네.”
언럭키는 살짝 당황했다.
이런 대단한 발견은 보통 유저라면 오오 하면서 놀라야 하는데, 벨라는 너무 담담했던 것이다.
벨라 입장에서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신기한 짓을 자주 하던 언럭키였기에 이것도 그런 일환으로 본 것이다.
묘하게 섭섭함을 느낀 다음, 언럭키는 구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그 후에 따라오세요.”
그 후 쏙 하고 안으로 사라진 언럭키.
벨라 역시 곧장 그를 뒤따라갔다.
텅 빈 보스룸은 잠시 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전처럼 복구되었다.
* * *
-탁.
지저 도시의 입구는 기다란 미끄럼틀 같은 형태였는데, 언럭키가 먼저 바닥에 착지하고 그 다음 벨라가 떨어졌다.
“움직이지 마세요.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어두컴컴해서 피아 식별도 제대로 안 된다.
뭐가 있을지 모르니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대고 경계했다.
“디바인 포스.”
언럭키가 중얼거리자 망치에서부터 휘황찬란한 빛이 터져 나왔다.
어둠 속성 계열의 적에게 추가 피해를 입히는 버프 스킬, 디바인 포스.
그렇지만 지금 쓴 이유는 횃불 대용이었다.
마나 소모도 그리 크지 않은 스킬이었는데, 켜두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사물을 식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거기에 하이 홀리 오오라를 발동하니 등에서 휘황찬란한 빛으로 된 날개가 펼쳐졌다.
-펄럭!
-화아아악!
‘휴대용 인간 전등이 된 기분이군.’
“가시죠.”
“…네.”
언럭키는 성큼성큼 앞장섰다.
처음 보는 장소를 나아가는 것이지만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10층의 보스몹도 그리 어렵지 않게 때려잡던 언럭키이다.
설사 어둠 속에서 기습이 날아오더라도 몇 방 정도는 맞아줄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저 멀리서 실루엣 하나를 마주쳤다.
“!”
언럭키와 벨라는 대번에 경계 태세를 취했다.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망치를 든 채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초소처럼 경계할 수 있게 된 곳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언럭키는 자세히 보기 위해 망치를 들이밀었다.
디바인 포스가 더욱 밝게 빛나며 내부를 비췄다.
“크아아악! 불! 그 불 좀 꺼!”
“?”
초소 안에 있던 창백한 피부를 지닌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