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남색 빛이 터져나오던 장소.
그건 그냥 성벽을 이루는 벽돌같이 생겼다.
자세히 봐도 그냥 벽돌이었다.
그러나 벽돌의 틈 사이에서 은은하게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여기 뭐가 있다는 것 같은데.’
언럭키는 벽돌을 톡톡 두드렸다.
그걸로 알 수 있는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망치를 들어올렸다.
-콰앙! 쾅! 쾅!
벽돌은 무척이나 단단해서 우레 망치로도 쉽게 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을 내리치자 금이 갔고, 거기서 몇 번 더 내리치자 완전이 부서졌다.
“아, 이런.”
언럭키는 그제서야 남색 빛의 정체를 확인했다.
-띠링!
[지저 도시의 입구를 발견하셨습니다.]
그건 헤탄이 찾아주겠다던 지저 도시의 입구였다.
* * *
이용승은 언럭키의 편집자이면서 제1의 팬이었다.
그렇기에 매번 언럭키의 영상 원본을 받을 때마다 항상 기대감이 들었다.
과연 이번 영상은 어떨까?
하나에 빠지면 푹 꽂히는게 이용승이었고, 지금 그가 꽂힌 스트리머는 언럭키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편집자까지 할 수 있다니.
‘나는 참 운이 좋군.’
그래서 이용승은 지금 일상이 좋았다.
작업장의 일이 고되긴 하지만 그 외에 부업으로 영상 편집도 하고 운동도 한다.
심지어 성 팀장은 이용승이 운동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꽤 자주 퍽퍽한 닭가슴살을 따로 제공해줬다.
놀랍게도 그것만으로 이용승은 별로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살만한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든 것이다.
어쩌면 성 팀장이 그걸 노리고 자신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어주는지 모르겠다.
따르는 형님인 박세훈과 좋아하는 스트리머인 백현이 나가겠다고 하니 함께 하려는 것일 뿐, 지금의 삶도 나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런 이용승에게 있어서 하루 중 제일 기대되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달칵 달칵
백현에게서 온 파일 원본을 재생시켰다.
‘이번에는 뒤에서 누가 찍어줬군.’
시작부터 언럭키의 뒷모습이 나왔다.
컵라면님은 아직 천공의 탑에 갔다는 말을 못들었으니, 일일 카메라맨을 구한 것이겠지.
그때부터 이용승은 진지하게 영상을 시청했다.
어떤 장면을 살리고 자를지, 배경음은 뭘로 깔지, 자막과 임팩트는 어떻게 넣을 것인지 등.
신경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곧.
“…….”
이용승은 분석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영상에 몰입했다.
천공의 탑 보스몹과 1대1이라니.
그것도 아슬아슬한 싸움이 아니라, 누가 먼저 죽나 해보자라는 듯이 정면으로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이건 뭐. 내가 편집할 게 없겠는데?’
재밌다. 그것도 너무 재밌다!
언럭키의 1호 팬으로써 편집이 아니라 순수하게 영상을 즐겼다.
그런 이용승이 제대로 된 편집을 시작한건 영상을 무려 5번이나 돌려보고 난 다음, 해가 뜨기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새벽 시간이었다.
* * *
-띠링!
[NEW!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서 최초 공개가 시작됩니다.]
[제목 : 보스 몬스터라고? 일반 몬스터인줄 알았는데요?]
[4시간 뒤에 최초로 공개됩니다.]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 공지가 떴다.
“오!? 언럭키 채널에 오늘 영상 올라오나보다.”
“오늘은 라이브 아니고 그냥 영상 업로드인가보네?”
꽤 많은 사람들이 영상까지 아직 한참 남았음에도 채널에 들어왔다.
<여기가 최근에 가장 핫하다는 스트리머 채널인가요?>
<알림 뜨자마자 들어왔습니다. 사냥터 개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질라게 죽고 있긴 한데 그래도 사냥할 수 있어서 좋아요.>
[현재 채팅창 인원 : 1434.]
“와…이건 뭐.”
컵라면, 이한영은 언럭키의 라이브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다가 혀를 내둘렀다.
채팅창에서 영상을 기다리면서 기다리는 시청자의 숫자가 이전보다 굉장히 늘었다.
보통 4시간 뒤 공개라고 하면 그 때쯤 맞춰서 사람들이 들어오지,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방송 중에는 2천명을 넘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아직 시작까지 한참 남은 채팅창에 1500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오다니.
심지어 그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이한영으로서는 감개가 무량했다.
나의 작고 소중한 언럭키 채널이 이렇게 발전하다니!
‘물론 이래놓고 영상이 재미 없다면 귀신같이 떠나겠지만.’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실력이 없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없다.
이한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종합게임스트리머로 방송을 했던 입장에서(지금도 종종 한다) 그도 몇 번 기회라는걸 얻어봤다.
예상치 못한 AI의 선택을 받아 어떤 영상이 떡상을 하고 시청자 수가 확 증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한영은 늘어난 시청자 수를 붙잡지 못했다.
순전히 그의 스트리머로써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그저 안타까울 뿐.
하지만 언럭키는 다를 것이다.
그걸 알아봤기에 이한영은 기꺼이 그와 함께하는 길을 택했던 거고.
‘이번 영상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지.’
PD이기에 이번 영상을 먼저 봤는데, 감탄밖에 안 나왔다.
혼자서 보스몹을 저런 식으로 깨부수다니.
‘내가 찍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게 아쉬워.’
영상 편집에는 이용승 뿐만 아니라 이한영도 참여하기에 카메라로 찍을 때부터 미리 구도를 잡고 들어가면 더 좋다.
일일 알바를 써서 찍은 영상이기에 그런 건 불가능했지만, 참 아쉬웠다.
‘나도 더 빨리 레벨업을 해야겠어.’
어쨌거나 그러다보니 4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영상이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대룡 미디어 광고가 지나간 다음, 본격적으로 내용물이 흘러나왔다.
-화르르륵
드러나 배경은 활활 불타고 있는 땅.
자세히 보면 주변 땅이 그냥 바닥이 아니라 단단하게 직조된 성 내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천공의 탑인가본데. 불타는걸 보면…설마 10층 보스몹?>
<와. 그런가보다. 설마 여기서 잡는 보스몹이 걔였어?>
곧이어 초점이 잡히고 언럭키가 등장했다.
하얀색이 도드라지는 거대한 전투 망치를 들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색의 은은한 갑옷을 입은 그가 걸어간다.
걸을 때마다 강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누가 보더라도 강력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언럭키 이번 직업 뭐임? 요즘 라이브만 해서 어떤 직업인지를 제대로 모르겠네.>
<사제…일걸? 전에 막 다른 사람들한테 힐이랑 버프 뿌리던데.>
<사제? 저 피지컬로? 저런 풀플레이트메일 입었는데?>
<…나도 그래서 지금 채팅 치다가 좀 의문이 들었음.>
잠시 언럭키의 직업에 대한 논란이 채팅창에서 번져나갔다.
생각보다 그 불길은 셌는데, 이한영은 어쩔 수 없이 끼어들었다.
[매니저 : 언럭키님의 이번 직업은 사제 계열이 맞습니다.]
괜히 시청자들이 영상에 집중 못하고 이상한 데에서 서로 싸울까 봐 미리 진압한 것이다.
온전히 영상에 몰입하길 바랐다.
물론, 큰 효과는 없었다.
<미친. 사제야? 저게 어딜 봐서?>
<나 전에 언럭키 사냥하는 거 봤는데 걍 망치 전사던데? 어딜 어떻게 봐야 사제라고 할 수 있는 거임?>
오히려 더 뜨겁게 점화가 되었을 뿐.
어쨌거나 그렇게 레이드는 시작되었다.
보스몹 ‘지옥의 두 번째 수문장 오론’이 등장했다.
주변으로 화염을 퍼트리며 거대한 창을 붕붕 휘두르는 악마의 생김새는 확실히 위압감이 있었다.
<근데 왜 언럭키 혼자임? 다른 파티원들은?>
<설마…솔로 레이드?>
<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 주르륵 이어졌지만 영상의 내용이 변할 리는 없었다.
스스로 버프를 걸고 무식하게 오론과 달라붙어 망치를 휘둘러대는 언럭키.
-쾅!
-쿠르르릉!
벼락이 퍼져나가며 화염이 계속 솟구치는 가운데, 신성력에 뒤덮인 기사와 악마가 달라붙어 치고받는다.
요즘은 레이드에서 이런 개싸움을 보기 어렵다.
초 단위로 파티원들끼리 정확한 역할을 나눠 칼 같이 수행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거의 그런 영상만 보다가 계산 따위 전혀 없는 개싸움을 보니 느낌이 확 달랐다.
<엌ㅋㅋㅋㅋㅋㅋ 영혼의 맞다이ㅋㅋㅋㅋㅋㅋㅋ.>
<미쳤다. 이건 그야말로 남자들 싸움이다.>
<망치질이 이렇게 시원할 수도 있구나. 속이 뻥 뚫리네.>
게다가 아슬아슬한 맛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언럭키는 계속 스스로 회복해서 그대로인데, 오론의 HP만 서서히 떨어졌다.
보스몹을 솔로 레이드 하는데도 오히려 보스몹이 더 어려운 믿지 못할 상황!
“커어어억….”
결국 백미를 장식한 헤드샷에 오론의 몸이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ㅋㅋㅋㅋㅋㅋ뿜었다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다시보기 언제 나옴? 빡치는 일 있을 때마다 돌려보고 싶은데ㅋㅋㅋㅋㅋ.>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개재밌네ㅋㅋㅋㅋㅋ.>
채팅창은 거의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심지어 영상이 완전히 끝난 후에도 그 열기는 식지 않아서, 월벤에서까지 영상에 대한 감상평이 나왔다.
댓글도 꽤 많이 달리며 서로 토론을 하는데, 이런 화제는 언럭키의 채널이 더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굴러가는 화제성을 보면서 이한영은 확신했다.
‘역시. 기회는 준비된 사람한테 오면 날개로 변하는구나.’
스트리머 언럭키의 인기는 이제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계기 하나만 생기면 바로 폭발할 게 분명했다.
* * *
언럭키는 천공의 탑 내에서 꽤 바쁜 시간을 보냈다.
벨라를 기다리면서 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은근히 꿀 같은 일이 많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성왕 폐하.”
“뭘 이 정도 가지고.”
-띠링!
[명예 수치가 +1 상승했습니다.]
세인트크리스 교단을 따르는 성직자들의 자잘한 의뢰들을 해결해주게, 그 대가로 명예 수치를 올린 것이다.
명예는 높여둘 수 있을 때 높여두는 게 좋다.
지금이야 ‘성왕’이라는 이름값 때문에 대우 받지만, 다른 도시로 가면 그런 건 없다.
그럴 때 기사나 귀족들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게 명예 수치였다.
‘직업이 참 좋긴 좋군. 명예 수치 올리는 퀘스트들을 이렇게 막 받을 수 있다니.’
아무 NPC에게 퀘스트를 받는다고 명예 수치를 올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귀족이나 준귀족. 혹은 그와 비슷하게 명망 있는 NPC의 의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일반 모험가 유저들은 상대도 안 해주는 그들이었는데, 성왕은 달랐다.
얘기 몇 마디 해주었는데도 갖고 있던 고민이 해결됐다며 퀘스트를 완료해주는 NPC마저 존재했던 것이다.
최소한 이 도시에서 성왕이라는 이름값은 굉장히 그 힘이 강력했다.
“폐하. 폐하를 찾는 분이 계십니다.”
그렇게 성직자들의 의뢰를 하다 보니 성기사 한 명이 찾아와 헤탄이 부른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래. 알려줘서 고맙군.”
“아닙니다 폐하.”
언럭키는 한달음에 헤탄을 찾아갔다.
“헤탄님. 찾으셨습니까.”
“그래. 자네 왔나. 여기 앉게.”
헤탄은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약간 미안한 것 같기도 한 기색이었다.
그는 말문이 잘 떨어지지 않는지 우물쭈물거렸다.
의아한 언럭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음…. 솔직히 말하면 그렇네. 원래는 자네에게 지저의 탐사만 맡기려고 했는데, 그 시작을 하는 것부터가 쉽지가 않겠어.”
“시작이라면…?”
“입구 말일세. 내 휘하의 정보 조직을 최대한 가동했지만 지저 도시로의 입구가 탑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아냈을 뿐, 도저히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네.”
헤탄은 씁쓸한 표정이었다.
반대로 언럭키는 가볍게 웃었다.
이건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아 그거라면…”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좀 지저 도시의 입구를 찾아줄 수 있겠는가?”
“네?”
그 순간이었다.
-띠링!
[사이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사이드 퀘스트 : 지저 도시로 향하는 입구 찾기.]
-퀘스트 등급 : X.
-퀘스트 설명 : 정보원 헤탄은 도저히 지저 도시의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를 대신하여 입구를 찾아내자.
-퀘스트 보상 : 적정량의 경험치.
헤탄은 연신 미안한 표정이었다.
“미안하네. 내가 했었어야 하는 일이거늘…. 아무리 자네라도 찾는 게 쉽지 않을 거야.”
“어….”
언럭키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 입구 말입니다만.”
“그래. 궁금한 게 있나?”
“이미 찾았거든요.”
“뭣!?”
“입구는 탑 10층에 있습니다.”
-띠링!
[사이드 퀘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