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원래 천공의 탑 보스몹을 잡으려는 계획은 없었다.
10층의 보스몹은 항상 레이드 대기 줄로 넘쳐나는 곳이다.
그래서 어떤 타입인지 아예 사전 조사도 안했다.
만약 놈이 특별한 무언가를 주는 것이었으면 언럭키도 굳이 기다려서 잡았겠지만, 보스몹치고 보상이 짜다.
꽤 많은 경험치와 골드.
리젠이 빠른 대신 딱 그것만 주는 녀석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굳이 기다려서 이 놈을 잡을바엔 차라리 그냥 지저 도시로 떠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런 기회가 생겼으면, 안 잡는 게 바보지.’
다만 막상 레이드를 하려고 하니 머릿속에 걸리는 게 있었다.
‘누가 뒤에서 영상을 찍어주면 좋겠는데.’
이왕 하게 된 레이드이니 처음부터 미튜브에 올릴 영상으로 찍으면 좋을 것 같다.
보스몹 레이드 컨텐츠는 언제나 유저들을 불러 모으는 수단이다.
게다가 언럭키는 항상 하던 대로 이번에도 솔플로 달릴 생각이었다.
보스몹 솔로 레이드.
이건 어그로가 안 끌릴 수 없는 컨텐츠이다.
‘이럴 때면 컵라면님의 부재가 참 아쉽단 말이야.’
박세훈과 이용승처럼 그 역시자신과 한 팀이었다.
아예 PD로 고용했는데, 이용승과도 합이 잘 맞아 지금껏 편집 영상들을 만들어 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다만 레벨이 자신과 맞지 않아 항시 함께 다니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알바를 좀 구해봐야겠네.’
전에 라이브를 할 때 대룡 미디어에서 카메라맨을 보내줬던 것처럼, 일일 카메라맨을 알바 식으로도 구할 수 있었다.
이후로 언럭키는 월벤에 들어가 10층의 보스몹에 대한 것들을 공부했다.
남들의 공략본을 보고 능력이나 패턴 등을 숙지한 뒤, 어떻게 공략할지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지금껏 만난 보스몹들은 거의 다 우연찮게 발견한 놈들이라 이런걸 못했지만, 사실 보통 이게 당연했다.
‘음?’
한참을 보스몹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던 언럭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어디서 묘하게 들어본 이름 같네?’
10층 보스 몬스터의 이름이 꽤나 익숙했다.
* * *
월드 사가의 컨텐츠는 굉장히 다양하다.
단순히 레벨을 높여서 사냥을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관광, 레저, 수영, 낚시, 캠핑 등.
환상적으로 펼쳐진 천혜의 자연이 곳곳에 존재하는데, 이걸로 할 수 있는 건 수도 없이 많다.
현실에서 하려면 여러 가지 제약이 많지만, 가상 현실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매일 유저 숫자가 가파르게 늘어나는 데에는 이런걸 즐기는 라이트한 유저도 많기 때문이었다.
현실에 지쳤거나, 은퇴한 후 노년을 즐기려는 사람들.
그들은 힘겨운 전투를 즐기지 않았다.
“이게 가상 현실이라고?”
“오 맙소사.”
오히려 다른 여러 가지 분야에 몰두했다.
생산직에 뒤늦게 빠져서 혼을 불태우는 자도 꽤 되었다.
어쨌거나, 그런 분야가 발달하다보니 당연히 사업가들이 가만 둘 리가 없다.
-부자들이 관광과 레저를 즐기고 싶어해? 그럼 당연히 풀코스로 모셔야지!
[월드 사가 최고의 레저 맛집]
[픽업부터 점심, 사진 촬영까지. 모든 걸 원터치로 해결해드립니다!]
[재방문율 100%! 믿고 또 쓰는 업체. 그게 바로 저희입니다!]
현실의 여행사들처럼 월드 사가의 관광을 중점으로 두는 회사들이 여럿 생겼다.
그리고 그런 사업은 분야를 더욱 넓혀갔으며, 종류도 다양해졌고 알바 형식으로 부업을 뛰는 사람도 많았다.
카메라맨 알바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미튜브를 하는 시대라서, 뒤에서 3인칭으로 따라다니며 찍어줄 카메라맨 알바는 인기가 많았다.
“언럭키의 일일 카메라맨? 이야. 오늘 일은 재밌겠네.”
유저 ‘피자호빵’ 역시 월드 사가를 하면서 시간 될 때마다 여러 알바를 하는 유저였다.
그는 여러 알바 중에서도 영상 찍는걸 좋아해서 자주 카메라맨 알바를 뛰었는데, 오늘은 의뢰인이 꽤 유명 인사였다.
스트리머 언럭키.
그렇게 인지도 있는 스트리머는 아니었지만 최근 천공의 탑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다.
그가 유저들을 위해 엄청난 이익을 내려놓고 탑 외부를 공개한건 굉장히 유명했다.
피자호빵도 언럭키의 구독자는 아니지만 얘기는 여러 번 들었기에, 그런 사람과 하루라도 같이 일한다는 게 기대가 되었다.
‘게다가 의뢰금도 빵빵하고.’
최근에 레어 아이템을 장만하느라 돈을 다 털어 넣어서, 당장 생활비도 부족했는데 잘됐다.
“피자호빵님?”
“안녕하세요. 여기서 유명인사를 다 뵙네요. 피자호빵이라고 합니다.”
“언럭키입니다. 닉네임이 특이하시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피자호빵이거든요. 그러는 언럭키님이야말로 닉네임이 특이하신데요? 운이 없다니 하하.”
“실제로 운이 없어서 지은 건데요? 제가 참 지지리도 운이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구요.”
“……?”
그 말에 피자호빵은 멈칫거렸다.
그의 시선이 언럭키가 착용한 아이템들을 한번 훑고 지나갔다.
정확한 이름과 등급은 모르겠지만 척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은은한 신성력이 느껴지는 전투 망치와 갑옷…
‘운이 없다고? 저런걸 들고서?’
이게 기만인지 뭔지 하는 건가?
“크흠. 어쨌거나 오늘 보스몹 레이드 하신다고 들었는데, 언제 출발하십니까?”
피자호빵은 어색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피자호빵님만 준비되면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저야 뭐 아무 때고 가능합니다.”
피자호빵은 언럭키의 준비성에 감탄했다.
보통은 파티원들이 이거 준비해야한다 저거 준비해야 한다면서 1~2시간 낭비되는 건 기본이었다.
‘오늘은 일진이 좋군.’
똑같은 수당 받고서 일이 빨리 끝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싱글벙글 미소를 지은 채 피자호빵은 언럭키와 함께 탑 10층으로 갔다.
그리고 점점 이상함을 느꼈다.
“어, 언럭키님?”
“네?”
“다른 사람들은요? 왜 우리 둘밖에 없죠?”
10층은 한산했다.
지금 트렌드는 외부에서 좋은 자리 잡고 사냥하는 것이기에 당연했다.
심지어 그러다가 던전이나 특별한 몬스터가 출몰하는 자리를 발견한 사람도 있어서,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외부 탐사 중에 있었다.
당연히 10층 보스몹을 잡겠다는 사람은 한산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언럭키의 파티원도 없다니.
다들 지각하는 건가?
“둘밖에 없다뇨. 여기 호야도 있는데요?”
“뀨르!”
호야가 언럭키의 뒤편에서 빼꼼 머리를 내밀었다.
“어…귀엽긴 한데 제 의도랑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만?”
“다른 유저를 물어보는 거라면, 없습니다. 우리끼리 갈 거예요.”
“네? 이거 보스몹 레이드 아니에요?”
“맞습니다. 정확히는 보스몹 ‘솔로’ 레이드입니다.”
“…….”
피자호빵의 표정이 확 변했다.
“아, 아니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저는 의뢰할 때 공지 제대로 해놨는데요?”
그 말에 피자호빵은 다급히 자신이 아까 골랐던 의뢰 제목을 확인했다.
[스트리머 언럭키입니다. 천공의 탑 10층 레이드 솔로로 진행할 건데 촬영해 주실 일일 카메라맨 분 모집합니다. 금액은 넉넉하게 맞춰드립니다.]
‘지, 진짜 있잖아.’
자신이 잘못 본 거였다.
변명을 하자면, 스트리머 언럭키라는 말과 10층 레이드라는 단어에 꽂혀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의뢰를 받았다.
설마 보스몹을 혼자서 레이드 뛰겠다는 미치광이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도 있었다.
‘어쩐지 이런 유명인의 의뢰가 내가 고를 때까지 남아있다 했더니….’
혹시나 늦으면 마감될까봐 부랴부랴 의뢰를 받은 게 실수였다.
“그래서 그런가 지원자가 한참 없었는데. 피자호빵님이 와주셔서 더 시간 낭비 안할 수 있었네요.”
“저…혹시 의뢰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도 될까요?”
“포기하시게요? 그럼 그러세요.”
언럭키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신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던 피자호빵의 얼굴이 환해졌다.
“제가 강제할 수는 없죠. 대신 위약금은 주세요. 의뢰비의 200%입니다.”
“…….”
피자호빵의 입이 딱 다물렸다.
계약을 하고 일방적으로 취소하면 이런 식의 위약금을 무는 건 당연했다.
위약금은 저마다 달랐는데, 언럭키의 의뢰모집서에는 위약금이 굉장히 높게 설정되어 있었다.
무려 의뢰비의 200%.
함부로 그만두겠다고 얘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단 들어는 볼게요. 자살하고 싶은 게 아니면 솔로 레이드 안 뛸 텐데. 그만큼 자신 있는 거예요?”
“네. 당연하죠.”
너무나 평온하게 말하는 언럭키의 모습이 은근히 믿음이 갔다.
빵빵해 보이는 언럭키의 장비라면 혹시? 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갈게요. 뒤에서 촬영 열심히 하겠습니다.”
결국 피자호빵은 우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위약금을 물어주기엔, 현재 지갑 사정이 팍팍했다.
* * *
-띠링!
[천공의 탑 10층 보스룸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경고! 보스 몬스터는 굉장히 강력합니다. 전력을 갖춰서 입장하시는걸 추천합니다.]
[Y/N]
언럭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입장했다.
“미쳤어. 미쳤어. 내가 보스몹 솔로 레이드에 촬영한답시고 따라오다니. 이거 진짜 죽기 딱 좋은 일인데….”
피자호빵은 뒤따라오면서 연신 투덜거렸다.
언럭키를 믿고 온 거긴 하지만 불안한건 어쩔 수 없다.
“언럭키님. 혹시 몰라 여쭈는 건데요, 좋은 전략이 따로 있으신가요?
“예. 있습니다.”
“오오. 역시.”
피자호빵은 희망을 가졌다.
과연.
이런 잘나가는 스트리머라면 당연히 엄청난 전략전술이 존재하겠지!
“뭔가요?”
“그냥 가까이 붙어서 죽을 때까지 패는 거요.”
“…네? 그게 전략이라고요?”
“전략이 별거 있나요. 무조건 이길 수 있는 방법으로 싸우는 게 최고의 전략이지.”
언럭키가 몇 시간 정도 보스몹의 자료를 확인하며 분석하면서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뭐 따로 계획을 짤 필요 없이, 그냥 가까이서 달라붙어서 싸워도 이길 수 있겠구나.
이런 결론이 내려졌다.
원래도 강했지만 최근 들어 급격한 성장을 겪은 언럭키이기에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잠시 후.
-화르르륵.
보스룸 한 쪽 면에서 시커먼 불꽃이 치솟더니, 박쥐 날개를 지닌 거대한 악마가 쿵쿵거리며 걸어 나왔다.
“크흐흐흐. 또 다시 지옥의 제물이 될 자가 왔구나.”
악마는 거대한 박쥐 날개를 한 번 펄럭였다.
양 손에는 활활 불타는 창을 들고 있었는데, 휘두를 때마다 주변으로 불똥이 떨어졌다.
[지옥의 두 번째 수문장 오론]
-레벨 : 120.
레벨 120짜리 보스몹의 등장이었다.
“나는 지옥의 두 번째 수문장 오론 이라고 한다. 너희들을 지옥으로 데려갈 이름이니 잘 기억해 두거라.”
악마 오론은 그렇게 말하며 쿵쿵 걸어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진짜 엄청나게 쎄 보이는데…아오 망했다….”
피자호빵이 호들갑을 떨었다.
믿고 따라오긴 했는데, 막상 보스몹의 생김새를 직접 보게 되니 괜히 후회가 되었다.
‘그냥 손해 좀 보고 위약금 물고 나올걸….’
그게 죽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자칫 잘못하면 간신히 장만한 레어 아이템을 드랍할 수도 있는데!
“흐음….”
언럭키는 오론을 한참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더니 가볍게 중얼거렸다.
“아, 기억났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보스몹의 이름을 들었을 때 계속 뭔가 알 듯 말듯 했었는데, 이제서야 기억났다.
이렇게 실제로 보니 확 떠오른 것이다.
전에 악마 소환 마법진에서 만났던 보스몹 이름이…
‘분명 걔 이름이 벨리온이었지 아마?’
언럭키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너 혹시 벨리온이라고 아냐?”
“벨리온!”
오론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분은 위대하신 지옥의 첫 번째 수문장이시다. 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대단하신 분이지.”
“그래? 그럼 너 걔보다 약한 거야?”
“당연한 말을. 벨리온 님에 비교하기에 나는 아직 멀었다.”
그렇게 대답하며 오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제물아. 저승길 선물로 대답을 해주긴 했다만, 그건 왜 묻는 것이냐?”
“아아.”
언럭키가 망치를 들고는 성큼 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걔보다도 약하면 오래 안 걸리겠다 싶어서.”
언럭키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