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언럭키의 라이브가 끝난 직후, 월벤에서 그에 관한 얘기가 터져 나왔다.
<오늘자 라이브 방송 본사람? 언럭키 인성 ㅁㅌㅊ?>
<솔직히 지렸음. 요즘 저렇게 착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나 싶다.>
선행은 잘 알려지지 않고 악행이 들끓는 시대이다.
누군가 잘못한 일은 널리 퍼져 손가락질 받지만, 반대로 착한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어마어마한 이득을 내려놓고 공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심지어 이런 일로 후원금 받는 것도 좀 그렇다면서 거절했다더라.>
<이야ㅋㅋㅋㅋㅋ. 요즘 세상에 그런 미튜버도 있구나?>
<다들 어떻게든 후원금 받아내려고 안달 난 상황에서, 진짜 성격 좋은 사람인 듯?>
<내가 볼 때 언럭키는 조만간 떡상한다.>
<솔직히 랭커급은 지금처럼 잘해도 너무 천상계라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미튜브 떡상 정도는 할 수 있을 듯?>
이제 어느 정도 팬덤이 생겨가는 이때, 이러한 천사 이미지는 언럭키에게 엄청나게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은 착한 호구가 살기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법.
“좋네.”
그리고 그런 월벤의 반응을 체크하며 박세훈이 살짝 미소 지었다.
처음 백현의 계획을 들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참 재능 있는 사람이란 말이야. 눈앞의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미래를 볼 수 있다니.”
박세훈은 직업상 부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졸부부터 몇 대 째 이어지는 부자 등 여럿을 봤는데, 오래 가는 부자들의 공통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멀리 볼 줄 아는 것!
“한 번 정해진 이미지는 어지간해서는 벗겨지지 않는 법이지.”
이번 일의 아주 강력한 방패를 얻었다.
그게 첫인상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한데, 앞으로 실수든 고의든 무언가 사건이 터졌을 때, 사람들이 한두 번은 눈감아 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사람 아니라며 감싸줄 수도 있겠지.
때로는 눈에 보이는 숫자보다 보이지 않는 자산이 더 강력한 법.
‘백현씨. 도대체 당신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기대된단 말이야.’
함께하는 입장에서 미래를 생각하다보면 때때로 흥분이 되었다.
피식 웃은 박세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다시 해볼까.”
점심시간 끝났으니, 다시금 그 지긋지긋한 작업장으로 돌아갈 때였다.
그가 월드 사가 접속기에 몸을 뉘였다.
* * *
다시 만난 벨라는 딱히 변한 게 없었다.
항상 그렇듯 누구나 돌아보게 만드는 화사한 외모, 눈에 확 띄는 백발.
반대로 그 특유의 무표정함은 예쁜 얼굴을 더욱 부각시키긴 했다.
벨라를 바라보던 언럭키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아닌가. 표정이 조금 살아났나?’
정확히 말하면 오늘따라 자신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반짝거리는 것 같긴 하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 내 착각이겠지.’
고개를 저은 언럭키는 그 다음에는 그녀의 장비를 쳐다봤다.
외관과 달리 장비는 이전과 같은 게 전혀 없었다.
완전히 다 새로운 것들이었다.
심지어 평범한 건 하나도 없고 저마다 개성을 띄고 있는 게…
‘이거 다 최소 유니크 등급인데?’
까봐야 알겠지만 몇 개는 무조건 레전더라고 확신되는 것들도 있었다.
부러움이 뚝뚝 치솟았다.
그녀의 직업이 ‘헤파이스토스의 후계자’이니 일정 레벨대마다 아이템을 새로 싹 제작해서 갈아입겠지.
‘게다가 그러면서 경험치도 쌓는다고?’
두바르에서 헤어질 당시에 그녀의 레벨이 70정도였을 것이다.
자신과는 20이나 차이가 났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레벨 90을 달성해서 천공의 탑에 왔다.
현재 언럭키의 레벨은 105로, 그 격차가 15로 줄어든 셈이다.
물론 고레벨이 될 수록 경험치 상승폭이 훨씬 커지기에 그렇게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됐건 그녀 역시 엄청난 속도의 레벨업을 한 게 분명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벨라의 직업이 훨씬 더 좋게 느껴진다.
“후. 이겁니다.”
이렇게 부러워만 해봐야 뭐하겠는가.
언럭키는 애써 삿된 마음을 털어내고 인벤토리에서 ‘악의 정수’를 꺼냈다.
단순 재료 아이템임에도 레전더리 등급을 지닌 아이템.
사실 이걸 보여 준답시고 건네는 것도 부담이다.
이게 가격이 얼마짜리인데!
그러나 설마 눈앞에서 가져가겠냐는 생각에 시원하게 보여 주었다.
어차피 그녀를 믿지 못한다면 아이템 제작을 맡길 수도 없는 일이니까.
“…….”
벨라는 악의 정수를 한동안 빤히 쳐다봤다.
솔직히 꽤나 충격적이었다.
재능 하나만큼은 최고 수준의 대장장이였기에 그녀는 한 눈에 이것의 가치를 알아봤다.
그녀가 지금껏 다뤘던 재료들 중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을만한 물건이었다.
심장이 절로 두근거렸다.
이걸 자신의 손으로 만진다면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타날까?
게다가 거기서 오를 경험치나 스킬 숙련도는?
어느새 완전히 대장장이 마인드를 갖춘 그녀였다.
“레전더리 아이템. 만들 수 있으세요?”
한동안 가만히 있는 벨라의 모습이 불안해 언럭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언럭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쓰!’
이럴걸 기대하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들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이러면 최근에 얻은 레전더리가 도대체 몇 개야?’
남들은 한 번 얻는 것도 쉽지 않다는 레전더리가 줄줄이 들어오고 있다.
물론 그건 정말로 현질 하나 하지 않는 그냥 유저들 얘기이긴 하다.
월드 사가에서 제대로 돈 좀 푸는 재벌들 같은 경우는 1~2레벨 단위로 전신을 레전더리 풀세트로 바꿔 맞춘다는 말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들이 전부 다 랭커가 되지 못한다는 게 훌륭한 게임이라는 거지.’
단순히 재력으로 순위가 매겨졌으면 이렇게 인기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재력과 더불어 실력, 센스, 행운 등.
월드 사가의 중요한 요소는 굉장히 많았다.
오히려 돈만 많은 자는 랭커 끝물에도 들기가 힘든 게 현실이었다.
“바로…작업 들어갈게요.”
“바로요? 방금 도시에 오셨다고 하셨는데. 구경 같은 것도 안하세요?”
“그거보단…이게 더 재밌을 것 같아요.”
벨라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꾸벅 한번 숙이더니 총총거리며 사라졌다.
* * *
악의 결정.
벨라는 이 아이템을 보자마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원래는 오랜만에 언럭키와의 재회라서 좀 더 얘기도 해보고 싶었었는데, 이걸 본 순간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이거라면…내가 지금껏 만든 작품 중에 최고가 탄생할 거야.’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메인이 되는 재료다.
가장 구하기 어렵고 비싼 것.
그리고 악의 결정은 명백히 전자였다.
시장에서 매물로는 구하기 극히 어렵고 직접 얻어야 하는데, 그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은 물건.
당연히 벨라 본인의 능력으로는 이런걸 얻기는 어렵다.
‘언럭키님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녀가 악의 결정을 쥔 채 싱긋 웃었다.
* * *
벨라가 작업에 들어갔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나요?
-…일단 견적을 내려면…며칠 정도는 필요해요.
물건도 맡겼겠다 바로 지저 도시로 가고 싶었지만, 일단 그녀가 내리는 견적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어떤 형태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지, 능력치나 제한은 어느 정도로 설정할 수 있는 지 얘기해야 하니까.’
무조건 원하는 대로 만드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착용자의 바람대로 만들어 주겠단다.
시간이 조금 비어서 언럭키는 뭘 할까 고민했다.
이제 탑 외곽부에는 더 이상 악마들이 없고 텅 비어있었다.
항상 사냥터 쪽으로 나가면 하늘이 날아오는 악마들로 빽빽했는데 지금은 창창한 푸른색이 훤히 보였다.
어색한 장면이었는데 이제는 이게 당연했다.
유저들은 언럭키가 개방한 폐쇄된 통로를 통해 탑 외부로 나갔다고 한다.
거기서 넘쳐흐르는 악마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겠지.
‘나도 거기 가서 사냥이나 좀 할까.’
아니면 추기경이나 헤탄님을 찾아가 뭐 좀 더 받아먹을 거 없나 기웃거려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언럭키는 천공의 탑 내부를 서성거렸다.
그렇게 계단을 계속해서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천공의 탑 10층>
탑의 맨 꼭대기. 10층.
‘응?’
안쪽을 본 언럭키는 당황했다.
‘아니 왜 아무도 없어?’
천공의 탑은 1층부터 10층까지 레벨 90의 악마부터 120 사이의 악마들이 등장한다.
그 중 10층은 오직 한 마리. 레벨 120짜리 보스몹 악마만이 등장하는데, 리젠이 빨라서 인기가 많았다.
그 대신 보상도 별거 없다는 게 단점이었지만, 그래도 보스몹 아닌가.
잡기만 하면 쏠쏠한 경험치와 골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인기가 많았는데, 오늘은 그 대기열이 텅 비어있었다.
원래는 여기서 누가 먼저 할지 서로 눈치를 보고 자리싸움을 하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는데….
“야. 우리도 어서 내려가자.”
“그래. 더 늦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때 유저 한 팀이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구석에 있어서 안보였던 모양이다.
잘됐다 싶어 언럭키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네?”
“10층 보스몹 대기열이 아무도 없네요? 무슨 일이 있나요?”
“아아. 이거요.”
대답하는 유저는 어깨를 으쓱였다.
“혹시 스트리머 언럭키라고 아시나요?”
“어….”
언럭키는 순간 갈팡질팡했다.
안다고 대답해야 하나? 아냐고 물으면 아는 게 맞긴 한데…
“모르셔도 상관없어요. 최근에 핫해지고 있는 사람이라 관심 없으면 모를 수도 있거든요. 저도 보진 못했고 얘기먼 건네 들은 건데 어쨌거나, 그 사람이 천공의 탑 외부 통로를 공개했어요. 탑 내부는 이제 몬스터가 사라졌으니 다들 외부로 나가는 거죠.”
“그건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보스몹 잡으려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천공의 탑 보스몹이 보상이 약하기로 유명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보스몹이다.
같은 시간을 들여 일반몹 잡는 것보다 보스몹을 잡는 게 훨씬 더 낫다.
특히 이 보스몹은 리젠도 빠르고 공략법도 다 나와 있어서 난이도는 상당히 쉬운 편이었으니까 더더욱 그렇겠지.
“일반적이라면 그게 맞는데, 지금은 이제 막 탑 외부가 열렸잖아요. 거기가 어떤 사냥터인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그렇겠죠.”
“그래서 다들 좋은 자리 잡으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어요. 한 번 차지한 자리가 좋으면 거기서 계속 사냥하면 되잖아요.”
사냥터의 자리다툼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보스몹 레이드는 포기한다.
아니, 굳이 포기 까지는 아니다.
일단 자리 잡아 두고 나중에 와서 레이드를 시도해도 그만이다.
그런다고 해서 보스몹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그 쪽도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세요. 이제 여기는 더 이상 볼 것 없어요.”
유저는 그렇게 말하고는 떠나갔다.
언럭키는 가만히 서서 앞을 바라봤다.
텅 빈 10층의 풍경.
벽 쪽에는 붉은색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붉다는 뜻은 아직 보스몹 리젠이 안됐다는 뜻이다.
-띵!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색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언럭키는 움찔거렸지만 잡겠다고 나서는 유저는 없었다.
여전히 10층은 텅 비어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그냥 내가 보스몹 잡아볼까?’
할 것도 없었는데, 나쁘지 않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