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에토는 리바 델 레이에 복수할 것을 다짐했다.
떠나기 전에 그는 언럭키만 불러 조심스럽게 말했다.
“난 이만 가볼 생각이다.”
“어디로 가게?”
“본부.”
에토가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난 지금껏 전대 몬시뇰에게 속아왔었다. 이걸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어. 어차피 우리 분타도 무너졌겠다, 본부를 찾아가 전대 몬시뇰과 날 속였던 리바 데 레이에게 복수할 생각이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언럭키에게 패배하고 항복하면서 그와는 동료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전투를 함께하면서 그가 믿을 수 있는 사내라는 걸 느꼈다.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자신을 뒤에 두고도 기꺼이 앞장서서 악마를 막아 낼 수 있는 그 정신력과 믿음.
포용력이 얼마나 커야 저럴 수 있는지 감도 안 잡혔다.
그렇기에 에토는 자신의 계획을 동료라고 인정한 그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음…. 그래. 알겠다.”
“떨떠름한 표정이군. 대충 뭔지 이유는 알겠다.”
에토가 픽 하고 웃었다.
“내가 걱정되는 모양이지?”
그는 함께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신을 걱정하는 게 분명했다.
“걱정마라. 내가 비록 너에게 패했다지만 오러까지 쓸 수 있는 귀검사다. 당장 대놓고 싸울 생각은 없어. 자연스럽게 본부에 섞여 들어간 다음, 언젠가 놈들의 빈틈을 발견하면 비수를 찌르겠다.”
에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복수심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곧, 신뢰하는 얼굴로 언럭키의 어깨를 툭 쳤다.
“중간에 쓸 만한 정보가 있다면 네게 한 번씩 보내겠다. 이번에 신세를 많이 졌으니 보답은 해야지.”
“음.”
“그러니까 표정 풀어라. 정말로 내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에토가 몇 번이나 채근하자 언럭키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언럭키의 표정이 안 좋은 건 조금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악마족 보스 몬스터 ‘지옥의 수문장 벨리온’을 잡고 보라색 빛의 아이템.
‘귀찮은 아이템을 얻어버렸어.’
그건 꽤나 그의 골치를 썩히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지 한참 됐는데도 여전히 고민을 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에토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대강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네가 알아서 잘할 거라 믿는다.”
언럭키가 에토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어차피 전에 퀘스트 보상으로 그는 자신의 동료가 되었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배신할 일 따위는 없었다.
그가 본부에 간다면 위치를 비롯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줄 수도 있겠지.
언럭키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상황이었다.
“…그래. 믿어줘서 고맙다.”
에토는 살짝 감격했다.
함께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신뢰를 보여 주다니. 부담이 될 정도였다.
그 순간이었다.
-성왕 폐하! 어디계십니까! 무사하시는지요!
-윽…. 이런 엄청난 마기라니….
동굴의 입구 쪽에서부터 소란스러운 발자국 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왔다.
“세인트크리스 교단의 성기사들이 도착한 모양이군. 그들에게 들킨다면 나나 너나 곤란해질 테니 난 이만 떠나겠다. 무운을 빌지. 다음에 보자고.”
에토는 그 말을 남기고 훌쩍 동굴의 반대편으로 떠났다.
* * *
에토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성기사와 사제로 이루어진 성직자들이 도착했다.
언럭키 일행이 악마 보스몹과 힘든(?) 전투를 벌였던 것처럼, 그들 역시 리바 델 레이 잔당들과 꽤 험난한 사투를 치뤘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상처 입고 지친 기색이 많이 보였다.
그러나 얼굴 표정은 밝은 게, 승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그대들은 어떤가?”
“부상자가 조금 있습니다만, 성공적으로 악신의 무리들을 처치했습니다. 리바 델 레이의 사제 3명, 수련 사제 545명을 전부 죽이거나 사로잡았습니다. 또한 성왕 폐하게서 남기신 흔적을 따라 보물고의 위치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
언럭키가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성기사는 죄송스런 표정을 지었다.
“너무 강력한 저주가 펼쳐져 있어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일단 앞에 경계만 세워두고, 나중에 추기경님께 따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이들이 보물고의 아이템을 다 가져갔다고 하면 분명 섭섭했을 텐데, 저주 때문에 하나도 못 가져갔다고 하니 또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언럭키는 화제를 돌렸다.
“부상자들이 있군?”
정확히 말하면 멀쩡한 사람이 훨씬 적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사제들이 치료를 안 해주었나?”
성기사들은 항상 사제들과 같이 다니는데, 사제라면 기본적으로 힐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부상자가 이렇게 많다니?
“그게…부상자에 비해 사제님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습니다. 그래서 위급한 자들부터 치료를 받게 하니 마나가 부족하여….”
“아아. 그렇게 된 거였군.”
언럭키는 여기저기 다친 자들 앞에 가더니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펄럭.
그의 등 뒤에서 빛으로 만들어진 날개가 펼쳐지더니, 은은한 빛이 스며들었다.
“걱정 말거라. 이제부터 그대들은 내가 치료해주겠다.”
성왕의 광역 힐.
언럭키의 마나량이라면 이런 부상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나을 것이다.
심지어 등 뒤에서 펄럭이는 빛의 날개와 그 분위기는, 부상자들로 하여금 신의 재림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오오…. 성왕이시여….”
“아아…. 믿습니다….”
언럭키가 슬쩍 미소 지었다.
여기 있는 성직자들은 천공의 탑으로 돌아가면 다들 한 단계씩 승급 할 것이다.
리바 델 레이 분타를 쓸어버리는 업적을 세웠으니 당연한 법.
그런 그들에게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 * *
악마 보스 몬스터를 죽인 직후, 언럭키와 헤탄, 에토는 이 안에 펼쳐진 마법진을 조사했다.
그러나 성과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셋 다 마법과는 연관이 멀었다.
언럭키는 올마스터이긴 하지만 마법사 직업을 선택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다들 마법진을 뚫어져라 보면서도 제대로 해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제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신의 힘을 쓰지만 신성 주문을 다루기 위해 마법 공부도 많이 한 그들이다.
“어떤가?”
“좀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대충 개념이 어떤지는 잡혔습니다. 악마를 소환하는 마법진이고 굉장한 마력이 연동되어 있군요.”
사제는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게 천공의 탑 주변에 오랫동안 존재했었다고 생각하니 혐오감이 드는 것이었다.
“마법진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게이트는 이 주변 땅 곳곳으로 이어집니다. 정확한 좌표는 아무래도 좀 더 조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음. 그러면 그것까지 추가로 부탁을 해도 되겠나?”
“부탁이라니요.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믿고 맡기지. 나는 먼저 가서 추기경님께 보고를 하겠다.”
“알겠습니다!”
언럭키가 여기 더 있어봤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성직자들에게 나머지 조사를 맡긴 뒤, 그는 헤탄과 함께 동굴 밖으로 나갔다.
-저벅 저벅.
한동안 둘이서 걸어가던 도중, 헤탄이 입을 열었다.
“자네.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할 건가?”
그는 언럭키의 손을 가리켰는데, 거기에는 보라색의 작은 보석이 있었다.
보스몬스터 ‘지옥의 수문장 벨리안’을 잡고 나온 레전더리 아이템.
[악의 정수]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재료 아이템.
-고위 악마를 죽였을 때 아주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정수이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가공한다면 강력한 아이템으로 재탄생 할 수 있다.
‘재료 아이템인데도 레전더리라….’
대장장이의 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정말 실력 있는 대장장이는 재료의 효능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유니크급 재료를 다루어 레전더리를 뽑아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장장이가 만약 레전더리 재료를 다룬다면…
‘최소한 하급. 운 좋으면 중급 이상의 레전더리가 뜰 수도 있겠지.’
물론,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참 골치 아픈 물건을 얻었어.”
헤탄이 쯧 하고 혀를 찼다.
“혹시나 내게 물어볼까 싶어 미리 말해두는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그걸 완벽하게 다룰만한 대장장이가 없네.”
헤탄은 호르헤른 가문 소속이자 정보원이었다.
여러 도시의 실력자들을 알고 있을 텐데, 그런 그조차 모른다면 이걸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는 아주 극소수이리라.
“아니면 지금은 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드워프들을 찾아가는 게 좋을 거야. 그들이라면 이것도 무리 없이 주무를 수 있는 장인이 있을 테니까.”
레벨 150이 넘어가면 이종족인 드워프들이 조금씩 등장한다.
그들이 만든 무기는 같은 등급이라도 효과가 더 좋기로 유명했다.
“아니요. 제가 아는 분 중에 괜찮은 분이 있어요.”
그러나 언럭키는 고개를 저었다.
헤탄의 조언은 고마웠지만 이번에는 굳이 따를 필요가 없었다.
그가 아는 최고의 대장장이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랜만에 벨라님께 연락 한 번 해봐야겠군.’
레전더리 직업 ‘헤파이스토스의 후계자’.
이럴 때를 대비해서 벨라와의 친분을 키워온 것 아니겠는가.
당장 오늘 밤에 전화해봐야겠다.
* * *
천공의 탑으로 돌아오자 추기경이 1층까지 나와서 언럭키를 환영해주었다.
“폐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허허. 성왕 폐하의 신실함은 주께서도 알아주실 겁니다. 악신의 땅을 토벌하는 업적을 세웠음에도 이리 겸손하시다니.”
추기경이 껄껄 웃으며 입을 열던 순간.
-띠링!
[교단의 공헌도가 + 10000점 상승합니다.]
“!”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언럭키가 눈을 크게 떴다.
리바 델 레이 분타를 찾아 공격한건 헤탄이 내린 퀘스트였지, 추기경은 따로 약속한 보상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게 공헌도 1만점이라니?
“추기경님. 이건…?”
“허허. 교단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셨는데 그에 맞는 보상이 있어야지요.”
“…….”
추기경은 더 이상 말 말라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언럭키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울컥거리며 터져나오는 걸 느꼈다.
‘역시 세인트크리스 교단은 리바 델 레이 같은 놈들이랑 차원이 다르구나.’
이번 임무를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지금 입고 있는 갑옷 ‘세인트크리스의 신성한 광휘’ 덕분이었는데, 이게 공헌도 1만 점짜리였다.
즉, 이 갑옷과 동급의 레전더리 아이템을 하나 준다는 것과 다름없는 뜻이다.
거긴 신조차 쪼잔한데, 이런 대인배 같은 성향이라니!
“감사합니다 추기경님.”
“감사 인사는 오히려 제가 해야지요 폐하. 허허허.”
두 사람이 서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동안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 * *
추기경과의 인사는 아쉽게도 짧았다.
리바 델 레이 분타를 정복했지만 그 뒤로 할 일은 산더미 같다.
천공의 탑의 영주나 다름없는 추기경이었기에 그가 모든 걸 진두지휘 해야 했다.
-나머지 밀린 이야기는 다음에 하시지요. 공헌도도 그때 쓰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레전더리 아이템을 받을 수 있는 게 조금 미뤄졌지만 뭐 어떤가.
그래봐야 하루 이틀일 텐데.
게다가 지금은 정산해야 할 게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바쁜 일은 끝났나보군. 자 그럼 우리도 얘기를 한번 해볼까?”
헤탄과 조용한 방 안에 들어가 마주봤다.
-띠링!
[레전더리 퀘스트 ‘악마가 생성되는 곳’을 성공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
기분 좋은 빛이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언럭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일단 경험치는 얻었고.’
레전더리 퀘스트를 끝냈으니,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과연 보상이 뭔지나 좀 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