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헤탄의 손이 빠르게 휘둘러졌다.
워낙 빨라서 흐릿하니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 손에 의해 날아간 도끼는 백발백중.
-챙!
그러나 에토가 휘두른 칼에 도끼가 튕겨나갔다.
“…….”
에토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리바 델 레이의 분타를 이끄는 몬시뇰.
그게 그의 신분이다.
비록 조금 전에 언럭키와 한 판 붙었을 때는 상성에 밀려 졌다지만, 그는 기사급도 이길 수 있는 실력자였다.
새카만 오러를 피워내며 장검 한 자루를 귀신처럼 다루는 귀검사(鬼劍士).
오직 실력만으로 천공의 탑 출신이라는 한계를 부수고 몬시뇰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헤탄에게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도끼술이 굉장하군.”
헤탄은 기사가 아니었기에 오러를 사용할 줄 모른다.
그러나 도끼 투척술이 워낙 빠르고 정교해서, 에토조차 맞기 직전에 막아내었을 정도였다.
공격이 막히자 헤탄은 훌쩍 뛰어 달려들었다.
위에서 내리찍는 도끼를 에토가 검을 휘둘러 부딪쳤다.
-쾅!
주변 수풀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파가 퍼졌다.
에토는 여기서 한 번 더 놀랐다.
오러를 두른 자신의 검과 부딪쳤는데, 헤탄의 도끼가 멀쩡했던 것이다.
“…그 도끼. 상당한 명품인가.”
“그래. 내가 모시는 분이 좀 부유하셔서 말이지. 어느 잡신 교단과는 다르게 말이야.”
헤탄이 히죽 웃었다.
그는 호르헤른 가문에 오랫동안 봉사해왔던 병사이자 지금은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한낱 용병인 언럭키에게도 의뢰 성공 시에 엄청난 보수를 내려주었는데, 정보원인 헤탄에게 그보다 못할 리는 없었다.
그의 쌍수도끼는 오러와 부딪쳐도 날이 상하지 않을만한 상등품이었다.
-쾅! 쾅!
도끼와 장검이 쉴 새 없이 합을 겨뤘다.
헤탄의 오랜 전투 경력, 에토의 검술 실력.
둘 다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쐐액!
“흡!”
또 다시 날아온 헤탄의 도끼 투척을 에토는 간신히 피했다.
다른 것도 대단했지만 저 투척술은 에토조차 간담이 서늘했다.
공격이 실패했지만 에토는 그 틈을 노리지 못했다.
어느새 펼쳐진 헤탄의 손아귀로 도끼가 다시 날아온 것이다.
자동 회수 기능까지 들어있는 도끼.
에토는 입매를 틀어 그를 비웃었다.
“치졸하군. 일반 도끼였으면 넌 내 손에 방금 한 번 죽었다.”
“실전에서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집에 가서 우유나 더 먹고 오거라.”
그러나 헤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런 식의 신경전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에토의 오러는 까딱 잘못했다가는 목이 뎅겅 베일 테니까 말이다.
그들은 서로를 인정했다.
까다로운 적이라고.
‘쉽게 결판내기는 어렵겠군. 아까 그 괴물 사제 놈도 그러더만, 어디서 이런 놈이 또 나타난 거지?’
‘쯧. 아직 저 안에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소란스러워지면 곤란한데….’
둘은 머릿속으로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에토나 헤탄이나, 둘 다 눈앞의 무너진 돌산 중턱의 동굴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에토는 전대 몬시뇰이 정말로 자신을 속인건지, 여태껏 살아온 삶이 이용당한건지 알아보기 위해서.
헤탄은 악마가 생성되는 곳이 정말로 여기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둘 다 서로 싸우며 시간을 보내는 지금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때.
“싸움은 여기까지 하시죠.”
-사박사박.
언럭키가 수풀을 헤치고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했다.
“!”
“!?”
갑작스러운 등장에 둘 사이의 팽팽한 전투가 멈췄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 정말 좋은 순간에 와줬네!”
“이봐. 날 도와서 이 자를 처치해주게.”
그들은 동시에 흠칫하더니 경계하는 표정으로 다시 서로를 쳐다봤다.
언럭키가 한숨을 쉬며 다시 말했다.
“우리끼리 싸울게 아니라니까요.”
***
한동안 삼자대면이 펼쳐졌다.
무기를 집어넣은 채 격한 토론이 벌어진 결과, 헤탄과 에토는 어느 정도 서로를 받아들였다.
“으음…. 전대 몬시뇰에게 이용당한 것 같다라…. 쉽게 믿기 힘든 얘기이지만 언럭키 공이 그리 말하니 믿을 수밖에 없겠군.”
“나 역시. 설마 이 안에서 정말로 악마를 생성시키는 마법진이 있다니….”
“아직까지 제대로 확인한 게 아니라서 확답을 내릴 수는 없네. 그래서 이제부터 제대로 된 조사를 해봐야지.”
언럭키가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헤탄도 그렇고 에토도 그렇고, 둘 다 상당한 전력이다.
지금 가는 곳은 레전더리 퀘스트이기도 하니, 사람 손 하나가 절실하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줄 두 명이 싸우면 굉장히 곤란했는데, 이렇게라도 화해해서 다행이었다.
“일단 가죠.”
언럭키를 포함한 세 사람의 시선이 무너진 돌산의 중턱으로 향했다.
언럭키가 앞을 가리켰다.
어렵지 않게 산사태로 무너진 바위들을 밝고 올라간 다음, 돌무더기로 막힌 틈을 통해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띠링!
[악마가 생성되는 곳을 발견하셨습니다.]
[최초로 발견한 던전입니다.]
[48시간 동안 던전 내에서의 경험치 획득량과 골드 획득량이 +150% 상승합니다.]
“헛!”
언럭키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여기가 최초 발견 던전이었어?
“왜 그러나! 뭐라도 발견한 건가?”
갑작스런 언럭키의 헛숨에 헤탄과 에토가 자세를 낮추며 주변을 경계했다.
무언가 튀어나오면 곧장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언럭키가 긴장을 털어내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냥…내부가 조금 음침해서요.”
“확실히 그렇긴 하군. 당장이라도 악마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야.”
“그래서 말인데 여기서부터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언럭키가 두 사람보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음. 괜찮겠나?”
헤탄은 걱정스러워했다.
“이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공평하게 셋이서 번갈아가며 앞서는 게 좋을 것 같네만.”
맨 앞에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적이나 함정을 마주치게 된다.
당연히 제일 위험하다.
심지어 그들은 급조한 파티 아니었던가.
서로간의 신뢰도가 부족한 상황에서 부상을 입는 건 곤란했다.
“괜찮습니다. 보아하니 여기서는 제가 가장 튼튼한 것 같은데, 제가 앞장서는 게 맞지요.”
그러나 언럭키는 고개를 흔들더니 우레 망치를 쥔 채 성큼 성큼 나아갔다.
당연한 이유였다.
‘던전 안의 몬스터는 싹 다 내가 처리한다!’
경험치 150% 보너스가 걸려있는데 뒤에서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목표는 두 사람을 손 빨고 구경만 하게 만드는 것!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경험치와 퀘스트 성공 보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챙길 수 있을 것이다.
“허어…. 저렇게 그릇이 큰 친구였나.”
“…….”
에토 역시 헤탄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동의했다.
앞서나가는 언럭키의 등이 태산처럼 거대했다.
‘내가 저 남자에게 패배한건…어쩌면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냥 장비 빨로 싸워대는 자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는 적이었던 사람이 있는데도 앞장서는 저런 배포라니.
에토는 한동안 언럭키의 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언럭키’.
항상 불운이 함께했기에 지었던 닉네임.
최근에는 그래도 닉네임과 달리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언럭키는 자신의 불운함을 속으로 잔뜩 욕했다.
‘에이 씨. 그럼 그렇지. 내가 왠일로 잘 풀리는 날인가 싶었다.’
헤탄에게 레전더리 퀘스트를 받은 것만 해도 대단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최초 발견 던전까지 나와서, 오늘은 운수 대통하는 날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막상 던전 안을 걸어갈수록 실망감이 짙어졌다.
동굴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이제는 입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 안에 몬스터는 한 마리도 없다.
경험치 150% 보너스고 뭐고, 일단 뭐 하나라도 튀어나와야 그 혜택을 보지.
이렇게 되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아오 젠장. 이럴 거면 처음부터 최초 발견 주지 말던가. 괜히 사람 기대하게 하고 있어.’
헤탄과 에토 역시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점점 그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동굴은 텅 비어 있었다.
수상쩍은 무언가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빈 동굴이었다.
어쩌면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서서히 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동굴이 끝쪽이 서서히 밝아져왔다.
동시에 넘실거리는 마기가 이 먼 곳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짙어졌다.
“이건…!”
헤탄과 에토가 다시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심상치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자 동굴의 벽과 천장, 바닥 가릴 것 없이 은은한 붉은빛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그려진 장소가 나타났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상황인 것이다.
그 때 언럭키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악마가 생성되는 곳 보스룸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경고! 보스 몬스터는 굉장히 강력합니다. 전력을 갖춰서 입장하시는걸 추천합니다.]
[Y/N]
보스룸!
결국 던전에서 몬스터 한 마리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보스룸에 도달했다.
언럭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분명 미튜브에서 이런 타입의 던전을 본 적이 있었지.’
월드 사가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던전 중 특이한 것들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나왔었다.
던전에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는 대신, 보스몹이 비슷한 난이도의 다른 던전에 비해 더 강력하다고.
‘그리고 그에 비례해서 경험치와 드랍률 같은 것도 더 좋다고 했지.’
즉, 보스에 집중된 던전이라는 뜻이다.
이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최초 발견 던전의 보너스 경험치를 보스몹으로부터 확 증폭시켜서 받을 수 있으니, 더 좋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서 들어가시죠.”
“잠깐. 이 마법진을 조사해 보아야 하지 않겠나?”
“이거 알아볼 수 있으세요?”
헤탄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서 어렵네.”
“저도 그렇고 에토 역시 그럴 겁니다. 그럴 바에는 빨리 이 마법진의 중심부에 가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으음. 일리가 있는 말일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헤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에토를 바라봤다.
에토는 잔뜩 굳은 표정이었는데, 고개만 까딱여 동의했다.
그 직후, 세 사람은 빠르게 내부로 진입했다.
더 이상 동굴 내부는 어둡지 않았다.
마법진에서는 불길한 붉은빛이 흘러나왔으며 조금 더 나아가니 그 마법진이 빽빽하게 그려진 커다란 공동이 나타났다.
“…이 마법진이 어떤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여기서 악마들이 소환되는 건 확실한 건 같군.”
헤탄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바닥, 천장, 벽 할 것 없이 가득한 마법진은, 도대체 이걸 만든 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안 갈 정도였다.
특히나 중앙에는 여러 마법진이 빽빽하게 중첩되어 있었는데, 가장 짙은 마기가 뭉쳐져 있었다.
헤탄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다가갈 때였다.
-우웅!
“헤탄님! 조심하세요!”
“고맙네!”
헤탄이 훌쩍 물러나고, 세 사람이 무기를 꺼내들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던 붉은빛이 짙어지더니, 곧이어 중앙에서 커다란 놈이 소환되었다.
-그어어어어어어!!
듣는 것만으로도 혼을 빼놓는 외침.
근육질의 모습에 키가 3m가 넘고, 양 손에는 활활 불타오르는 칼을 쥔 악마였다.
아무리 담이 센 사람도 처음 보면 놀라서 발이 굳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생김새.
[보스 몬스터 : 지옥의 수문장 벨리온]
-레벨 : 125.
헤탄과 에토의 표정은 긴장감이 가득했는데, 반대로 언럭키는 활짝 웃었다.
“드디어 한 놈 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