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카각!
에토는 언럭키가 휘두른 망치를 막아냈다.
또다시 ‘우레’에 적중당해 고통스러웠지만,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게 아니다! 정말로 뭔가 이상해서 그렇단 말이다! 내 과거 기억에 문제가….”
“시끄러워.”
그러나 돌아오는 건 언럭키의 망치질이었다.
옛날 어르신들이 개소리엔 몽둥이 찜질이 약이라고 했다.
언럭키는 조상들의 지혜를 실감했다.
그리고 가상 현실의 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느꼈다.
‘월드 사가가 진짜 무섭긴 무섭네. 보스몹이 도망치려고 저딴 말도 내뱉을 수 있고.’
갑자기 머리가 이상하다는 보스몹.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
놔주었다가는 훌쩍 뒤돌아 도망칠 수도 있었다.
아니. 100% 그렇게 확신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있지 않았던가.
두바르에서 찾아냈던 어쌔신 양성소.
보스룸에 들어가서 눈을 마주치자마자 벌떡 일어나 비밀 통로로 도망쳤던 그 때의 보스몹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어찌나 어이가 없는지 미튜브에 올린 영상 조회 수 중에서도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특히 이 놈은 발이 빨라서 빈틈을 줬다가는 진짜로 도망칠지도 몰라.’
이대로 장기전으로 가면 무난하게 자신이 이길 걸로 예상된다.
상성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당연히 기대되었다.
레벨 120짜리 보스몹을 상대로 1대1로 이긴다?
레벨업 한 번은 기본으로 하겠고, 추가로 뭘 더 얻을지 모른다.
‘좋은 아이템이라도 하나 드랍하면 최고지.’
그걸 생각하면 괜한 헛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빨리 대가리를 깨부숴야 한다.
언럭키는 한층 더 공격의 템포를 높혔다.
-쾅!
“크으윽….”
에토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지금 머릿속에 든 의문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눈앞의 저 성기사인지 사제인지 모를 놈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도망은…어렵다.’
에토는 계속해서 퇴로를 곁눈질해봤지만 호야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스피드 자신 있는 그였지만 호야는 순간 속도로 그를 뛰어넘었다.
정면으로 싸운다면 어렵지 않게 벨 수 있을 테지만…
‘저 무식한 놈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지.’
결국 에토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탱그렁.
그가 바닥에 자신의 검을 던졌다.
“항복한다. 네가 정말로 신을 성직자라면 항복한 적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지?”
항복하는 것.
리바 델 레이의 몬시뇰로서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다.
심지어 원수인 세인트크리스 교단에 항복이라니.
희망이 없어도 결사항전을 해야 옳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게 맞나?’ 싶은 근본적인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자신은 전대 몬시뇰에게 속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믿고 달려왔던 모든 것에 의심이 들었다.
그렇기에 이런 극단적인 선택도 할 수 있었다.
언럭키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항복이란 단어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망치를 치켜들 뿐.
“자, 잠깐. 항복한다니까?”
“안 들린다.”
“!?”
에토는 당황했지만 언럭키로서는 그의 말을 들어줄 필요가 없었다.
레벨 120짜리 보스몹을 잡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을지 모르는데.
위에서 사로잡으라고 시켜도 모른 척 죽였을지도 모를 만큼 탐나는 보상이다.
“악신의 주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직 죽음으로 회개시킬 뿐이다.”
“이런 미친놈이…!”
에토의 눈빛에 절망감이 깃들었다.
목숨을 건 도박이지만 승산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뒤늦게 몸을 숙여 검을 잡아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 전에 저 망치가 자신의 머리통을 부술 것이다.
허나 그 순간, 우뚝 하고 망치가 멈췄다.
“?”
코앞에서 멈춘 망치에 에토는 등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왜?”
에토가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언럭키를 바라봤다.
이유는 간단했다.
-띠링!
[사이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사이드 퀘스트 : 몬시뇰 에토의 진실.]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며 언럭키가 에토를 바라봤다.
***
[사이드 퀘스트 : 몬시뇰 에토의 진실.]
-퀘스트 등급 : X.
-퀘스트 설명 : 극한의 전투를 치르던 몬시뇰 에토는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를 놓아준다면 그는 동료가 되어 자신의 과거 진실을 찾으러 떠날 것이다.
-퀘스트 보상 : 적정량의 경험치, 몬시뇰 에토의 동료 영입.
사이드 퀘스트가 나타나고서야 언럭키는 공격을 멈췄다.
놈이 틈을 노리기 위해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갈팡질팡했다.
‘이걸 받아? 말아?’
언럭키가 고민하는 건 하나였다.
‘지금 이 놈을 받아들이면 보스몹을 잡은 걸로 쳐주는 건가?’
퀘스트 보상을 보면 이후에 동료로 바뀐다고 하는데, 그러면 내 경험치는?
보스몹 잡고 얻을 기타 여러 아이템 같은 것들은?
그게 없어진다고 하니 언럭키의 눈동자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냥 퀘스트고 뭐고 죽일까?’
굳이 저 퀘스트를 받아야하나?
언럭키의 고민하는 기색이 느껴졌는지 에토는 다급하게 말했다.
“부탁이다. 부디 내게 기회를 다오. 어쩌면…어쩌면 내가 큰 착각을 한걸 지도 모른다. 이게…”
“아 시끄럽고. 그런 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내가 널 안 죽이면 뭘 해줄 수 있는데?”
언럭키의 시선이 아까 놈이 바닥에 떨군 검으로 향했다.
“그거라도 나 줄 거냐?”
저건 최소 유니크 등급이다.
생김새도 그렇고 직접 몸으로 겪어보며 느낀 공격력으로도 그렇고, 확실했다.
“이, 이건 안 된다.”
에토가 급하게 칼을 집어 들어 슬쩍 뒤로 숨겼다.
“그럼 죽어야지.”
다시금 망치를 치켜드는 언럭키를 보며 에토가 다급하게 말했다.
“…원하는 게 물질적인 보상인건가?”
에토는 말하면서도 설마설마했다.
맞상대하면서 느낀 상대의 신성력은 굉장했다.
신성력의 수준으로만 따졌을 때, 추기경조차 뛰어넘는 것 같았다.
그런 자가 바라는 건 적의 회개와 참회…
“당연하지. 경험치 못 먹는 것도 서러운데 그 칼이라도 내놓아야 하지 않겠어?”
“…….”
“못 줘?”
“이건 정말로 어렵다. 이게 없으면 앞으로 내가 뭘 할 수가 없다.”
에토가 사정했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무기인걸 떠나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칼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에토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저 욕심 많은 사제를 설득시키려면 뭐가 좋을까?
다행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대, 대신 우리 분타에서 귀중품을 모아둔 보물고가 있다. 그 위치를 알려주마.”
그러나 언럭키는 뚱한 표정이었다.
“그거야 어차피 너 쓰러트리고 직접 가서 찾아도 되는 거잖아.”
“쉽지 않을 거다. 보물고는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게다가 네가 원하는 건 너 혼자 먼저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맞나?”
“…….”
언럭키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
“맞나보군. 허 참. 신실한 신의 성직자보다도 더한 신성력을 내뿜더니만…. 어쨌거나 다른 성기사들이 오면 그 보물은 교단으로 보내야 할 텐데, 과연 네 몫이 남을까?”
“…….”
언럭키에게는 치명적인 말이었다.
이거 하나로 마음이 반쯤 기울었다.
혹시나 싶어서 하나를 더 물었다.
“내가 듣기로 리바 델 레이의 보물엔 저주가 걸려있다고 하던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기는.
전에 한 번 겪어봤으니까 알지.
에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주 주문을 걸어주겠다. 물론 너는 우리의 신을 믿지 않아서 주문의 한계가 있겠지만…그래도 보물고의 물건 몇 개를 가져가는 것 정도는 문제 없을 거다. 이러면 괜찮나?”
언럭키가 방긋 웃었다.
“좋군. 네 항복을 받아들이겠다.”
그제야 망치를 놓고는 악수를 건넸다.
에토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지독한 놈.”
***
언럭키가 놓아주자 에토는 가볼 곳이 있다며 훌쩍 어딘가로 사라졌다.
더 이상 놈에게 볼일은 없었기에 언럭키 역시 곧장 움직였다.
-띠링!
[사이드 퀘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적정량의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레벨업!]
언럭키의 몸에서 빛이 짧게 번쩍이더니 지나갔다.
꽤 많은 경험치가 한 번에 들어왔다.
이게 보스몹을 잡은 것보다 더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섭섭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띠링!
[보스 몬스터를 대화를 통해 동료로 만들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성과!]
[업적이 주어집니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유니크)’ 업적을 획득합니다.]
새로운 알림에 언럭키는 진심으로 놀랐다.
“업적을 줘?”
에토는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보스몹이어서 잡으면 뭐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업적을 얻을 수가 있다니.
[업적 :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
-업적 등급 : 유니크.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항복시키고 동료로 받아들였습니다.
-적대적인 NPC를 대상으로 호감도 + 10 상승.
-마력 능력치 + 20 상승.
능력치 상승 업적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업적은 보이지 않는 아이템을 착용한 것과 다름없다.
다만 자세히 보니 효과는 조금 애매했다.
“적대적인 NPC의 호감도 상승이라니. 이건 어디다가 쓰라는 거야.”
그래도 마력 능력치 상승은 마음에 들었다.
성장할수록 마력의 중요성은 더더욱 실감했다.
에토와 장기전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건 풍부한 마나량으로 계속 스스로 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를 얻어 기분이 좋은 채로 언럭키는 에토가 알려준 장소로 이동했다.
중요한건 업적이 아니라, 그 안에 잠자고 있을 보물이었다.
‘이번에는 저주로 아이템을 눈앞에서 놓아줘야 할 이유도 없고.’
이전에 갔었던 곳은 호르헤른 가문에서 저주를 풀어보겠다고 했지만 실패했다.
건진 아이템은 극소수고, 나머지는 저주에 휩싸여 쓸 수 없게 되었다.
벨라 덕에 지금은 장갑으로 만들어 잘 활용하고 있었지만, 그때 생각만 하면 배가 아팠다.
하지만 에토가 해주 주문을 걸어주고 떠났으니, 이번엔 쓸 만한 걸 골라올 수 있지 않을까?
“흐흐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점점 걸어갈수록 그 웃음은 커졌다.
-파앗!
저 멀리서 거대한 보라색 빛이 솟구치고 있었던 것이다!
방향으로 보아하니 에토가 말해 준 곳이었다.
빛이 뿜어져 나오긴 했지만 워낙 복잡한 숲길이라 찾아가려면 꽤 헤맸을 것이다.
숲은 바위와 나무로 막힌 지형이라 방향을 알아도 길을 여기저기 돌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걸려 성기사들이 여기까지 오면 보물고를 꼼짝없이 교단과 나눠야 할 텐데, 다행히 에토가 자세한 길을 알려준 덕분에 그럴 일은 없었다.
“찾았다.”
그리고 곧, 그는 교묘하게 위장된 지하 보물고를 발견했다.
겉은 아주 단단하게 막혀 있었는데, 문제는 없었다.
-쾅! 쾅!
망치를 몇 번 휘둘러주니 금방 뻥 뚫린 입구가 드러났으니까 말이다.
“뀨르!”
“어허. 호야. 물러나있어. 여긴 내가 먼저 들어갈게.”
혹시나 호야가 먼저 들어가서 문제가 생길까 다급하게 막고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파아앗!
안쪽에서부터 보라색 빛이 선명하게 빛나며 그를 마중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