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쾅!
언럭키가 휘두른 망치를 에토는 검면으로 후려쳐 흘려보내듯 막아 냈다.
“크으윽…!”
뒤로 훌쩍 물러난 에토가 인상을 썼다.
검으로 막았음에도 양 팔이 저릿하다.
적중했다면 필시 큰 부상으로 이어졌을 터.
-쐐애액!
에토는 그 와중에도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흔들리는 검 끝이 언럭키의 가슴팍을 베고 지나갔다.
-카캉!
그러나 또다시 불꽃만 튀고 지나가자 표정이 굳어졌다.
“어디서 이런 놈이….”
무식할 정도로 단단하다.
자신의 검을 방패도 아니고 갑옷으로 막는 놈이 있을 줄이야.
-후웅!
또다시 휘둘러지는 망치를 에토는 급하게 머리를 숙여 피했다.
스쳐 지나갔음에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엄청나게 단단한데, 힘도 말도 안 되게 강해.’
망치를 휘두르는 전투 기술은 별거 없다.
거의 초보자나 다름없지만, 그럼에도 저 파괴력은 위험하다.
전투는 수 싸움이다.
상대를 파악하고, 어떻게 막고 반격할지 머리로 두는 체스나 다름없었다.
에토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재능이 뛰어났다.
그렇기에 외부인 출신임에도 몬시뇰까지 올라갔던 거지만, 이번엔 그 생각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쿠르르릉!
“크허억….”
망치에서 쏘아진 벼락 줄기에 적중당한 것!
광역 스킬 ‘우레’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짜릿하냐?”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에토에게 언럭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스 몬스터 : ‘몬시뇰’ 에토]
-레벨 : 120.
그러나 에토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정보를 본 순간, 그 역시 상당히 긴장했다.
‘레벨 120짜리 보스몹이라니. 이건 좀 위험한데.’
언럭키의 레벨은 아직 100이 안된다.
정확히는 현재 98이었다.
라이브 방송과 길 뚫기, 퀘스트 등으로 온전히 사냥에 집중한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다.
일반몹이라면 모를까 레벨 차이가 20도 넘게 나는 보스몹을 1대1로 상대하는 건 자신 없었다.
‘성기사들이 여기까지 오는 걸 기다려봐야 하나.’
호야를 타고 먼저 오느라 성기사들은 아직 분타 초입부에 있었다.
아무리 분타 내의 전력들이 제정신이 아니라서 학살하듯 휘젓고 있다지만, 사제급도 몇 명 있을 터.
여기까지 오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을 끄는 전략으로 가야하나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크윽….”
에토 역시 검을 든 채 경계하는 표정으로 언럭키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주보던 언럭키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저 녀석은 왜 저러고 있지?’
지금까지 보스몹을 만나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보통 보스몹들은 스스로의 실력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고, 상대를 무시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저 놈은 겁먹은 강아지마냥 저러고 있지?
‘…설마?’
언럭키는 크게 한 걸음 내딛었다.
그 순간 에토의 장검이 폭발적으로 날아왔다.
워낙 빠른 속도라 눈이 흐릿해지는 일격!
-쾅!
어깨 부근에 맞아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나 반대로 표정이 일그러진 건 에토였다.
절삭음이 들렸어야 정상이건만!
그 위로 언럭키의 우레 망치가 떨어졌다.
허리를 꺽으며 직격은 피했지만 어디 그 정도로 우레 망치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콰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또다시 벼락 다발이 꽂혔다.
“끄흐으읍!”
언럭키는 여기서 확실히 깨달았다.
처음에는 애매모호 했는데 방금 전에 겪은 두 번의 공방은 확신을 주었다.
“너…약하구나?”
정확히 말하면 약하진 않다.
레벨 120의 보스몹이 약할 리가 있겠는가.
지금도 놈이 휘두르는 검은 흐릿하니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저걸 몸으로 맞은 건 갑옷을 믿어서가 아니라 피하지 못해서였다.
그러나 상성 차이가 심했다.
에토는 척 봐도 좋아 보이는 장검을 제외하면 입고 있는 건 천 쪼가리였다.
방어구 같은 건 전혀 없는, 오로지 공격력 몰빵의 전사!
반면에 언럭키는 공격력도 꽤 괜찮으면서 방어력 하나는 훌륭한 탱커였다.
‘자고로 극딜 전사란 탱커를 이길 수 없는 법이지.’
언럭키가 조금 자신 있게 나섰다.
“내가 약하다고…?”
에토는 언럭키의 말에 열이 잔뜩 받았다.
약하다는 말을 언제 마지막을 들어봤는지 기억도 안 났다.
이 분타에서는 제왕으로 군림하던 게 그였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자존심이 상할 만도 했다.
화가 잔뜩 난 표정의 에토가 양 손으로 검을 쥐었다.
그러자 검신에서 뭉클거리는 흑색 기운이 터져나왔다.
칼날을 휘감는 그것은 기사들이 쓰는 오러와 똑같이 생겼다.
언럭키가 저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
“어…화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사과하면 받아 줄래?”
저런 오러를 보고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죽어라!”
그러나 에토는 자비 없이 검을 내질렀다.
새카만 오러를 휘감은 검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쏘아졌다.
-콰드드득!
“크윽….”
이번에는 언럭키의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HP가 눈에 보일 정도로 훌쩍 깎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오러를 맞았는데 버틸 만하다니.
게다가 어쩔 수 없이 에토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는데, 언럭키는 놈에게 우레 망치를 휘둘렀다.
맞아도 좋고 안 맞아도 상관없다.
-쿠르르릉!
“크허억!”
벼락 줄기가 또다시 놈을 꿰뚫었으니까!
감전되어 부들거리는 에토를 보며 언럭키가 중얼거렸다.
“광역 힐.”
스스로의 몸이 빛에 휩싸이더니 HP가 다시 차올랐다.
동시에 그의 등 뒤에서 빛줄기로 된 날개가 펼쳐졌다.
-우우웅!
‘성왕’만이 쓸 수 있는 하이 홀리 오오라가 주변으로 신성력을 뿜어냈다.
“블레스. 디바인 포스.”
언럭키가 연달아 중얼거리자 망치에서 거센 빛이 흘러나오며 풍겨 나오는 기세 또한 강해졌다.
애초에 세인트크리스 교단의 여러 레저던리 아이템 중 갑옷을 고른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단순히 방어력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다.
종합 전투력을 생각했을 때, 갑옷이 갖춰지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검은 오러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지금의 모습을 보니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2차전. 시작해 보자고.”
다만 호야와 같이 싸울 수는 없겠다.
자신은 몸으로 버틴다고 쳐도 호야는 한 방 잘못 걸리면 두동강 날 수도 있었다.
“호야. 뒤로 물러나 있어.”
“크릉!”
호야는 언제든지 견제하겠다는 듯 샛노란 눈으로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언럭키가 망치를 꽉 쥔 채 앞으로 달려 나갔다.
장기전의 시작이었다.
***
에토는 이런 치열한 전투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귀검사가 되고 몬시뇰로 승급하면서 어려운 게 없어졌다.
분타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악마들?
애초에 교단의 주문 덕에 악마들은 그들에게 먼저 선공을 때리지 않았다.
가끔 싸울 때가 있긴 했는데, 칼질 몇 번이면 다 썰어버릴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숫자에 포위되면 위험하지만 귀검사의 특징은 강한 공격력과 빠른 기동력이다.
느릿하게 다니는 덩치만 큰 악마들에게 포위당할 일이 없는 것이다.
“허억…헉…헉….”
그러나 지금, 에토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빛나는 망치를 든 채 다가오는 성기사인지 사제인지 모를 놈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넌 직업이 뭐냐?”
언럭키는 정말로 까다로운 상대였다.
중갑을 착용하고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데, 속도도 자신에 비해 그리 느리지 않았다.
‘블레스’와 그가 착용한 ‘바람 정령의 신발’ 덕분이었다.
이제는 꽤 오래되어 방어력 같은 건 레벨 대비 낮지만, 이동 속도와 민첩 상승 옵션이 지금도 유용했다.
-쿠르르릉!
또다시 휘둘러진 망치를 피하자 벼락 다발이 날아왔다.
에토가 이를 악물었다.
“끄으으읍-!”
전신을 지지고 가는 벼락은 무슨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히 자신도 반격을 하긴 했지만 큰 피해는 입히지 못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무식하게 단단해서 오러로도 제대로 데미지가 안 들어가는데, 금세 또 회복해버린다.
게다가 놈이 사용한 버프나 힐은 사제 계열만 쓸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성기사처럼 행동하는 놈이 어떻게 저런걸 쓰는지.
“이 악마 같은 녀석!”
마나량까지 많은데다가 스스로 버프까지 걸고 달려오는 언럭키는 그 어떤 악마보다도 무서웠다.
“신의 힘을 쓰는 자에게 악마라니! 역시 넌 회개가 필요하겠다.”
언럭키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는 다시금 망치를 휘둘렀다.
에토는 아예 멀찍이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또 너무 멀리 떨어질 수는 없었다.
“크헝!”
주변을 빙빙 맴돌던 백호, 호야가 발톱을 휘두르며 달려든 것이다.
“고양이 새끼가 귀찮게…!”
호야는 굉장히 민첩해서 에토도 쉽게 베지 못했다.
제대로 싸우면 어렵지 않게 이기겠지만 호야는 영리하게 치고 빠지기를 잘했다.
목적은 에토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
그러다보면 금세 따라온 언럭키가 망치를 휘둘렀다.
-쾅!
“…크헉.”
이번에는 망치의 정타를 머리 쪽에 살짝 허용했다.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에토는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였다.
가만히 있다가는 죽는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점점 극한으로 몰려갔다.
계속된 벼락 줄기와 한 번씩 얻어맞는 망치, 뻘뻘 흘리는 땀, 거칠어져 가는 숨결.
사람은 필사적이 될 수록 안 쓰던 뇌가 깨어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문득, 에토는 오래 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야. 어째서 그렇게 원망스런 눈으로 성직자들을 보고 있는 것이냐.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로브를 뒤집어써서 얼굴은 안보였지만, 그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어린 에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리바 델 레이로 이끌어 주었던, 전대에 이 분타를 이끌던 몬시뇰과의 첫 만남.
-세인트크리스 교단에 복수하고 싶다고? 후후. 좋지. 내가 도와주마.
그는 입교를 권했으며 에토가 탑을 탈출하는 걸 도와주었다.
그 와중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인상적인 말도 있었다.
-사실은 악마를 보내는 게 우리 리바 델 레이에서 한 짓이긴 한데…뭐, 이건 잊거라. 네가 들어서 좋을 게 없는 말이구나. 크흐흐. 어쨌거나 네가 잘 성장해서 교단에 복수심을 키운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겠어.
재미있다는 듯 중얼거리던 그는 에토의 머리에 가볍게 손을 올리자 검은빛이 번쩍였다.
잠깐의 과거 기억을 회상한 에토가 눈을 깜빡였다.
‘방금 그게 뭐였지?’
어린 시절의 기억?
하지만 방금 이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단편적이었다.
천공의 탑 시절은 그래도 기억하는 게 많았지만 리바 델 레이로 온 후에는 기억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단순히 너무 어렸고 충격을 많이 받아서라고 생각했지만…
‘…내 기억에 문제가 있다.’
마지막에 떠올랐던, 전대 몬시뇰의 손에서 흘러나오던 검은빛.
게다가 그가 했던 말도 의미심장했다.
천공의 탑으로 악마를 보내는 게 리바 델 레이가 벌이는 일이라니?
분타를 이끄는 몬시뇰이었지만 그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에토의 눈빛이 냉정을 되찾았다.
그가 여전히 무식하게 자신을 향해 망치를 휘둘러오는 언럭키를 바라봤다.
“잠깐…기다려라. 여기서 우리가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뭐?”
“기억이 혼란스럽다. 나를 놓아줘라.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어쩌면…여기서 더 이상 너와 싸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
언럭키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는 이런 개소리에 특효약이 뭔지 알고 있었다.
“웃기고 있네.”
-쾅!
언럭키의 망치가 자비 없이 휘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