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성왕 폐하를 뵙습니다!”
“성왕 폐하를 뵙습니다!”
천공의 탑 1층 내부.
성기사들에 의해 출입이 통제된 구역으로 가자 그들이 머리를 숙였다.
성기사들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존경심이 엿보였다.
언럭키가 천공의 탑에 온 후로 얼마나 많은 악마들을 때려잡았는지 전해들었다.
그야말로 악마 학살자 같은 모습!
‘게다가 이번에는 스스로 직접 위험한 장소에 발을 들이신다고 하시니, 대단한 분이시지.’
‘세인트크리스 교단의 모든 성직자들이 보고 배워야 할 분이야.’
곧이어 쇠사슬로 칭칭 동여맨 입구에 도착했다.
“추기경님?”
“성왕 폐하를 뵙습니다.”
거기엔 놀랍게도 10층에 있어야 할 추기경까지 와있었다.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 폐쇄된 통로는 저희 교단의 치부입니다. 지금껏 닫아만 두었지만 직접 해결해주신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뜯어말렸던 추기경이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띠링!
[사이드 퀘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이아손이 내부의 함정들을 헤체했고 레벨 95를 달성했다.
사이드 퀘스트에 성공했으니 더 이상 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통로 내부를 깨끗하게 청소하겠습니다.”
탑 바깥 어딘가에 있을 리바 델 레이 분타를 무너트리기 위해서라도 통로는 뚫어야 했다.
-철컹.
쇠사슬을 풀고 입구를 열었다.
언럭키와 이아손.
그리고 추기경이 붙여준 성기사 열명과 사제 두명으로 이루어진 대형 파티가 앞으로 나아갔다.
-띠링!
[천공의 탑 폐쇄된 지하 통로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로 발견한 던전입니다.]
[48시간 동안 던전 내에서의 경험치 획득량과 골드 획득량이 +150% 상승합니다.]
눈 앞에 나타난 알림에 언럭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이거지!’
단순히 나가는 길을 뚫기 위해 통로에 들어가겠다고 한건 아니다.
던전화 되었다는 통로.
그래서 오래 전부터 출입을 엄금했다고 한다.
심지어 여기가 뭐 하는덴지 아는 사람도 추기경을 비롯한 소수의 성직자 뿐이었다.
‘다른 유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들어가는 데였겠지.’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남아있을 수 있는 최초 발견 던전이었다.
물론 이아손이 먼저 들어갔었긴 했지만 그는 NPC다.
NPC는 던전에 들어간다고 해서 최초 발견 보너스가 사라지지 않는다.
“성왕 폐하. 저희들이 앞장서겠습니다.”
10명의 성기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여기 오기 전에 추기경으로부터 이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수 십번도 넘게 들었다.
함정은 해체되었겠지만 이 안에 오래 존재해온 몬스터들이 어떻게 진화했을지 모른다.
그런 위험한 곳을 어찌 성왕 폐하께서 앞장서도록 할 수 있겠나.
두려웠지만 그들은 용기를 내었다.
‘얘네들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물론 언럭키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싹 다 뒤에서 구경만 하게 해도 모자랄 판이구만.
경험치는 혼자 먹어도 부족하다.
대놓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좋게 돌려서 말했다.
“아니다. 이 곳에 오겠다고 고집부린건 나였다. 그러니 책임도 내가 지겠다.”
“하지만….”
“그만. 더 이상의 반론은 받지 않겠다. 이건 내가 받은 계시이기도 하다.”
“……감읍할 뿐입니다 성왕 폐하.”
몇몇 성기사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렇게 신실하신 분이라니!
높은 직책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
그 말을 완벽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설사 이 한 몸 죽어서라도 저 분을 따르겠다!’
성기사들이 속으로 그렇게 다짐할 때였다.
“크아아아아-!”
통로 저편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첫 손님이 나타났다.
[변형된 하급 악마 브렉토]
-레벨 : 99.
“브렉토다!”
“아니…근데 달라. 훨씬 더 크고 강해보인다!”
성직자들이 긴장했다.
이아손이 재빨리 말했다.
“언럭키님. 변형된 브렉토입니다. 1층에서 그 놈들을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덩치가 큰 것 뿐만 아니라 훨씬 강력합니다.”
이아손은 지하의 함정들을 해체하며 몬스터들을 여러번 마주쳤다.
혼자서는 역부족인지라 은신 상태로 조용히 피해다녔지만, 어떤 놈들이 있는지는 얼추 확인했다.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언럭키가 성큼 앞장섰다.
-파앗!
그의 등 뒤로 빛줄기로 이루어진 날개가 펼쳐진다.
“디바인 포스, 블레스.”
동시에 망치에서부터 거센 빛이 터져나왔다.
어두운 통로가 환하게 밝혀진다.
“오오….”
“악을 불사르는 빛이다….”
몸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신성력에 성직자들이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언럭키가 성큼 나아가 망치를 휘둘렀다.
-콰앙!
던전이 얼마나 클지 모르니 마나 소모를 최소하하기 위해 ‘우레’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충분했다.
사제이면서 괴상할만큼 뛰어난 힘 수치 + 우레 망치의 공격력 + 다크 와이번의 장갑에 붙어있는 공격력.
이 세개에다가 스스로 부여한 버프들이라면 일반몹 정도는 한 큐에 정리 가능하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최초로 발견한 던전 효과로 경험치 획득량이 +150% 상승합니다.]
한방에 대가리가 깨진 브렉토.
언럭키는 잠시 눈을 감고 경험치의 맛을 음미했다.
‘그리웠다. 최초 발견 보너스.’
150% 추가 경험치는 마치 마약과도 같았다.
있을때는 너무 행복하고 없으면 눈이 벌게져서 찾는.
고작 한 마리 잡았는데도 경험치 칸이 눈에 띌만큼 올랐다.
호야가 잽싸게 내려와 변형된 브렉토가 드랍한 아이템들을 휙휙 챙겼다.
그러면서 놈의 넓적다리살도 한 입 베어먹은 뒤, 총총거리며 언럭키에게 돌아왔다.
“잘했다.”
“뀨르!”
호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언럭키가 다시금 통로를 나아갔다.
‘부디 이 안에 몬스터들이 많이 있기를.’
***
지하 통로는 크고 넓었다.
도대체 어떻게 건축을 한 것인지, 단순히 일자로 뚫려있지 않았다.
갈림길이 여러번 나오고 커다란 공동이 존재했다.
그야말로 지하 던전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언제 한 번은 뚫린 통로가 10개도 넘는 공동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모든 통로에서 악마와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몇 군데는 언럭키가 막는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나타난 놈들에게 포위당할 상황이었다.
망치를 휘둘러대지만 그래도 현재 직업은 사제.
방어력이 떨어진다.
둘러싸여서 잘못 공격당하면 위험했다.
“폐하! 이 쪽은 저희들이 막겠습니다!”
“아, 아니….”
“모든걸 폐하께 맡길만큼 저희가 양심 없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
성기사들은 기꺼이 나섰다.
아까부터 언럭키의 뒤에만 숨어있는게 죄스럽기도 했다.
“악마를 불사르라!”
“아무리 지하라고 해도 여기는 천공의 탑이다. 너희들이 있을 곳으로 보내주마!”
성기사들 한데 뭉쳐 악마들과 싸웠다.
언럭키가 다급하게 그들에게 블레스를 써줬다.
-띠링!
[최대 10명의 힘, 민첩, 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오오…힘이 넘쳐 흐른다!”
“폐하께서 축복을 내리셨다!”
급박한 상황인데도 우리를 이렇게까지 챙기다니!
성기사들은 한층 더 신실한 마음으로 전투에 임했다.
언럭키 역시 정신없는건 마찬가지였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몬스터들. 사제 직업으로는 전투 보정이 없다.
난전이 펼쳐지면 아무래도 불리한 것이다.
-콰르르릉!
마나 소모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우레’도 아낌없이 사용하며 싸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상처가 늘어갔다.
“크헉…!”
“크허헝!”
성기사들이나 호야의 몸에도 상처가 생겼다.
그러자 언럭키가 본격적으로 활약했다.
“광역 힐!”
사제로서의 진정한 능력.
다치고 상처입은 자들이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힘만 높은게 아니라 마력도 높은 언럭키라서, 마나량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성왕은 원래 이렇게 뒤에서 버프 주고 힐 뿌리는 직업이다.
전방에서 망치질을 해대는게 조금 이상한 거였지.
결국 그들은 공동의 악마들을 모두 쓰러트릴 수 있었다.
-띠링!
[레벨업!]
전투가 끝난 후 레벨업 메세지가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언럭키는 좋지 않은 눈으로 성기사들을 쳐다봤다.
‘좀 적당히 막고만 있을 것이지 그걸 다 처치해가지고….’
시간만 끌고 있으면 자신이 가서 마무리 짓고 그 경험치들도 다 먹을 수 있었을텐데.
힘든 전투 끝에 잠시 쉬고 있던 성기사들은 그런 언럭키의 눈빛으로 보고 찔끔 놀랐다.
‘우리가 못나서 성왕 폐하께서 전투 중에 힐까지 사용하셨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앞으로는 더 열심히 싸운다!’
결코 언럭키의 등을 보며 따라가는게 아니라, 함께 나란히 서겠다!
성기사들은 그렇게 다짐했다.
***
-뻐억!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최초로 발견한 던전 효과로 경험치 획득량이 +150% 상승합니다.]
호야를 타고 날아다닐 때와 달리, 사제 직업으로 벌이는 전투는 그리 쉽지 않았다.
움직임 보정 같은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적중당하는 공격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힐과 버프가 있어도 까딱 잘못해서 맞은 공격에 HP가 뚝뚝 떨어졌다.
‘방어구가 필요해.’
성기사가 아니라 사제도 착용할 수 있는 강력한 방어구.
당연히 그런건 비싸겠지만, 이러다가 어느 순간 죽는 것보다는 돈을 쓰는게 낫다.
‘최대한 빨리 좀 알아봐야겠군.’
이럴 때 벨라가 옆에 있었으면 재료값 좀 지원해주면서 부탁했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들어온지 얼마나 됐다고 레벨업 한 번을 하고, 그 후로도 경험치칸이 굉장히 많이 채워졌다.
‘여기가 얼마나 깊은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레벨 2개는 더 올릴 수 있겠지.’
그리 되면 100레벨 까지는 금방이다!
월드 사가의 초보와 중수를 나누는 하나의 기준점 중 하나가 100레벨인데, 그 고지가 눈 앞에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음?”
계속해서 나아가던 언럭키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아니….”
항상 자신감 넘치게 움직이던 그가 멈춘건 처음이다.
성직자들이 의아해서 쳐다봤지만 언럭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뭐야. 이거 왜이래.’
눈 앞에 보이는 벽에 오랜만에 ‘행운의 무지개’ 효과로 이루어진 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고장났나?’
그러나 언럭키는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빨주노초파남보.
그 중 적색은 운이 없다는 뜻이고, 파란색은 운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보통 빛은 한가지 종류만 보인다.
그런데 눈 앞의 벽에서는 ‘붉은색 빛’과 ‘파란색 빛’이 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파앗!
언럭키의 미간이 좁혀졌다.
붉은색과 파란색이 함께있다.
그 의미는 대충 짐작이 갔다.
‘위험하지만…그만큼 보상도 크다. 뭐 그런 뜻인가?’
능력이 고장난게 아니라면, 아마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
잠시 고민하던 언럭키가 망치를 들었다.
붉은색 빛은 애써 무시했다.
위험?
어차피 이 인생에 언제 편안하게 간 적이 있었던가.
항상 위험했고, 그걸 돌파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보다는 파란색 빛에 집중하며, 망치를 휘둘렀다.
-꽈아앙!
전력으로 휘두른 망치에 통로 중간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성기사들은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지? 라는 눈빛으로 언럭키를 쳐다봤다.
뜬금없이 잘 가던 벽을 부수다니.
“…폐하. 이 곳은 지하라서 아무 벽이나 막 부쉈다간 지반이 무너져내릴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다.”
“그러면….”
그 때였다.
무너진 벽 너머, 서서히 먼지가 가라앉고 있는 곳에 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언럭키 일행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지하에 사람이라니?
당황한건 상대편도 마찬가지인지, 이 쪽을 보며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그 때 성기사 중 한 명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 문양은…!?”
점점 뚫리는 시야 너머, 상대가 입고 있는 옷이 보였다.
그 목깃에 그려져있는, 악신의 문양.
“리바 델 레이 놈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