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천공의 탑 2층.
레벨 95~99사이의 악마형 몬스터 ‘살리바르’가 등장하는 곳.
여기서부턴 1층과 달리 조금 까다롭다.
“아 진짜 짜증나네. 또 안 맞았어.”
“허공에서 무슨 저딴 움직임을 보이냐.”
살리바르는 뱀 형태에 날개가 달린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1층 브렉토처럼 이놈들 역시 공중에서는 별반 능력을 못 쓴다.
그러나 브렉토처럼 눈뜨고 당하는 건 아니었다.
뱀 같은 몸뚱이를 꿀렁거리며 기묘한 움직임을 펼쳐,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쿵!
-쿠웅!
“왔다! 막아!”
“이번에도 마법사들이 많이 처치 못했다! 빨리 가서 잡으면 다 우리 몫이야!”
전사 계열 유저들은 탑에 내려선 살리바르를 보며 신나서 달려들었다.
1층에서는 원거리 유저들이 싹 쓸고 남은 찌꺼기를 줍는 느낌이었다면, 여기는 그래도 사정이 많이 나았다.
원거리 유저들에게서 살아남는 놈들이 상당했던 것!
당연히, 그에 비례해서 죽는 유저도 많았다.
“커헉! 사, 살려….”
“잠깐만. 나 이번에는 진짜 죽으면 안 돼. 이거 얼마 전에 구한 레어 무기라고…!”
바닥에 내려선 몬스터들이 워낙 많다보니 까딱 잘못하면 둘러싸여 죽기 십상이었다.
그러면 추가로 더 많은 유저들이 눈이 벌게져서 달려갔다.
죽어서 드랍한 아이템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끄아악!”
“젠장. 여기 몬스터 왜 이렇게 많…쿠헥.”
또 그러면서 죽는 유저까지.
혼란스런 아비규환의 상황이 펼쳐질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작고 하얀 물체가 휙휙 지나다녔다.
하얀 솜뭉치 같은 그것은 열심히 유저와 몬스터 사이를 헤매더니, 제 주인에게로 돌아왔다.
“뀨르!”
“잘했어 호야.”
언럭키가 살짝 허리를 굽혔다.
호야가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몸을 부비적댄다.
“어때. 많이 챙겨왔어?”
“뀨르르!”
“오구오구. 잘했어. 네가 아주 복덩이구나.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까 이따 가서 보여 주렴.”
“뀨르!”
언럭키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인벤토리에서 고깃덩이를 꺼냈다.
“자. 고생했다.”
무려 추기경의 주방장에게서 구해온 고기였다.
아무리 성직자라고 해도, 영주와 같은 위치인 사람에게 공급되는 고기이다보니 질도 좋고 가격도 상당했다.
그러나 언럭키는 기꺼이 그 한 덩이를 호야를 위해서 넘겨주었다.
‘방금 떨어진 아이템 중에 일단 노란색 하나는 있었다. 레어템 하나는 무조건 얻었네.’
거리가 멀어서 유저가 떨어트린 아이템의 자세한 정보까지 보진 못했다.
게다가 아이템의 종류는 워낙 방대해서 슬쩍 본다고 알 수도 없다.
다만 그에게는 ‘눈’이 있었다.
행운의 무지개 능력이 발동되면서 진한 색깔을 보여 준 것이다.
레어가 포함된 여러 종류의 아이템을 물어온 호야에게, 이런 고기쯤이야 얼마든지 줘도 아깝지 않았다.
호야는 한참이나 고기를 뜯어댔는데, 언럭키는 그 와중에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쳇. 더는 없네.’
그러나 방금처럼 사고로 죽는 유저들은 더 이상 없었다.
다들 바보가 아닌지라 한 번 이런 사단이 나면 조금 욕심을 줄이고 신중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래봤자 내일 되면 또 이런 일이 반복되긴 할 테지만.’
어쨌거나, 슬슬 구경은 여기서 끝내야겠다.
“호야. 다 먹었어?”
“뀨르!”
“그럼 이제 밥값 할 시간…아니, 운동 할 시간이야.”
“뀨르르!”
호야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확 하고 커졌다.
“크르릉….”
샛노란 눈빛이지만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언럭키는 호야의 등에 탄 채 훌쩍 뛰어올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망치를 쥔 채 둘이서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파앗!
가는 길에 언럭키의 등 뒤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선이 여러 가닥 펼쳐져 나왔다.
성왕만의 능력. ‘하이 홀리 오오라’를 발동시킨 탓이다.
“오오….”
“폐하께서….”
성기사들이 감격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하늘에 가득한 살리바르를 향해 나아가는 신성한 기사 같은 모습!
절로 신앙심이 깊어지는 광경이었다.
언럭키는 그 상태로 양 손에 쥔 망치에 스킬을 사용했다.
-우웅!
망치가 빛에 물들었다.
[디바인 포스]
-스킬 등급 : 레어.
-스킬 효과 : 공격에 성(聖) 속성을 부여해준다.
성왕이 되면서 기본적으로 얻은 스킬 중 하나인 디바인 포스.
거기에 ‘하이 홀리 오오라’의 효과가 더해졌다.
[디바인 포스(오오라 적용)]
-스킬 등급 : 레어.
-스킬 효과 : 공격에 강화된 성(聖) 속성을 부여해준다.
-악마족에게 적중 시 150%의 피해를 입힌다.
한층 더 강화된 디바인 포스.
뿜어져 나오는 빛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블레스.”
-띠링!
[최대 10명의 힘, 민첩, 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오오라로 강화된 블레스를 본인에게 사용했다.
아쉽게도 10명이란 인원 제한이 있어서 지상에 있는 성기사 중 한 명은 버프를 못 받게 되었지만, 어쩌겠나.
이 쪽이 효율이 더 좋은데.
“가자, 호야.”
“크헝!”
호야가 허공을 질주했다.
공중을 날아오던 살리바르들의 시선이 언럭키와 호야에게 향했다.
“뭘 봐 이 자식들아.”
-뻐억!
빛에 휩싸인 우레 망치를 휘두르자 살리바르 한 놈의 머리통이 시원하게 터져나갔다.
-쿠르릉!
동시에 후려친 망치에서부터 벼락이 줄기줄기 뻗어져나간다.
근처에 있던 살리바르들이 몸을 연신 비틀어댔지만 어디 벼락을 그런다고 피할 수 있겠는가.
“캬아아아!”
“키에에….”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경험치 칸이 시원하게 올라갔다.
‘크으. 공격력 한 번 시원하네.’
사제 전용 아이템이라는 까다로운 제한을 빼면, 우레 망치는 정말 좋은 아이템이었다.
공격력도 뛰어났고, 스킬 ‘우레’의 공격력 산정 방식은 올마스터인 언럭키에게 딱 맞았다.
‘게다가 다크 와이번의 무투 장갑. 이게 참 물건이란 말이야.’
착용하는 직업에 따라 공격력 60이 오르거나 마법 공격력 60이 오른다.
자기가 선택할 수 있었는데, 당연히 지금은 공격력 60을 골랐다.
우레 망치에 장갑의 공격력까지 더해지니, 레전더리 전사 부럽지 않은 상황!
언럭키의 머릿속에 이걸 만들어준 사람이 떠올랐다.
‘벨라님은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 언제 한 번 연락 해봐야겠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가능하면 현실에서도 만나서 밥 한 끼 먹으면 더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니 아쉬울 뿐이었다.
***
악신의 교단 리바 델 레이.
호르헤른 가문의 사람들이 알아낸 정보대로, 천공의 탑 근처에 그들의 분타가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큰 분타였다.
천공의 탑은 지형적 특성상 주변 땅은 악마들에게 점령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몬시뇰 에토. 또 탑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마음이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구나.”
“…….”
몬시뇰.
리바 델 레이의 사제급이 한 단계 더 승급하면 올라서는 직위이다.
하급 직위인 사제를 벗어나 진짜로 대우를 받는 위치이기도 했다.
눈앞의 중년인 ‘에토’는 몬시뇰로서 이 거대한 분타를 이끌고 있었다.
“볼 때마다 빨리 저 탑을 무너트리고 싶어서 속이 타오른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에토는 원래 천공의 탑에서 지내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부모님은 세인트크리스 교단을 믿는 신도들이었다.
에토 역시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신을 믿고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교단의 성기사들이 움직였다.
[우리는 저 바깥으로 악마들을 처치하러 나간다. 지원자가 있다면 누구든지 따라오라.]
지하 통로를 통해 바깥으로 향하는 길을 뚫었다.
결사대를 조직해 악마들을 처치할건데, 원하는 자가 있다면 함께하라.
교단은 그렇게 홍보를 했다.
많은 신도들이 거기에 참여했다.
-악마들을 불사르자!
-우리의 땅에서 놈들을 쫓아내는 거야!
성기사들과 함께하는 성전이라니.
이건 참여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신께 봉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자들만 받아줬는데, 에토의 부모님은 젊은 시절 용병 활동을 했었기에 결사대의 일원이 되었다.
결사대는 처음엔 잘 하는 듯 했지만, 결국 악마들의 공격을 못 막아 패퇴했다.
패잔병이 되어 소수만 살아서 탑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쫓기듯이 간신히 도망쳤을 뿐이다.
-통로를 폐쇄한다. 악마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막고, 내부를 던전화 시켜라. 함정을 깔고 몬스터를 풀어서라도!
에토는 다급했다.
살아 돌아온 결사대에 부모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희 부모님이 안 돌아오셨어요! 밖에 계신다고요! 구하러 나가야 돼요!
-저 밖은 지옥이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무리야. 네 부모님은…아마 신의 보살핌을 받으러 가셨을 것이다.
교단은 어쩔 수 없었다.
안타까운 사정이지만 그렇다고 구출대를 보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잘못하면 악마들에 의해 탑이 멸망할 수도 있는 상황.
다급하게 통로를 막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에토는 분노했다.
-뜻을 따르는 신도를 보호해주지 않다니. 그게 무슨 신이란 말이냐!
믿음은 배신당했을 때 그 상처가 더 큰 법이다.
분노로 가득 찬 그에게 ‘리바 델 레이’가 접근했고, 그는 기꺼이 천공의 탑을 떠났다.
그 후에는 복수심을 원동력으로 살아왔다.
리바 델 레이를 위해 여러 임무를 수행했으며, 마침내 몬시뇰의 직위까지 올라 분타를 책임지게 되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
에토가 저 멀리 보이는 천공의 탑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거짓된 신을 따르는 놈들에게 진정한 신의 힘을 보여줘야지.”
어렸을 적의 기억이지만 그는 천공의 탑에 폐쇄된 통로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분타를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고 오랫동안 수색했다.
과연 그 통로는 어디로 이어진 것일까?
분타는 결계로 보호되어서 괜찮지만 밖으로 나가면 악마들에게 공격받는다.
그래서 수색 작업은 더뎠지만, 에토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발견했다.
오래 전 결사대가 사용했던 통로를!
“가라. 우선 할 일은 통로 내부를 장악하는 것이다.”
“예!!”
“예!!”
리바 델 레이의 암흑 사제들을 포함한 일단의 병력이 폐쇄된 통로를 향해 출발했다.
***
-띠링!
[레벨업!]
열심히 사냥에 열중하다보니 어느새 레벨 하나가 올랐다.
‘이로써 레벨 95다.’
일단 사이드 퀘스트 목표 중 하나는 이뤘다.
“이제 돌아가자 호야.”
“크헝….”
호야가 살짝 힘 빠진 목소리로 응답했다.
무리해서 날아다녔더니 꽤 힘든 모양이다.
호야의 지친 체력을 회복하고 마나도 채울 겸 쉬어줘야 했다.
그 순간이었다.
“총령…아니, 언럭키님.”
옆에서 검은 그림자가 뚝 떨어졌다.
“이아손?”
“예.”
“너…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군?”
이아손의 옷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헤져있었으며, 그 사이로 피가 배어나와 굳은 흔적이 한가득이었다.
“이것 말입니까? 영광의 상처들이죠.”
그러나 이아손의 표정엔 숨길 수 없는 자랑스러움이 보였다.
“지하의 폐쇄된 통로. 언럭키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곳에서 제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예. 전부 언럭키님 덕분입니다.”
이아손의 말에 언럭키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기 위해 했던 말들인데 이렇게 잘 통했을 줄이야.
“뭐…네가 좋았다면 됐지. 그럼 가볼까?”
“예.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아손이 앞장섰다.
“다만 함정은 제가 제거했어도 위험한 몬스터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다.”
몬스터가 많아?
유저 입장에서는 아주 행복한 상황이다.
‘심지어 그게 최초 입장 던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언럭키는 기대감에 부푼 마음을 안고 이아손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