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천공의 탑에서 언럭키의 사냥 장면은 꽤나 화제가 되었다.
<오늘도 봤다. 소환수인지 펫인지 모르겠지만 하늘 날아다니면서 망치 휘두르는 유저.>
<진짜 장난 아니더라. 한번 휘두를 때마다 번개가 막 나가는데 브렉토들이 우수수 쓸리던데?>
<명중률 안 좋은 마법사들보다 오히려 낫겠더라.>
오피셜은 아니고 누군가 짧게 찍어 올린 것들이었다.
그러나 망치질을 뻥뻥 해댈 때마다 벼락이 치는 모습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 X르 아냐?>
<로브 같은걸 뒤집어쓰긴 했지만 진짜 토X 같네 ㅋㅋㅋㅋ.>
예로부터 천공의 탑은 원거리 유저들의 꽃밭이었다.
일단 입문이 쉬웠다.
1층의 브렉토들은 탑을 향해 날아오는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며, 거기다 스킬만 때려 넣으면 그만이다.
심지어 여기를 수련의 장으로 생각하는 사람마저 존재했다.
경험치도 올리고 스킬 다루는 숙련도마저 올릴 수 있는 최고의 환경!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중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애초에 범위 타격이 아닌 일점사격으로는 먼거리의 상대를 제압하기 굉장히 어렵다.
군대의 소총 같은 경우만 해도 250m 떨어진 움직이는 물체를 맞추는 건 고도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고선 힘들었다.
궁수 계열 유저들은 사격 보정 패시브가 있기에 그나마 나았지만, 마법사들은 생각보다 명중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직접 싸워야 하는 전사 계열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언럭키는 그런 모두를 압도했다.
<아니ㅋㅋㅋㅋㅋ. 나 마법사인데 저거 보고 깜짝 놀랐다. 나보다 더 빨리 잡던데?>
<ㅇㅇ 인정. 어지간한 마법사나 궁수는 저 속도 절대 못 따라갈 듯. 가까이서 망치질로 광역기 때려 넣으니까 명중률이 100%로 올라가네 ㅋㅋㅋㅋㅋ.>
<천공의 탑에서 전사가 쓰레기라고 한 사람들 누구냐? 앞으로 내 앞에 보이면 다 대가리 박아라.>
<ㅈㄹ ㄴㄴ. 그럼 너도 저런 템 들고 저런 펫 타고 다녀보든가ㅋㅋㅋㅋㅋ.>
그리고 이걸 놓칠 이용승과 컵라면이 아니었다.
밤늦은 새벽시간이었는데도 월벤이 시끌시끌한 걸 보고, 두 사람은 곧장 연락을 취했다.
“용승 씨.”
-네. 안 그래도 저도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얼굴은 보지 못하고 통화만 하는데도 두 사람의 목소리는 심각했다.
“언럭키님이 사고 한 번 제대로 치고 있는 것 같죠?”
-제대로 된 영상도 없는데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네요.
지금껏 신박한 컨셉이나 재밌는 영상을 가져와 떠들썩해진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아직 영상 공개를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이야.
-이한영 PD님. 이거. 빨리 작업 들어가시죠.
모든 사람에게 기회는 온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그걸 기회라고 인식하지 못해서 놓치지만, 제대로 된 사람은 다르다.
놓치지 않고 거기에 올라타는 것이다.
컵라면과 이용승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안 그래도 요청 보내 놨습니다. 언럭키님에게 일단 다른 거 제쳐두고 그 영상 원본부터 보내달라고요. 근데 아마 지금 시간이 이래서 주무시고 계실 것 같은데…”
-…….
“오전은 되어야지 회신이 오지 않을까요.”
그 후 잠시 둘 다 침묵했다.
뒷말은 잇지 않았지만, 아침이 되어버리면 이 화제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전화 해볼까요? 방해 금지 모드 같은걸 켜놓지 않았으면 다행인데…”
-…잠시만요.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이용승은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한 뒤, 통화는 끊지 않은 채 어디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뭔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시는 거지?’
컵라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편집자님 집에 누군가 방문했나?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요란한데?
-용승 씨 이 밤엔 왜…
-영상…
-…
곧이어 자그맣게 뭔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용승이 되돌아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근데 누가 집에 방문했나요?”
손님이 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다.
-누가 온 건 아니고. 제가 갔다 온 겁니다.
“네?”
-별거 아닙니다. 하여간, 영상은 곧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
그로부터 채 10분도 안되어서, 언럭키에게 메일이 왔다.
이번에 화제가 되었던 사냥 장면 전체가 담긴 영상이었다.
‘아니….’
이한영은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
언럭키가 이용승 때문에 강제로 깨서 소중한 수면 시간을 방해받은 그 시각.
그 희생의 대가로 두 사람은 빠르게 영상 편집에 돌입했다.
시간이 많이 없었다.
밤은 사람들이 잠자는 시간이지만 깨어있는 자들은 감상에 젖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새벽에 불붙은 화제는 조금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전투태세를 방불케 하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어떻게든 이 시간 안에 승부를 봐야한다.
다행히 언럭키는 이 영상을 나중에 써먹을 것에 대비해서, 미튜브 용으로 꽤 잘 만들어두었다.
그러니 편집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둘은 미친 듯이 몰입했고, 그 결과 결국 해냈다.
-띠링!
[NEW!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등록되었습니다.]
[제목 : 천공의 탑 정복 중입니다.]
[지금 바로 공개됩니다.]
예약도 안 걸고 바로 실시간 라이브를 때려버렸다.
월벤에 익명으로 슬쩍 홍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 영상 새로 올라왔는데? 천공의 탑 사냥 영상임!!>
└(링크)
몇 시간이 지나면서 살짝 식어가고 있던 언럭키 떡밥이었는데, 이거 한 방에 기름을 부은 듯 불붙었다.
<오. 뭐야. 진짜네? 방금 나한테 알림 왔어.>
<나도.>
<이 새벽에 업로드한 거야? 스트리머 진짜 고생한다.>
<이건 스트리머보단 편집자가 고생하는 거 아닐까?>
새벽이었음에도 꽤 많은 시청자들이 언럭키의 채널에 들어왔다.
<오늘은 기다리는 시간 없어서 좋네.>
<앞으로도 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ㅋㅋㅋㅋㅋ.>
곧이어, 영상이 시작되었다.
이젠 몇 번이고 본 대룡 미디어의 광고가 지나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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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팅창에 단체로 ? 가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브렉토를 사냥해보겠습니다.”
언럭키의 1인칭 액션캠으로 보이는 장소가 하늘 위였던 것이다.
<ㅋㅋㅋㅋㅋ시작부터 신박하다.>
<아 광고 끝나자마자 재밌네.>
<사실 대룡 미디어 광고는 웅장해서 광고부터 재밌긴 함.>
“그 전에 소개해야 할 친구가 있는데요. 새로 얻게 된 펫입니다. 호야라고 해요.”
그러면서 언럭키는 타고 있던 백호, 호야를 비췄다.
목덜미를 툭툭 두드리자 호야는 ‘크헝!’하고 한 번 울어 주었다.
그러더니 풀쩍 뛰어올라 하늘을 달려나갔다.
<헐 펫? 호랑이임?>
<미친! 날았잖아!??>
<날아다니는 호랑이라고? 저런 펫이 있었나?>
<와…간지 터진다….>
호야에 대한 소개는 거기서 끝이었지만 채팅창의 열기는 쉽게 식지 않았다.
강력해 보이는데다가 하늘까지 날 수 있는 펫이라니.
그 희귀성이 얼마나 어마무시할지는 월드 사가 유저라면 충분히 짐작 가능하리라.
편집을 했던 이용승과 컵라면도 깜짝 놀랐었는데, 시청자들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작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꽝.”
공중을 돌진하던 언럭키가 브렉토들 앞에서 가볍게 망치를 휘둘렀다.
척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새하얀 디자인의 ‘우레 망치’.
한 번 휘두르자 벼락이 쳤다.
-콰르르릉!
아이템 제한이 까다로웠지만 언럭키에게는 맞춤이라고 봐도 무방할만한 수준의 물건이 바로 이것이다.
공중에서는 무방비인 브렉토였기에 광역기 한 방에 다수가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채팅창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곧이어, 쏟아지듯 채팅이 터져 나왔다.
<…허 참. 말이 안 나온다 진짜.>
<아니ㅋㅋㅋㅋㅋ. 최초 도시 발견해서 해골 부리던 게 얼마 전인데. 이제는 또 뭔데?>
<성기사로 직업 또 바뀐 건가? 근데 저 망치는 뭐고?>
<펫이나 망치나 돈 주고 사려면 기본 억대는 들어갈 것 같은데. 뭐 어디 중동 재벌이라도 되는 거임?>
사람이 양파도 아니고 어떻게 까도까도 뭐가 나오지?
시청자 입장에서는 즐겁긴 하다만 정말 신기했다.
-꽝!
-꽝!
그 와중에 공중에서 망치질을 해대는 언럭키의 표정은 정말 신나보였다.
성기사들을 지켜보고만 있다가 사냥에 나선 것이었으니 당연히 신날 때였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엔 월드 사가를 진심으로 즐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트리머의 감정은 시청자들에게도 전염되는 법.
뻥뻥 때려대는 망치질에 곧이어 채팅창 역시 환호했다.
<한 방 더 가즈아아아!>
<시원하다 시원해. 새벽에 아주 속이 뻥 뚫리는 구만.>
<다른 스트리머들이 좀 보고 배워야해. 쓸데없이 시간만 긴 영상 올리지 말고 언럭키처럼 좀 해라.>
새벽 내내 식지 않을 언럭키 떡밥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
언럭키의 영상이 한창 송출되던 그 시각.
대장장이 벨라. 김화영 또한 밤늦은 시간임에도 언럭키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두바르 이후로 언럭키와 헤어지면서 아쉬움이 많았었다.
그래서 언럭키의 채널을 구독하고 알림 설정까지 해놓았는데, 마침 새벽에 잠이 안 오던 때에 알림이 떴다.
영상을 보는 내내 김화영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가 만들어 준 장갑…잘 쓰고 계시네.’
전력을 다해 사냥하는 언럭키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녀가 본 언럭키는 매사에 최선을 다했으며 진지했다.
단순히 게임이라며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언럭키는 빚을 갚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거였지만, 김화영에겐 그 모든 게 빛나보였다.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반짝거리는 법.
특히나 김화영은 학창 시절이 그리 좋지 않았으며 지금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과 정반대로 살아가는 언럭키를 보며 치유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좋아해주고 있어. 좋겠다….’
새벽의 기습 방송까지 볼 정도라면 언럭키의 골수팬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영상 퀄리티까지 좋으니 시청자들은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인 후원금 또한 주기적으로 들어왔는데, 김화영은 그게 너무 부럽게 느껴졌다.
영상을 다 본 뒤, 그녀는 전에 언럭키의 영상에 자신이 나왔던 편을 찾아서 다시 틀었다.
이미 수십 번은 봤지만 또 보는 영상.
거기엔 자신보고 예쁘다느니, 멋있다느니 하는 댓글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나도…사람들이 좋아해주는구나.’
정신적으로 힘이 들 때마다 보면 절로 기운이 났다.
고민이 많았었지만 언럭키의 영상에 출현한건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
근 몇 년 동안 한 일 중에 가장 잘 한 것 아닐까.
그녀는 몇 번이고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보는 내내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 만개해 있었다.
정신이 치유받는 느낌이 든다.
“마, 맙소사….”
그리고 그런 김화영의 모습을, 그녀의 가족들이 입을 틀어막은 채 지켜보고 있었다.
“…우, 우리 화영이가 웃고 있어?”
“쉿. 엄마. 괜히 소리 내지 마세요. 집중 깨지면 어떡해.”
그녀의 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길래 조심스레 다가왔다가, 열린 방 문 사이로 말도 안 되는 걸 봐버렸다.
가족 간에도 거의 감정 표현을 하지 않던 그녀였고, 그 어떤 웃긴걸 보여줘도 힐끗 보고 말았었는데, 저렇게 웃을 수가 있다니!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오빠인 김동엽은 부모님과 달리 동생이 어떤 영상을 보는지도 눈치 챘다.
자신이 소개해줬던 스트리머 언럭키.
얼마 전 영상에서는 출현까지 하더니, 설마 동생이 저렇게 좋아할 줄이야.
‘…언제 한 번 찾아뵙고 싶군.’
라이브라도 하면 크게 후원금이라도 쏠 텐데.
그렇게라도 해서 가족의 행복에 대한 값어치를 치르고 싶었다.
그러나 김동엽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돈 같은 걸로 때우지 말고, 훨씬 더 의미있는 걸 해 줘야겠지.’
대충 돈만 건네는 건 상대가 기분나빠할 수도 있다.
돈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게 많으니, 그걸 찾아서 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