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으하하하핫-!”
언럭키는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함성을 내질렀다.
-촤악!
-푸화악!
손에 쥔 검을 휘두를 때마다 하급 악마 브렉토들이 마구 썰려나갔다.
-띠링!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우연히 깨어난 백호, 호야.
원래는 조그만 애완견 크기였던 놈은, 포효하면서 거대한 모습으로 변했다.
백호라는 이름에 걸맞은 거대한 호랑이가 된 것이다!
그 샛노란 눈동자를 보면 왜 맹수의 제왕이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잘 갔다.
다만 그럼에도 언럭키를 향해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보였다.
자신의 신성력을 받아먹고 깨어나서인지, 아니면 알에서 나올 때 처음 본 사람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호야는 언럭키를 완벽히 주인으로 인식했다.
‘자동 수집 기능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설마 변신까지 할 수 있을 줄이야.’
호야는 뜻밖에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너 무슨 강아지처럼 행동하더만, 진짜 백호 맞았구나!”
“크헝!”
호야는 칭찬이 기분 좋은지 크게 한 번 짖었다.
그러면서 한 번 더 하늘을 박차고 뛰었다.
그렇다.
호야는 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반 호랑이와 달리 신수 ‘백호’로 분류되는 종이라서 그런가.
백호는 모든 발바닥 쪽에는 아주 작은 날개가 달려있었다.
그걸로 허공을 마치 달리듯 날 수 있었는데, 기꺼이 주인인 언럭키를 태워주었다.
언럭키는 신나서 바로 호야의 등에 탄 채 하늘을 가득 채운 브렉토들을 향해 나아갔다.
이름하여 백호 라이더!
“호야. 저기 또 한 무리 온다. 이번엔 저기로 가자.”
“크헝!”
호야에게 지시를 내리자 금세 펄쩍 뛰며 다시금 하늘을 달려갔다.
악마들은 저 멀리 외부에서 천공의 탑을 향해 날아온다.
각 층별로 나뉘어 수준에 맞는 층에 착륙하는 악마들.
다만 최하급 악마인 브렉토는 공중에 있을 때 완벽히 무방비 상태가 된다.
지상에 착륙하면 레벨 90대 몬스터에 걸맞은 위력을 보이지만, 하늘에서는 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호야의 등 위에서 마음껏 검을 휘둘렀다.
-서걱!
-푸확!
공중전이다보니 치명타를 일으킬만한 공격은 쉽게 하지 못했다.
검왕 때처럼 보정을 받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칼 휘두르는 것 말고는 못했다.
정확성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그거면 충분했다.
-띠링!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브렉토 무리가 잘려 죽은 체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들고 있는 검이 두바르의 전대 총령이 쓰던 유니크 아이템.
‘챔피언 검투사의 영광적인 숏소드’였던 탓이다.
특별한 성능이 없는 대신 유니크 아이템에 어울리는 공격력과 절삭력을 보유한 제품.
거기에 벨라가 선물해준 ‘다크 와이번의 무투 장갑’이 톡톡히 제 역할을 했다.
“이게 아주 물건이네.”
명색이 방어구이면서 공격력까지 60 상승시켜주는 레전더리 아이템.
그렇기에 안 그래도 날카로웠던 검투사의 숏소드가 한층 더 강력해졌다.
거기에 언럭키의 ‘힘’까지 더해지니 하늘 위의 브렉토 쯤은 몇 마리고 갈아버릴 수 있었고.
“크릉!”
호야는 그게 자기 칭찬인줄 알고 기분이 좋았는지 살짝 머리를 흔들었다.
피식 웃은 언럭키가 뒷목을 슬슬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그래. 한 번 더 가보자 호야.”
호야도 밑에서 잡템이나 주워오는 것보다 이게 훨씬 재밌는 모양이었다.
힘차게 허공을 밟고 질주했다.
언럭키는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바짝 낮췄다.
사제의 몸이기에 전투 보정 같은건 없지만 여기까지 성장해오며 겪은 짬이 얼만데.
이 정도 공중전은 할 만했다.
-서거걱!
-쾅!
양 다리에 힘을 꽉 쥐고 검을 휘두르며 브렉토들을 베어냈다.
어차피 공중에서는 날아오는 것 말고 못하는 놈들이라 반격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확실히 성기사들한테 다 맡겨놓는 것보다는 훨씬 낫군.’
심지어 성기사들도 놀고 있지 않았다.
-띠링!
[성기사 게드가 적을 차치하였습니다.]
[공헌도 일부분이 인정되었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처음에는 언럭키의 기행에 입을 쩍 벌리고 공중만 쳐다봤던 그들이었다.
제발 돌아오라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지만 어디 언럭키가 이 기회를 놓치겠는가.
결국 포기하고 언럭키의 지시대로 악마 사냥을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언럭키의 버프를 등에 업고있다보니 땅에서도 경험치가 들어왔다.
‘그래. 사냥은 이렇게 해야지.’
폭풍같이 차오르는 경험치를 보자 언럭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야구배트를 휘두르듯 스쳐지나가는 브렉토 한 마리를 박살냈다.
-쾅!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저 멀리 날아가며 가루로 사라지는 브렉토.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아무래도 더 좋은 무기를 구해야겠어.’
공중 전투에서 일반 검은 그리 좋은 무기가 아니다.
심지어 이건 장검도 아니고 숏소드.
최소한 창 정도는 돼야 길이 면에서 이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요즘 계속 레전더리 무기만 써왔는데, 특수 능력도 없는 유니크 무기를 쓰니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
배가 불렀지만 어쩔 수 있나.
몸이 이제 거기에 적응해버렸는데.
‘…그걸 쓸 때가 됐네.’
언럭키의 머릿속에 얼마 전에 왔던 메일이 떠올랐다.
대룡 미디어에서 광고를 잘 해준 대가로 추가지급 해주겠다던 보상.
그건 단순히 돈을 더 주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 대신, 빅드래곤 길드에서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 목록을 보내주었다.
통 크게도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빌려주겠다고 했었다.
얘네가 왜 이러지 싶었지만, 준다는데 당연히 싫다고 할 이유는 없었다.
‘뭘 골라야 잘 골랐다고 소문이 나려나.’
언럭키의 머릿속이 바쁘게 굴러갔다.
***
월벤에는 하루에도 수천 개가 넘는 글들이 올라온다.
그 대부분은 사실 시간 때우기용의 그리 쓸모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글 중에 하나,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제목 : 너희 이렇게 사냥하는 사람 본 적 있냐?]
-내용 : 나 천공의탑인데 말도 안되는 장면 목격했다. 요즘 뜨는 스트리머 중에 언럭키라고 있는데,
-사진 첨부 : (백호 타고 날아다니는 언럭키)
-사진 첨부 : (언럭키와 같이 찍은 한 컷)
언럭키에게 팬이라며 같이 사진을 찍었던 유저가 월벤에 글을 올린 것이다.
언럭키.
예전이었다면 도대체 그게 누구냐면서 타박을 들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그 위상이 조금 달라졌다.
-엌ㅋㅋㅋㅋㅋ. 아니 최근 영상은 해골들 데리고 사냥하더만, 이제는 또 뭔데. 왜 하늘을 날아다녀?
└미치겠다ㅋㅋㅋㅋㅋ. 진짜 골때리네.
└혹시 월드 사가를 하는 이유가 평범하기 싫어서는 아닐까? 현실에서 못 펼치는 끼를 가상에서라도 다 하기 위해서ㅋㅋㅋㅋ.
└그럴듯하다.
몇 달 동안이나 나름 화제가 되고 팬이 늘어났다.
처음 몇 번이야 레벨도 너무 낮고 인지도도 없었지만, 지금껏 언럭키의 미튜브가 보통 흥했는가.
레벨업 속도도 그렇고 컨텐츠 내용도 그렇고.
지난 몇 달간 새로 시작한 월드 사가 미튜버 중에서는 손에 꼽힌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메이저라고 불리기에는 한참 멀었다.
-그게 대체 누군데. 왜 너네끼리만 아는 얘기 해?
└언럭키를 몰라?
└자꾸 얘기하길래 미튜브에 검색 한 번 해보고 와서 알았다. 구독자도 얼마 안되는구만 뭐 이런 애 얘기를 해.
└그럼 미튜브 채널 생성일도 같이 보고 와서 말해. 첫 영상 업로드 날짜도. 그거 보면 얘가 얼마나 빨리 뜬 건지 알걸?
└그런 거까지 보기 귀찮아. 랭커도 아니고 천공의 탑이면 레벨 100 언저리겠구만 뭘. 아직 초보네.
└응. 언럭키가 조만간 그 랭커들 뚝배기 다 깰 거야~^^
그러다가 다른 미튜버를 좋아하는 팬과 싸움이 붙기도 했다.
-근데 천공의 탑에서 마법사나 궁수도 아닌데 칼 들고 하늘에 있는 몬스터 패는 사람은 또 처음보네.
-사진만 봐도 직업이 네크로맨서는 아닌 것 같은데. 이번에는 뭐지?
-글쎄. 처음 했던 검사 계열 아닐까?
-뭐든 간에 빨리 미튜브에 올려줬으면 좋겠다 ㅋㅋㅋ.
조금씩 조금씩.
언럭키의 인지도는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었다.
***
“음….”
빅드래곤 길드의 길드장 로버트.
대룡 그룹의 재벌 3세이기도 한 정신찬은 고뇌에 잠긴 채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거, 참.”
언럭키와 벨라.
언젠가 빅드래곤 길드로 데려오고 싶은 두 인재들.
그 중에 더 최근 더 관심이 가는건 언럭키였다.
처음 발견한건 벨라였고 언럭키는 우연찮게 엮인 것이었지만, 요즘 보니 오히려 잠재력 면에서는 그가 더 우위에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언럭키는 벨라와도 친했다.
그만 꼬신다면 벨라까지 데려올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광고 효과가 좋다는 것을 빌미로 추가 보상 얘기를 꺼냈다.
자고로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
통 크게 원하는 아이템 하나를 골라보라며 빅드래곤 길드의 보유 아이템 목록을 알려주었다.
이런 건 길드의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외부로 반출하면 안 되는 극비 정보이다.
그럼에도 정신찬은 기꺼이 정보를 오픈했다.
‘빅드래곤 길드의 저력을 자연스럽게 보여줌으로써, 들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거지.’
재벌 3세가 운영하는 길드.
자금도 빵빵하고 보유 아이템도 환상적인 곳.
심지어 그 길드장이 은근한 영입 제안을 계속해서 뿌리고 있다.
사람이라면 호기심이 안 갈 수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걸 노리고 계속 이렇게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고.
그리고 이번에 언럭키에게 답신이 왔다.
근데 원한다는 아이템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우레 망치]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공격력 + 135 상승.
-신성력 + 30 상승.
-오래 전 과거에는 순례자의 길을 걷다가 죽는 사제들이 많았다. 신께서는 그들을 안타까워하여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내렸다.
-특수 스킬 ‘우레’ 사용 가능.
-우레 : (무기 공격력 + 신성력 능력치 + 힘 능력치)/2 의 공격력으로 주변에 범위 공격을 퍼트린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90 이상, 사제 계열 직업, 신성력 100 이상, 힘 100 이상.
“우레 망치라니. 이런 애매한 아이템을 어디다 쓰겠다고….”
얼핏 보면 좋은 아이템처럼 보인다.
등급도 레전더리이고 둔기 무기답게 공격력이 말도 안 되게 높았다.
내장 스킬 ‘우레’ 역시 엄청났고.
그러나 정신찬은 속지 않았다.
이건 계륵이었다.
그도 그럴게…
“사제 계열 직업만 착용 가능하다니. 어느 사제가 힘 100이 넘겠어.”
하다못해 아이템 제한이 성기사 계열까지 쓸 수 있게 되어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성기사 유저가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그들 사이에선 최고 수준의 아이템 취급을 받았겠지.
솔직히 이건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어디다 써먹나 싶었다.
레전더리 아이템의 개수가 길드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기에 가지고 있던 것뿐이었다.
“…뭐, 달라니까 일단 줘봐야겠지.”
정신찬이 피식 웃었다.
내심 기대도 되었다.
지금껏 해온걸 보니 꽤 또라이 기질이 보이는 사람 같은데, 도대체 이걸로 뭘 보여주려는지.
‘당분간 바쁘더라도 언럭키님 미튜브는 라이브로 챙겨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