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벨라가 건넨 건 거무튀튀한 장갑이었다.
[다크 와이번의 무투 장갑]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공격력 + 60 상승.
-방어력 + 55 상승.
-모든 능력치 + 13 상승.
-마법 공격력이 메인인 직업군이 착용할 경우 ‘공격력 + 60 상승’ 옵션이 ‘마법 공격력 + 60 상승’ 으로 변화한다.
-전설적인 재능을 소유한 대장장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작품이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90 이상.
스펙을 확인한 언럭키가 입을 뻐끔거렸다.
말이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이, 이걸 벨라님이 만드신 거예요?”
“…네.”
“와…어떻게 이런 걸 만드실 수가…. 진짜 굉장해요!”
“…….”
벨라는 볼이 살짝 붉어진 채 웃었다.
자신이 이것 때문에 얼마나 노력했는데, 남이 그걸 알아주니 보답 받는 기분이었다.
기쁘기 짝이 없었다.
‘헤파이스토스의 후계자라더니. 스펙이 진짜 장난 아니네?’
언럭키는 벨라에게 잘보이자고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놀랐다.
공격력 + 60 상승, 방어력 + 55 상승.
각각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동레벨의 유니크만도 못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 아이템이 ‘장갑’으로 분류된다는 점이었다.
‘무기랑 겹치지도 않는데 공격력을 올려주고, 방어력도 나쁘지 않게 올려주다니.’
여기에 무기 아이템을 따로 들면 공격력이 추가로 뻥튀기 될 것이다.
무투 계열 유저들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아이템!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법 공격력이 메인인 직업군이 착용할 경우 ‘공격력 + 60 상승’ 옵션이 ‘마법 공격력 + 60 상승’ 으로 변화한다.>
간단한 한 줄의 옵션이었지만 언럭키는 여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건 진짜…날 위한 물건이잖아.’
검왕이나 사신 직업일 때는 공격력이 필요하다.
반대로 네크로 엠페러일 때는 마법 공격력이 필요했고.
언럭키가 많은 아이템을 얻었지만 전에 얻은 것들을 팔지 않고 잘 모아둔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 있었다.
나중에 다른 직업으로 돌아가면 다시 써먹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해골들한테 무기 쥐여 주는 방법으로 써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어쨌거나.
이 ‘다크 와이번의 무투 장갑’은 그러한 자신의 직업에 딱 맞는 물건이었다.
어떤 직업으로 바꾸건 간에 착용할 수 있었으니까!
언럭키의 입가에 싱글벙글 미소가 걸렸다.
안 그래도 미튜브 수익이나 두바르의 총령이 되면서 들어오는 짭짤한 부수익 덕에 현금이 꽤 풍족해졌는데.
이런 아이템까지 생기다니.
‘요즘엔 좀 운이 좋군!’
“그리고….”
“아, 네. 뭐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벨라가 입을 떼자 언럭키가 재빨리 받았다.
이런 아이템을 줬는데, 설사 자신을 업고 텔르흐렌까지 돌아가라고 해도 기꺼이 갈 의향이 있었다.
“이거…돈…주세요….”
“…네?”
언럭키의 표정이 굳었다.
“어…그냥 저 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벨라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재료값은…받아야 해요.”
“…….”
언럭키가 인상을 굳혔다.
“크흠. 흠. 제가 요즘 사정이 어려워서 그러는데…혹시 가격이 얼마인지…크흐흠. 너무 비싸면 할부로도 될까 싶은데요….”
그가 슬슬 벨라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
“돈 거래는…확실하게 하라고…하셨어요.”
“…….”
***
“저는 이만 떠나려고 합니다.”
두바르 영주의 집무실.
언럭키가 찾아와서 한 얘기에 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예상은 했었다만 그 날이 오늘인가.”
언럭키는 언젠가 떠날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이 도시에는 다른 목적이 있어서 왔었고, 그저 자신들이 내민 도움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웨인을 비롯한 그의 수하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있으라고 붙잡고 싶군 후후.”
언럭키를 총령 자리에 앉힌 건 보상이었다.
전대 총령과 싸워 이기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으니, 거기에 맞게 주는 전리품이란 뜻이다.
그렇기에 언럭키에게 총령으로서의 행동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패악질이나 뒷돈 먹는걸 정도껏 해줬으면…하는 바람이 있었지.
그런데 막상 결과를 까보니 달랐다.
두바르 시민들은 언럭키를 칭송한 것이다.
-새로운 총령 각하가 정말 합리적인 분이시라더군.
-뒷골목을 이렇게 안심하고 다니게 될 줄은 나는 상상도 못했다니까?
-그렇게 양심적이고 훌륭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 두바르의 고위층이 되다니. 살다보니 참 별 일이 다 있어.
언럭키 덕에 새로운 영주의 지지도가 말도 안 되게 올라갔다.
거의 전대 영주와 근접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붙잡고 싶다는 웨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가 조금 더 자신을 도와주면 입지를 완전히 다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음.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 할 일이 많아서 안 되겠군요.”
언럭키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물론 전혀 아쉽지 않았다.
더 이상 이 도시에서는 레벨 하나 올리지 못하는데, 빨리 떠나야지.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긴 한데…
“알겠네. 총령 직은 내가 영주 자리에 앉아있는 동안 계속 유지될 걸세. 봉급도 꼬박꼬박 부쳐주지.”
“감사합니다.”
기대했던 말이다.
혹시 떠나면 총령 자리도 자르겠다고 말할 까봐 걱정을 약간 했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 확답으로 안심이 됐다.
“아, 그리고 이 친구가 자네에게 할 말이 있다더군.”
웨인이 옆을 가리켰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스르륵 튀어나온 웨인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총령 각하를 뵙습니다.”
“이아손?”
언럭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총령이 된 것처럼 이아손 역시 새롭게 어쌔신 로드가 되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치열했던 마지막 전투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할 말이 있다니?
“짧은 시간이지만 총령 각하와 함께하면서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어…좋게 봐줘서 고맙군.”
“그래서 당분간은 총경 각하를 따라다니고 싶습니다. 좀 더 큰 세상을 보고 많은 걸 배우고 싶군요.”
“?”
언럭키가 고개를 돌려 웨인을 쳐다봤다.
이미 합의된 사안인지 그는 빙긋 웃고 있었다.
‘이아손이 나를 따라다니겠다라….’
이건 그리 오래 고민할 필요 없는 문제였다.
그는 짐덩이가 아닌, 꽤 도움이 될 여지가 많은 친구였으니까.
“앞으로 잘 부탁하지.”
“감사합니다!”
언럭키가 이아손의 어깨를 두드렸다.
***
두바르를 떠나 텔르흐렌으로 언럭키, 벨라, 컵라면, 이아손이 함께 출발했다.
이아손의 합류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좋았다.
‘자기 오른팔이 날 따라다니는데 날 섭섭하게 할 리는 없겠지.’
총령 자리는 웨인이 영주직을 유지하는 동안 변함없이 탄탄하리라.
게다가 웨인은 파티원으로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방에 웨어 타이거 4마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처리할까요?”
“그래.”
“알겠습니다.”
사막을 거쳐 다시 돌아가는 길.
웨어 타이거는 레벨 70대의 몬스터로 레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놈 잡자고 소환수 꺼내는데 드는 마력이 아깝다.
그런 상황에서 나선게 이아손이었다.
두바르의 어쌔신 로드답게, 그의 레벨은 90이었다.
언럭키와 같은 것이다.
길찾기, 함정 파악, 적 발견 및 처치, 은신, 암습 등.
이아손을 활용할 방안은 무궁무진했다.
결국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텔르흐렌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성문을 통과할 때 로브를 팍 뒤집어쓰고 입장하는 언럭키.
이아손도 그 옆에서 함께 동참했다.
그 역시 감출게 많은 사람이라 떳떳할 수가 없었다.
“…그래가지고 천공의 탑은 가실 수 있겠어요?”
컵라면이 찝찝하다는 듯 말했다.
그는 언럭키의 다음 도시가 천공의 탑이라는 말을 오면서 전해 들었다.
그 후에 좀 조사를 해 봤는데, 걱정이 많이 되었다.
“일반 도시에서도 이러고 있는데 거기서는 어떡하시려구요. 성기사와 사제들이 잔뜩 있다는데.”
“…어떻게든 되겠죠.”
언럭키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라 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참았다.
천공의 탑은 어둠 속성 유저들이 무조건 가지 말아야 할 장소였다.
‘특히나 세인트크리스 교단이 그런 데에 있어서 병적이라고 하던데.’
사제 직업군이 모시는 신은 여럿이었다.
세인트크리스 교단은 그 중에서도 특히나 전통과 교리를 중시하는 곳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언럭키가 네크로 엠페러라는 것을 들킨다면 결콘 좋은 꼴은 못 볼 것이다.
“그냥 받으셨다는 퀘스트 포기하고 다른 도시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건 안 됩니다.”
컵라면의 조언에 언럭키는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서 그는 모르겠지만, 이건 보통 퀘스트가 아니다.
벌써 몇 개의 도시를 지나쳐오면서까지 연결되는 연계 퀘스트.
받은 레전더리와 유니크 보상만 몇 개던가.
이 끝에는 무엇을 줄 지 짐작도 안 갔다.
당연히 조금 힘들더라도 우직하게 밀고 나아가야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언럭키님의 건투를 기원하겠습니다. 아쉽네요. 계속 따라다니면서 영상 찍으면 좋은 거 여러 개 나올 것 같은데.”
컵라면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의 레벨은 아직 50대였다.
언럭키를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몬스터와의 레벨 차이와 전투 참여도 저조로 경험치를 거의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것도 두바르에서는 퀘스트를 함께하고 다녀서 조금 얻어갔기에 많은 레벨업을 한 것이다.
“최대한 빨리 레벨업해서 쫓아가겠습니다.”
“예.”
컵라면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그 다음엔 벨라였다.
“…….”
그녀도 레벨 70이 넘어 더 이상 텔르흐렌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막혔던 대장장이 퀘스트도 클리어했으니, 더 좋은 재료와 더 뛰어난 장인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다음 도시로 나아가야했다.
다만 그녀 역시 언럭키와는 레벨 차이가 나서 천공의 탑으로 가지는 못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봬요, 벨라님.”
언럭키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짐작도 하고 있었고 벌써 몇 번의 도움을 받으며 알았지만, 자신의 직업에 그녀만큼 어울리는 대장장이가 없었다.
두고두고 친하게 지내며 인맥을 관리해줘야 할 사람이었다.
“…네.”
벨라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그녀는 애써 아쉬움을 누르며 다음을 기약했다.
거의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아쉬움이라니.
‘내가…이 분에게 의지를 많이 하고 있었구나.’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했어야 할 정신적 성장을 천천히 겪고 있는 벨라였다.
***
-우웅!
워프 게이트가 작동하더니 그 안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언럭키와 이아손.
두 사람이 천공의 탑에 도착한 것이다.
“워프 게이트는 오랜만에 타는군요.”
두바르에는 워프 게이트가 없어서 텔르흐렌까지 와서 타야했다.
당연히 두바르 출신인 이아손은 탄 적이 없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워프 게이트를 탄 적이 있었나?”
“예. 저라고 처음부터 두바르에 있었던 건 아니니까요. 예전에는 다른 도시에 있었습니다.”
이아손이 뭘 그런걸 물어보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엄청 크군요.”
“동감이다.”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 천공의 탑을 바라봤다.
거대한 원기둥 형태의 탑은 직경이 굉장히 큰데, 높이도 엄청 높았다.
마치 잠실에 있는 초고층타워를 가까이서 보는 것 같달까.
“들어가자.”
언럭키가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거기. 잠깐만요.”
탑 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들은 하얀색이 많이 들어간, 멋들어진 갑옷으로 무장한 성기사들이었는데, 순식간에 언럭키와 이아손을 포위했다.
“어디서 마(魔)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군요.”
그 한가운데에서 법복을 입은 사제가 걸어 나왔다.
그는 딱딱한 표정을 한 채, 매의 눈으로 두 사람을 굳힌 채 다가왔다.
“형제님들. 잠시 조사를 좀 받으셔야겠습니다.”
“음….”
언럭키와 이아손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어쩐지.’
언럭키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최근 들어 일이 잘 풀린다 했다.’
그럼 그렇지.
인생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게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