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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113화 (113/218)

#113화

언럭키는 몇백 시간 넘게 두바르의 사냥터를 쏘다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띠링!

[레벨업!]

환한 빛이 언럭키를 한번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월드 사가를 하는 유저 중에서 레벨업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기쁘게 웃지 못했다.

“크흐흐흑.”

오히려 오열했다.

“내 개꿀 사냥터가…내 개꿀 도시가…여기서 끝이라니….”

언럭키는 총령이 된 후에 뒷골목 정리에 힘썼고,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다음에는 사냥에 집중했다.

널리고 널린 게 사냥터라 그냥 아무 데나 레벨 맞춰서 가면 됐다.

사실 총령으로서 세금 추징을 하러 다니면서도 사냥터를 볼 때마다 손이 근질거려 죽는 줄 알았다.

뒷골목 깡패같은 잔챙이들을 처리해봤자 경험치는 오르지도 않는데, 주변에 블루 오션들이 널려 있지 않나!

그 결과 그리 오래지 않아 레벨 90을 달성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두바르에서 올릴 수 있는 한계 레벨은 90.

그보다 더 강한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다음 도시를 찾아 떠나야 하는데…

‘난 이제 사냥터 혼자 독점하지 못하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는데….’

이 평화롭고 행복한 사냥을 즐기다가 또 다시 자리싸움이 치열한 곳으로 가라고?

진짜 너무 싫다.

그리고 백번 양보에서 새로운 도시를 찾아간다고 해도 문제였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아무 데나 가서 사냥하는 건 좀 곤란하지.’

두바르에서야 괜찮다지만, 다른데에서는 함부로 해골 소환했다가는 경비병한테 잡혀간다.

어둠 속성 유저들이 모이는 또 다른 도시를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추가 조사를 해보니, 평소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아 발견하지 못했는데 월벤에 보니 아주 작게 그들만이 모이는 탭이 따로 있긴 했었다.

‘후.’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한숨을 푹 내쉰 언럭키가 움직일 준비를 했다.

‘슬슬 출발해야겠군.’

이번에는 좀 멀리 가야한다.

리바 델 레이 본단에 대한 정보 알아오기.

원래는 헤탄에게 받은 그 퀘스트를 하기 위해 두바르까지 온 것 아니었던가.

급한 일을 처리했으니 이제는 연계 퀘스트를 완료하러 갈 때였다.

같이 가겠냐고 컵라면과 벨라에게 물어봤지만…

-텔르흐렌에 다녀오신다고요? 괜찮으시다면 전 여기서 도시 영상 좀 더 찍어도 괜찮을까요? 두바르 영상 업로드할 것 좀 미리 많이 찍어두게요.

-저도…바빠요….

둘 다 거절했다.

때문에 갈 때와 달리 올 때는 쓸쓸하게 혼자서 돌아왔다.

오랜만에 텔르흐렌의 성문을 보니 참 심장이 떨렸다.

지하 도시가 아니라 땅 위에 세워진 도시여서 감격스러운 것은…아니었다.

‘경비병…조심해야지….’

혹시나 네크로 엠페러인 본인을 알아보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로브를 한층 더 깊게 눌러썼다.

스파이 잠입 작전을 방불케 하는 사투 끝에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서 헤탄의 오두막으로 갔다.

‘후. 완벽했군.’

사실 경비병들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괜히 눈치를 보는 언럭키를 수상하게 생각했지만, 굳이 붙잡지 않은 것뿐이었지만.

“자네 왔나?”

“오랜만에 뵙네요 헤탄님.”

오두막에 들어가자 헤탄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래. 무법자의 도시는 찾았나? 정보는 얻어왔고?”

“예. 도시는 찾았습니다. 다만 본단에 대한 정보는 거기서도 구할 수 없더군요.”

“그런가….”

“그 대신 또 다른 지부의 정보는 구했습니다. ‘천공의 탑’ 근처에 훨씬 더 큰 지부가 있다더군요. 거기라면 본단의 정보도 알 수 있을 거라 합니다.”

“천공의 탑 근처라…. 그렇군. 수고했네. 큰 도움이 되었어.”

-띠링!

[퀘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기분 좋은 알림음이 울렸지만 아쉽게도 레벨업까지 하지는 못했다.

‘에이.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으면 레벨업도 해줘야지.’

물론 이 퀘스트는 레벨 70 조금 넘었을 때 받은 거라서, 이제 90이 된 지금은 경험치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약속했던 보상일세. 정말 수고 많았네.”

그러나 헤탄이 이어서 건넨 물건에, 언럭키는 불평하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역시 갓 헤탄! 이거지!’

약속된 유니크 아이템!

이런 걸 주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가 있겠는가.

한층 더 마음속에서 충성심이 솟아올랐다.

“감사합니다!”

언럭키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호르헤른 기사의 각반]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효과 : 방어력 +70

-호르헤른 가문의 기사들이 착용하는 강철 각반이다.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제련술로 강철이지만 무게의 경량화에 성공했다. 그렇기에 기사 외에 마법사 같은 몸을 쓰지 않는 직군도 착용 가능하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75 이상.

“오.”

언럭키가 짤막하게 감탄사를 토했다.

방어력 70짜리 유니크 각반.

이건 아직까지 없는 부위였는데, 강철 각반임에도 마법사 같은 직군까지 착용 가능한 장비였다.

보통 마법사는 방어구를 마음대로 걸치지 못해 방어력이 약한 경우가 많은데, 이건 그 한계가 없었다.

“호르헤른 가문의 비전으로 만들어진 각반일세. 어떤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다행이군.”

헤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호르헤른 가문이야. 절대 사람을 실망시키는 법이 없군.’

믿고 함께하는 호르헤른 가문이었다.

“음. 그런데 자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전보다 훨씬 더 성장했군. 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달라.”

“그렇습니까?”

“그래. 이 정도면 내가 자네를 믿고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어떤가?”

헤탄이 슬슬 연계 퀘스트에 대해 시동을 걸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실력이 부족하니 어쩌니 하면서 레벨업을 더 해오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미 90레벨을 달성해서 왔기 때문일까, 헤탄은 그런 것 없이 바로 연계 퀘스트를 내어주었다.

“저야 얼마든지 환영이지요.”

-띠링!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Y/N]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이자, 헤탄이 예상했던 주제를 꺼냈다.

“리바 델 레이의 조사를 이미 몇 번이나 성공한 게 자네이지. 그러니 이번에도 믿고 맡겨보고 싶군. 천공의 탑에 가서 리바 델 레이 분타의 위치, 놈들의 전력을 알아봐 주게.”

이어서 자세한 퀘스트 설명이 적힌 창이 나타났다.

[퀘스트 : 리바 델 레이 천공의 탑 지부 확인.]

-퀘스트 등급 : 유니크.

-퀘스트 설명 : 호르헤른 가문은 이미 리바 델 레이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가문 구성원들은 사악한 악신의 교단을 어떻게든 멸망시키고 싶어 한다. 천공의 탑에 가서 그들의 지부를 찾아라.

-퀘스트 보상 : 적정량의 경험치, 헤탄의 보답.

-퀘스트 성공 시, 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알겠습니다.”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마음 같아서는 하나 더 달라고 하고 싶지.

-띠링!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시원시원해서 좋군.”

헤탄이 빙긋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얘기했다.

“아, 참. 자네도 물론 알고 있겠지만 노파심에서 얘기하자면, 천공의 탑은 ‘세인트크리스 교단’이 운영하는 곳일세.”

“…그렇습니까?”

“그래. 일반 성주가 존재하는 게 아니고 교단의 추기경이 대리 통치하고 있지.”

그것까지는 몰랐다.

천공의 탑이라면 레벨 90부터 입장할 수 있는 도시들 중 하나이다.

아무리 직업으로써 이 분야를 공부한다고 해도, 일단 도시가 정해진 다음에 거길 공부했지, 처음부터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월드 사가에 도시가 몇 개인데 그런 짓을 하겠는가.

천공의 탑에 대한 정보는 암시장에서 먼저 듣긴 했지만, 퀘스트를 받은 후에 알아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총령이 되고 레벨업에 열중하는 등, 워낙 바빴기 때문이다.

‘아…진짜….’

언럭키가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았다.

세인트크리스 교단이라면 일반적인 사제 직군의 유저들이 선택하는 곳이다.

즉, 신성함이 충만하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언럭키를 보면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 스킬 하나 쓰지 않고도 수상하다며 잡아갈지도 모른다.

그다음엔 회개하라며 고문을 할지도 모르지.

온갖 불안한 상상이 판을 치고 올라온다.

언럭키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퀘스트는 상당히 힘들겠는데.’

역시나 나는 운이 없다.

***

-땅! 땅! 땅!

뜨거운 불꽃 앞에서 땀방울이 비산한다.

그러나 벨라는 괴롭지도 않은지 그 앞에서 열심히 망치를 두들기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땀에 젖는 게 불편한지 뒤로 틀어 묶은 채, 오직 작품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언럭키가 전에 건넸었던 ‘다크 와이번 대장의 가죽’.

거기에 자신이 두바르의 암시장을 뻔질나게 다니며 구매한 여러 희귀한 재료들을 쏟아부었다.

거기에 접속하는 시간 대부분을 이걸 만드는 데 사용했다.

다크 와이번 대장의 가죽은 강철보다도 단단하면서 조직도 부드러운 말도 안 되는 물질이었다.

이걸 가공하려면 대장장이로서의 재능, 실력, 노력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땅! 땅!

그리고 이제 작업은 막바지에 도달했다.

형태는 거의 완성되었고 이제 디테일을 살릴 시간이었다.

전부 다 몸을 쓰는 작업이라 피곤했지만 벨라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망칠 수는 없었다.

-땅! 땅!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선다.

반쯤은 무아지경인 상태에서 얼마나 더 망치질을 했을까.

“…됐다.”

-탱그렁.

벨라가 들고 있던 망치를 툭 던졌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노력했었던 지난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힘들었지만 뿌듯한 나날들.

결국.

완성했다.

***

“하아….”

언럭키는 한숨을 쉬며 도시 두바르로 돌아왔다.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오는 내내 고민했는데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천공의 탑. 아무리 봐도 이대로 가면 지뢰밭인 것 같은데….’

거기에 가면 어떻게 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번 돌려봤다.

가정 1.

입장하려고 할 때 도시를 지키는 성기사들에게 걸려 바로 감옥으로 압송된다.

가정 2.

입장은 어찌어찌했지만 사냥 좀 하려고 해골을 소환하는 순간 감옥으로 압송된다.

이 두 개의 가정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니면 슬슬 한 달이 되어가니 네크로 엠페러 직업을 잠시 내려두고 다른 걸 선택해도 되긴 하지만…

“그건 좀 아깝단 말이지.”

물론 다른 직업도 충분한 효율을 보여줄 것이다.

능력치도 거의 균등하게 고루고루 잘 올렸고, ‘올마스터’란 그런 직업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 번 더 네크로 엠페러를 가져갈까 싶긴 했는데…

“…오셨어요.”

도시에 가자 가장 먼저 마중을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벨라였다.

의외였다.

갈 때만 하더라도 자기 할 일 많다며 코빼기도 안 보였는데.

“벨라님? 바쁘신 일은 이제 좀 괜찮아졌나요?”

“…네. 그래서…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언제 온다고 얘기도 안 했는데요?”

고개를 끄덕인 벨라.

살짝 감동이다.

언제 올 줄도 모르는 사람을 무작정 기다려줬다는 것 아닌가.

처음에 그 무뚝뚝했던 모습과 대비되어 더 감격스러웠다.

“하하. 컵라면님도 아니고 벨라님이 마중을 다 나와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이거…드리려고요….”

“네? 아. 이거 주려고 기다린 거라고요?”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벨라.

언럭키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가 여기까지 나와 있었던 건가.

“한번…보세요.”

벨라는 거무튀튀한 가죽 장갑을 하나 건넸다.

그러면서 뿌듯한 표정을 짓는 건 덤이었다.

정말 대단한 물건을 만들었다며 칭찬도 받고 싶었는데, 그런 눈빛을 열심히 보냈다.

그러나 언럭키는 그 눈빛을 알아채지 못했다.

‘대, 대박….’

-파앗!

벨라가 건넨 아이템에서는 무려 보라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빨주노초파남보 중에서 마지막.

언럭키의 시선은 그 황홀한 보랏빛에서 떨어질 생각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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