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5억.
큰돈이었지만 결국 세 사람은 회의 끝에 두바르의 정보를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 두바르의 2인자가 됐다며?”
“네.”
“그러면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많을 거 아냐. 주기적으로 돈도 받을 수 있을 테고.”
총령도 어찌 됐건 도시 공무원이다.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고 보너스로 추징한 세금에서 조금 떼어갈 수도 있다.
남들의 눈치만 잘 살피면 조금 많이 떼어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뒷골목을 쏘다녀서 깡패들을 때려잡았는데, 그게 생각지도 못하게 사람들이 좋아해 줬지.’
월급도 도시를 떠난 후에도 계속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떠났다고 해서 웨인이 자신을 자를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기는 좀 그렇지.”
“그건 그렇죠.”
미튜브를 제외하고 주기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창구가 생긴 셈이다.
당장 세 사람의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모를까.
아니, 미래 가치를 보자면 오히려 영원히 총령의 자리에서 머무르며 도시를 지키는 게 더 가치가 있었다.
5억이라는 돈을 받아놔 봐야 괜히 성 팀장에게 걸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할 뿐이다.
“그리고 정보를 팔라고 연락이 왔지만, 아마 겨우 도시 위치만 듣는 거로 끝나지 않을 거야.”
박세훈의 말이었다.
대형 길드들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그들 중에는 쟁쟁한 대기업을 후원사로 두고 이 가상 세계에서 경제 전쟁을 치르는 자들도 있었다.
인터넷의 시대-스마트폰의 시대-가상 현실의 시대.
월드 사가가 열어버린 가상 현실의 시대에서, 누가 패권을 잡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월드 사가를 지배하는 곳이 세계의 흐름을 지배할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5억을 지불하고 정보를 샀으면 그 이상을 뽑아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고레벨 유저를 불러 도시를 점령하고, 자신들이 먹어버리겠지.
일반적인 도시면 기사들의 존재와 주변 다른 도시들의 눈치 때문에 그런 게 불가능했다.
오러를 쓰는 기사의 존재는 고레벨 유저에게도 부담인 데다가, 영주를 공격하면 주변 다른 도시들이 연계해서 적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바르 같은 무법자의 도시라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고, 쉽게 점령해버릴 수 있겠지.
정보를 팔면 더 이상 총령으로서 이득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은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물론.
“한 15억쯤 준다고 했으면 그냥 파는 건데. 아깝다.”
“그건 그렇죠.”
만약 이 정보 하나로 셋 다 빚을 다 갚고 탈출할 수 있었다면 미련 없이 팔았을 것이다.
아무리 총령의 자리가 가치 있어도 15억이나 할까?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백현 씨. 진지하게 한 번 들어 봐봐.”
박세훈이 눈을 반짝였다.
“내가 이번에 발견한 코인이 정말 대박이라니까? 일단 천만 원으로 시작해서 내가 몇 달 안에 15억을…컥!”
“아까 맞은 게 덜 아프셨어요?”
또다시 이용승에게 제압당해 입을 다무는 박세훈을 보며 백현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
김동엽은 오랜만에 월벤을 뒤적거리다가 익숙한 스트리머의 이름이 보이자 반가워했다.
“오. 언럭키님 이번 영상은 꽤 화제가 됐나 보네?”
언럭키.
꽤 초창기부터 알아봤던 스트리머로서, 김동엽은 자신이 그의 초기 팬이라는 사실을 꽤나 자랑스러워했다.
다만 최근에는 길드 일이 바빠서 월벤이나 미튜브 볼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이제서야 좀 여유가 생겨서 취미 생활 좀 해 볼까 하다가 보게 된 소식이었다.
“오, 뭐야. 새로운 도시를 공개했어? 잘나가네?”
주제가 뭔가 좀 살펴보던 그는 진심으로 놀랐다.
사냥터나 던전도 아니고 도시라니.
이건 월드 사가 유저라면 무조건 어그로가 끌릴 수밖에 없다.
“1, 2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2편에서 도시가 공개된다라…. ”
-근데 1편 거르지 마셈. 1편은 어떤 이쁜 탱커 유저랑 꽁냥거리는 내용인데 아주 배알 꼴리면서도 재미있음.
-여자가 존예임.
월벤에 올라온 추천글을 보며 김동엽이 슬쩍 웃었다.
“존예는 못 참지.”
물론 자신은 언럭키의 오래된 팬이니 당연히 1편부터 차례대로 시청하려고 했다.
그저 1편을 보면서 조금 더 집중할 생각뿐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가 영상을 재생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꽤 익숙한 로고였다.
“이야. 언럭키님 성공했네. 대룡 미디어 광고도 받고.”
신기하기도 했다.
대기업이라서 꽉 막혔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런 유망주를 알아보고 광고를 줬지?
특히 대룡 미디어는 이미 성공한 스트리머들에게만 광고를 주기로 유명한데.
그만큼 언럭키가 특별한 게 많기 때문이었으리라.
김동엽이 기대되는 표정으로 영상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언럭키. 그다음에는 그와 함께하는 여성 유저가 등장했다.
그리고 얼굴까지 공개되었을 때, 김동엽은 입을 쩍 벌렸다.
“화, 화영이?”
머리색이 다르긴 했지만 영상 속에서 언럭키와 함께하고 있는 여자는, 자신의 여동생이었다.
***
“와…이 사람은 무슨 양파도 아니고 까도 까도 뭐가 자꾸 나오네.”
대룡 미디어의 컨텐츠사업팀 담당자 이혜미는 주기적으로 계약한 스트리머들을 모니터링했다.
큰돈을 주고 계약을 맺는 건데 그들이 잘 하고 있는지, 뭔가 문제는 없는지 당연히 살펴봐야 하지 않나.
그중에서도 특히 집중하는 건 언럭키였다.
유망주라고 분류해야하는, 아직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스트리머.
대룡 미디어는 항상 최고의 스트리머들과만 계약했기에 유망주와 계약을 맺은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이 자에게 집중하는 것도 있었다.
물론.
‘팀장님이 묘하게 계속해서 신경 써서 그런 게 더 크지만.’
회장님 손자.
쉽게 말하면 재벌집 막내 손자인 정신찬 팀장이 은근슬쩍 그를 언급하는 날이 많았다.
-요즘 그 스트리머는 잘 하고 있나요?
문제는 이 웃기지도 않은 질문이 거의 매일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나가는 듯 묻는다고는 하지만 부하로서는 당연히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서 언럭키의 오늘 업로드 된 영상은 어떤지, 꼬박꼬박 확인했다.
다행히 광고는 잘 걸어주고 있고 반응도 좋긴 하지만…
“새로운 도시라니. 이건 확실히 논란 좀 되겠네.”
좋은 쪽으로 논란이 되겠다는 뜻이다.
이혜미는 최근 영상들에서 눈여겨볼 점들을 뽑아 정 팀장에게 가져갔다.
“팀장님. 스트리머 언럭키에 대한 보고입니다.”
“음? 아, 고마워요.”
서류를 받아든 정 팀장이 내용물을 보며 이혜미에게 물었다.
“간단하게 브리핑해 줄 수 있어요?”
“네. 일단 직업이 네크로맨서로 바뀌었습니다.”
“…직업이? 내가 봤을 땐 암살자였는데?”
“네. 유저들도 신기하다는 반응이더군요. 무슨 등급인지는 모르겠지만 특이하게 소환수의 뼈 색깔이 검었고, 전투 인공지능이 수준급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라 보고서에 넣지는 않았지만 유니크급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호오….”
정 팀장이 펜을 돌리며 눈을 반짝였다.
“도대체 직업이 몇 개까지 변하는 거야 이 친구?”
그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말은, 이미 언럭키의 팬이나 월벤에서도 많이 나왔던 물음이었다.
도대체 직업이 뭐기에 저런 플레이를 보여 줄 수 있는가!
“그리고 이번에는 솔로 플레이가 아니고 여성 유저 한 명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래요?”
“네. 다음 페이지에 스크린샷 해서 첨부한 게 있습니다.”
팔락.
서류 한 장을 넘긴 정 팀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벨라님이랑 다니고 있었네?”
둘이 무슨 관계일까?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둘 중 한 명만 자신의 길드로 받아들이는 순간, 한 명이 따라올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 말이다.
‘이런 걸 1+1이라고 하는 거지.’
그 외에도 이혜미의 보고는 이어졌다.
언럭키의 능력, 벨라의 탱커로서의 면목, 새로운 도시 두바르까지.
월드 사가에서 빅드래곤 길드를 이끌기도 하는 정 팀장이었기에, 그 또한 두바르 소식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전체 보고를 들은 뒤, 정신찬은 고민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광고 효과가 좋아서 추가로 무언가 주기로 했었죠?”
“네. 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걸 좀 더 업그레이드해야겠군요. 그러면서 도시 두바르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냐고 떠봅시다.”
그러면서 정신찬이 손을 까딱였다.
“빅드래곤 길드가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이랑 스킬 목록 뽑아와요. 단순하게 돈 준다는 제안 같은 건 다른 데서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우리는 그런 것 말고 좀 희소성 있는 걸로 갑시다.”
그가 슬쩍 웃었다.
***
전투 돼지의 땅.
이족보행하는 근육질의 ‘전투 돼지’가 등장하는 곳으로, 두바르에서 가장 높은 레벨의 몬스트였다.
[전투 돼지]
-레벨 : 90.
머리 위에 떠 있는 정보 레벨은 90.
‘전’ 두바르 총령과 거의 비슷한 레벨이었다.
물론 얘네들은 일반몹이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긴 하다.
“생긴 거 한 번 살벌하네.”
전투 돼지를 보며 언럭키가 피식 웃었다.
놈은 두 발로 서 있었는데 키가 2.5m에 마치 약물 과다 복용한 보디빌더같은 근육이 가득했다.
게다가 얼굴은 또 얼마나 험악하던가.
치켜 올라간 코에 흉터 가득한 얼굴은 똑바로 보기도 힘들었다.
“보통은 오크 보고 돼지 같다고 하는데, 너희보다 보니까 오크에게 사과해야겠다.”
어쩜 이렇게 못생기게 생겼을까.
참 신기하다.
“꿰에에엑!”
그런 언럭키의 비웃음을 눈치챘는지 놈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한주먹 거리도 안 될 것 같은 인간이 앞에서 알짱거리자 화가 난 것이다.
놈들이 거대한 주먹을 든 채 쿵쾅거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때를 맞춰 언럭키도 손을 까딱였다.
“해골 기사 소환.”
그가 보유한 소환수 중 가장 강력한 해골 기사 두 기.
땅에서 솟아오른 놈들의 외관은 전과 변한 게 있었다.
한 놈은 명예의 시작 롱소드와 흉폭한 아울베어의 방패를 착용한 모습으로 같았지만, 또 다른 한 놈.
녀석은 번쩍거리는 새 무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챔피언 검투사의 영광적인 숏소드, 챔피언 검투사의 영광적인 방패.
전 총령을 잡고 얻은, 이름하여 챔피언 무구 세트.
둘 다 유니크 아이템으로써 특별한 부가 효과는 없지만, 공격력과 방어력이 특출난 물건들이었다.
즉, 해골 기사에게는 아주 적절한 아이템인 셈.
-다그닥 다그닥
새롭게 무장한 해골 기사가 말을 타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새로운 장비를 착용해서 그런가 전보다 더 신나 보였다.
‘해골도 감정이 있나?’
그건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해골 기사는 금세 전투 돼지와 부딪쳤다.
-쾅!
딱 봐도 힘 잘 쓸 거 같은 장사 체형의 전투 돼지였지만, 해골 기사를 이길 수는 없었다.
“뀌이익….”
놈이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근육질에 덩치가 크다는 뜻은, 그만큼 빈틈도 많다는 뜻이다.
해골 기사가 유려한 검술 솜씨로 빈틈을 푹푹 찔렀다.
-서걱!
-콰직!
HP가 주르륵 닳아 내리더니, 금세 놈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이야. 칼 한번 잘 듣네.”
과연.
총령이 쓰던 검이라 그런가 아주 명품이었다.
심지어 언럭키는 그때 상대도 해봤지 않았나.
저걸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해골들의 뼈가 뚝뚝 잘려나갔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엿 같은 경험이었다.
“꿰에에엑!”
“꾸이익!”
동료가 당하자 다른 전투 돼지들이 분노해 포효했다.
무려 4마리나 되는 놈이 해골 기사들을 노리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언럭키도 그에 맞춰 왕홀을 크게 한 번 휘둘렀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마력이 퍼져나가더니 바닥에서 해골들이 몸을 일으켰다.
해골 기사를 포함하면 무려 20기의 해골들!
“쪼그라드는 근육, 체력 약화, 둔화.”
거기에 언럭키가 가볍게 캐스팅하자 전투 돼지들이 움찔하더니 눈에 띄게 약화되었다.
그런 놈들을 향해 해골들이 귀화를 풍겨내며 달려들었다.
-서걱!
-콰직!
“그래. 가서 조져버려! 여기 있는 놈들 싹 다!”
뒤에서 어퍼컷을 쳐올리며 응원하는 언럭키.
-띠링!
[레벨업!]
그러다가 레벨업 메시지가 나오는 순간,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대로 쭉쭉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