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이번 달 정산 예정금 : US$ 7415.11]
미튜브 정산 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었다.
7400달러.
빤히 바라보던 박세훈이 중얼거렸다.
“오늘 환율이 얼마야. 대충 1250원으로 잡으면…926만원?”
거의 1000만 원이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심지어 미튜브는 계속해서 성장 중이었고, 가장 최근 영상의 반응만 보면 어디까지 떡상할 지 짐작도 안 갔다.
당장 다음 달 수익이 2배로 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다.
백현의 월드 사가 계정에는 유니크 이상의 아이템이 다수 있었다.
무기나 방어구를 해골 기사와 병사들에게 입히느라 안팔고 있긴 하지만, 정 돈이 급하면 그것들을 처분해도 된다.
물약으로 거래 가능하게 해서 판다고 해도 최소 수천만 원의 이득이 나겠지.
“백현 씨…. 미튜브 시작한지 채 몇 달도 안 지났지?”
“예.”
“이게 뭐 재능충인지 뭔지 하는 건가? 나도 다 때려치우고 미튜브나 시작할까?”
박세훈은 여기 갇히면서 끊었던 담배가 문득 피고 싶어졌다.
백현을 질시하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가장 힘든 시기에 자신을 믿어 준 인물에게 그런 감정을 품을 정도로 박세훈이 수준 낮은 인간은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조금 허할 뿐이었다.
‘나는 이 구렁텅이 속에 빠진 후에 뭐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젊어서 그런가? 아득바득 위로 올라가는 게 참 대단하구만.’
겉으로는 매일 유쾌하게 보내는 박세훈이었다.
그건 그의 성격이기도 했지만, 좌절스러운 나날들에서 멘탈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보다 더 노력할 생각은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고 버텨낼 뿐.
반대로 백현은 어떻던가.
혼자였다면 여기를 탈출하기까지 그리 오래는 안 걸릴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까지 함께 데려가겠다고 하고 있고.’
나이를 떠나서 존경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었다.
박세훈이 상념에 잠긴 채 백현을 빤히 바라봤다.
“음….”
백현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가 불편해하는걸 눈치채지 못한 박세훈은 계속해서 그 쪽을 쳐다보고, 결국 백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알겠어요. 보너스 드릴 테니까 그만 쳐다보세요.”
“어?”
“이번 달 수익 잘 나온 건 이용승씨 덕도 있고, 박세훈씨가 장부 처리 안 해 주면 어차피 성 팀장이 무슨 지랄을 할지도 모르는데. 보너스 주려고 했어요.”
그런 의도로 보고 있던 거 아니었는데?
그러나 박세훈은 굳이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준다면 나야 좋지. 흐흐. 고마워.”
“네. 세훈 씨 제가 대신 갚아드리기로 한 빚이 7억이죠? 거기서 보너스 100만 원 깔 테니까 6억 9천9백만 원 저에게 갚으면 되겠네요. 용승씨도 똑같이 해서 2억 9천9백만 원이고요.”
“…….”
“뭘 그렇게 봐요. 이자도 안 받고 빚 대신 갚아주는 건데, 불만 있어요?”
“…아니. 참 독하다 싶어서.”
저렇게 독하니까 성공할 수 있는 건가?
박세훈이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
월드 사가 내에서 언럭키에게 큰 사건이 여럿 지나갔다.
일단 도시 두바르의 총령을 죽였다.
반쯤 내전이 펼쳐지던 도시는 평화를 되찾았고, 승리자인 어쌔신 로드 웨인은 영주 자리에 올랐다.
다만 그러면서 전보다 훨씬 바빠졌다.
전쟁을 벌이느라 신경 쓰지 못했던 내실을 다져야했기 때문이다.
도시민들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고 다른 권력자들을 포섭하거나 처리하는 등, 몸이 몇 개라도 부족했다.
-언럭키 공. 부디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일단 뒷정리를 끝낸 다음 다시 공을 불러 약속했던 보상을 드리겠소.
웨인은 절대 떼어먹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언럭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당장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니까.
그 후,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아이템이었다.
“두바르 총령. 역시 보스 몬스터답네.”
언럭키의 눈앞에는 파란색으로 반짝이는 아이템 2개가 있었다.
하나는 검, 또 하나는 방패였다.
놈이 죽고 드랍했던 물건인데, 아무리 보스몹이라도 유니크 아이템을 2개나 드랍하는 건 이례적이었다.
[챔피언 검투사의 영광적인 숏소드]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효과 : 공격력 + 115 상승.
-착용자의 힘 능력치 + 13, 체력 능력치 + 14 상승.
-순수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검투사에게 주어지는 검이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85 이상.
[챔피언 검투사의 영광적인 방패]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효과 : 방어력 + 110 상승.
-착용자의 체력 능력치 + 20 상승.
-순수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검투사에게 주어지는 방패이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85 이상.
이름하여 챔피언 검투사 세트.
총령은 젊었을 때 엘리트 출신임에도 스스로 검투사가 되어 엄청난 실력을 보여 줬다더니. 그때 얻은 물건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까지 썼던 무구들도 이것들이었다.
해골 군대를 이끌고 직접 상대했던 언럭키이기에 똑똑히 기억했다.
특별한 능력은 없었지만, 검과 방패라는 본연의 능력에 집중한 물건들이다.
날카롭고, 튼튼했다.
“이건 해골 기사 주면 되겠고.”
네크로 엠페러인 지금으로서는 둘 다 쓸 수 없는 물건들이다.
팔아도 되긴 하겠지만 미튜브 수익이 괜찮게 나오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차라리 전력 강화를 해서 성장 속도를 높이는 게 낫다.
다만 안타까운 건 바로 착용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총령을 잡으며 레벨이 하나 더 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의 레벨은 82였다.
저 두 아이템을 쓰기까지는 3레벨이 더 필요했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곧장 움직였다.
“하루에 대충 1레벨 올린다고 보면, 3일이면 충분하겠군.”
보통 도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여기는 레벨대에 맞는 텅텅 빈 사냥터가 여럿이었다.
아무데나 골라잡으면 그만인 셈이다.
‘후후. 그러다가 우연히 던전이라도 하나 찾으면 최초 발견 보너스도 받을 수 있을 테고. 으흐흐흐.’
생각만 해도 기뻐서 웃음이 나왔다.
물론, 일반 유저 입장에서는 몬스터가 너무 많아도 부담스럽다.
잘못하다가 포위당해 죽는다면 경험치도 잃고 24시간 접속 불가 패널티까지 생기니 말이다.
던전에 혼자서 들어가는 미친 짓은 할 수 있다고 해도 사양한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그러나 언럭키는 기회만 오면 언제든지 달려갈 자신이 있었다.
‘레벨 90이 넘어가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한다는 게 아쉬워 죽겠군.’
***
그로부터 3일.
언럭키는 사냥터에 살다시피 하며 기어코 레벨 85를 달성했다.
내심 우연찮게 던전이라도 하나 발견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이 놈의 운빨은 도대체 어쩔 때 터지는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어쨌거나 그렇게 한참 레벨업에 집중하고 있던 도중, 이아손이 찾아왔다.
“언럭키님. 로드께서 모셔오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전에 약속했던 보상을 논하기 위함이었다.
“휘하 어쌔신 아무나 보내면 되지, 굳이 너까지 올 필요는 없는데.”
아니. 사실 그냥 편지 같은 거 한 통만 보내도 된다.
어차피 웨인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으니 찾아가면 그만이니까.
헌데 바쁠 게 분명한 이아손이 여기까지 오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바빠도 당연히 제가 직접 모셔야죠.”
“그럼 가지.”
“알겠습니다.”
이아손과 함께 언럭키는 웨인에게 찾아갔다.
그는 원래 머무르던 2층집에서 벗어나, 영주성 꼭대기 층으로 자신의 집을 옮겼다.
언럭키가 도착하자 웨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까지 손수 마중을 나왔다.
“하하. 오셨소 공?”
인상 좋게 생긴 그가 웃기까지 하니 얼굴이 정말 좋아보였다.
누가 그를 냉철한 어쌔신들의 로드라고 생각할까.
“영주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게 다 공 덕분인데 뭘. 으하핫.”
다시 생각해도 기분이 좋은지 웨인은 껄껄 웃었다.
“오늘 공을 부른 건 아마 예상했을 건데, 전에 약속했던 보상을 논의하기 위해서요.”
그렇게 말하며 웨인은 눈을 반짝였다.
“내 처음부터 간보는 거 없이 크게 부르리다.”
잠시 목을 가다듬는 웨인.
그가 곧 입을 열었다.
“언럭키 공. 그대를 도시 두바르의 총령으로 임명하겠소. 명실상부한 도시의 2인자로서 나를 도와주길 간곡히 부탁드리오.”
-띠링!
[직책 ‘두바르의 총령’을 획득하셨습니다.]
[믿을 수 없는 성과!]
[업적이 주어집니다.]
[‘도시의 2인자(유니크)’ 업적을 획득합니다.]
언럭키가 흠칫 놀랐다.
오랜만에 업적까지 나타났다.
물론 2인자 자리를 준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막상 받으니 기분이 참 얼떨떨했다.
‘내가…총령?’
***
도시의 2인자. 총령.
그 직책을 받은 뒤, 웨인은 바쁘다면서 그를 내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총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었으나, 웨인의 축객령에 일단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에게 결재를 받기 위해 집무실 바깥에서 대기하는 부하들의 줄이 수십 명도 넘었던 것이다.
-끄응. 마음 같아서는 더 대화하고 싶으나 나중에 날을 따로 잡아야 할 것 같소. 어쨌거나 잘 부탁하오 총령.
웨인의 집무실을 나선 뒤, 언럭키는 천천히 1층으로 걸어 내려갔다.
일단 이걸로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보는 게 먼저일 터.
[업적 : 도시의 2인자]
-업적 등급 : 유니크.
-유저로서 한 도시의 2인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명예 수치 + 80 상승.
-모든 능력치 + 15 상승.
‘업적 효과는 장난 아니군.’
오랜만에 얻은 업적이었는데, 효과는 딱 두개였다.
명예 80 상승, 모든 능력치 15 상승.
명예는 NPC들을 만날 때마다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는 수치이고, 모든 능력치 15 상승이 정말 말이 안됐다.
능력치의 총 개수는 5개이니 도합 75의 능력치가 상승한다는 뜻 아닌가.
총령으로서의 권한을 제외하고 이 업적만 봐도 레전더리 아이템 하나를 얻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업적을 보며 실실 웃고 있던 언럭키의 시선에 문사복을 입은 사람이 보였다.
아마 여기서 일하는 관리인 같은 거겠지.
언럭키가 그를 불렀다.
“거기 자네.”
“누구…헉! 총령 각하. 부르셨습니까.”
언럭키가 손을 까딱이자 그가 후다닥 다가와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를 보며 언럭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게 권력의 맛인가!’
별거 없는데 아주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이래서 웨인이나 지금까지 도시를 거쳐 오면서 봤던 귀족들이 그렇게 영주 자리에 올라가고 싶어 했던 거겠지.
“크흠. 내가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는 거라면 무엇이든 답해 드리겠습니다.”
“음…그게…크흠.”
언럭키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했다.
사실 직설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은 간단했다.
‘여기 보물 창고는 어디인가?’
‘내가 총령인데 보물들 좀 사적으로 가져가서 써도 되지? 많이는 아니고 레전더리 두어 개 정도만?’
물론…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열심히 돌리고 돌렸다.
“그러니까…총령 각하께서 할 수 있는 권한이 어디까지인가 궁금하시다는 거죠?”
“음. 바로 그렇네. 크흠. 뭐 안 쓰는 귀중품 같은 걸 대여라도 할 수 있나…싶어서 말이야.”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이자 문사복의 남자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그런 건 조금 어려울 듯싶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막 영주님과 총령님이 새로 취임하셨는데 그런 건 좀….”
“그런가….”
언럭키는 실망했다.
무법자의 도시라며!
근데 무슨 남들 눈치를 봐!
하지만 달리 말하면 무법자의 도시이기에 눈치를 봐야했다.
내전 끝에 이제 막 권력을 잡았는데, 민심이 폭발하면 끝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 그 대신 총령 각하께서는 도시의 세금을 징집하고 관리하는 권한을 갖고 계십니다.”
“뭐?”
그 말에 언럭키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니까.
세금이 내꺼라는 뜻이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