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이용승이 가장 좋아하는 건 두 개였다.
하나는 운동.
190이라는 키에 근육이 빈틈없이 꽉꽉 들어찬 피지컬은, 그가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절대 만들 수 없는 몸이었다.
비록 지금은 (주)머니앤캐시에 감금되어 있는 상황이었지만, 가지고 있는 도구들을 활용해 최대한 운동을 하려 애썼다.
심지어 작업장 일과 편집으로 바쁜데도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편집이었다.
꼭두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주)머니앤캐시의 작업장의 노동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광산일, 약초 캐기, 벌목, 꿀 채집 등.
돈이 되는 잡템들을 값싼 인력들을 써서 뽑아냈는데, 그건 지루한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
가상 현실이기에 현실의 육체가 힘들진 않았지만, 정신적 피로감이 컸다.
그럼에도 이용승은 새벽에 잠을 줄여 편집 일을 했다.
빨리 빚을 갚아 여기서 탈출하려는 목표만으로 한 건 아니었다.
그런 생각으로는 고통과 괴로움을 오래 참을 수 없다.
스스로 즐거워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언럭키의 영상은 편집자마저 기대감이 들 정도였다.
“이번 것도 엄청나네.”
메일로 온 영상을 확인한 이용승의 눈이 반짝였다.
이번에는 카메라맨이 되어 언럭키의 뒤를 일주일 넘게 따라다녔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퀄리티가 엄청나게 좋았다.
물론 퀄리티만으로는 영상이 뜨기 힘들다
컨텐츠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어찌된 게 백현 씨 영상에서는 컨텐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니까.’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을 새로 선보인 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앞으로 준비된 건 이용승이 볼 때 그보다 더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바로 내일 올라갈 영상.
거기에는 새로운 도시 ‘두바르’에 대한 게 나온다.
스스로가 편집하면서도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영상은 훌륭했다.
게다가 두바르 말고 ‘그녀’까지 등장하니, 이건 안 될 수가 없다.
‘내일이 기대가 되는군.’
이용승이 빙긋 웃으며 일어났다.
지금 시간은 새벽 2시 30분.
1시간 정도 운동 좀 해 주고 잔 뒤, 6시에 일어나 다시 일과를 해야 했다.
***
-띠링!
[NEW!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등록되었습니다.]
[제목 : 도시 ‘두바르’를 아시나요?]
[3시간 뒤에 최초로 공개됩니다.]
언럭키의 채널에 새롭게 영상 업로드 예고가 올라왔다.
조금씩 성장 중인 채널이었기에 날이 갈수록 최초 공개 전에 채팅창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들이 주목한 건 제목이었다.
<도시 두바르? 저게 어딘데. 탑 랭커들이 새로 어디 다음 도시 뚫은 곳 있나?>
<ㄴ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런 소식 없었음.>
<내가 방금 막 월벤에 검색해보고 왔는데 ‘두바르’라는 도시는 없는데?>
처음에는 이게 뭔가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눈치를 챘다.
<설마…숨겨진 도시?>
<말도 안 돼. 지금 언럭키 레벨이 정확히 몇인지는 모르겠는데 100 이하 아님? 그 동네에 아직 안 밝혀진 도시가 있었어?>
순식간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월드 사가에서 도시의 중요성이란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유저들은 일정 레벨에 도달할 때마다 다음 도시를 선택한다.
어떤 사냥터가 있는지. 또 주요 상거래 물품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나아가는 도시를 선택한다.
그걸 잘만 이용하면 훨씬 빠르게 성장하거나 길드를 키우거나 아이템을 만드는데 도움을 받는 등,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
퀘스트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도시로 갈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러했다.
헌데 새로 발견한 도시라니?
<그럼 그 도시에 언럭키 혼자 있다는 거임?>
<와 미친. 나 방금 상상했어. 도시 사냥터랑 좋은 퀘스트, 좋은 대장장이, 시장에서 나오는 물품. 뭐든 간에 그냥 혼자 독점한다는 건 아님?>
그 말이 나온 순간 채팅창은 한 번 더 폭발했다.
도대체 그런 상황이 되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월벤에 가면 자주 보이는 내용 중 하나가 ‘나도 이 게임을 초창기부터 시작할 걸’ 이라는 후회다.
그랬으면 초창기 유저로서 사냥터나 던전을 독식하며 쭉쭉 성장했을 텐데…라는 한탄이 많았다.
비단 월드 사가가 아니더라도 시간을 과거로 돌렸으면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언럭키가 새로 발견한 도시 ‘두바르’는 그렇게 시간을 돌릴 필요 없이 초창기 유저만큼의 성장이 가능하다.
<돌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진짜 말도 안 되는 발견이다.>
<새로운 도시라니. 월드 사가 10억 유저들이 싹 다 난리가 날 내용이네.>
원래라면 실시간 채팅으로 떠들다가도 한 번씩 다른 볼일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도시에 대한 토론, 그게 진짜인지에 대한 갑론을박 등.
채팅창은 끝도 없이 내려갔다.
그러다보니 4시간은 금방 지났다.
-띠링!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서 최초 스트리밍이 시작됩니다.]
영상이 시작됐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룡 미디어’ 광고부터 등장했지만 이번에는 거기에 관심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 광고 작작 좀 해라. 지금 눈 빠지게 기다리는 거 안보이냐?>
<대룡 미디어 선 넘었네. 나 거기 주식 2주나 가지고 있는 주주야. 주주가 말하는데 광고 좀 눈치껏 해라.>
<엌ㅋㅋㅋㅋㅋ위에 2주 가지고 있는 거, 대충 12만 원쯤 하겠네ㅋㅋㅋㅋㅋ.>
광고 후 드디어 본 영상이 시작되었다.
-터벅터벅.
카메라에 잡힌 건 발이 푹푹 꺼지는 모래바닥을 걷는 언럭키의 모습이었다.
<사막?>
<도시가 사막에 있는 건가?>
카메라는 곧 줌을 당겼다.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화면 속에 언럭키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옆에 나란히 서서 걷는 또 다른 사람.
반짝이는 백발을 길게 기른 무표정한 여성, 벨라였다.
<어? 어? 저, 저 분 저번에 출현하셨던 그 분이잖아!>
<광신도들의 마을에서 도끼로 나무 패던! 맞지!>
누구나 한번쯤 쳐다볼만한 외모를 지닌 벨라이다.
잠깐 출현한 것만으로도 댓글창에 언제 또 다시 나오냐는 말이 수두룩했었다.
그런 그녀가 등장하자 도시 떡밥도 잊고 시청자들의 눈이 돌아갔다.
<와 진짜 예쁘긴 예쁘다.>
<둘이 무슨 사이임? 설마…?>
<넘겨짚지 마셈.>
영상은 크게 특별한 게 없었다.
언럭키와 벨라는 그저 묵묵히 사막을 함께 걸어 나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몬스터가 등장하면 바로 전투 태세로 바뀌었다.
살짝 뒤로 빠진 언럭키는 해골들을 소환했고, 벨라는 방패를 든 채 앞에서 탱킹했다.
둘은 호흡을 척척 맞춰 등장한 몬스터를 순식간에 도륙냈다.
<예쁜 것도 모자라서 아이템도 죽여주네.>
<저거 레전더리 아님? 뭔 방패가 든 것만으로도 몬스터 어그로가 끌어지냐.>
<겉에 메두사 그려져 있는 디자인만 보더라도 비싸 보여.>
가상 현실 게임이다 보니 중장비를 착용한 잘생긴 남자 유저, 아름다운 여성 유저는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벨라는 일반 유저들에게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일단 표정.
미튜브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는 시청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웃고 밝은 표정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벨라는 무표정에 시종일관 무뚝뚝한 기색이었다.
그런데 그게 또 남들과 달라서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가끔씩 언럭키를 도와서 전리품을 수거하거나 하는 모습이 나오곤 했는데, 그게 또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둘의 분위기가 약간 묘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사막을 나아갔다.
서로 기댄 채 고난을 꺾으며 나아가는 동료 같기도 하고, 누구보다 신뢰하는 커플 같기도 했다.
원본 영상은 그저 동료일 분이었지만, 이용승이 밤새 편집하면서 약간의 분위기를 담은 것이다.
구도와 시점의 변경만으로 미세한 핑크빛 기류를 만들어 내었다.
<뭐야. 뭐야. 지금 나만 두근두근하냐?>
<시끄럽고 영상에 집중해라. 지금 채팅 칠 시간이 어디 있냐?>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큰 위기는 없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원시원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파악!
-팍!
모래 속에서 어쌔신들이 등장하며 두 사람을 포위하고, 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화면이 검게 변하더니 ‘다음 내용은 도시 두바르를 아시나요? (2) 로 이어집니다.’ 라는 멘트로 끝맺었다.
<어…? 지금 내가…뭘 본거지?>
<잠깐만. 저기요 주인장.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이렇게 끝내면 안 되지!>
<누구 복장 터지는 꼴 보고 싶어! 빨리 2편 내놔!>
<그래서 도시 두바르가 어떻게 생긴 건지 맛보기는 보여 줘야 할 거 아니야? 그 전까지 쓸데없는 내용…은 아니긴 한데.>
<ㅇㅇ. 나 솔직히 벨라님이랑 같이 나오는 장면들에 집중하느라 새로운 도시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음 ㅋㅋㅋㅋㅋ.>
채팅창이 터질 듯 계속해서 넘어갔다.
<스트리머가 양심이 있으면 새로운 영상은 1시간 뒤에 올라오겠지? 그럴 거라고 믿고 있는다.>
<나 다음 영상 올라올 때까지 숨 참는다. 흡!<
<빨리 안 올려 주면 나 죽어!>
***
아침 6시.
백현, 박세훈, 이용승이 식사를 하며 가볍게 회의를 하는 시간이다.
중요한 얘기는 다른 연락 수단을 이용했고, 아침 시간은 그저 가볍게 서로 피드백을 해주었다.
‘사실 중요한 얘기를 해도 들을 사람도 없지.’
여기서 근무하는 직원(깡패 덩어리)들은 전부 자고 있는 시간이다.
다른 빚쟁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아침을 거르는 사람이 많았고.
성 팀장은 아침 일찍부터 자기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같지만, 큰 목소리만 내지 않는다면 문제 될 일은 없었다.
“이야. 어제 꺼 반응 죽여주네. 장난 아니다.”
박세훈이 미튜브 댓글창을 보며 낄낄거렸다.
“사람들 많이 빡쳤나 본데? 어우. 다음 영상 내놓으라고 난리다 난리.”
“확실히 이전 영상들보다 댓글 숫자가 많아요. 2배도 훨씬 넘어가네요.”
옆에서 이용승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근데 다 욕하는 댓글만 있는 건 아니에요. 벨라님이랑 케미가 좋았다고 하는 것도 많네요.”
“그럴 만해. 나도 보는데 괜히 부럽고 질투 나고 그러더라니까? 연애 감정 따위는 다 식어서 삭막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좋겠다 백현 씨.”
박세훈이 반쯤 진심어린 눈으로 백현을 쳐다봤다.
백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 벨라님이랑 아무 사이 아니에요. 그냥 동료입니다.”
“동료끼리 무슨 그런 핑크빛 교류가 있어.”
“그거 다 편집이 잘돼서 그래요. 용승 씨 덕분이죠.”
백현이 박세훈과 이용승, 두 사람을 보며 피식 웃었다.
처음에는 우연히 만났지만 이제는 이 지옥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 같은 느낌.
게다가 한 팀이 되어 나아가다보니 날이 갈수록 동료애가 생겼다.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아! 백현 씨. 나 좋은 아이디어 떠올랐어. ‘너희 결혼했어요’ 같은 예능 찍어 보는 거 어때? 요즘 연애 예능이 인기 많잖아. 그거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언제 적 너희 결혼했어요입니까.”
“아, 왜. 백현 씨 본판도 꽤 괜찮아서 이참에 얼굴 공개도 딱 하고 그러면 구독자 팍팍 솟을걸?”
“다 좋은데 현실에서 외부인을 어떻게 만나요. 여기로 초대할까요?”
이 닭장 같은 고시원에?
아마 입구에서 덩어리들에게 가로막혀서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에잉…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꼭 지금 하는 게 아니더라도 나중에 할 수도 있잖아.”
박세훈도 농담 삼아 했던 말인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세 사람은 그 후로도 쓸데없는 주제들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중간에, 조금은 중요한 주제를 꺼냈다.
“자…그러면 어디, 이번 달은 미튜브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한 번 보자고.”
바로 정산!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박세훈이 입을 열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아직 그도 이번 달 정산금은 확인하지 않았다.
솔직히 기대할 만했다.
미튜브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고, 최근 영상은 이전보다 더 주목받았으니까 말이다.
백현과 박세훈, 이용승.
세 사람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정산 페이지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와….”
“말도 안 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탄성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