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빨로 레벨업-107화 (107/218)

#107화

이아손은 로드 웨인의 명령으로 언럭키를 찾아왔다.

그를 지원하기 위해 어쌔신 부대가 출격했고, 그가 먼저 가서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헌데 그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총령의 병사들을 몰아치는 해골 군대.

그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감히 쳐다보기 두려울 정도였다.

‘저게…저 분의 진정한 힘인가….’

솔직히 말하면, 언럭키에게 2인자의 자리를 준다고 했을 때 서운한 마음이 있었다.

어쌔신 로드 웨인. 그 밑에서 부단장으로서 자잘한 일들을 얼마나 오래 맡아서 해왔던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됐지만, 감정은 자신을 챙겨주지 않아서 섭섭했다.

그러나 이렇게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저 분을 적으로 돌렸다면 우리는 졌을 거다.’

그게 아니더라도 언럭키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았다면 전쟁은 훨씬 오래갔겠지.

상처뿐인 승리를 얻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감정은 다 털어냈다.

오히려 감사할 뿐이었다.

놈들의 비밀 아지트를 부숴 승기를 가져온 게 언럭키였는데, 지금은 본진까지 발견했다.

심지어 여기 있는 병력들은 언럭키에게 압도당해 반쯤 끝나 있었다.

이대로 직진만 해도 아마 아무것도 못하고 도망치겠지.

“언럭키님께서 만들어주신 기회를 놓치지 마라.”

그리고 언럭키는 이아손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잘못하면 자신의 공을 빼앗기는 것처럼 느껴질 텐데도, 그는 대수롭지 않게 허락했다.

-푹!

-촤악!

“크헉….”

“끄르륵….”

어둠 속에서 등장해 칼날을 날려대는 어쌔신들에게 총령의 병력이 픽픽 쓰러졌다.

이미 언럭키에게 오랜 시간 당해오느라 체력도 많이 빠졌고, 마음은 한참 전에 꺾였다.

-콰직!

가장 앞서서 칼날에 피를 묻히며 이아손이 말했다.

“총령을 만날 때까지 저희가 언럭키님을 보필해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아손의 존경심과 충성심은 커져갔다.

주인인 로드를 향한 마음과 거의 비견될 정도로.

***

-콰직!

언럭키의 왕홀이 허공을 갈라 총령의 병사를 후려쳤다.

“끄윽….”

살짝 빗맞았기에 놈은 한 방에 죽지 않았다.

피를 철철 흘리며 어지러운 지 몸을 비틀거렸다.

“쯧. 검왕 때는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치명타였는데. 역시 어렵네.”

네크로 엠페러는 신체 보정이 없어서 그게 아쉬웠다.

-콰직!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필드 효과로 획득 경험치가 5% 상승합니다.]

한방 더 휘둘러 끝장을 낸 언럭키가 왕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래도 보정이 없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손맛이 조금 더 잘 느껴졌다.

언럭키는 이아손의 어쌔신 부대와 함께 저주받은 땅을 나아가고 있었다.

마나가 딸려서 해골 군대는 전부 역소환 시켰다.

원래라면 회복될 때까지 숨어 있다가 다시 달려들어 게릴라 전투를 펼쳐야 했겠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해골 군대 대신 살아 있는 어쌔신 군대가 제 몸을 바치며 싸우고 있었으니까!

‘이래서 영주 영주 하는 구만. 걔네들은 굳이 네크로맨서를 고를 필요가 없겠어.’

지금까지 거쳐 온 도시들을 떠올려봤을 때, 왜 그렇게 영주 자리에 욕심을 내는지 알 것 같다.

기꺼이 제 목숨을 내놓는 부하들이 이렇게 많다면 누구나 다 거기에 앉고 싶겠지.

[‘어쌔신 부단장 이아손’이 두바르 총령의 정예 병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일부를 획득합니다.]

[‘어쌔신 캘틱’이 두바르 총령의 정예 병사를 처치했습니다.]

[경험치 일부를…]

어쌔신들이 적을 처치할 때마다 언럭키에게도 경험치가 조금씩 들어왔다.

오랫동안 전투를 벌이며 놈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입혔고, 기세를 꺾어놓은 것도 언럭키였다.

그게 인정되어 처치했을 때 경험치 정산이 된 것이다.

“아, 안 돼…. 여기서 더 물러나면 안 된다. 죽음을 각오하고 막아라!”

“마음을 다잡아라! 총령 각하께 이런 불충한 모습을 보일 셈이냐!”

지휘관 급인 검투사들이 분투했지만 이미 넘어간 승기를 가져오는 건 불가능했다.

오히려 그렇게 반전을 노리다보니 어쌔신들의 목표가 되었다.

-서걱!

-푹!

“큽! 감히 나를 노려?”

단검에 찔리면서도 검투사들은 분노해서 어쌔신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기습을 당하긴 했지만 그들은 막싸움의 전문가였다.

일단 모습을 드러낸 놈들을 상대하는 거라면 어쌔신들 따위는 상대가 안 되었다.

검은 야행의를 입은 그들과 검투사들이 뒤엉켜 미친 듯이 서로 칼질을 해댔다.

검투사 카로는 어쌔신 한 명의 목을 벤 뒤 함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또 누가 내게 덤비겠느냐! 다 죽여주마!”

억지로 내뱉는 전투 포효이지만 효과는 있었다.

적을 위축시키고 아군의 사기를 올려주니 말이다.

이대로 한두 명만 더 죽이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체력이 떨어져서 이제는 칼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지만, 카로는 애써 힘을 냈다.

“…젠장.”

그런 그의 눈이 절망에 휩싸였다.

어쌔신들과 막싸움을 벌이느라 눈치 못 챘는데, 어느새 언럭키가 그의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검은 로브를 펄럭이며 한 손에는 왕홀을 든 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 없는 눈빛.

사실 그냥 걸어가다가 앞에 있어서 걸린 것뿐이지만, 카로는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콰직!

방패를 들어 막았지만 머리에 충격이 가더니 귀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지쳐서 제대로 못 막기도 했고 어쌔신들에게 많이 당해 HP가 별로 없기도 했지만, 언럭키의 힘 자체가 너무나 강했다.

직업은 ‘네크로 엠페러’였지만 힘 수치는 120에 가까운 괴물 같은 스펙.

만전의 상태가 아니라면 검투사조차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괴, 괴물이야…. 다 죽기 싫으면 도망가야 해.”

“살려 줘! 나는 벗어날 거야!”

패닉에 빠진 총령의 부하들이 이제는 완전히 등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전쟁에서의 피해는 이럴 때 가장 크게 생긴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뒤돌아 도망치면 아수라장이 되고, 등은 텅 빈 상태가 된다.

어쌔신들이 노리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푸확!

-서걱! 서걱!

놈들을 짚단 베듯 쓰러트리며 언럭키와 어쌔신 부대가 전진했다.

***

‘다 끝났군.’

총령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조만간 영주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부푼 꿈에 잠겨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눈앞에 있었다.

“기어코 여기까지 왔나….”

네크로 엠페러.

과연 그 남자는 보고받은 대로였다.

‘아니. 실제로 보니 더 하군.’

어둠을 몰고 다니는 듯 검은 로브를 펄럭이며 걸어오는데, 그 새카만 눈동자를 계속 쳐다보고 있기가 어려웠다.

저주받은 땅 한가운데의 초원.

거기에서 약간 떨어진 채로 총령 측 병력과 언럭키를 포함한 어쌔신 부대가 서로 대치했다.

이아손이 한걸음 나오며 말했다.

“총령 각하.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이만 항복하십시오.”

“닥쳐라. 이아손. 너 따위가 언제부터 내게 말을 걸 수 있었나?”

“…….”

총령의 일갈에 이아손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분노할 법도 하건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지난 세월, 어쌔신 로드의 밑에 있었지만 총령이 어떤 사람인지 오랫동안 봐오지 않았나.

카리스마나 리더십 면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울만한 사람이었다.

아마 언럭키가 없었다면 오랜 싸움 끝에 총령이 영주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까.

이아손은 불충하지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대단한 남자였다.

그런 총령이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존중해주었다.

“후후. 네크로 엠페러여. 그대도 나를 보고 긴장하고 있나?”

총령이 가만히 있는 언럭키를 보며 말했다.

살짝 웃기까지 하는 게 마치 친한 친구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언럭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긴장이라고 할 게 뭐가 있겠나.

그의 시선에는 총령의 정보가 보였다.

[보스 몬스터 : 도시 두바르의 총령 엠파르]

-레벨 : 91.

레벨이 무려 91.

언럭키와 10레벨 이상 차이가 난다.

심지어 보스 몬스터이니 동레벨의 일반몹보다 훨씬 더 강할 것이다.

이렇게 차이가 크면 아무리 언럭키라고 해도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서 싸우는 게 아니었다.

웨인이 보낸 어쌔신 병력이 지금도 속속들이 합류하고 있었다.

도시 내 다른 곳에서의 전투를 마무리 짓고 온 자도 있었고, 아예 처음부터 자리를 비운 자도 있었다.

병력 차이는 이미 비교 불가.

기세에서도 저 쪽은 패잔병이나 마찬가지였다.

형형한 눈빛을 빛내는 건 오직 총령뿐이었다.

다만 언럭키의 입장에서 아쉬운 게 있다면…

‘전에 그 멍청한 놈처럼 던전 같은 거라도 만들어서 안에 있지. 그러면 최초 발견 보너스도 챙길 수 있을 텐데….’

왜 밖에 나와서 싸우는 건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 순간, 총령이 한 걸음 움직였다.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다. 오라!”

검과 방패를 든 그가 움직이자 그의 병력들이 따라 움직였다.

언럭키 역시 왕홀을 휘저었다.

마력이 퍼져나가더니 땅에서 검은 뼈를 지닌 해골들이 솟구쳤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마나는 모두 다 회복한지 오래.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총령에게 맞서 해골 군대가 전진했다.

***

힘든 전투였다.

언럭키는 오랜만에 전력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버프를 걸고 배리어를 펼치고 힐을 쓰고…

해골 군대는 총령과 한바탕 미친 듯이 어우러져 싸웠다.

그는 괴물 같은 사람이었다.

겉으로도 강해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실제로도 강했다.

도시의 엘리트 출신으로 스스로 검투사에 자원해서 올라갔다는데, 그래서인지 검이 묵직했다.

-퍽!

-콰직!

검이나 방패로 후려칠 때마다 해골 병사들이 픽픽 쓰러졌다.

한 방에 뼈 두세 개는 부서지는 것이다.

마나를 가득 채워 와서 미친 듯이 힐을 써대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해골 기사를 제외하고는 금세 전멸했을 것이다.

‘필드 디버프가 없었으면 오히려 내가 졌을 수도 있겠어.’

레벨 차이가 깡패라더니. 정말이었다.

아무리 언럭키의 스텟이 높다고 해도 10레벨 이상 차이 나는 보스몹을 1대1로 이기는 건 조금 힘들었다.

물론 해골 병사들을 끌고 다니기에 그걸 1대1로 할 수 있겠냐마는.

그러나 디버프와 어쌔신들의 도움도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승리한건 언럭키였다.

“크으….”

총령이 전신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신음소리를 냈다.

신체 여기저기에 무기가 박혀있었다.

언럭키가 해골 기사들에게 준 좋은 등급의 장검 두 자루가 폐와 심장을 관통했고, 뼈로 된 칼과 화살들이 몸 전반에 빼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은 흉흉했다.

머리 위에 떠있는 HP 창을 보면 한계에 가까웠는데도 여전히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무슨 보스몹 투지가…어우. 굉장하네요.”

뒤늦게 합류한 컵라면은 그 모든 장면을 낱낱이 찍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진 직후에 도착한 그는 전쟁의 장면을 열심히 촬영했는데, 특히나 언럭키와 보스몹의 전투를 중점으로 담았다.

불꽃같은 투지를 여전히 보여주는 보스몹과, 차갑게 몰아치는 해골 군대의 전투.

또 다른 한쪽에서 벌어지는, 로드 웨인을 포함한 어쌔신들의 학살극.

‘이건 배경음악 잘 깔면 괜찮은 전쟁씬 하나 나오겠는데?’

어찌나 치열한지 하마터면 그도 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쨌거나, 총령은 무릎을 꿇었다.

놈은 쓰러지기 직전까지도 언럭키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리지 않다가, 눈을 감았다.

-띠링!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업!]

“후…끝났군.”

한차례 빛에 휩싸인 언럭키가 참았던 숨을 내뿜었다.

총령은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언럭키의 시선이 그 자리로 향했다.

총령이 죽은 자리로, 그가 드랍한 아이템들 몇 개가 떨어져 반짝거리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