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그게 사실인가?”
어쌔신 로드 웨인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막 찾아온 컵라면이 전해준 소식 때문이었다.
“언럭키 공이 저주받은 땅에서 총령의 병력을 발견했다라….”
지난 일주일간 도시 전역에서 전투를 벌이며 총령과 사투를 벌였다.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항상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총령의 정예 병력들은 거의 잡지 못했고 쭉쩡이만 처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비밀 병기로 모셔둔 언럭키에게서 소식이 들어왔다.
아마 거기가 총령이 모든 것을 숨겨둔 본진일 것이다.
“저주받은 땅이라면 확실히 지금껏 총령의 정예들을 발견하지 못한 게 이해가 가는군.”
오랫동안 경쟁해왔던 사이였기에 웨인은 총령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짐작이 갔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
저주받은 땅에 병력을 결집시키고 틈을 봐서 한 방에 몰아치겠다는 속셈이었으리라.
‘언럭키 공은…그걸 알고 거기에 간 건가?’
웨인은 언럭키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에게 2인자 자리를 주는 대가로 손을 잡았지만, 당장은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아마 그의 눈에는 잘못된 게 많이 보였겠지.’
하지만 구태여 그걸 꼬집지 않고 스스로 직접 행동에 나섰다.
총령의 생각을 미리 꿰뚫고, 가장 연약한 타이밍에 들쑤신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남자란 말인가!
“언럭키 공이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마중나갔던게 이아손이어서 다행이군.”
만약 총령 측 사람과 접선했다면 자신의 적이 되었을 텐데.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가 옆에 있는 이아손을 바라봤다.
“이아손. 이제 와서 돌아보면 네 공이 굉장히 크다.”
“…감사합니다 로드.”
이아손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역시 로드의 말에 구구절절 공감하고 있었다.
사실, 로드가 그에게 2인자 자리를 약속했을 때는 조금 과하다 생각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가 대단하단 건 레데늑의 아지트를 박살내면서 충분히 잘 알았지만, 어쨌거나 언젠가 떠날 외부인 아니던가.
‘하지만 로드께서는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그 남자를 붙잡아야 한다는 걸 알고 계셨던 거야.’
그리고 실제로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웨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아손. 명령을 내리겠다.”
“하명하십시오, 로드!”
“지금 즉시 모든 어쌔신 부대를 데리고 저주받은 땅으로 간다. 가서 총령을 끝장내라.”
“네!”
이아손은 대답과 함께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 공간이 흔들렸다.
은신해 있던 어쌔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느라 공간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컵라면은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어쌔신들이 이렇게 많았어?’
로드 웨인이 그를 쳐다봤다.
“자네는 나와 같이 가지.”
“어…알겠습니다.”
***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저주 받은 땅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도대체 왜…왜 안 죽는 거야!”
누군가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퍼걱!
그러면서 휘두른 장검이 해골 병사의 두개골을 후려쳤다.
다크 배리어가 깨지며 두개골에 금이 갔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뇌진탕으로 쓰러졌을 만한 상처였다.
그러나 해골은 오히려 전진했다.
텅 빈 눈두덩이에서 피어나는 귀화가 커졌다.
분노하듯 내지르는 검이 병사를 베고 지나갔다.
-서걱!
“커헉….”
가슴팍이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숙하게 베였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그로서는 이런 상처를 버티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해골은 검은 빛에 휩싸이더니 순식간에 금이 갔던 뼈가 아물었다.
‘괴물 같은…네크로맨서….’
원인은 간단했다.
쓰러진 채 시선을 돌리자 저 멀찍이서 로브를 펄럭인 채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새카만 오오라를 풍겨대며, 마치 이 땅의 주인인 듯 존재하고 있는 남자.
차갑게 오시하는 눈동자는 감히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저런 놈이 있는 건…반칙이잖아….’
해골 군대는 지옥에서 올라온 전사 같았다.
그들이 익히 알던 멍청한 해골과는 종자부터가 달랐다.
대인 전투 능력부터 협동력, 위기 상황에서의 순발력, 언데드라서 보유하고 있는 차분함 등.
총령의 정예라고 분류되는 그들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게다가 뒤에서 말도 안 되는 지원이 쏟아졌다.
몸을 둘러싼 배리어, 상처를 회복시키는 힐, 속도를 빠르게 하는 오오라.
거기에 더해 놈이 써대는 디버프는 안 그래도 필드 효과로 고통 받는 병사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유리한건 이쪽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것뿐이었는데, 그것도 서서히 따라잡혔다.
조금씩 승리하던 해골 군대는 어느새 총령 측 전력을 꽤 많이 깎아냈으니 말이다.
“도, 도망쳐….”
“승산이 없어…. 다 죽을 거라고….”
겁에 질린 몇몇 병사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걸 본 지휘관 계급의 검투사들이 눈에서 불을 뿜었다.
“멍청한 놈들! 이대로 도망치면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다! 죽더라도 가서 싸우다가 죽어라!”
검투사들도 기가 질린 건 마찬가지였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적은 고작 한 명이다!”
“선택해라. 우리 손에 죽던가 아니면 싸우다가 죽던가!”
총령이 가진 최중요 병력이 검투사들이었다.
검과 방패, 창이나 둔기 등의 무기를 사용하며 막싸움의 달인들.
기사가 아니라 검기 같은 건 못 쓰지만, 기본 전투 능력에서는 밀리지 않았다.
언럭키의 해골 군대는 강력했지만,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조차 해법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발견했다.
‘해골 군대는 무섭지만 놈은 네크로맨서다. 어쩔 수 없이 근접전이 약점일 수밖에 없어.’
실제로 언럭키의 주변을 배회하듯 호위하는 네 기의 해골 병사들이 있었다.
기습적으로 누군가 달려들면 저 해골 병사들이 막아설 것이고, 그 틈에 밖으로 나돌던 해골 기사나 궁수가 지원을 오겠지.
‘저걸 노려야 한다.’
지휘하던 검투사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여러 번의 접전을 벌이며 벌써 검투사도 몇 당해서 쓰러졌다.
그만큼 해골 군대는 만만치 않았는데, 그러면서 얍삽하게 자기들이 질 것 같으면 뒤로 빠졌다.
아주 보는 사람을 열 받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검투사들은 계속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 그 순간이 왔다.
해골들과 언럭키의 거리가 평상시보다 아주 조금 멀어진 순간.
“지금이다!”
-팍!
네 명의 검투사가 전력을 다해 돌진했다.
해골 병사들이 흉흉한 귀화를 풍기며 언럭키를 지키기 위해 다시 몸을 틀었다.
-쾅!
“너희는 못 돌아간다!”
“죽어!”
검투사들은 이 악물고 해골 병사들에게 매달렸다.
필드 효과와 언럭키가 건 디버프 때문에 한 번 놓치면 따라잡는 게 어렵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못 돌아가게 버틴 것이다.
이로써 언럭키를 지키는 해골들은 잠깐 동안 하나도 없게 되었다.
그 대가로 본진은 해골 군대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었지만 괜찮았다.
-스르륵.
어쌔신 한 명이 언럭키의 근처에 등장했다.
4명의 검투사가 호위하는 해골 병사를 묶고, 본진이 나머지 해골 군대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상황.
그렇게 생긴 틈에 어쌔신이 네크로맨서를 마무리하면, 피해가 클지언정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됐다.’
‘이겼어!’
어쌔신이 언럭키의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검투사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그뿐만 아니라 해골 군대와 치열하게 맞서던 병사들 역시 희망을 담아 어쌔신을 바라봤다.
그가 꺼내는 단검이 햇빛에 반짝였다.
어쌔신이 한발자국 더 다가간다.
이제 지근거리였다.
저게 네크로맨서의 심장을 찌르는 순간, 이 지긋지긋한 해골 군대가 폭삭 주저앉겠지.
그 순간이었다.
어쌔신이 단검을 찌르기 직전, 네크로맨서가 먼저 움직였다.
-퍽!
들고 있던 왕홀을 휘두르자 머리가 박살난 어쌔신이 바닥에 쓰러졌다.
“어…?”
“말도…안 돼….”
호위하는 해골을 막고 있던 검투사도, 그 외의 병사들도 멍하니 입을 벌렸다.
***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필드 효과로 획득 경험치가 5% 상승합니다.]
‘어우. 깜짝 놀랐네.’
어쌔신의 뚝배기를 깨버린 언럭키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검투사 여럿을 희생시켜 이딴 짓을 해올 줄이야.
본능적으로 휘두른 한 방이 아니었으면 꽤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는 네크로맨서.
방어력과 체력이 부족하니 잘못 걸리면 한 방에 죽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는 슬슬 마나도 딸리고.’
언럭키의 마나량이 방대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한건 아니었다.
배리어를 만들고 힐과 디버프를 계속 뿌려대고 소환수 유지가 지속되게 계속해서 마나를 소모했다.
이제는 그게 다 닳았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해골 부대를 데리고 슬쩍 뒤로 빠졌다.
지금까지도 계속 이렇게 싸워왔다.
한바탕 날뛰고 마나가 떨어진다 싶으면 뒤로 물러나 게릴라처럼 물고 늘어졌다.
해골 기사를 타고 도망쳐 다니다가 마나가 채워지면 다시 군대를 소환해 공격하기를 반복한 것!
“뭐야. 이번엔 안 따라오네?”
그러나 이번에는 군대를 뒤로 물리는데도 놈들이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악착같이 따라와야 하는데…
‘겁먹었군.’
언럭키는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방금 전 어쌔신을 죽였던 한 방이 놈들의 기세를 꺾어버린 것이다.
다만 이렇게 되면 문제인 게, 자칫 잘못하면 놈들이 도망칠 수 있었다.
‘지금 몰아쳐서 끝장내야 하는데….’
만약 이대로 놈들이 후퇴해서 재정비를 한다면 꺾인 기세도 돌아올 것이다.
물론 다시 또 싸우면 그만이긴 한데,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차라리 지금 마나가 충분했다면 한 방에 맥을 끊어놓고 그 너머까지 진격할 수 있었을 터!
“언럭키님.”
그 순간이었다.
언럭키의 옆에서 흑의를 입은 남자가 뚝 떨어지더니 한 쪽 무릎을 꿇었다.
“…….”
언럭키는 심장이 철렁 하는 기분이었다.
또 한 번 어쌔신의 암습이 온 줄 알았다.
본능적으로 반응했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그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이아손…?”
“예. 접니다.”
이아손은 고개를 깊숙이 한 번 숙인 뒤, 살짝 시선만 들어 언럭키를 바라봤다.
“저 이아손. 언럭키님의 무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언데드 군대뿐만 아니라 어쌔신까지 그렇게 처리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다 본 건가?”
“예. 조금 전에 도착했는데 말씀 드릴 타이밍을 못 잡아서 우연찮게 봤습니다.”
이아손은 그렇게 말하며 한 번 더 머리를 숙였다.
도착해서 언제 언럭키에게 다가가야 할까 고민하던 도중, 조금 전의 장면을 전부 지켜봤다.
놈들의 노림수를 한 방으로 좌절시키다니.
이아손은 전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다만 부디 저희에게도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총령의 부하들을 이렇게 약화시킨 건 당연히 언럭키님 덕분이지만, 저희들도 한바탕 날뛰고 싶습니다.”
“날뛰고 싶다라….”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라.”
‘이게 웬 떡이야.’
안 그래도 저 놈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설마 이아손이 나타나 줄 줄이야.
“감사합니다!”
이아손은 충성심 가득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금 스르륵 허공에 녹아들었다.
잠시 후.
“끄, 끄아아악! 어, 어쌔신들이 나타났다!”
“어쌔신 로드의 부하들이야!”
“제, 젠장….”
이아손과 그 부하들이 총령의 병력들을 정리해 나갔다.
대다수는 언럭키에게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마음까지 압도당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마무리는 어쌔신들이 해도 경험치는 나눠 가졌다.
몇 번이나 경험치 획득 메시지가 반복되었을까.
-띠링!
[레벨업!]
기분 좋은 빛을 몸에 휘감은 채, 언럭키가 정리된 길을 따라 나아갔다.
“가시지요. 총령은 언럭키님께 바치겠습니다.”
이아손이 마치 부관처럼 그의 옆을 보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