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두바르 총령.
어쌔신 로드 웨인과 함께 도시 두바르의 2인자로 분류되고 있으며, 둘은 지금도 치열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겉으로는 도시에 큰 문제가 없어보였으나 물밑에서 수많은 견제와 살인이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총령 각하. 제 14지부에서 패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피해는?”
“최대한 손실을 줄여보려고 노력했으나…어쩔 수 없이 발생한 사상자가 꽤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 알겠다.”
총령이 손짓하자 보고하던 부하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의자에 앉아 있던 총령이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후우…. 일이 왜 이렇게 된 거지….”
짧게 깎은 머리, 각진 턱, 날카로운 인상.
다부진 체형의 총령은 척 봐도 단단하고 강해 보이는 사내였다.
실제로 그는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군인이었다.
두바르의 권력자 가문에서 태어났고, 승승장구를 거듭해 영주의 오른팔까지 올라왔다.
단순히 집안 때문에 잘나간 것도 아니었다.
의외로 그는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실력으로 이 자리를 꿰찼다.
그러면서 냉철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였고, 부하들의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아왔다.
어쌔신 로드 웨인이 일신상의 강력한 무력 덕에 영주의 왼팔이라 불렸었다면, 그는 용병술과 정치력, 카리스마 등으로 도시의 일처리 대부분을 맡았다.
영주가 죽고 차기 영주 자리를 놓고 벌이는 전투에서, 그는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되겠지만 언젠가 자신이 승리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 생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시작은 일주일 전이었다.
“레데늑. 그 놈을 거기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총령은 여러 타입의 부하들을 데리고 있었다.
누구 한 명을 전적으로 쓰는 대신, 다양한 능력을 지닌 2인자들을 키운 것이다.
레데늑은 실력은 별로 없지만 상관을 향한 아부와 남들을 짓밟고 올라오는 능력 등이 탁월했다.
그래서 놈에게 굴드란 늪지의 어쌔신 육성을 맡겼다.
눈치 100단인 놈이라 중요한 일을 시키면 어떻게든 기준치에 맞춰서 해냈기 때문이다.
웨인과의 일전을 생각하면 어쌔신 부대 육성은 굉장히 중요했기에, 인성이 별로라는 걸 알아도 능력만 믿고 놈에게 맡겼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검을 해골을 다루는 네크로맨서가 나타났다니….”
일주일 전, 어쌔신 부대를 육성하던 아지트가 전멸했다.
심지어 돌아온 생존자가 없어서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뼈 아픈 타격이었다.
원래 웨인과는 도시 전체를 반으로 나눠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한 개의 아지트가 무너지면서 어쌔신 로드에게 균형추가 확 기운 것이다.
전력이 깎인 것도 문제였지만 정보를 빼먹힌 것도 컸다.
레데늑은 총령측의 고위 간부였고, 약간의 고문만으로도 알고 있는 걸 술술 불만큼 입이 가벼웠다.
그래서 중요한 거점이나 병력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발빠르게 대응해서 그나마 버틴 것이지, 아니었다면 이번 일주일만에 결판이 날 뻔했다.
“하지만…아직 끝난게 아니지.”
위기는 곧 기회인 법.
지금도 웨인의 공세가 전방위적으로 들어오고 있었지만 총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 단 한 번의 기회만 있으면 역전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최중요 병력을 ‘이 곳’으로 집결시켰다.
나머지는 레데늑이 원래 알고 있던 아지트에 분산시켜 놈들에게 내어줄 목적으로 놔뒀다.
계속해서 밀리다가 놈들이 방심한 타이밍에 날카롭게 비수를 찌를 계획이었다.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숨어있는 ‘이곳’은 보통이라면 들키기 어려운 장소이다.
도시민들이 가장 들어오고 싶지 않은 곳 중 하나로 꼽히며, 그 흔한 약초꾼도 보기 어려웠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이만한 곳도 없었다.
“초, 총령 각하.”
다급한 부하의 목소리에 총령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이번에는 또 어디가 박살났다는 소식일까.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부하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지?”
“저, 적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래. 그럴 것 같았다. 이번에는 어디 지부냐?”
“지부가 아니라…이 곳입니다.”
“…뭐!?”
총령이 체통도 잃고 벌떡 일어났다.
“여기?”
“…그렇습니다.”
눈 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은 아찔한 충격이 왔다.
허나 총령은 정신을 다잡고 물었다.
“어, 얼마나 되지? 설마 웨인 그 놈이 쳐들어온건가?”
“아닙니다. 적은 어쌔신이 아니라 네크로맨서입니다.”
“네크로맨서?”
순간 총령의 머릿속에 스치고 가는게 있었다.
부하는 쐐기를 박듯 마저 보고했다.
“검은 해골을 다루는 네크로맨서…. 그가 왔습니다.”
***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필드 효과로 획득 경험치가 5% 상승합니다.]
‘두바르 총령의 병사’ 라는 놈들을 잡았다.
언럭키를 발견하자마자 뒤돌아 도망쳤는데, 해골 기사가 추격해서 끝장냈다.
“쯧. 한 명은 놓쳤네.”
병사는 총 4명이었는데, 세 명을 처리하는데는 성공했지만 한 명은 결국 도망쳤다.
필드 디버프가 발동되는 이 저주받은 땅에서 해골 기사를 상대로 도망치다니.
대단했다.
한 명을 살리기 위해 나머지 셋이 기를 쓰고 해골 기사를 묶어 놓았던 덕분이었다.
“언럭키님. 저 놈들, 전에 받았던 퀘스트의 그녀석들이겠죠?”
“아마 그럴겁니다.”
“그러면 이대로 돌아갈까요? 일단 보고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일주일 전 어쌔신 로드에게 받은 퀘스트.
그들은 두바르의 총령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으니, 결전의 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말이었다.
어차피 그 사이에 할 일은 많았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사냥하고 레벨을 높이고 있다보면 어련히 알아서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걸 이쪽에서 먼저 발견할 줄이야.’
언럭키는 잠깐 고민했다.
과연 이대로 물러나서 웨인을 찾아가는 게 맞을까?
결론은 곧 나왔다.
“역시 이대로 가지는 못하겠습니다. 아예 안들켰다면 모를까, 아까 저 쪽 병사 한 명이 우리를 보고 도망쳤잖아요. 곧 무언가 대처를 할 텐데, 그러면 있던 기회도 사라집니다.”
우연찮게 발견한 총령의 부하들.
기회가 있을 때 기습적으로 처치하는 게 좋다.
기회란 어영부영하다가는 어느새 손에서 사라져버리는 법.
언럭키는 본능적으로 이게 옳은 판단이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저희 둘이서 가기에는 위험하지 않을까요?”
“둘이 아닙니다. 저 혼자서 가겠습니다. 대신 컵라면님은 지금 즉시 웨인에게로 돌아가서 이 곳에 대한걸 알려주십시오.”
“…어쌔신 로드가 지원을 올 때까지 놈들이 허튼짓 못하게 막겠다는 거군요.”
“예.”
그게 퀘스트를 성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지금 전체적으로 웨인 쪽이 이기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여기서 쐐기를 박아버리면 퀘스트는 끝이야.’
처음에 이 퀘스트를 거절했던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자신이 한 손 거들면 웨인 쪽이 무난히 승리할 것이며, 자신은 달달한 퀘스트의 보상만 취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어서 가세요.”
“알겠습니다. 빨리 다녀올게요!”
고개를 끄덕인 컵라면이 은신을 시전하고는 사냥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달빛 암살자’ 라는 그의 직업은 이런 전령 역할을 수행하는데 최적이었다.
컵라면이 떠나고 난 뒤, 언럭키는 해골 군대를 끌고 저주받은 땅 안쪽으로 깊숙히 전진했다.
“자. 한 판 해 보자고.”
몸을 숨길 생각도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여기 있다고 홍보라도 하는 것처럼 날뛰었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
“가서 죽여라!”
“사태가 이렇게 된 건 전부다 저 놈 때문이다!”
잘 무장한 병사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총령이 영주가 되기까지 몇 걸음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한 놈 때문에 망쳤다.
검은 해골을 다루는 네크로맨서.
무조건 그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큰 역할을 한 건 맞았다.
심지어 이 곳은 총령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칼을 갈던 장소였는데, 여기까지 놈에게 발견되었다.
당연히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으리라.
부하들도 총령의 분노에 공감해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빨리 놈을 처치하고 다른 데로 이동해야 했다.
몰려오는 병사들을 보며 언럭키가 히죽 웃었다.
“이야. 경험치가 이게 얼마야. 하나, 둘…. 셀 수가 없네.”
포위해서 달려오는 놈들을 보니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레벨대도 만만치 않았다.
[두바르 총령의 정예 병사]
-레벨 : 85.
가장 수준 낮은 병사가 레벨 85.
80인 언럭키와는 5개나 되는 레벨 차이가 있었다.
물론 1대1로 붙는다면 박살을 낼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 쪽수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건 언럭키이지 않은가.
게다가 병사는 약한 축이었다.
[두바르 총령의 정예 어쌔신]
-레벨 : 87.
[두바르 총령의 정예 검투사]
-레벨 : 89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이지만 어쌔신도 있었고 검투사라는 녀석도 존재했는데, 레벨대는 더욱 높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기사가 없다는 거네.’
언럭키가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사는 육성이 굉장히 어렵다.
도시의 영주나 유력 귀족 가문에서 내려오는 비전으로 오랜 수련 끝에 탄생한다.
반면에 두바르는 무법자들의 도시였으며 태생적으로 음지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기사를 보기가 어려운건 당연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언럭키가 슬슬 눈치를 봤다.
오러를 뿜어대는 기사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작전은 바뀌었다.
무작정 후퇴에서 눈치껏 후퇴로.
“저 쪽으로 가자.”
언럭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향해 해골 기사 두 기가 달려갔다.
달려오는 병사들을 짓밟고 나아간다.
-다그닥 다그닥!
-퍼어억!
-콰직!
태생적으로 보병은 기병에게 약할 수밖에 없다.
“크아악!”
“끄윽!”
쓰러져 신음하는 놈들에게 달려든 건 해골 병사와 궁수였다.
마구 달려들어 칼질했으며, 궁수는 움직이면서도 쉴 새 없이 화살을 쏘아댔다.
-푹! 푹!
-서걱!
포위를 뚫는 법은 간단하다.
둘러싸이기 전에 뚫고 가면 그만이다.
해골들의 호위를 받으며 언럭키가 유유자적 빠져나갔다.
“크윽…. 몸만 멀쩡했어도 저런 놈은 그냥 잡아 죽이는 건데….”
“젠장….”
병사들이 안타까워 중얼거렸다.
총령의 부하들은 모두 생명체라서 저주받은 땅의 디버프를 받고 있었다.
힘 -15%, 민첩 -15%.
원래도 해골 군대의 스펙이 좋았는데, 저런 디버프까지 받고나니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적이 되어버렸다.
느려진 속도로는 포위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언럭키는 해골 기사의 뒤에 탄 채 멀쩡하게 도망쳤다.
병사들은 입술을 씹으며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총령이 어금니를 강하게 깨물었다.
“으드득. 결국 놓쳤군.”
도망치는 언럭키가 너무나 얄미웠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기반 시설을 살려서 후퇴한다. 어쌔신 로드가 추가 병력을 이끌고 오기 전에…”
그 순간이었다.
지시를 내리던 정예 검투사 한 명이 말을 하다 말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다시 오는 거지?”
도망쳤다고 생각한 언럭키의 해골 군대가 제자리에 멈추더니, 오히려 여기로 다시금 달려오는 것 아닌가!
놈의 해골 군대가 이 쪽을 향해 돌진했다.
“마, 막아! 방어 태세로 들어간다!”
“저 미친놈들이…!”
-다그닥 다그닥
가장 앞에 있는 해골 기사가 순식간에 질주해 오더니 들이박았다.
-콰앙!
그 뒤로 해골 군대가 치고 들어갔다.
사방에서 칼날과 비명이 휘몰아쳤다.
-콰지직!
-푹! 푹!
멀찍이서 구경하던 언럭키가 웃었다.
“내가 너희들을 두고 어떻게 그냥 가냐.”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필드 효과로 획득 경험치가 5% 상승합니다.]
경험치 덩어리들.
기사급이 있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튀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르다.
필드 디버프도 적용되고 있으니, 최대한 야금야금 싹 다 발라먹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