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정보상을 만난 뒤, 언럭키는 암시장 중앙 부근으로 더욱 들어갔다.
‘웨인의 퀘스트를 받은 게 다행이군.’
그가 붙여준 어쌔신 덕분에 불필요한 골드 지출을 많이 아꼈다.
요즘엔 모아놓은 돈도 조금 있고 미튜브도 잘 되고 있지만, 갚아야 할 빚이 15억이다.
아낄 수 있는 곳에서는 최대한 아껴야했다.
언럭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반대로 그와 달리 돈을 펑펑 쓰는 사람도 있었다.
“이거…저거…그리고 이것도….”
벨라는 신나서 이것저것 사고 있었다.
대장장이들을 위한 전문 재료들은 혼자서 사왔고, 지금은 언럭키와 합류해 여러 가지 잡템이나 아이템들을 보일 때마다 구입하고 있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지갑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언럭키가 부러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도대체 집이 얼마나 부자인거야?’
만약 빚이 없다고 쳐도, 언럭키는 저렇게 쇼핑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요즘 돈 좀 벌고 있다고 해도 이 암시장의 희귀 물품들은 가격대가 상당했다.
저걸 쓸어 담았다간 순식간에 통장 잔고가 0으로 떨어질 것이다.
언럭키가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벨라는 연신 미소 짓고 있었다.
‘행복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지 못해서 사는 나날들이었다.
가족들이나 선생님이 없었다면 정말로 안 좋은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최근 들어 그녀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다.
전부 다 월드 사가 덕분이었다.
지금껏 만난 NPC들이나 극소수의 유저들은 전부 좋은 사람들뿐이었고, 직업도 정말 잘 맞는 걸 선택했다.
대장장이는 마치 천직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생전 처음 타인과 다른 도시까지 여행을 오다니.
이렇게 마음속에서 행복감이 충만하게 솟아오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이쯤이면 됐어.’
벨라는 슬슬 물건 구매를 멈췄다.
옆에서 구경하던 언럭키는 마구잡이 쇼핑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벨라는 나름 기준을 정해서 구입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녀가 현재 하고 있는 퀘스트. 마법사용 아이템을 만드는 것에 연관이 있었다.
‘레전더리 아이템.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모은 재료와 자신의 실력이라면 그 결과물은 무조건 레전더리 아이템일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확신했다.
다만 조금 욕심이 나는 건 있었다.
‘하나만 더…딱 메인이 되는 재료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100레벨도 안 된 대장장이이면서 여러개의 레전더리와 유니크를 제작한 벨라였다.
그런 그녀가 슬슬 느끼고 있는 건, 등급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니크 중에서도 레전더리급의 효율을 보이는 아이템이나 스킬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레전더리도 그 안에서는 능력치가 천지차이로 달라진다.
최하급 레전더리와 상급 이상의 레전더리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어마무시할 정도로 말이다.
벨라가 지금껏 제작한 물건들은 전부 유니크나, 간신히 최하급 레전더리 정도.
하지만 이번에 두바르의 암시장에서 재료를 모으다 보니 확신이 왔다.
지금껏 모은 재료들과 더불어, 그 가운데에서 이것들을 합쳐줄 메인 재료가 있다면 그 이상의 것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그렇기에 벨라는 더욱 열심히 암시장 내부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혹시나 놓친 게 없나 한 번 더 꼼꼼히 살피면서.
***
암시장에는 단순히 사고 파는 것만 있지 않았다.
그 중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저기가 어디냐고 묻자 어쌔신 한스가 답해 주었다.
“사설 도박장 같은 겁니다.”
“도박장?”
“예.”
살짝 흥미가 생긴 언럭키가 조금 자세히 물었다.
“설명해 드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한번 보시는 게 이해가 더 빠르실 겁니다.”
한스가 사람들을 살짝 미치며 공간을 만들어 냈다.
“뒤질래? 누가 나를 밀쳐? 죽고 싶…히익!? 죄송합니다!”
눈을 부릅뜨던 사람들은 한스의 복장과 어깨에 있는 어쌔신 표식을 확인하더니 벌벌 떨면서 물러났다.
덕분에 편하게 구경할 수 있게 된 언럭키는 앞에 집중했다.
-뱅그르르.
여러개의 상자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데, 반투명한 상자여서 그 안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다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자, 자. 여러분의 행운을 시험해 보십시오. 혹시 모릅니다. 어마무시한 물건을 아주 싼 값에 살 수도 있어요. 그러면 바로 인생 역전입니다.”
사회자가 그 가운데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한스가 그걸 보며 설명해 주었다.
“저렇게 반투명한 상자 안에 넣고 회전까지 시키고 있어서, 아무리 눈썰미가 좋은 사람도 아이템의 정확한 스펙이 어떤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걸로 도박을 하는 거죠.”
“그렇군.”
한스의 말을 들은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돌아가는 구조인지 알 것 같았다.
“전부 쓰레기 같은 물건을 넣어두면 무조건 상인이 이득 볼 것 같은데?”
“하하. 그러면 아무도 안하겠지요. 실제로 저 중에는 성능 좋은 아이템이 몇 개 들어가 있습니다. 심지어 개수까지 명시가 되어있지요. 그렇게 안하면 여기서 장사 못합니다.”
“거짓말 치면 어떡해?”
“죽는 거죠. 주기적으로 어쌔신들이 검수를 나옵니다. 만약 사기라면 그 자리에서 사형입니다.”
과격하기도 해라.
어쨌거나 최소한의 신뢰는 보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런 거라면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하며 할 만 했다.
“흥미가 가시는지요?”
“약간은.”
한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언럭키가 살짝 가까이 다가갔다.
상인은 그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하하. 하나 구입해 보시지요.”
그는 옆에 있는 한스의 정체를 알아봤다.
어쌔신. 그런데 그 어쌔신이 모시고 있는 사내였다.
누군지는 몰라도 평범하지는 않을 터.
돈을 펑펑 써줄 가능성이 높았다.
“100골드짜리 저렴한 상자부터 1만 골드짜리도 있습니다. 당연히 1만 골드짜리 상자에서 좋은 물건이 나올 확률이 높지요.”
“상자는 내가 선택하는 건가?”
“물론입니다. 그래서 구매자분들의 행운을 시험하는 것이지요.”
상인의 주위에 놓여져 있는 수백 개의 상자들.
누군가가 구매해가면 새로 상자들이 채워진다.
이 중 대부분은 값어치보다 떨어지는 물건일 것이다.
보통 이런 식으로 하는 장사란 다들 그러니까.
“그럼 나는 저걸로 고르지.”
“…네?”
언럭키가 상자 하나를 가리키자 상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오랜 기간 단련되었는데도 차마 표정 관리를 못했다.
그러나 곧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정말 저걸로 고르시겠습니까? 특별히 손님께는 한 번 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하시지요, 후후.”
무언가 있어 보이는 듯한 화술.
그러나 언럭키는 속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그가 여기서 멈춰선 이유는 이런 판매 방식이 신기해서가 아니었다.
-파앗!
‘여기서도 초록색짜리가 있을 줄이야.’
빨주노초파남보 중에서 네 번째에 해당하는 초록색.
상자 중 하나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침없이 골랐다.
가격은 5000골드.
현실의 시세라면 대충 50만 원 정도 하는 금액이다.
그걸로 유니크 등급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니.
‘개꿀이군.’
“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손님. 손님이 특별한 분 같아서 제가 정말 마지막으로 기회를…”
상인은 숫제 애걸하다시피 말했지만 언럭키의 선택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
[신비의 알]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효과 : 특정 조건이 만족되면 알에서 생명체가 깨어난다. 생명체는 부화와 동시에 ‘펫’으로 부릴 수 있으며, 최소 유니크 등급 이상의 생명체가 탄생한다.
-특정 조건을 만족시킬 경우 태어나는 생명체의 등급을 높일 수 있다.
-해당 아이템 소유자에게 귀속된다.
언럭키가 뽑은 상자에서 나온 건, 주먹 두 개를 합친 것 만한 크기의 검은 알이었다.
등급은 무려 유니크.
“알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언럭키가 살짝 인상을 썼다.
무려 ‘초록색’ 이었으니 당장 전투력을 증가시켜줄 물건일거나, 그도 아니면 팔아서 현금화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까보니 바로 쓰지도 못하고, 귀속 템이었다.
‘아이템 설명 자체에 귀속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절대 못 파는데.’
일반적인 유니크 이상의 아이템도 기본적으로 귀속이다.
그걸 남에게 넘기려면 특수한 처리를 해야 양도가 가능했는데, 이건 그것도 불가능했다.
“…당분간 인벤토리 안에 박아놔야겠네.”
언제 부활할 줄 모르겠지만 설명만 보면 분명 쓸 만할 것이다.
실제로 월벤에 보면 펫 덕분에 이것저것 도움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그 후, 언럭키는 다시금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에는 ‘화난 바람 정령의 둥지’로 가겠습니다.”
두바르에 있는 수많은 사냥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화난 바람 정령]
-레벨 : 79.
레벨 78~80 사이의 화난 바람 정령들이 출몰하는 곳.
“샤아아아!”
“스아아!”
굴드란 늪지대보다 더 어려운 곳이었는데, 지금의 언럭키에게는 오히려 이런 곳이 더 좋았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서서히 진군하는 해골 군대.
바람 정령들이 그에 대적해 정령 마법들을 쏴댔다.
-휘오오오!
-서거걱!
바람으로 만들어진 칼날이나 돌풍이 몰아쳤다.
데미지도 상당하고, 베인다면 상태이상 ‘출혈’ 을 일으키기에 잘 방어해야 하는 공격들이다.
“다크 배리어.”
그러나 언럭키는 무작정 전진시켰다.
일단 상태 이상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피가 없는데 무슨 출혈이 나겠는가.
데미지도 다크 배리어로 1차적으로 막고, 그래도 입는 건 다크 힐로 회복시켰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부서질 때마다 회복하는 해골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정령들의 공격 범위까지 도달했다.
보통 정령은 특별한 상태가 아니라면 물리 공격에 면역이다.
과거 ‘검왕’이던 시절에는 그런 놈들도 문제없이 공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일반 마법사였다면 모를까, 아직까지는 네크로 엠페러로 쓸 공격 마법이 없었다.
그러나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화난’ 바람 정령.
이런 감정을 지닌 순간, 정령은 물리 데미지도 받게 된다.
100%는 아니고 조금 경감되지만, 크게 상관없다.
-다그닥 다그닥
-쾅!
해골 기사들이 돌진해 정령들의 진형을 흐트려 놓았다.
그 사이로 해골 병사들이 파고들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바깥에서는 혼란스러워 하는 정령들을 향해 궁수들이 화살을 쏘아댔다.
-푹! 푹!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정령들이 전멸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음! 다음!”
언럭키는 한 무리의 정령들을 없애자마자 빠르게 움직였다.
여기는 다른 유저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냥터이다.
당연히 몬스터 집적도가 말도 안 되게 높았는데, 특히나 화난 바람 정령의 둥지는 그게 더 심했다.
“언럭키님. 조심하십시오. 이번엔 여러 무리가 한꺼번에 옵니다.”
사냥 도중, 뒤에서 열심히 영상을 찍던 컵라면이 경고했다.
물론 언럭키는 진작에 알아챘다.
바쁘게 전투를 치르는 건 그의 소환수들이지 그가 아니지 않은가.
여유롭게 뒤에서 관찰이 가능하다보니 또 다른 몬스터가 다가오는 건 진작에 파악했다.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그는 오히려 좋아했다.
‘끊임없이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니. 이게 바로 천국이지.’
아무도 없는 사냥터 독점.
돈 한 푼 안내고 이런걸 할 수 있기에, 이 도시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샤아아아!”
“시끄럽고 네 친구들이나 더 많이 데리고 와라.”
언럭키가 해골들을 이끌고 정령들을 휩쓸었다.
***
화난 바람 정령의 둥지, 모래 두더지의 소굴, 사막 도적의 은신처.
일주일간 언럭키는 3개의 사냥터를 휩쓸 듯이 다녔고.
그 결과 레벨 79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