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화
두바르의 총령이 비밀 아지트를 차린 목적은 어쌔신의 육성이었다.
거기 책임자로 앉은 레데늑은 어느날 문득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잠깐만. 바로 앞에 굴드란 악어들이 널려있는데, 이거 잡으면 돈 좀 되지 않을까?’
굴드란 악어의 가죽은 비싼 값에 유통된다.
아지트 바로 앞에 널린 게 악어였으니 물량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사냥 방법도 문제 없었다.
예비 어쌔신들을 육성한답시고 그 교육의 일환으로 굴드란 악어 사냥에 투입했다.
피해가 조금 있었지만 어찌됐건 사냥을 잘 하고 그 가죽들을 입구 부근에 건조시켜 놓았다.
나중에 이 상태로 장인에게 넘기든 후처리를 직접 하든, 꽤 두둑한 뒷돈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침입자가 나타났을 때는 화가 나서 생각을 못했는데, 레데늑은 그 가죽들이 걱정되었다.
“침입자 놈이 가죽들을 그냥 두고 가지는 않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보물이 눈앞에 있는데 챙겨가지 않을까요?”
“제기랄.”
레데늑은 짜증을 부리며 자신의 말을 받아주던 어쌔신의 정강이를 깠다.
놈은 몰려오는 통증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성격 나쁜 레데늑에게 당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속으로 참을 뿐이었다.
레데늑은 그 후에도 씩씩거렸다.
“그 놈들이 제발 조심해서 챙겨놨길 바래야겠군.”
“…….”
“아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겠어. 야.”
“…예, 레데늑님.”
“육성 중인 교육생들 집합시켜. 그 놈들 기다리면서 천천히 습격하지 말고, 아예 단체로 잡으러 가라고 해. 내가 못 기다리겠다.”
“알겠습니다.”
선발대가 이미 침입자를 잡으러 갔다.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들 손에 사로잡혀 올 것이다.
하지만 부하는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데늑은 자신의 말에 토 다는 걸 싫어한다.
헛걸음이더라도 어쌔신들을 출격시켜야겠다.
부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라졌다.
레데늑은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그 침입자 놈은 하필 여기를 들어와서 나를 귀찮게 하고 있어.’
덕분에 평화로운 일상이 망가졌다.
그 대가는 놈에게 톡톡히 겪게 해주리라.
그 때였다.
“레, 레데늑님!”
침입자에게 가할 창의적인 고문 158종을 생각하던 도중, 아까 내보냈던 부하놈이 달려왔다.
“오. 잡아왔냐?”
“아, 아닙니다.”
“그러면? 침입자를 못 잡아왔는데 왜 여기에 얼굴을 다시 비춰? 죽고 싶은 거야?”
레데늑의 얼굴이 한껏 찌푸려졌다.
허나 곧 이상함을 느꼈다.
부하의 얼굴이 평소와 달리 사색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보, 보냈던 어쌔신들이 전멸했습니다.”
“뭐…!?”
***
“이야. 제가 던전 좀 돌아다녀 봤는데, 여기는 그 중에서도 정말 손꼽히게 좋군요.”
언럭키가 안면에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몬스터가 알아서 다가와주는 던전이라니. 무슨 맵핵이라도 쓴 것 같습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였다.
외계인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평가받는 월드 사가이기에, 해킹이나 기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보안은 엄청났다.
어떤 곳은 국가 차원에서 월드 사가의 방어벽을 뚫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해커들이 두손 두발 다 든 것이다.
어쨌거나, 언럭키는 지금 굉장히 기쁜 상태였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해골들이 포위하듯 몰아쳐 또 한 명의 어쌔신을 잡아냈다.
-띠링!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최초로 발견한 던전 효과로 경험치 획득량이 +150% 상승합니다.]
아지트의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았다.
직선으로 이어진 통로와, 중간 중간 훈련장으로 사용되는 것 같은 방들이 여러 개 있는 구조였다.
원래라면 이 방들을 모두 수색하면서 나아가야겠지만, 이 놈들이 뭘 잘못 먹었는지 알아서 공격해 들어왔다.
덕분에 언럭키는 진형을 짜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원래 암살자였던 그였기에 어떻게 하면 곤란할지, 무슨 방향을 노리고 들어올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그걸 토대로 해골들이 포위 진형을 짜거나 자신을 노린 놈들의 뚝배기를 날려주면 그만이었다.
-뻐억!
바로 이렇게.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최초로 발견한 던전 효과로 경험치 획득량이 +150% 상승합니다.]
“거 참 신기하네요. 네크로맨서가 어떻게 어쌔신을 이렇게 쉽게 잡지?”
컵라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업에도 상성이란 게 있다.
그렇기에 솔플보다는 파티 사냥이 강제되는 게임인데, 언데드를 부리는 네크로맨서는 다수와의 전투에 강하지만 암살에 약했다.
그러나 언럭키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어쌔신들을 죽여 댄 것이다.
“뭐, 운이 좋은 거죠.”
“운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죄송합니다. 저는 도움 되는 게 없네요.”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컵라면님은 영상만 잘 찍어주시면 돼요.”
컵라면도 ‘달빛 암살자’ 라는 레어 직업을 보유하고 있었다.
잠재력만 따진다면 여기서 등장하는 어쌔신들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여기 등장하는 몬스터들에 비해 레벨이 20 이상 차이가 난다.
애초에 컵라면은 50레벨이 되자마자 언럭키와 함께 두바르로 왔으니까.
오는 길에 경험치를 나눠 먹기는 했지만, 레벨 차이가 심해서 온전히 얻지 못했다.
그래도 54레벨까지 올리긴 했다만, 이 던전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카메라 찍는 거는 제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이니 자신 있습니다.”
“예.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언럭키는 언제나 그렇듯 혼자서 사냥하는걸 더 좋아했다.
-퍼억!
-콰직!
왕홀을 철퇴처럼 휘두르는 네크로 엠페러와 해골 군대가 파죽지세로 아지트를 휩쓸며 나아갔다.
‘슬슬 나타나는 빈도수가 줄은 것 같은데. 보스룸이 멀지 않았나?’
후다닥 가서 보스몹까지 처리해야겠다.
***
한편, 레데늑은 심장이 떨리는 기분이었다.
“다, 다시 말해 봐라. 어쌔신들이…다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혹시 몰라 부하놈에게 다시 물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쿵! 하고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키운 놈들인데 그 녀석들이….”
레데늑이 영혼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고하던 부하는 괜히 눈 마주치지 않게끔 고개를 숙였다.
얼핏 보면 부하를 끔찍이 아끼는 리더의 모습같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총령께 질책 받게 생겼으니 저러는 거겠지.’
언제나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남자. 레데늑은 그런 사람이었다.
부하로서 저런 상관을 모시고 있는건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는 총령이 아끼는 수하 중 하나였다.
“레데늑님. 그래도 어쌔신들이 죽기 전 입수한 정보가 있습니다.”
“다 죽어버린 놈들이 정보는 개뿔.”
“…….”
“그래. 들어나 보자. 뭐 좋은 정보라도 알아왔대? 약점 같은 거라던가, 아니면 부상이라도 좀 입혔대냐?”
“그건…아마 아닐 겁니다. 그보다는 침입자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것들입니다. 일단 두 명인데 그 중 한 명은 뒤에서 가만히 구경만 했고, 본격적으로 전투를 치르는 건 한 명뿐인 것 같습니다.”
이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소식이다.
한 명만 죽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만, 반대로 혼자서 다닐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레데늑은 부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리고 침입자 네크로맨서는 특이하게 검은 뼈의 해골들을 소환한다고 합니다. 기사처럼 보이는 개체가 둘, 병사 여덟, 궁수 여덟입니다.”
최악의 소식이었다.
“검은 뼈…?”
총령의 오른팔이었기에 레데늑은 이런 저런 소문을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중에는 악신 교단 ‘리바 델 레이’의 전설. 검은 뼈의 해골에 대한 것도 있었다.
그 광신도 놈들이 모시는 신이 인간 시절에 부렸다던 해골이 분명 검은 뼈라고 했었다.
“분명 그 이름이…네크로 엠페러 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예?”
자그맣게 중얼거린 레데늑의 말을 잘 못 듣고 부하가 되물었지만 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큰 고민에 잠겼다.
‘이건 답이 없군. 도망쳐야겠다.’
그리고 곧 결론이 나왔다.
총령님께 어쌔신들을 다 잃고 육성 실패로 질책 받는걸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짧은 시간에 부하들이 다 죽어나갔다.
가만히 있다가는 네크로 엠페러에게 자신마저 목숨을 잃겠지.
‘후.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다시 또 개처럼 일해야겠군.’
그가 모시는 총령은 차가운 사람이었다.
인정머리는 전혀 없고, 오직 실적과 성과로 부하들을 판단했다.
그렇기에 레데늑이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밑에 애들 알아서 갈궈주고, 잘나가는 놈들 끌어내리고, 이간질하고…
그렇게 간부까지 올라왔지만, 그것도 오늘까지일 것이다.
한 번 잃은 총령의 신뢰를 복구하려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할 터.
바쁘게 움직여야겠다.
“너.”
생각 정리를 마친 레데늑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부하를 쳐다봤다.
“예 레데늑님.”
“마지막 명령을 내리겠다.”
“말씀하십시오.”
“여기 남은 모든 병력을 이끌고 침입자를 막아라. 죽일 수 없을 것 같으면 최대한 시간이라도 끌어.”
“…그러면 레데늑님은요?”
“나는 일단 빠져나가서 총령님께 지원을 요청하러 다녀오겠다.”
“…….”
부하는 어이가 없었다.
저게 무슨 뜻인지는 바로 알아챘다.
평소에 레데늑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는 많이 겪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하니 자기 혼자 도망칠 동안 시간을 벌라고 하다니.
심지어 그런 말을 하면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을 만큼 뻔뻔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
“…아닙니다.”
그러나 부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면서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포악한 심정은 여기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겪었다.
그게 반복되면서 부당한 명령에도 저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저항 한다고 해도 뭘 할 수도 없다. 쓰레기이긴 하지만 레데늑은 강했으니까.
“그래.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해라. 나도 가겠다.”
“…….”
부하는 차마 일어서는 레데늑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레데늑의 머릿속에, 부하에 대한 것은 전혀 없었다.
‘빠르게 챙길 것만 챙겨서 튀어야겠군.’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비싼 것 위주로 골라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덜컹.
커다란 소리가 들리자 움직이던 부하와 레데늑의 발걸음이 우뚝 굳었다.
“서, 설마 벌써…?”
믿을 수 없다는 듯 레데늑이 입구 쪽을 살폈다.
선발로 보냈던 어쌔신들이 전멸했다고는 하지만, 여기까지 오려면 그 외에 다양한 함정과 교관 역할을 하던 어쌔신들까지 넘어야 했다.
그렇기에 약간의 시간이 있다고 판단했던 건데…
-저벅. 저벅.
문이 열리고 어둠에 물든 저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실루엣만 얼핏 보였는데, 로브를 펄럭이면서 걸어오는 침입자의 모습을 보자 절로 목덜미에 소름이 끼쳤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검은 로브에 검은 왕홀을 든 남자.
그리고 그가 부리는 새카만 뼈의 해골들이 들어오더니 붉은 눈빛을 빛내며 내부를 포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