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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92화 (92/218)

#092화

언럭키는 인상을 굳힌 채 헤탄의 오두막을 나왔다.

원래 이 오두막은 항상 기분 좋게 오가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표정이 딱딱한 이유가 있었다.

[다크 와이번 대장의 가죽(일부)]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특징 : 재료 아이템.

-아이템 효과 : 어둠에 물든 다크 와이번 종족을 이끌던 대장의 가죽 일부이다. 뛰어난 대장장이가 다룰 경우 최소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보장된다. 단, 실력이 부족한 대장장이가 다룰 경우 그 이하 등급이 나올 수 있다.

“하아….”

그래.

눈앞에 있는 이 가죽 묶음 때문이었다.

-지난번 리바 델 레이 분타에서 가져온 보물들. 그 중 대부분은 못 쓰게 되었어. 저주가 아주 지독해서 도저히 고칠 수가 없더군. 고위 사제 이상은 되어야 어떻게 손이라도 대볼 텐데…그만한 분을 초빙하기도 전에 저주가 완전히 침식되어 대다수가 쓰레기가 되어버렸네.

모든 건 반오 사제 때문이었다.

그 쫌팽이 사제는 얼마나 지독한 마음씨를 지녔던 건지, 보물을 적법한 절차를 거쳐 반출하지 않는다면 저주에 휩싸이도록 해놓았다.

급하게 호르헤른에게 가져갔지만 그의 수하들도 저주를 해제하는 건 어려웠다.

그나마 건진 게 이 가죽 묶음을 비롯한 몇 가지 물건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니크 등급 퀘스트인 주제에 유니크급 보상이 2개나 되었던 거군.’

월드 사가를 너무 만만히 봤다.

쓸데없이 유저에게 마구 퍼줄 만큼 친절한 게임이 아닌데, 퀘스트 하나에 유니크를 2개나 준다니.

문제가 있는 장물(?) 이었기에 이렇게 해준 것이다.

그래도 마냥 나쁜 건 아니었다.

재료 아이템이라고 하지만 이것 역시 유니크는 유니크.

잘 가공하면 훌륭하게 써먹을 수 있다. 그 과정이 조금 귀찮을 뿐이지.

“일단…두바르를 찾아가야겠군.”

어쨌거나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개털이라고 생각한 보스몹에게서 나온 잡템이 사실 퀘스트 아이템이었다니.

초대장이 있으니 도시 입장은 따 놓은 당상이라며 일단 보상부터 받았다.

다행히 헤탄은 억지를 들어 주었다.

이제는 위치만 알아내서 찾아가면 그만이다.

언럭키가 여기저기 정보를 좀 알아보기 위해 움직이려고 한 순간이었다.

-톡톡.

누군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때 언럭키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혹시 경비병인가? 나를 체포하려고?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누구…?”

그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눈에 익은 백발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차가운 표정의 미녀가 살짝 웃고 있었다.

“벨라님?”

그녀를 알아본 언럭키의 얼굴이 환해졌다.

***

벨라를 다시 봤을 때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다크 와이번 가죽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벨라의 직업은 아주 수준 높은 대장장이이다.

도시에서 가장 실력 좋다는 대장장이 NPC조차 제발 자기 기술을 배워달라고 무릎 꿇고 빌 정도로 말이다.

‘대충 망치만 두드려대도 레벨이 오르는 개꿀 직업이기도 하고 말이야.’

언럭키는 대장장이들만이 갖는 고민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런 벨라이기에 다크 와이번 가죽을 이용해서 아이템을 만들어 줄 최적의 상대였다.

그녀라면 어설픈 실력으로 귀중한 재료를 망치지 않고, 오히려 100% 이상의 효율을 끌어내 주겠지.

두 번째는 지난번 영상 반응 때문이었다.

미튜브에 관한 건 컵라면과 이용승에게 대부분 맡겨두지만, 그 역시 모니터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수익과 직결되는 부분이니 오히려 자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는 편이었다.

너무 자주 들여다봐도 괜히 잡생각만 많아지니까 말이다.

그런데 최신 영상에서 벨라는 잠깐 등장한 것에 비해 엄청난 호평을 얻었다.

그녀의 재출연을 요구하는 댓글이 한가득이었던 것이다.

‘잘하면 미튜브에 한 번 더 나올 수 있으려나?’

지난번 영상은 아주 짧게 나오는 거라 은근슬쩍 넘어갔다지만, 사실 정석대로라면 그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눈치를 보아하니 다행히 그걸 탓하지는 않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가능하다면 아예 이번 기회에 제대로 허락도 구하고 좀 더 길게 영상도 찍어볼까 싶었다.

“벨라님. 잘 지내셨어요?”

“…네.”

그녀의 대답에 언럭키의 눈이 살짝 커졌다.

고개만 끄덕거리던 그녀가 말로 대답을 해주다니?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어쩌면 반쯤 무시하는 것 같은 태도에서 그래도 대답이라도 해주니 기분이 좋아져서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다.

벨라 역시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언럭키의 말에 한 마디 대답하는 것조차 힘겹게 입술을 움직인 결과였다.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는 그러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언럭키를 상대로는 해 볼만 하게 느껴졌다.

“크흠. 안 그래도 벨라님을 언제 한 번 다시 뵙고 싶긴 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뜻하지 않게 이런 물건을 얻었거든요.”

언럭키가 인벤토리에서 슬쩍 다크 와이번 가죽을 꺼냈다.

잘 접혀져 있는 시커먼 가죽 뭉치를 본 순간 벨라의 표정이 변했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어설픈 모습을 사라지고 대장장이의 눈이 되었다.

“이거…. 제가….”

“벨라님이 다뤄보고 싶으시다고요?”

언럭키의 말에 벨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럭키가 활짝 웃었다.

“얼마든지요!”

***

벨라를 처음 봤을 때, 언럭키는 그녀를 약간 질투(?) 했었다.

좋은 직업에 편하게 레벨업 하는 것 같아 보여서였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하지 않지만, 이제는 질투 보다는 어떻게든 잘보이고 싶었다.

‘올마스터라는 내 직업에 벨라님만큼 딱 어울리는 사람도 없지.’

다양한 아이템을 취급해야 하기에 실력 있는 대장장이는 필수였다.

심지어 그녀의 출현만으로 미튜브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가.

대룡 그룹 직계가 운영하는 빅드래곤 길드마저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 당연히 친하게 지내둬야 했다.

그래서 언럭키는 살짝 과장해서 자신에 대한 것들을 말해주었다.

“하하. 제가 이번에 퀘스트를 하나 하게 됐거든요. 아…이거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민망한데 굉장히 좋은 퀘스트이거든요.”

“…….”

“벨라님 보여드렸던 재료 아이템도 보상 중 일부분으로 받았을 정도에요. 굉장하죠? 하핫.”

“…….”

벨라는 빙긋 웃으며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이 대화가 즐겁다는 듯 말이다.

“제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껏 이런 퀘스트를 많이 해오곤 했죠. 크흠. 진짜 자랑은 아닌데 벨라님께 앞으로 이런 재료도 얼마든지 제공해드릴 수 있을 거예요.”

언럭키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애써 진정시켜야했다.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건 조금 창피했다.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벨라는 아마 여기서 더 성장하면 수많은 길드에서 러브콜을 받을 것이다.

뛰어난 대장장이란 그런 존재였다.

‘심지어 아무리 커스터마이징한 외모라도 저 얼굴이면 길드 홍보대사감이기도 하고.’

그때 가서 찬밥 신세가 되느니, 차라리 지금 자랑 좀 하면서 그녀가 자신을 필요로 하게 하는 게 낫다.

실제로 벨라의 눈빛이 변했다.

“…도시요?”

“오, 네. 새로운 도시입니다. 하하. 거기가 숨겨져 있어서 사실 일반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는 그런 곳인데 저는 이미 초대장까지 있는 거 있죠?”

벨라가 관심을 갖다 언럭키가 기관총처럼 말을 뱉었다.

그러자 벨라가 언럭키의 옷깃을 붙잡았다.

“저도….”

“네?”

“저도…같이 가요.”

“?”

***

‘다크 와이번 대장의 가죽…. 이건 정말 좋은 재료인데….’

벨라는 언럭키가 재료를 보여줬을 때부터 눈이 반짝였다.

재료 자체만으로 유니크 등급을 받는 건 쉽지 않다.

이건 대장장이의 실력으로 레전더리 등급까지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자신의 직업 ‘헤파이스토스의 후계자’는 좋은 재료로 물건을 만들면 경험치와 레벨이 오른다.

이 도시의 대장장이 NPC로부터 받은 퀘스트는 마법 아이템 제작이었다.

그러려면 몇 가지 촉매와 특별한 재료가 여럿 필요했다.

여기에서는 그걸 구할 방법을 못 찾아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도시라니….’

전에 친오빠에게 들었던 암시장이 존재하는 도시.

텔르흐렌에는 암시장이 없지만 다른 도시는 모른다.

심지어 언럭키가 말한 건 입장부터 까다로운 도시라고 하지 않나.

그런 곳에 진귀한 재료나 아이템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라면 다크 와이번의 가죽과 합쳐서 마법 아이템을 만들 재료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혹시나 거절당하면 어떡하나 싶어 가슴이 쿵쾅거렸는데, 언럭키는 흔쾌히 받아 주었다.

“예. 그러시죠!”

언럭키는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그녀와 조금이라도 접점을 늘려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바로 기회가 생기다니!

그는 벨라의 눈치를 보더니 헛기침을 한 번 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크흠. 아 그리고 벨라님. 제가 미튜브를 하지 않습니까. 평상시에도 그 영상을 자주 찍거든요.”

“…네.”

“이게 계속 업로드를 하려면 평소 일상 영상도 많이 찍어둬야 합니다. 근데 벨라님과 함께하면 영상에 조금 나오게 되실 수도 있는데…”

여기서 힐끔. 언럭키는 한 번 더 그녀의 눈치를 살피고는 재빨리 말했다.

“혹시 괜찮으실까요? 물론 엄청 많이 찍겠다는 건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나올 거라는 뜻입니다, 하하.”

그 말에 벨라는 고민했다.

미튜브에 출현하는 것. 원래라면 생각도 안하고 거절했을 것이다.

아직 그렇게 나서기에는 자신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전 언럭키의 영상 속 자신을, 사람들은 좋아해 주었다.

많이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다른 감정도 들었다.

언젠가부터 꽁꽁 숨기만 했던 자신이 이런 기분을 느낀 게 얼마만이었는지.

-화영 씨. 언젠가 준비가 되셨을 때 저는 화영 씨가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어요.

주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의사 선생님이 해 주셨던 말씀이다.

벨라는 용기를 내라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직감했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돌렸다.

조마조마한 표정의 언럭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얼굴이 그녀에게는 굉장히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네. 좋아요. 저도…미튜브에 나오는 거 괜찮아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벨라.

“아주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핫.”

언럭키의 입꼬리가 활짝 올라갔다.

***

언럭키는 언젠가부터 혼자서 1인칭 액션캠 위주로 영상을 찍었다.

뒤에서 그의 모습을 담아줄 카메라맨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건 그가 너무 빨리 레벨을 성장시켜서 카메라맨인 컵라면이 따라오는 게 늦었기 때문인데, 그 컵라면이 이번에 텔르흐렌으로 입성했다.

“언럭키님. 저 왔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너무 늦어버렸네요.”

컵라면이 면목 없다는 듯 말했지만 언럭키는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아주 좋은 때에 오셨습니다! 제가 누구를 섭외했는지 아십니까?”

“누군데요?”

언럭키는 대답 대신 한 걸음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 슬쩍 숨어있던 벨라가 고개를 푹 숙이고 나왔다.

“벨라님이 제 미튜브에 출연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오!!”

컵라면이 저도 입을 틀어막았다.

그 역시 벨라가 잠깐 등장했던 영상의 파괴력을 실감했기에, 이 상황에 환호성이 나올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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