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화
언럭키는 새로 시작한 월드 사가 미튜버 중에 가장 주목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입이 시작하기 너무나 어려운 레드 오션 소리를 듣는다지만, 언제나 걸출한 인재는 튀어나온다.
최근 몇 달 사이에는 그게 언럭키였다.
그리고 그런 언럭키의 최근 영상은, 조금 다른 의미로 화제가 되었다.
<아니 저 유저 분 너무 예쁜데?>
광신도들의 마을에서 아주 잠깐 나왔던 대장장이 벨라의 모습.
그녀가 대중의 눈에 띈 것이다.
아름다운 외모에 무뚝뚝한 표정, 반대로 커다란 도끼를 짊어지고 나무를 캐는 행동은 보는 사람의 심금을 크게 울렸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들이 한데 어우러지자 굉장히 눈길을 끌게 만든 것이다.
심지어 대놓고 소개한 게 아니라 스쳐지나가듯 등장했기에 더욱 애를 태웠다.
<그 분 언제 다시 등장하나요?>
<다음 영상에 무조건 나오는 거 맞죠?>
언럭키의 영상에 남겨진 댓글이었는데, 좋아요로 공감한 숫자가 상당히 높았다.
당연히 그 당사자로서는 마음이 불편했다.
대장장이 벨라. 김화영은 댓글을 읽으면서 귀가 새빨개졌다.
언제였더라. 고등학생 때 이후로 가족이나 의사 선생님 이외에 예쁘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은 적은 처음이다.
물론 그때 이후로 집 밖을 거의 안 나간 이유가 컸다.
남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댓글로 자신에 대한 걸 읽는데도 마음이 그닥 불편하지 않았다.
이유는 그녀도 잘 모르겠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그게 아니면 가상의 캐릭터라서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 분도 이걸 봤으려나?’
피식 웃은 김화영은 월드 사가에 접속했다.
처음에는 치료 겸 취미 생활로 한 게임이었지만 지금은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다.
언젠가 강철갑옷을 입는 슈퍼히어로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그녀가 대장장이를 고른 이유였다.
영화 속 주인공이 동굴 속에서 망치질 하는 모습. 그게 머릿속에 가득 박혔다.
그렇기에 ‘헤파이스토스의 후계자’ 라는 직업을 얻었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다만 아무리 레전더리 직업이라도 훌륭한 대장장이로 성장하는 건 쉽지 않았다.
다양한 NPC들을 만나고 여러 종류의 물건들을 만들어 봐야 했다.
어느덧 레벨은 69. 이 도시 텔르흐렌과의 작별도 멀지 않았다.
이 곳의 영주 직속 NPC에게 지금 배우고 있는 건 마법사용 아이템 제작이었는데, 이게 참 골머리를 썩혔다.
‘재료가 까다로워.’
마법사용 재료들은 구하기가 어려웠다.
도시에서 취급하는 일반적인 물품들로는 한계가 있었다.
친오빠에게 전에 얼핏 듣기로는, 어떤 도시에서는 귀중한 물건들이 많이 나오는 암시장이 존재한다는데.
아쉽게도 텔르흐렌에는 그런 게 없었다.
퀘스트가 턱 하고 막혀 며칠째 방황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뚫고 갈 수 있을까.
그녀가 도시를 산책하며 사색에 잠겼다.
지나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게 부담스러워서 로브의 모자를 깊숙히 눌러썼다.
‘커스터마이징을…좀 할걸 그랬어.’
별 생각 없이 머리색 정도만 바꿨는데, 아예 얼굴을 좀 평범하게 만들 걸 그랬다.
그나마 다행인건 가상 세계이다 보니 미남 미녀가 널려 있어서 남들의 시선이 오래 느껴지지 않는 달까.
영상 속 댓글은 괜찮아도 아직 직접 사람을 마주 대하는 건 어려웠다.
‘어…!?’
그렇게 움직이던 때, 그녀의 눈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들어왔다.
조금 전에 봤던 영상 속 주인.
언럭키가 마치 자기처럼 로브를 뒤집어 쓴 채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
두근 두근.
언럭키는 떨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앞으로 걸어갔다.
성문 옆에 서서 창을 들어올린 채 날카로운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는 경비병들.
도시 텔르흐렌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저들을 봤다.
그때는 저들 앞에서 당당했다.
오히려 과하게 어깨를 폈다. 언럭키는 이전에 지나쳐온 도시에서 무려 영주와 인연을 맺고 오지 않았던가.
텔르흐렌 출신 유저를 사로잡으면서 포상금도 받았기에, 자신 있게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크흠…. 좀 지나가겠습니다….”
로브를 뒤집어 쓴 언럭키가 소심하게 말하며 걸어갔다.
아라베크의 진혼 로브가 아닌, 전에 상점에서 구입했던 노멀 로브였다.
아라베크의 진혼 로브는 설명에 보면 옛날 전설적인 네크로맨서가 착용한 물건이라고 나온다.
그래서 안에 집어 넣었다.
겉으로 보기엔 크게 이상한 게 없지만, 혹시 모르지 않나.
경비병들이 알아보고 체포하면 큰일이다.
“…….”
날카로운 경비병들의 눈빛을 받으며 언럭키가 성문을 통과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휴. 쫄려서 뭐 하지를 못하겠네.’
사실, 어쩌면 언럭키 스스로 그냥 발 저리는 걸 수도 있다.
도시의 경비병들은 굳이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카르마 수치가 높지 않으니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잡혀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만약에 사고를 치면?
‘끝장이지 그럼.’
그리고 그냥 사고를 치는 것 말고, 도시 근처에서 사냥을 하는 것도 위험하다.
사냥 중에는 필연적으로 해골 병사들이 모습을 보일 텐데, 도시 내부나 가까운 사냥터에서 해골을 소환했다가 경비병들의 눈에 띄면 그대로 잡혀갈 수도 있는 것이다.
왜 평범한 도시에서 어둠 계열 유저들이 안 보이는지 알 것 같았다.
월벤에 떠도는 소문에는 그들만이 출입하는 도시가 따로 있다고 하기는 한데…
‘아니…근데 그렇다고 이렇게 투자한 직업을 바꾸는 것도 좀 그런데….’
네크로 엠페러는 포텐셜이 굉장히 높은 직업이다.
지금도 이런데 나중에 고레벨이 되어 성장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일단 조금 힘들어도 이렇게 가 볼 생각이었다.
언럭키는 로브 모자를 한껏 누른 채 헤탄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자네 왔는가.”
문을 두드리니 헤탄이 그를 반겨주었다.
“어서 오게. 오는 길에 고생했네.”
“후우. 이것도 여러 번은 못할 짓이네요.”
“허허. 잘못 걸리면 꼼짝없이 감옥에 가야하니 뭐.”
헤탄이 껄껄거리자 언럭키가 그를 쏘아봤다.
“이게 웃깁니까?”
“후후. 미안하네. 자네의 능력이 새삼 신기해서 말이야.”
헤탄을 포함해 호르헤른과 연관된 NPC들은 언럭키가 직업을 여러 번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검사였다가 그 다음에는 암살자, 지금은 네크로 엠페러인 걸 다 봤으니 당연했다.
신기해하긴 했지만 그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함께 해 온 것이 있기 때문에 네크로 엠페러가 된 후에도 편견 없이 대해주기도 했다.
“그러면 헤탄님이 여기 영주님한테 말씀 좀 해주시면 안 됩니까? 저는 착한 네크로맨서라고요.”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나 같은 호르헤른님의 부하들이야 그 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지만, 여기 영주는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걸세.”
“의심이라면…?”
“뻔하지. 네크로맨서와 손잡고 도시를 어떻게 해보려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아….”
언럭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그 문제는 넘어가죠. 이번에 부르신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아아. 그것 말이군.”
헤탄이 양 손을 깍지 꼈다.
“이번에 우리가 리바 델 레이 분타를 괴멸시키는 성과를 내지 않았는가.”
“그렇죠.”
“호르헤른님이 그걸 듣고 크게 기뻐하셨네. 그리고 결단을 내리셨지.”
“결단이라면…?”
“놈들을 완전히 궤멸시키는 것!”
탕!
헤탄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좀 도와주게.”
“물론입니다.”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바 델 레이에 개인적인 악감정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반오 사제의 인성에 치가 떨리긴 했었지만 놈은 이미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건 놈들이 부유하다는 점이었다.
한낱 분타에도 대결계를 유지시키는 보물과, 레전더리와 유니크 급 아이템이 여러 개 있었다.
본단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있을 것인가?
그걸 생각하면 호르헤른의 의뢰는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사로잡은 부제들을 심문했는데, 그들은 본단에 대해 아는 게 없더군. 정말 폐쇄적인 조직이야.”
리바 델 레이는 위에서 아래로 필요할 때만 명령이 내려오는 구조였다.
조직원들도 자신들이 매일 보는 사람 아니면 다른 사람은 잘 몰랐다.
그렇기에 언럭키가 아르만시아로 위장해서 잠입할 수 있었던 거지만, 반대로 말하면 놈들에게서 정보를 빼는 것도 어렵다는 뜻이었다.
“교단 본단에 대해 제대로 아는 놈이 그렇게 없습니까?”
“하나도 없었네.”
헤탄이 한숨을 쉬었다.
최소한 위치라도 알아야 공격을 할 텐데, 부제들은 자신들이 지내던 분타 말고는 아는 것이 아예 없었다.
그나마 사제급이라도 살아있었다면 몰랐을까, 그들은 전부 언럭키의 경험치가 된지 오래였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에게 부탁할 게 있네.”
“말씀하십시오.”
“이 곳 텔르흐렌 바깥의 평원 어딘가에 ‘도시’가 하나 있다고 하네. 나도 소문으로만 들은 곳인데, 온갖 범죄자들이 모여드는 무법 지대라고 하는군.”
평범한 사람은 입장조차 불가능한 곳.
언젠가 월벤에서 지나가는 글로 어둠 속성 유저들만이 입장 가능하고 모이는 도시가 따로 있다고 하던데.
헤탄이 말하는 건 아마 거기 같았다.
“거기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리바 델 레이의 정보가 여럿 있을 거야. 자네한테 죽은 반오 사제 역시 한번 씩 그 도시에 갔었다고 하니 그 흔적도 있겠지. 그러니 거기서 본단에 대한 정보를 알아봐 주게.”
“본단에 대한 정보…. 알겠습니다.”
-띠링!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쉽지 않을 거야. 일단 도시 자체가 꽁꽁 숨겨져 있거든. 호르헤른 가문의 정보원인 나조차도 그게 어디 있는지, 어떻게 들어가는지조차 알지 못 해. 간신히 알아낸 건 도시의 이름뿐이었네.”
“도시의 이름이 뭡니까?”
“두바르.”
그 순간 눈앞에 퀘스트창이 나타났다.
[퀘스트 : 도시 두바르에서 리바 델 레이 본단의 정보 찾기.]
-퀘스트 등급 : 유니크.
-퀘스트 설명 : 정보원 헤탄으로부터 숨겨진 도시 ‘두바르’의 정보를 들었다. 음지의 정보가 모이는 무법자들의 도시. 그 곳에 가서 리바 델 레이 본단의 정보를 찾아라.
-퀘스트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도시 두바르에 입장할 경우 유니크 등급 아이템 1개 제공.
-리바 델 레이 본단의 정보를 알아올 경우 유니크 등급 스킬 1개 제공.
-퀘스트 성공 시, 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퀘스트는 역시나 훌륭했다.
도시에 들어가면 유니크 등급 아이템을 주고, 정보를 얻으면 스킬까지 준다.
총 두 개의 유니크 템을 주는 것 아닌가.
현실의 값어치와 비교하면 성공 보수로 몇 천만 원을 준다는 뜻이었다.
‘역시 줄을 참 잘 잡았어.’
호르헤른이라는 NPC를 알게 된 건 참 행운이었다.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Y/N]
그 때였다.
‘아, 잠깐만.’
찬찬히 퀘스트 창을 읽어보던 언럭키의 머릿속에 문득 얼마 전에 얻었던 물건이 떠올랐다.
해골 마법사의 은신처에서 보스 몬스터 젠킨스를 잡고 개털이었다며 짜증냈을 때.
놈에게서 드랍했던 물건이 있었다.
작게 접힌 한 장의 종이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사막 도시의 초대장]
-아이템 등급 : X
-이 초대장의 보유자는 사막의 도시 ‘두바르’로 출입할 수 있다.
“…….”
언럭키가 입을 쩍 벌렸다.
곧바로 정신 차리고는 말을 이었다.
“헤탄님.”
“더 물어볼게 있나?”
“아뇨. 일단 유니크 아이템부터 주세요.”
“음?”
언럭키가 초대장을 보여주었다.
-띠링!
[퀘스트를 1/2 성공하셨습니다.]
“아직 도시에 들어간 건 아니지만 이 초대장이 있으면 무조건 입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주세요.”
“…….”
헤탄도 입을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