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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90화 (90/218)

#090화

언럭키는 기대어린 얼굴로 보스 몬스터가 죽은 자리를 확인했다.

허나 그는 곧 인상을 찌푸렸다.

“…에이씨.”

명색이 보스몹이라는 놈이, 남긴 건 고작해야 돈주머니뿐이었다.

남색이나 보라색. 최소한 파란색 정도는 떠주길 바랐건만, 그 이하조차 안 된 것이다.

“개털이네. 그러면서 무슨 도둑놈 어쩌구저쩌구 한 거야?”

오는 길에 일반 몹 잡고 해골 기사 스킬북을 얻었을 때부터 알아 봤어야 하는데.

“지 소환수보다 못한 놈.”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고, 설마 보스몹이 아무것도 안 줄 줄이야.

그나마 다행인건 골드는 꽤 많이 나왔다.

던전 보너스로 골드 획득량까지 올라가기에 그런 것 같은데, 당연히 이 정도로는 성에 안찬다.

언럭키는 쉼없이 궁시렁 거리면서 잡템들을 싹 다 챙겼다.

그러다 눈에 띈 게 있었다.

곱게 접힌 편지 한 장이었는데, 언럭키의 ‘눈’이 뒤늦게 편지에서 빛이 흘러나오는걸 발견했다.

-파앗!

빛의 색은 초록색.

빨주노초파남보의 네 번째에 해당하는 색이었다.

그래서 의아했다. 얼핏 보기에는 잡템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는데, 뭐 특별한 게 있나?

[사막 도시의 초대장]

-아이템 등급 : X

-이 초대장의 보유자는 사막의 도시 ‘두바르’로 출입할 수 있다.

사막의 도시 초대장.

아이템 설명을 읽었지만 언럭키의 의문은 계속됐다.

‘두바르? 그런 도시가 있었나?’

지금 그가 있는 곳은 텔르흐렌에서 멀리 떨어진 평원이다.

리바 델 레이 분타를 괴멸시키고 여기까지 왔지만, 어쨌거나 근처 도시는 텔르흐렌 뿐이다.

그렇다고 다음 도시나 이전 도시들 중에서도 저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일단 어떻게 써먹을지 모르니, 언럭키는 초대장을 인벤토리 안에 잘 보관했다.

***

지난번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 올린 영상은 성공적이었다.

아주 잠깐 등장했던 벨라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백현, 박세훈, 이용승이 아침 식사 겸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을 세워 보죠.”

이들이 고민하는 건 영상에 송출된 광고 문제였다.

대룡 미디어를 광고해 주고 그 대가로 계약금을 받았다.

이만한 돈을 받아도 되나 걱정스러웠지만 추후에 담당자인 이혜미를 통해서 그들 역시 만족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의외로 광고 효과가 굉장히 좋았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고민이었다.

“성 팀장도 이 광고로 우리가 광고비를 꽤 받았을 거라고 추측할 거야.”

성강호 팀장. 항상 그가 문제였다.

그 역시 백현을 눈여겨보고 있을 것이다.

항상 지켜보진 않겠지만 그래도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의 영상을 전부 모니터링 하긴 하겠지.

그렇다면 광고에 대한 것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백현에게 큰돈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면?

“전에도 말했지만 돈 많이 생겼다고 해서 그걸 갚아버리면 안 돼. 성 팀장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박세훈의 말에 백현과 이용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세 사람의 빚을 한 번에 갚고 여길 떠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최대한 납작 엎드리며 기회를 살펴야 한다.

성 팀장은 백현을 노리고 있다.

그가 큰돈으로 빚을 갚으려 한다는 걸 알게 되면, 백현을 억압하기 위해 성 팀장이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고 얻은 수익을 은닉할 수는 없잖아요.”

박세훈이 장부를 대신 써주기는 하지만 뻔히 아는 입출금 내역을 대놓고 속일 수는 없다.

성 팀장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짓을 눈감아 줄 리가 없었다.

“그렇지.”

박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다 써버리는 거야.”

“다 쓴다면…어떻게요? 여기서 뭐 배달 음식을 시킬 수도 없잖아요, 형님.”

대답한 건 이용승이었다.

우물우물 밥을 먹고 있는 그를 박세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봤다.

“이용승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참 단순…아니, 정직하네. 배달 음식으로 몇 천만 원을 어떻게 털어.”

단순 무식하다고 할 뻔한 걸 급하게 돌려 말했다.

말하고 나서도 박세훈은 이상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이용승 씨 생긴 게 좀 그렇긴 하지?’

거대한 키와 덩치. 심지어 단순히 살 찐 게 아니라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용승은 여기 갇혀 있느라 운동과 영양을 제대로 챙길 수 없어 몸이 작아졌다고 몇 번 툴툴거렸지만, 박세훈이 보기에는 지금도 충분히 컸다.

하루 종일 작업장에서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미튜브 편집을 할 텐데 도대체 언제 자고 언제 운동하는지 모르겠다.

“돈 쓸 일이야 찾아보면 널렸지.”

그러면서 박세훈은 백현을 쳐다봤다.

“백현씨는 월드 사가를 하고 있잖아. 사고 싶은 아이템이나 스킬 없어?”

“너무 많아서 문제죠.”

“그럼 이번 기회에 사면 되겠네. 성 팀장을 속여 넘겨야 하니까 크게 질러야 해. 대충 이번에 계약금으로 받은 금액의 80~90%는 쓰고, 미튜브로 들어올 수입도 상당수 써. 아예 이번 기회를 스펙업으로 활용하자고.”

정면 돌파!

순매출을 진짜로 천만 원에 가깝게 잡아버리는 것으로, 성 팀장이 아무런 꼬투리를 못 잡게 하겠다.

그것이 박세훈의 계획이었다.

‘원하는 아이템을 사라고?’

백현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지금껏 오면서 월벤에서 구경만 했던 아이템들이 몇 개였던가.

당연히 그도 욕심이 있었고, 사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반쯤 자유 이용권이 주어진 것이다.

“예.”

언럭키는 치솟는 입꼬리를 제어하기 위해 애써야했다.

***

쇼핑의 과정은 험난했다.

오전의 식사 겸 회의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온 게 6시 30분쯤.

원래라면 그때부터 월드 사가에 접속해야 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월벤에 연동되어 있는 경매장 페이지도 들어가고 공식 상품 판매 사이트도 들어가고…

뭐가 그렇게 아이템도 많고 스킬도 많은지, 찾아보는데 몇 시간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렇게 오전 10시.

백현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민에 잠겼다.

“어떡하지….”

오랜 고심 끝에 나온 결론은 두 개였다.

하나는 여러 개의 유니크급 아이템과 스킬을 구매하는 것.

같은 유니크 등급이라도 가격대는 천차만별이다.

인기 있고 효과 좋은 것일수록 비싼데, 그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구매하는 요령이 필요했다.

그는 소환수 버프나 적에게 거는 디버프 종류를 골랐다.

‘나쁘지 않았지만, 묘하게 아쉬운 감이 있어.’

그건 두 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그에게 생긴 또 다른 선택지.

그건 바로, 레전더리 등급의 아이템을 사는 것이다.

월벤을 뒤지다가 백현의 눈에 우연찮게 들어온 스킬북이 있었다.

[스킬북 : 아포피스의 축복.]

-스킬 등급 : 레전더리.

-스킬 효과 : 언데드 소환 계열 스킬 중 하나의 소환 가능한 언데드의 숫자를 +1 증가시킨다. 레전더리 등급 이하의 언데드 소환 스킬만 가능하다.

-스킬 사용 제한 : 네크로맨서.

아포피스의 축복.

특정 스킬 하나의 소환 숫자를 +1 증가시키는 스킬이다.

얼핏 보면 별거 없어 보인다.

해골 병사나 해골 궁수 같은 건 한 기가 증가해봤자 큰 차이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해골 기사가 한 기에서 두 기로 늘어나는 거면 엄청난 차이가 있지.’

해골 기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던전에서 똑똑히 겪지 않았던가.

심지어 다른 소환수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거의 놈 혼자서 보스 몬스터였던 해골 마법사 젠킨스를 죽였다.

아무리 뒤에서 자신이 도와줬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위력이었다.

왜 이 직업이 네크로 엠페러라고 불리는지 알 것만 같았다.

부리는 소환수가 많아질수록, 정말로 황제의 위엄을 가지게 될 것 터.

포텐셜이 검왕이나 사신과 필적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더 높을 수도 있다.

“자잘한 거 여러 개냐, 아니면 좋은 거 한 개냐….”

백현이 힐끔 가격을 봤다.

[스킬북 : 아포피스의 축복.]

[가격 : 72,000,000원.]

7200만원.

레전더리 스킬북 치고는 괜찮은 가격이다.

직 써보지는 않았지만 백현이 느끼기에 이건 레전더리 중에서도 좋은 편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억이 안 넘는다.

네크로맨서 전용 스킬이다 보니 구매자가 한정적이고, 그러다보니 판매가 원활하지 않아 판매자가 가격을 대폭 낮췄기 때문이다.

즉, 지금이 아니고서는 이 매물을 보기도 어렵고 이 가격대는 더더욱 어렵다는 뜻!

“하아….”

백현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이걸 골라야겠다.”

7200만원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큰 지출이다.

계약금으로 받은 5000만원을 전부 털어 넣는 것은 물론이고, 미튜브 수익과 저금해 놨던 돈까지 탈탈 쏟아부어야 했다.

장점이라면 아주 값싸게 스킬을 살 수 있다는 것과, 성 팀장에게 자금을 어떻게 썼는지 당당하게 보여 주는게 가능하다는 정도?

“으으. 지른다…. 진짜 질러?”

백현은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런 큰 금액을 써 본 적이 없기에 손이 덜덜 떨린다.

그리고 곧.

-띠링!

[스킬북 구매를 완료했습니다.]

[수수료 10% 포함 77,900,000원이 결제되었습니다.]

“…이 사기꾼 같은 자식들이.”

VAT 별도였으면 진작에 좀 적어두던가.

백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

월벤에서 아이템이나 스킬을 사면 결제 직후 우편으로 해당 물건이 날아온다.

덕분에 큰 문제없이 ‘아포피스의 축복’을 쓸 수 있었다.

그 후, 언럭키는 다시금 ‘해골 마법사의 은신처’에 들어갔다.

보스몹은 일정 기간이 지나야 다시 리젠되고 더 이상 최초 발견 보너스도 없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물론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더 많은 걸 바라기는 했다.

‘안에서 몬스터가 리젠 되는 던전도 있다던데. 여기가 그런 곳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48시간동안 뽕이란 뽕은 다 뽑아버릴 텐데.

어쨌거나, 언럭키는 해골 기사‘들’의 위력을 똑똑히 실감했다.

-다그닥 다그닥

원래도 언럭키의 해골들은 던전 속 몬스터를 학살했다.

해골 기사가 없었을 때부터 그랬는데, 지금은 무려 두 기나 된다.

앞에서 길을 뚫는 기사들의 존재는, 언럭키와 해골 군대가 단 한순간도 걸음을 멈추지 않도록 만들었다.

결국, 여기서는 해골 기사 두 기의 전력을 보는데 실패했다.

더 어려운 던전을 찾아가거나 강력한 보스몹을 만나야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겠다.

[레벨업!]

레벨 73.

던전을 몇 번이고 쓸어버리며 언럭키가 달성한 레벨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였다.

안에 등장하는 몬스터 중에는 72짜리도 많았기에 더 이상 여기에 있어봤자 레벨업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

“후우.”

하루 종일 사냥에 매달린 언럭키가 던전을 빠져나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열 몇 시간을 집중했더니 머리가 띵 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와중, 하늘 위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급강하했다.

비행형 몬스터의 습격인가 싶어 순간 긴장했지만, 독수리는 편지 한 장을 주고 사라졌다.

<잘 지내고 있나?>

편지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누가 준 건지 알아챘다.

헤탄이 보낸 것이다.

<나는 호르헤른 님께 분타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네. 다 들으신 그 분께서 자네를 크게 칭찬하시더군. 언제 한 번 꼭 다시 보고 싶다고 하셨어.>

언럭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영주님이 되신 귀족이 보고 싶다고 한다니.

이거야말로 성공으로 향하는 줄을 제대로 잡은 것 아닌가.

<그리고 추가로 자네에게 할 의뢰가 있네. 괜찮다면 텔르흐렌에서 다시 만나서 얘기하고 싶군. 오두막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편지를 다 읽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NPC 헤탄을 만나면 연계 퀘스트를 수행하실 수 있습니다.]

연계 퀘스트. 지금껏 화려했던 보상을 생각해보면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나 언럭키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이 꼴로 텔르흐렌으로 돌아가라고?’

그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까지 소환되어있는 해골들이, 눈두덩이에서 무시무시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걸 경비들이 보게 된다면…

‘사악한 네크로 엠페러를 붙잡았다며 처형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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