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화
-덜그럭 덜그럭.
장비로 무장한 해골 병사는 꽤 잘 싸웠다.
한때 ‘검왕’으로 플레이했던 언럭키가 보더라도 괜찮은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쾅!
-쩌엉!
반오 사제의 직업 ‘암흑 기사’는 진짜 기사들처럼 검기 비슷한 힘을 쓴다.
암흑 투기라는 스킬이었는데 공격력을 높여주며 공격에 화(火)혹성을 부여하기까지 했다.
불타는 검은 주먹을 휘두르며 반오 사제가 버럭 소리쳤다.
“이딴 소환수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확실히 그는 쉽지 않은 상대였다.
아무리 검은 해골이 대단한 움직임을 보이고 과거 언럭키가 쓰던 아이템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애초에 스펙 면에서 넘사벽이었다.
모든 해골 군대를 놈에게 집중시켰다면 또 모를까. 다른 해골들은 전투 부제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푸슉!
-콱!
“으아아악!”
“사, 사제님이 왜…!?”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이 상황에 당황해서 제 위력을 내지 못했다.
-덜그럭 덜그럭.
검은 해골들을 상대로 방심한다는 건 치명적이다.
그들은 빈틈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칼로 찌르고 화살을 꽂아 넣고 방패로 때리고…
초근접 거리에서 벌어지는 공격들은 부제들에게 너무 큰 독이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잘 풀리는 건 아니었다.
반오 사제는 오히려 서서히 해골들을 압도했다.
괜히 이 곳 리바 델 레이 텔르흐렌 분타를 이끄는 게 아니었다.
-쾅!
-콰앙!
“이 놈을 죽여버리고 네 사지를 찢어버리겠다!”
반오 사제가 분노에 휩싸여 포효했다.
“쪼그라드는 근육, 체력 약화, 둔화.”
언럭키가 다급히 디버프를 날렸다.
반오 사제가 주춤거리더니 동작이 느려졌다.
놈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어떻게 나한테 디버프를…?”
암흑 기사는 일반 기사보다 디버프나 저주에 오히려 더욱 강하다.
자신들이 다루는 힘이기에 잘 당해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언럭키의 디버프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꼼짝없이 신체 능력이 하락했다.
“내가 그냥 네크로맨서인줄 알아? 나 네크로 엠페러야!”
언럭키가 당당하게 외쳤다.
“다크 힐! 다크 배리어!”
이어서 그레고녹의 홀에 내장된 스킬들까지 사용했다.
다크 힐로 해골들을 회복시키고, 반오 사제와 맞붙는 놈 주위에 다크 배리어를 생성해 주었다.
겉으로는 나름 대등하게 맞붙는 것 같다.
그러나 언럭키의 속은 굉장히 다급했다.
‘아니 왜 안 오는 거야?’
자신 있게 붙고 있긴 했지만, 무시무시한 기세를 풍기는 반오 사제는 굉장히 까다로웠다.
아무리 디버프를 때려 넣고 좋은 아이템으로 무장한 해골이라고 해도, 고작 소환수 한 마리로 버티기에는 버거운 적이다.
하물며 지금은 당황하고 있는 전투 부제들이 제정신을 차리면 큰일이다.
네크로맨서가 일인군단 취급을 받는다지만, 아직 그는 이 직업을 얻은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상황.
훨씬 더 고레벨이 되어 진짜 해골 군대를 부린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그들이 다 같이 공격하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래서 헤탄을 비롯한 기사들이 빨리 와 줘야 하는데…
“적을 처리하라!”
그 순간이었다.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부제 몇 명의 몸이 통째로 잘려나갔다.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그들의 사체를 보며 언럭키의 안색이 확 펴졌다.
가장 앞에서 방패를 든 헤탄이 그를 보더니 껄껄 웃었다.
“으하하핫. 오래 기다렸나?”
“헤탄님! 목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기다리던 기사들이 도착했다.
***
.
.
.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기사들이 도착하자 전투는 금세 끝났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들에게 뒤에서 덮쳐온 기사들은 재앙이었다.
고작 5명.
빠르게 달려오기 위해 병사들을 떼어놓고 헤탄과 5명의 기사만 먼저 왔는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언럭키의 해골들을 보조로 하니 그들은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막지 못할 치명적인 공격을 해골이 대신 몸빵해 주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전략 자체가 달라졌다.
마지막은 반오 사제였다.
놈은 암흑 기사답게 끝까지 격려하게 저항했다.
-이 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신을 믿지 않는 것들이 날뛰는 게냐!
불같이 분노하며 싸웠지만 다섯 개의 검기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과를 바꿀 순 없었다.
결국 기사에게 목이 베여 죽었다.
‘쯧. 내가 마지막을 장식했어야 하는데.’
전투가 끝난 후, 언럭키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어떤 몬스터건 막타를 때리면 가장 많은 경험치를 얻는다.
해골들은 유능했지만, 기사 5명이 상대하는 반오 사제에게 막타를 때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 틈을 노리려면 훨씬 더 강해야했다.
그래도 기사들과 함께 전투를 하며 활약한 경험치가 정산되어, 한 번의 레벨업을 더 할 수 있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리바 델 레이의 분타를 성공적으로 점령할 수 있게 되었어.”
헤탄이 언럭키의 어깨를 두드렸다.
언럭키가 슬쩍 코를 훔쳤다.
“크흠. 제가 평소에 겸손한 성격이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제 활약이 크긴 했죠.”
리바 델 레이 측에 잠입해서 정보를 빼낸 일. 함정을 계획하고 대결계를 해체한 일. 마지막에는 반오 사제를 비롯한 주요 병력을 붙잡고 있던 것까지.
언럭키의 공헌도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공헌도를 합한 것보다 더 컸다.
“이를 말인가. 왜 호르헤른 님이 자네를 그렇게 믿고 있는지 알 것 같더군.”
헤탄이 껄껄 웃었다.
-띠링!
[퀘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
퀘스트가 성공하며 한 번 더 레벨업을 했다.
언럭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이번 분타 공격 퀘스트로 총 3번의 레벨업을 했다.
이 정도면 분타까지 해매면서 버렸던 시간을 대충 보상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제대로 된 보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자네에게 약속했던 보수를 챙겨줄까 하네.”
헤탄의 말에 언럭키가 눈을 반짝였다.
얼마나 기다렸던 말이던가.
처음부터 퀘스트 창에 보상이 적혀 있었다.
대량의 경험치와, 레전더리 아이템.
경험치는 레벨업 한 번을 그냥 할 정도로 받았으니 만족했고, 남은 건 레전더리 아이템이었다.
과연 무엇을 줄 것인가!
“음…. 근데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겼네.”
“예?”
뜸을 들이는 헤탄의 모습에 언럭키는 살짝 불안해졌다.
“사실 나는 원래 자네의 직업을 암살자 계열로 알고 있었거든. 실제로 처음부터 그런 모습을 보여 줬고.”
“그랬죠.”
언럭키가 고개르 끄덕였다.
그때는 직업이 ‘사신’일 때였다.
“그래서 암살자 전용 클로를 준비했네만…지금의 자네에게는 그리 필요 없을 것 같은데?”
“…….”
언럭키의 인상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당연히 그건 지금 필요 없다.
네크로 엠페러가 클로를 껴서 뭐에다 쓰겠는가?
‘그냥 받아 뒀다가 한 달 뒤에 쓸까?’
그러나 그러기엔 또 문제가 있었다.
퀘스트 보상으로 받는 아이템들은 보통 그 레벨대에 맞는 수준이었다.
일반 유저라면 한 달 동안 그리 큰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언럭키는 한 달 뒤에 얼마나 성장해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막말로 100레벨을 달성할 수도…
‘아니. 그건 좀 선 넘었나?’
100레벨은 어렵더라도 최소 10레벨 이상 레벨업 한다는 건 확신했다.
그 때 가서 지금 레벨대의 레전더리 아이템을 낀다면 물론 좋겠지만 최고의 만족감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는데, 이건 어떤가?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보물 창고가 있던데. 비전투 부제들이 허튼짓 하지 못하도록 병사들을 거기로 보내서 점령에 성공했네. 거기서 확보한 보물들 중 원하는 것 한 가지를 자네에게 주지.”
보물창고의 보물.
거기라면 현재 직업인 네크로 엠페러에 딱 맞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긴 하다.
기약 없는 암살자 무기 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게 훨씬 낫다.
막말로, 좋은 아이템은 나중에도 얼마든지 얻을 자신이 없었다.
70에 가까워진 지금 레벨까지 승승장구 했으니, 앞으로도 분명 그럴 것이다.
다만, 언럭키는 순순히 받을 생각은 없었다.
“헤탄님.”
“갑자기 왜 그런 진지한 목소리로 얘기하나?”
눈을 부릅뜬 언럭키를 보며 헤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여기 점령하는데 제 역할이 컸는데, 몇 개 좀 더 챙겨 주시죠?”
어디 사람 사이 관계가 그리 딱딱하게 흘러가겠는가?
좀 인정을 베풀고 하는 거지.
게다가 언럭키는 원래 전투 중에 교단의 보물 창고를 슬쩍 들어가서 안에 있는 보물 몇 개를 슬쩍 해오려고 했다.
상황이 어려워서 불가능 했지만, 한 개만 받기에는 억울한 감이 있었다.
그 역시 기사들이 없었다면 분타 공략이 실패했을 걸 알기에, 크게 욕심내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한두 개만 더 챙겨 줬으면 좋겠는데…
“으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헤탄님!”
“내가 주기 싫다는 게 아닐세. 점령과 동시에 같이 들어온 보고가 있었는데, 보물에는 강력한 저주가 걸려 있다고 하더군.”
“네?”
“어느 누군가가 2개 이상의 보물을 동시에 소유하면 착용자에게 온갖 디버프를 때려 박는 저주라고 하네. 모르긴 몰라도 이 보물을 관리하던 자는 심보가 굉장히 못된 것 같군. 이딴 저주를 걸어놓다니.”
언럭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원인을 알 것 같았다.
‘그 짠돌이 새끼가 끝까지…!’
공헌도 몇백만 점을 모아오라며 공짜로 사람 부려먹으려 할 때부터 알아봤다.
반오 사제. 그 자식은 진짜 죽어서도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호르헤른 님도 이제 막 영주가 되신 거라서 기반이 부족하네. 심지어 그 직후 기사들을 5명이나 빼서 비밀 임무에 보냈지. 그래서 일단 이 보물들을 도시 귀족들에게 보여 주기라도 해야 해. 그래야 그 분의 지지도가 유지될 테니.”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퀘스트를 내린 건 호르헤른이었지만, 그는 언럭키를 지원하기 위해 상당한 무리를 했다.
“일단 호르헤른님께 가져가고, 나중에는 신전에 맡겨서 저주도 푼 뒤에는 자네에게 몇 개 더 챙겨 줄 수 있을 것 같군. 어떤가?”
“으음….”
그때까지 언제 기다린단 말인가.
결국 언럭키는 일단 한 개만 받고, 나중에 또 의뢰를 수행했을 때 보상을 더 크게 받기로 약속을 맺었다.
구두 약속이긴 했지만 헤탄은 신의가 있는 사람이니 믿어도 될 것이다.
***
-파앗!
헤탄은 협상이 끝나자 곧장 보물 창고에서 원하는 물건 하나를 가져가도록 배려해 주었다.
눈앞에서 환하게 빛나는 보라색 빛을 보고 언럭키는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하….”
반오 사제. 그 사악한 놈 밑에서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250만점이나 되는 공헌도를 모으라는 등, 희만 고문만 계속하던 쓰레기.
결국 놈을 퇴치하고 이 로브를 손에 넣었다.
[아라베크의 진혼 로브]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방어력 + 55 상승.
-마력 능력치 + 35 상승.
-소환수의 공격력 +15% 상승.
-소환수의 방어력 +15% 상승.
-특수 스킬 ‘진혼의 오오라’ 사용 가능.
-고대에 존재하던 네크로맨서 중 손꼽히게 강하던 ‘아라베크’가 입던 로브이다. 그의 힘이 깃들어있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67 이상.
마력 능력치를 무려 35나 상승시켜주는 효과!
이것만으로도 굉장했는데, 이건 부가적인 것에 불과했다.
‘미쳤다. 소환수 공격력과 방어력이 15% 씩이나 상승해?’
안 그래도 미친 듯이 잘 싸우던 언럭키의 소환수들이었는데, 그 놈들이 훨씬 더 강해지겠다.
거기에 특수 스킬이 하나 붙어 있었다.
[진혼의 오오라 : 마나를 소모해 시전자 반경 (레벨)m 범위에 오오라를 퍼트린다. 오오라에 닿은 아군 언데드들의 이동 속도가 10% 상승한다.]
이동속도 10% 상승 버프를 주는 오오라.
그 말인즉슨 사냥 속도가 10%는 빨라질 거고, 레벨업 속도도 그에 맞춰 올라간다는 뜻이었다.
여러모로 지금 상황에서 딱 맞는 아이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