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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85화 (85/218)

#085화

선반을 뒤흔들어서 안에 있는 구슬들을 모조리 깨트렸다.

이건 반오 사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대결계를 유지하는 보주(寶珠)는 천고의 보물 중 하나.

그걸 훔치러 온 도둑이라면 구슬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대할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아무리 은신 실력이 뛰어난 도둑이라도 바깥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건 당연한 법.

누가 경비를 다 때려눕히고 안으로 들어올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어쨌거나 그 결과 언럭키는 찰나의 시간에 내부의 구슬 수백 개를 부술 수 있었다.

-띠링!

[사이드 퀘스트를 성공하셨습니다.]

[적정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대결계가 해체됩니다.]

정확히 어떤 거였는지는 모르지만 구슬의 힘으로 유지되던 대결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굳이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언럭키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분타 주변을 뒤덮던 공기부터가 달라진 것이다.

-겨, 결계가…사라진다…!

-으아아아아!!

바깥에서 여전히 해골들과 싸우던 경비들의 비명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여기는 방음이 꽤나 잘 되는 장소였는데도 다 뚫고 올 정도라니. 그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언럭키가 슬쩍 웃었다.

***

반오 사제의 전략은 꽤 잘 들어맞았다.

리바 델 레이의 전투 병력들은 영악하게 싸웠다.

계속해서 디버프와 독, 저주를 쏘아대다가 기사와 병사들이 지친 것 같다 싶으면 슬쩍 결계 밖으로 나와 공격했다.

그러다가 저항이 거세면 다시 후다닥 결계 안으로 도망쳤다.

그게 몇 번이고 반복되다 보니 기사들은 굉장히 허탈해 했다.

기사들이야 버틸 만했어도 병사들의 피로도는 말도 못했다.

“알프레드 경. 병사들이 슬슬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이대로 계속되다가는 죽어나가는 자들이 많은 겁니다.”

부관의 보고에 알프레드는 인상을 썼다.

그 역시 알고는 있었지만 별달리 방법은 없었다.

“조금만 더 버텨라. 분명 돌파구가 생길 것이다.”

그의 시선이 살짝 움직여 헤탄 쪽을 바라봤다.

헤탄은 여전히 단단한 눈빛으로 결계 너머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

한편, 기사들과 다르게 반오 사제가 이끄는 리바 델 레이 측은 축제 분위기였다.

“하핫. 사제님의 전략은 정말이지 탁월하시군요.”

“별말씀을요. 이게 다 형제님들이 제 말을 듣고 열심히 움직여 주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훈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처음에는 신경질적이었던 반오 사제도 이제는 평소의 가시적인 웃음을 얼굴에 띄워 놓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되다보면 기사놈들까지 정신을 못 차릴 겁니다.”

“그러면 그 때가 완벽히 놈들을 잡을 수 있는 타이밍이지요. 흐흐.”

지금은 차륜전으로 야금야금 적들을 괴롭히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면 어떨까.

기사들은 자존심 때문에(사제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도망치지 않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약해지고 독에 찌든 몸으로 죽어가면서 후회하겠지.

“후후. 알량한 힘 좀 휘두른다고 신을 모시는 곳에 쳐들어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게지요.”

“이번 기회에 단단히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대결계의 대단함을 사제와 부제들은 한 번 더 느꼈다.

그들의 신실함이 더욱 짙어진 건 당연했다.

반오 사제는 빙긋 웃었다.

처음에는 쥐새끼 몇 놈 잡으러 온 것이었는데 기사급이 5명이나 되다니.

‘이거 잘하면 이번 기회에 ‘몬시뇰’로 승급할 수도 있겠어.’

분타를 잘 다스리고 있고 이번 일로 꽤 큰 공적까지 쌓았다.

어쩌면 한 단계 더 올라설 수도 있겠다.

반오 사제의 눈빛에 미미한 기대감이 서렸다.

그 순간이었다.

“!”

갑자기 결계가 일렁거리더니 서서히 흩어졌다.

“이, 이게 무슨…!?”

경악한 반오 사제가 입이 떡 벌어졌다.

반오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사제와 부제들도 마찬가지였다.

믿고 있던 대결계가 사라지다니!

그러나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 기현상을 보며 가장 먼저 움직인 건 기사들이었기 때문이다.

“저 빌어먹을 결계가 드디어 사라졌다!”

“가서 싹 다 족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병든 닭처럼 골골거리던 병사들은 지금까지 당하던 것을 갚아주겠다는 듯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어디 그 뿐이랴. 선두에 선 다섯 명의 기사들은 재앙이었다.

줄줄이 피어나는 검기는 감히 부제급으로는 막을 수조차 없었다.

사제 정도는 되어야 잠깐 버티는 게 가능했지, 그들도 이길 수는 없었다.

대결계가 사라진 순간 전투의 승패는 이미 갈렸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반오 사제가 넋을 잃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결계가 사라지다니.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다.

“후퇴…후퇴한다!”

일단 돌아가서, 분타 내에 남아있는 부제들과 합류해야겠다.

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언럭키였다.

‘형제님이 다루는 검은 해골. 그거라면 큰 도움이 될 거다.’

이길 수는 없겠지만 리바 델 레이 분타가 자리 잡은 곳은 협곡 내부로서, 천혜의 장벽이 되어준다.

어린애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인데, 언럭키가 다루는 검은 해골은 전승에 따르면 굉장히 강하다고 했다.

“네크로맨서들은 최대한 시간을 지연시키고, 그 사이에 나머지는 전부 협곡으로 들어간다. 서둘러!”

반오 사제가 고함을 치며 돌아다녔다.

사제들 중 네크로맨서들이 일으킨 해골이 몸빵을 하며 기사들로부터 시간을 끌었고, 그 사이에 최대한 후퇴하려 애썼다.

***

시원하게 구슬들을 다 부순 언럭키는 다시 건물 밖을 나왔다.

여기는 결계를 유지하는 구슬 말고는 따로 더 보관된 물건은 없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

.

어느새 경비들은 해골 병사들에게 하나하나 처리되고 있었다.

“컥….”

“크헉…. 무슨 해골이 이렇게….”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며 쓰러졌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전부 어둠 속성 계열이기에 네크로맨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당연히 그들이 소환하는 해골 병사들 역시 많이 봤는데, 눈앞에 있는 해골은 맹세코 그것들과는 너무 달랐다.

‘생김새만 비슷하지…완전히 다른 종(種)이라고 봐야 해.’

움직임, 스펙, 전투에서 보여 주는 센스 등. 어찌 이것들을 죽은 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건물을 지키던 경비들은 전투 부제들 중에서도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지만 해골들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사실, 대결계가 사라져서 당황하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컸다.

어쨌거나, 놈들은 전부 한 줌의 경험치로 화했다.

그 후, 언럭키는 보무도 당당하게 길을 걸어갔다.

주변은 혼잡스러웠다. 비전투 부제들은 결계가 사라진 것 때문에 패닉에 빠져 있었다.

“겨, 결계가….”

“어떻게 해야 하지…?”

상상해보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제 헤탄님과 합류하면 되겠군.’

사전에 말을 맞췄던 대로 결계를 해제했으니, 지금쯤 헤탄과 그 휘하 기사들이 여기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합류해서 리바 델 레이를 쓸어버리고 보물을 획득하면 이번 퀘스트는 끝.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언럭키가 먼저 만난 건 헤탄이 아니라 반오 사제였다.

휘하 사제와 부제들을 데리고 미친듯이 후퇴하던 반오는 평소의 단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헉헉거리던 그는 언럭키를 보고 굉장히 반가워했다.

“형제님!”

그는 언럭키 주변에서 함께 다가오는 검은 해골들을 보고 감동스런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아! 위기 상황인걸 아시고 빠르게 나오신 거군요! 과연. 형제님의 믿음과 행동력에 찬사가 절로 나옵니다.”

대결계가 사라지며 반오를 비롯한 리바 델 레이의 전원이 허둥지둥 하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을 법도 한데 언럭키는 오히려 병력을 소환해 협곡의 입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침입자들을 상대하기 위함이라는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번 일이 무사히 해결된다면 특별히 공헌도를 만 점. 아니, 3만점 드리죠!”

반오 사제는 크게 인심 쓴다는 듯 말했다.

언럭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작 공헌도 3만점?’

그럼 도대체 250만점을 모으려면 무슨 짓을 해야 하는 거냐?

저 쫌팽이 사제의 모습에 이제는 질려버릴 지경이었다.

언럭키는 더 이상 연기 따위는 집어치우기로 결정했다.

“사제님.”

“예, 형제님. 지금 저 뒤쪽에 기사들이 오고 있으니 형제님이 가서 막아 주십시오. 협곡의 지형을 잘 활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을 겁니다. 다른 네크로맨서 형제님들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음….”

언럭키가 피식 웃었다.

사람은 다급할 때 본성이 나온다고. 언럭키가 입구를 막는 사이 자신은 도망치겠다는 뜻 아닌가.

“그건 힘들겠는데요?”

“네?”

언럭키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검은 해골은 전투 부제들의 사이사이에 퍼져 있었다.

같은 편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부제들은 해골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치명적이었다.

-덜그럭 덜그럭.

언럭키가 머릿속으로 명령을 내리는 순간, 해골들이 일제히 공격에 나선 것이다.

-촤악! 촤악!

-푹! 푹! 푹!

해골 병사는 뼈로 된 칼을 휘둘렀고 해골 궁수는 빠르게 시위를 매어 눈앞의 적들을 공격했다.

“끄악!”

“어억!”

갑작스럽게 행해진 기습.

믿고 있던 상대에게 당한 거라 뼈저리게 들어왔다.

언럭키는 아무렇게 공격하지 않았다.

가장 경계해야할 사제급 들에게 공격을 집중시켰다.

방심하고 있던 사제 둘이 집중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능력은 몰라도 HP는 그리 높지 않은 사제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

.

[레벨업!]

“오. 역시 사제급이 좋은데?”

몸에서 빛이 번쩍이자 언럭키가 활짝 웃었다.

일반 잡몹과 달리 사제들은 상당한 경험치를 주었다. 욕심쟁이인 언럭키가 만족스러워 할 만큼!

“도, 도대체 이게….”

그리고 그때 쯤, 반오 사제는 정신을 차렸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멍하니 쳐다봤지만, 상황은 명백했다.

“이 육시랄 놈이…!”

배신감이 사무쳤다.

반오 사제의 얼굴이 흉신 악살처럼 구겨졌다.

그의 머릿속으로 오늘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뜬금없이 순찰하다가 적을 발견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대결계가 사라진 일, 분타 내부가 쑥대밭이 된 상황 등…

“…다 네가 꾸민 짓이었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 그렇게 짠돌이 짓을 하니까 벌 받은 거야.”

“이 빌어먹을 놈이!”

살살 놀리는 듯한 언럭키의 말에 반오 사제는 눈이 돌아갔다.

그의 양 팔에서 검은 기운이 솟구쳤다.

반오 사제의 직업은 이 분타 내에서 단 한 명뿐인 ‘암흑 기사’.

그가 훌쩍 뛰어 번개처럼 언럭키를 향해 날아왔다.

네크로 엠페러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네크로맨서 계열이다. 근접 전투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잡아 죽일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쾅!

“뭣…!?”

허나 그런 반오 사제의 움직임은 한 해골에게 가로막혔다.

검은 뼈를 지닌, 꽤 멋들어진 검과 방패를 착용한 해골이 한 짓이었다.

“어떻게 해골 병사 따위가 내 공격을…?”

반오 사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언럭키의 생각은 정 반대였다.

“그 아이템들이 얼마짜리인데. 당연히 막아야지!”

‘흉폭한 아울베어의 방패’와 ‘명예의 시작 롱소드’.

각각 레어와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을 착용한 검은 해골이었다.

“돈을 바른 소환수란 게 바로 이런 거다 이 자식아! 가서 죽여!”

-덜그럭 덜그럭.

언럭키가 명령에 검은 해골의 두 눈두덩이에서 불꽃이 거세게 피어나더니, 득달같이 반오 사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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