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화
결국 언럭키는 해냈다.
66레벨까지 데저트 웜 서식지에서 있을 수 있었다.
막판에는 조금 지겨웠다.
데저트 웜 중에는 65레벨 짜리도 많았는데 그 놈들은 경험치를 그리 많이 주지 않았다.
찔끔 찔끔 경험치를 보면 얼마나 속 터지는지.
나중에는 사냥터를 아예 갈아엎듯이 해야 했다.
“오오. 형제님.”
교단 분타에 가자 반오 사제가 언럭키를 반겨주었다.
“형제님의 활약은 전해 들었습니다. 교단을 핍박하는 악마들을 퇴치해주시다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없군요.”
-띠링!
[적정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리바 델 레이 교단의 공헌도 1000점을 획득합니다.]
사이드 퀘스트는 언럭키가 계속 진행하고 있는 연계 퀘스트와는 체급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치 칸이 꽤 올랐다.
레벨업 한지 얼마 안 됐다는 걸 생각해보면 후한 보상이다.
‘리바 델 레이…괜찮은데?’
언럭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호르헤른 가문 쪽 사람들은 이들을 싫어했지만, 언럭키까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게임 속 NPC들 아니던가. 더 이득이 되는 쪽으로 손을 잡으면 그만이지.
지금은 당연히 귀족인 호르헤른을 따르지만 여차하면 리바 델 레이와 함께 할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공헌도’를 보고 더욱 깊어졌다.
“크흠. 사제님.”
“네 형제님.”
“교단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공헌도라니, 참. 부끄럽습니다.”
“허허. 그러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신께서 인정하신 것뿐이니까요.”
“그러면 염치불구하고 여쭤보겠습니다만, 이 공헌도로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언럭키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진짜 묻고 싶었던 질문은 이것이다.
보상으로 받은 공헌도 1000점이 어느 정도나 되는 걸까?
반오 사제는 싱긋 웃었다.
“따라오시지요 형제님.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언럭키를 데리고 교단의 보물을 모아둔 창고로 갔다.
입구 까지만 데려갔는데, 언럭키는 그 앞에서 입을 쩍 벌렸다.
“와….”
손에 들어온 아이템이 아니라 자세한 스펙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외관만 봐도 충분했다.
파란색, 남색의 향연!
심지어 가끔씩 보라색도 심심찮게 보였다.
교단 분타라고 들었는데 아이템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호오. 형제님은 척 봐도 가치를 파악하실 수 있나 보군요?”
“네, 네.”
언럭키는 정신이 팔려서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그가 아이템들을 훑어보다가 가장 보라색으로 반짝이는 걸 손으로 가리켰다.
“사제님. 저건 공헌도가 어느 정도나 필요할까요?”
은은한 보라색(물론 언럭키에게만 보이는)빛을 흘려대고 있는 로브였다.
스펙은 모르지만 사제나 마법사 종류가 입는 아이템이겠지.
지금 언럭키가 입고 있는 로브는 상점에서 산 노멀 아이템이다.
그레고녹의 홀만으로도 충분해서 굳이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곧 한계가 올 것이다. 월드 사가는 그리 만만한 게임이 아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그 때를 대비하려면 미리미리 로브를 비롯한 마법사 전용 아이템을 가져놔야 하는데, 저게 딱이다.
“아라베크의 진혼 로브군요. 좋은 물건이지요.”
반오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250만점 필요합니다.”
“…네?”
언럭키는 순간 당황했다.
내 귀가 잘못된 건가?
그러나 잘못되지 않았다.
“공헌도 250만점 입니다.”
반오 사제는 쐐기를 박듯 다시 말했다.
“…….”
언럭키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2,500,000?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모으란 말인가.
1000마리나 되는 데저트 웜을 사냥하고 얻은 게 고작 1000점이다.
250만점을 위해서는 위와 같은 퀘스트를 2500번을 해야 한다.
그래. 할 수는 있다. 언럭키 입장에서는 경험치도 얻고 공헌도도 얻고 하니까 손해 볼 게 없지.
하지만 문제는 그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곳 교단 분타는 도시 바깥 저 멀리에 세워진 장소이다.
여기에 데저트 웜의 서식지가 있던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보통 그런 사냥터는 도시 주변에 분포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유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도시 바깥으로 원정을 떠났겠지.
“창고를 보여드리는 건 이쯤이면 되겠군요. 허허. 그 분의 힘을 조금이나마 계승한 형제님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반오 사제는 그 말을 끝으로 떠나갔다.
혼자 남은 언럭키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자식들이 진짜….”
리바 델 레에 대해 조금이나마 좋은 생각이 들려고 했던 게 싹 사라졌다.
왜 악당은 악당이라고 불리는지 잘 알게 되었을 뿐!
유니크나 레전더리 아이템을 퀘스트 보상으로 턱턱 내어놓는 호르헤른과 비교하면, 아주 쓰레기같은 집단이지 않나.
용서 할 수 없었다.
***
백현은 월드 사가를 하는 도중에 짬짬이 접속을 종료해서 현실의 업무도 여럿 봤다.
그 중 대표적인 건 광고 의뢰였다.
[계약서 : 대룡 미디어와의 광고 모델 협의 계약.]
-1조 : …
…
얼마 전에 혹하는 제안을 받았다.
기업을 광고할 홍보 미튜버를 물색 중인데 거기에 스트리머 언럭키가 포함된다는 내용.
백현은 그런 대룡 미디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희는 서로 윈윈이 가능할거에요.
-근데 한 가지 여쭤볼게 있습니다. 왜 저를 광고 모델로 섭외하신 겁니까?
전화로 통화하며 백현이 물어본 것이다.
-팀장님 특별 지시사항이었습니다.
-팀장님이요? 그 분이 왜 저를…?
-글쎄요. 그건 나중에 팀장님이 직접 말씀해주실 거예요.
담당자는 미약한 웃음을 짓더니 화제를 돌렸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미팅은 언제 가능하세요?
-직접 만나는 건 어렵습니다. 제가 사정이 있어서….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굳이 대면으로 진행할 필요는 없어서요. 실제로 많은 미튜버들이 비대면으로 계약을 하기도 합니다. 전자계약서를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주)머니앤캐시의 작업장에 갇혀 있는 지금, 백현이 현실에서 미팅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통화로만 진행하고 싶다고 했는데 상대는 선뜻 받아 주었다.
“이래서 대기업 대기업 하는구만.”
대룡 그룹이라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다. 그들이 왜 1위라고 불리는지 알겠다.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이런 세심한 배려를 해 주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마음은 계약서 하단의 마지막 항목. 광고료를 보고 더욱 강해졌다.
[을(대룡 미디어)은 갑(스트리머 언럭키)에게 50,000,000원을 광고비로 지급한다.]
5천만원!
백현은 벌떡 일어나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이 비좁은 닭장 고시원은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주변으로 다 퍼진다.
옆방이 아니라 옆옆방과 그 옆방, 성 팀장의 사무실에까지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방으로 난입해서 이 계약서를 확인하는 날에는 상당히 곤란해진다.
‘그나마 CCTV는 철거해줘서 다행이군.’
성 팀장에게 커미션을 5% 주는 대가 중 하나로 사생활을 조금 보전해주는 것도 있었다.
언제 무엇을 하든 감시할 수 있는 CCTV가 백현의 방에서는 떼어진지 꽤 됐다.
어쨌거나 잘됐다.
왜 자신을 섭외한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였다.
5천만원이라는 큰돈은 월드 사가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현실의 빚을 갚는데 쓸 수도 있다.
빚이 5억이었으니 5천이면 그 중의 10%.
게다가 미튜브는 계속 잘되고 있었으니 여기서 더 큰 돈을 모으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탈출할 수 있는 날이…슬슬 보이려고 해.’
평생 여기에 묶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 전인데, 희망이 보이고 있었다.
***
다음날.
매일 아침 6시는 백현과 박세훈, 이용승이 비공식적으로 갖는 미팅 자리이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식사를 하는 것 같지만 꼭 얼굴 보고 나눠야 할 대화는 이 때 마주보고 했다.
“뭐!?”
박세훈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려다가 화들짝 놀라 소리를 죽였다.
성 팀장의 덩어리 부하들이야 대부분 이 시간에 쿨쿨 자고 있겠지만 성 팀장은 출근했을 수도 있다.
박세훈이 복도의 눈치를 보더니 백현을 바라봤다.
“정말이야? 5천만원?”
“네. 앞으로 미튜브 영상 송출할 때 오른쪽 상단에 대룡 그룹 로고 박아주고 중간에 광고 한 번씩 삽입해주기만 하면 되요.”
백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랑스러웠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이뤄낸 것 아닌가.
물론 아직도 대룡 미디어가 왜 자신같은 이름 없는 스트리머에게 이런 비용을 지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할까요? 이걸로 일단 빚부터 갚을까요?”
백현이 살짝 흥분해서 물었다.
여기를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제 밤부터 몸이 달았다.
그러나 박세훈은 거기에 찬물을 부었다.
“아니야. 그러면 안 돼.”
“네?”
“빚은 한 번에 갚아야 돼. 백현 씨가 전에 말했지. 성 팀장 그 놈 태도가 이상했다고. 천만 원 갚는 걸로 아무런 딴지도 안 걸고 그냥 보내주고.”
“그랬죠.”
“그 놈이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박세훈은 성 팀장을 잘 알았다.
그가 볼 때, 그는 백현을 표적으로 삼았다.
독사 같은 그 놈이 한 번 목표로 삼은 먹잇감을 그냥 둘 리는 없다.
“이건 아무리 봐도 백현 씨를 길들이려는 거야.”
“길들여요?”
“그래. 내가 도와주는 이상 대놓고 책잡을 수는 없지. 그러니까 꼬박꼬박 달에 천만 원씩만 받으면서 기회를 노릴 생각일거야.”
백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박세훈은 쉽게 말했지만 성 팀장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면 이건 무서운 상황이다.
지금도 반쯤 그의 손아귀 안에 잡혀 있는 건데, 내보낼 뜻도 없다는 말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백현 씨가 빚을 갚겠답시고 왕창 돈을 건네면 그 놈의 경각심만 커질 거야. 강압적인 방법을 마련하겠지.”
“그럼…어쩌죠?”
빚을 갚아야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데, 갚으면 안 된다.
모순적인 말이었다.
박세훈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어쩌긴. 방법은 간단해. 그 빚을 단 한 방에 갚아버리는 거야. 그걸로도 모자라서 아예 이자까지 두둑이 주고, 나가서 떳떳하게 지낼 돈도 마련하는 거고.”
“네?”
“생각해봐. 놈이 백현 씨를 살살 구슬리고 있을 때 한 방에 빚을 갚아버리면? 더 이상 채무 관계는 없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겠지.”
“그럼 나가서 살 돈을 마련하라는 건요?”
“성 팀장 그 놈이 어떤 놈인데 아무리 빚을 갚았다고 그냥 보내주겠냐. 알거지 된 백현 씨 주변을 호시탐탐 노리다가 기회 되면 다시 엮어보려고 할걸?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나가서 쓸 돈도 어느 정도 쥐고 있어야 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경호 업체와 계약하기 위해서라도.”
“…….”
박세훈의 말이 뭔지 알아들었다.
고분고분 따르는 척 하다가 한 방에 벗어나라는 뜻이다.
잠시 그의 말을 곱씹던 언럭키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빼먹으셨네요.”
“빼먹었다고? 글쎄. 자잘한 주의점은 더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이 정도만 지켜도…”
“제 빚뿐만이 아니죠. 세훈 씨와 용승 씨. 두 분만 두고 여기를 어떻게 나가요. 나가도 같이 나가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
“…….”
백현의 말에 박세훈과 이용승, 두 사람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아무리 지금 손잡고 함께 하고 있다지만 그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남이다.
그런 자신들도 버리지 않고 구제해주겠다고 하다니.
백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 충성심까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백현으로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이 두 사람을 포함해서 컵라면까지. 그들은 이제 한 팀이다.
미튜브를 담당해주는 이용승은 말할 것도 없고, 박세훈 역시 이번 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 역시 그 덕분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우리 셋 다 여기서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해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