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화
언럭키는 반오 사제를 찾아가 자신이 교단 분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허어. 어찌…. 형제님이 아무리 사제직을 받으셨다고 해도, 어쨌거나 저희 분타에 오신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손님이신데….”
“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주와 객이 나뉘어서야 되겠습니까. 저도 이 곳에서 세례를 받은 몸입니다. 분타의 어려움은 제 어려움과 같지요.”
언럭키의 혓바닥이 청산유수처럼 미끄러졌다.
어떻게든 사냥터를 확보하겠다! 라는 마음가짐이 확고하게 느껴졌다.
사제 반오는 그런 언럭키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다니.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사이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사이드 퀘스트 : 리바 델 레이 텔르흐렌 분타의 고민 해결.]
-퀘스트 등급 : X.
-퀘스트 설명 : 교단 분타 주변에 몬스터들의 서식지가 새로 생겼다. 총 1000마리의 몬스터를 사살하라.
-퀘스트 보상 : 적정량의 경험치, 리바 델 레이 교단의 공헌도.
‘어…?’
언럭키가 흠칫 굳었다.
예상치 못한 사이트 퀘스트에, 보상은 저게 또 뭐란 말인가.
리바 델 레이 공헌도를 준다니…
‘저거 얻으면 도시에서 척살대 나오는 거 아냐?’
이거 해도 되는 건가?
***
슬쩍 떠보는 식으로 반오 사제에게 물어보니 리바 델 레이 공헌도는 교단 내에서 통화는 재화 같은 거라고 한다.
그걸로 교단의 보물을 얻을 수도 있고 나중에 진급에 도움이 되기도 한단다.
진급에 관심은 없지만 교단의 보물은 혹했다.
아직 그 실체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교단이다.
그들이 모은 보물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최소한 보랏빛으로 번쩍거리는 레전더리 급은 되지 않을까?
물론 그런 것과 상관없이 퀘스트는 수행할 생각이었다.
-총 1000마리의 몬스터를 사살하라.
“천 마리라니…. 미쳤다…!”
이걸 보고 언럭키는 환호했다.
퀘스트 목표가 저렇다는 것은, 그 서식지라는 곳에는 최소 천 마리 이상의 몬스터가 있다는 것 아닌가?
천국이 뭐 별거겠는가. 거기가 바로 천국이지.
언럭키는 단숨에 교단을 빠져나갔다.
반오 사제는 부제나 수련 사제들을 붙여줄까 물어봤지만 거절했다.
경험치를 나눠먹을 생각은 없었다.
분타가 위치해있는 협곡을 벗어나 조금 걷자 바닥이 푹 꺼진 깊은 지형이 나타났다.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넓은 대지가 가라앉아 있었다.
언럭키는 성큼 그 안으로 발걸음을 디뎠다.
그 후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반응이 왔다.
꿈틀.
바닥이 움직인다 싶더니 곧이어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쿠르륵. 꾸르르륵.”
괴상한 소리를 내뿜는 놈의 외관은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할 수 있었다.
거대한 지렁이.
[데저트 웜]
-레벨 : 65.
레벨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65 수준인 듯하다.
현재 언럭키의 레벨이 60이었으니 딱 적절한 수준이다.
‘여전히 내가 사신이었다면 레벨이 조금 높았으면 싶었겠지만, 지금은 일단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쾅!
-콰앙!
그 순간, 땅을 부수며 데저트 웜이 추가로 세 마리 더 나타났다.
총 네 마리나 되는 데저트 웜이 언럭키를 내려다보며 징그러운 몸뚱이를 비틀어댔다.
언럭키가 히죽 웃었다.
“크. 이 맛좋은 먹잇감들.”
누가 보더라도 징그러운 외관이었지만 언럭키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경험치 덩어리들! 고맙다!
그레고녹의 홀을 꺼내든 그가 왕홀을 휘저었다.
“해골 병사 소환, 해골 궁수 소한.”
-우웅!
한차례 검은빛이 스쳐지나가더니 바닥에서 검은 뼈를 지닌 해골들이 몸을 일으켰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보통의 네크로맨서가 소환하는 해골들은 개개인의 힘이 약하다.
어둠 속성을 플레이하는 유저가 얼마 없긴 하지만, 또 그런걸 좋아하는 변태적인 사람은 꼭 있기 마련.
미튜브에 보면 소수이지만 네크로맨서나 흑마법사로서 플레이하는 자들이 있었다.
헌데 그들의 전투 영상을 보면 하나같이 해골들이 군대처럼 움직인다.
함께 막고, 공격도 함께 하고.
그러나 언럭키의 해골은 달랐다.
-푹!
-촤악!
놈들은 한 구 한 구가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텅 빈 눈두덩이에서 붉은 귀화를 풍겨대며 뼈 칼을 휘둘렀다.
“쿠르르륵!”
데저트 웜의 몸이 꿈틀 하더니 기괴한 방향으로 돌진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몸통 박치기였지만 해골 병사는 방패로 자연스럽게 흘렸다. 훌륭한 반사 신경이다.
그 틈에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마치 백전노장 검투사가 용맹하게 적을 상대하는 듯한 모습!
궁수들도 뒤처지지 않았다. 활이란 거리가 가까울수록 명중률은 100%에 가까운 법이다.
움직이면서 화살을 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해골 궁수들은 데저트 웜들의 신경을 분산시키며 계속 화살을 쏴댔다.
그런 해골병사와 궁수가 합쳐서 총 14구.
세례 덕에 그레고녹의 홀에 추가 효과가 붙으면서 두 구가 늘어났다.
14대 3의 전투다.
해골들의 전력이 아무리 딸린다고 해도, 이 검은 해골은 마냥 부족하지만은 않았다.
언럭키가 뒤에서 디버프를 날릴 새도 없이 전투는 종료되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
.
거기에 10%의 경험치 획득량 증가는 덤!
“…와우.”
언럭키가 짤막한 감탄사를 토해냈다.
사냥이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걸까?
검왕이나 사신 때도 그리 어렵지 않게 몬스터들을 도륙내고 다녔지만 지금은 완전히 얘기가 다르다.
전투 내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데 경험치가 들어오다니.
스마트폰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의 자동 사냥이라도 켜 둔 기분이다.
언럭키가 뿌듯한 눈으로 해골들을 바라봤다.
임무를 수행하고 서있는 놈들의 모습이 그렇게 늠름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때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가만있어봐. 혹시 얘네들. 내 무기도 들 수 있나?’
언럭키의 인벤토리 속에는 아직 검왕 시절에 쓰던 무기들이 잠자고 있었다.
대표적인 게 ‘명예의 시작 롱소드’였다.
비록 이제는 저레벨에 낄만한 무기가 되었지만, 어쨌거나 이건 유니크 등급이다.
소환수인 해골 병사가 기본으로 장착하는 뼈 칼 보다는 좋을 터.
“야. 너 이리 와 봐.”
언럭키가 한 놈을 지목해 손가락을 까닥이자 덜그럭 소리를 내며 해골 병사가 다가왔다.
“이거 들어 봐.”
언럭키가 놈에게 명예의 시작 롱소드를 건넸다.
해골이 그 손잡이를 쥔 순간이었다.
-띠링!
[해골 병사 1이 ‘명예의 시작 롱소드’를 장착했습니다.]
[해골 병사 1의 공격력이 +14만큼 상승합니다.]
언럭키의 눈이 활짝 커졌다.
‘대, 대박이잖아!’
아이템의 공격력을 해골 병사가 그대로 쓸 수가 있었다.
다만 기존 명예의 시작 롱소드 공격력은 28짜리였다.
소환수에게 장착시키면 그 절반밖에 늘어나지 않는 모양인데, 그게 어디인가.
애초에 소환수는 언럭키의 스킬이다.
그의 마력과 스킬 등급으로 공격력이 결정되는 존재인 것.
아이템 장착은 추가로 더 강한 공격력을 부여하는 것이었으니 더욱 날개를 다는 셈이다.
그러면서 언럭키는 동시에 깨달았다.
‘돈이…오질라게 많이 들어가는 직업이겠네.’
지금 있는 해골들의 숫자가 14기.
나중에 더 늘어난다고 하면 어디까지 늘어날지 알 수 없다.
그 놈들에게 전부 다 무기를 들려준다면…
심지어 방어구까지 장착시키는 상상까지 하니, 언럭키는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빌어먹을 돈 먹는 망겜 같으니!
***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언럭키는 데저트 웜의 서식지를 질주하고 다녔다.
[현재까지 처치한 몬스터의 숫자 : 126 / 1000]
퀘스트 완료 목표인 1000마리 중 126마리를 처치했다.
그러나 언럭키는 겨우 1000마리만 잡고 사냥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여기는 흙 반 몬스터 반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몬스터가 널려있는 장소였다.
온 몸이 만족할 때까지 놀다 가겠다!
“꾸르르륵!”
“쿠륵! 쿠륵!”
쾅! 소리와 함께 땅을 뚫고 데저트 웜 무리가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여섯 마리였다.
“좋다 좋아. 가서 조져버려!”
언럭키가 활짝 웃으며 손을 들었다.
-덜그럭 덜그럭!
14구의 해골들이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해골들은 기계적으로 데저트 웜을 도륙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해골 소환 스킬을 보면 소환 유지 시간은 20분이다.
네크로 엠페러 직업 특성 덕에 두 배로 늘어서 40분.
그러나 언럭키는 사냥터에 머무르면 최소 몇 시간씩 머무른다. 10시간 이상 사냥하는 날도 수두룩했다.
그런 그에게 40분의 소환 시간이라는 건 굉장히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러나 전투에 돌입해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단점 자체가 못 되네.’
스킬에는 쿨타임이 없었다.
40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나를 써서 소환을 유지하면 그만이었다.
언럭키의 마력 수치는 130이 넘어간다.
스스로가 공격 마법이라도 쉴 새 없이 펼친다면 모를까, 겨우 소환 유지하는 것 정도야 마나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으로 획득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그가 상념에 빠져있던 사이 전투가 끝났다.
소환수들을 보자 해골 병사 한 구가 약간 다리를 절고 있는 게 보였다.
이번에는 여섯 마리나 되는 놈들을 한번에 상대하다보니 부상이 발생한 모양이다.
해골 병사 한 구가 명예의 시작 롱소드를 장착하게 되면서 집단 전투 능력은 더욱 올라갔다.
그럼에도 부상자는 발생했다.
언데드 병사라고 해도 병사는 병사. 죽음과 부상은 떼놓을 수가 없었다.
이게 중첩 된다면 부대의 전투력이 떨어지고 사냥 속도는 느려질 터.
그러나 언럭키의 표정에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안보였다.
완전히 죽어 역소환된다면 재소환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부상 정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까!
“다크 힐.”
언럭키가 손을 들어올리자 손바닥에서 검은 빛이 넘실거리더니 부상당한 해골에게 가서 닿았다.
놈은 곧 절뚝거리던 자세가 사라지고 다시 멀쩡해졌다.
마나 소모가 꽤 컸지만 지금 언럭키의 마나량은 동레벨 수준에서 말도 안 될 정도.
이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레고녹의 홀이 확실히 사기적인 아이템이긴 해.’
다크 힐은 왕홀에 붙어있는 스킬이었다.
이름에서처럼 일반 힐과는 다르다.
본인을 제외한 평범한 사람을 회복시킬 수는 없지만, 죽은 언데드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걸로 언럭키의 부대는 불사의 전력을 자랑하며 질주했다.
“자. 또 가자.”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데저트 웜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듯 쓸어버리고 다니는 언럭키와 해골 부대.
몬스터 사냥 속도는 검왕과 사신일 때에 비해 전혀 뒤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직업 특성에 붙어있는 경험치 10% 상승 효과로, 경험치 칸이 차오르는 속도만큼은 더 빠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띠링!
[레벨업!]
어느 순간, 새하얀 빛이 언럭키를 스치고 지나갔다.
로브의 모자 속 언럭키의 입가에 히죽 웃음이 걸렸다.
현재 레벨 61.
여기서 얼마나 레벨을 올릴 수 있는지, 한번 두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