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화
언럭키는 부제들의 몸을 일으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네크로 엠페러의 전설.
리바 델 레이 교단의 성서에 따르면 그들이 추앙하는 신의 직업 중 하나가 네크로 엠페러였다고 한다.
전승되어 오는 네크로 엠페러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검은 해골이었다.
일반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해골 병사들은 회백색의 사람 뼈 색깔이지만 오직 네크로 엠페러만이 검은 뼈의 언데드들을 다뤘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고 있는 거군.’
부제들이 보이는 극도의 공경도 이해가 갔다.
저들 입장에서는 성서에서 나오는 구절 하나가 눈앞에 펼쳐진 셈이니 눈물을 흘릴 만했다.
“어서 가시지요. 분타에 계시는 사제님께서도 이 소식을 들으시면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허둥지둥 일어난 부제는 더욱 발걸음을 빨리했다.
서둘러 이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듯이.
***
리바 델 레이 교단의 분타.
어둠 속성을 지닌 자들만 입장 가능한 결계 안쪽에 자리했으며, 천혜의 협곡으로 보호받는 장소이다.
수상한 짓을 하는 자들이 머무르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거처가 없었다.
협곡 안쪽에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었고, 그 가운데 커다란 신전이 있었다.
저기가 이 곳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일 터.
“세례는 신전에서 주관될 것입니다.”
부제들은 언럭키를 신전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바로 시작하나요?”
“네. 세례 의식은 항상 준비가 되어있어서 도착하시면 바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언럭키는 신전에 발을 들였다.
커다란 문을 통과하면서 그는 살짝 긴장했다.
아르만시아인 척 하고 들어온다는 이 계획은 부실한 점이 많았다.
보스몹이었던 아르만시아가 죽어버려서 그에 대해 아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헤탄이 사로잡았던 광신도들의 마을 잡몹들도 별로 아는 것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아르만시아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교단 본부에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도겠지.
그래서 ‘그레고녹의 홀’을 믿고 이 계획을 추진했다.
‘들킨다고 해도 의심 정도나 하겠지. 그레고녹의 홀을 들이밀면서 내가 아르만시아라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거야.’
그만큼 이 왕홀은 이들에게 특별한 물건이었다.
자신을 안내했던 부제들의 반응만 봐도 그러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자신이 네크로 엠페러라는 걸 안 뒤에는 극도로 공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그건 부제뿐만 아니라 사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예상은 곧 들어맞았다.
“형제님.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제, 반오라고 합니다.”
인자한 인상을 지닌 늙은 사제가 부드럽게 웃으며 언럭키를 맞아주었다.
“꿈에 그리던 교단에 오는 길이었는지라 육체의 힘듦은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허허. 그 분과 같은 힘을 쓰신다는 건 조금 전에 전해들었는데. 과연 그러시군요. 평원의 잡몹 쯤이야 아무렇지 않았겠지요.”
반오 사제는 더욱 인자하게 웃었다.
악을 모시는 조직임에도 그런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언럭키가 그들의 귀중한 손님이기 때문이겠지.
“세례는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지금부터는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그가 여기 온 목적은 교단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빼가는 것.
가능한 한 많은 걸 보고 들어야 한다. 퀘스트에 성공했다는 알림이 올 때까지.
언럭키가 눈동자만 돌려 여기저기를 보고 있는 걸 눈치 챈 사제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긴장되십니까 형제님?”
“크흠. 아닙니다. 사제님. 제가 너무 요란스럽게 있었나 보군요. 이런 건 익숙하지가 않아서….”
“세례를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분께 조금 더 봉사하겠다고 저희들끼리 약속을 하는 거니까요.”
반오 사제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섬주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신전 내부의 한가운데에서 엄숙하게 위치하더니 양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살짝 불이 밝혀지며 뒤에 있는 거대한 동상이 보였는데, 동상은 로브를 뒤집어 쓴 어느 마법사의 모습이었다.
마치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있는 마법사와 그 앞에서 양 손을 든 사제.
거룩하게마저 보이는 모습이었다.
“부제 아르만시아. 그대가 지금껏 교단에 해 온 공헌을 높이 사서 그대롤 ‘사제’ 직급으로 임명하겠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우웅!
사제의 뒤에 있던 신상의 손에서 검은 빛이 흘러나왔다.
“엇!?”
그리고 언럭키의 입에서 당황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얌전히 인벤토리에서 잠자고 있어야 할 그레고녹의 홀이 제멋대로 빠져나와 손에 쥐어진 것이다.
왕홀 역시 구체에서 새카만 빛을 뿜어내며 신상의 빛과 공명했다.
-띠링!
[그레고녹의 홀이 신상의 힘을 받아들입니다.]
[숨겨져 있던 왕홀의 힘이 깨어납니다.]
[그레고녹의 왕홀의 상태가 변화합니다.]
.
.
[그레고녹의 홀]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마법 공격력 + 125 상승.
-마력 능력치 + 25 상승.
-하루에 한 번 ‘다크 배리어’ 사용 가능.
-홀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 한 내구도 자동 복구.
-하루에 한 번 ‘다크 힐’ 사용 가능.
-아이템 설명 : 고대의 사악한 흑마법사 ‘그레고녹’이 사용하던 왕홀. 오랜 세월을 맞으며 안에 담겨있던 무한한 권능은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강력한 위력을 자랑한다.
-단, 마법사 유저가 그레고녹의 홀을 착용하면 ‘네크로맨서’로 전직됨.
-기초 계급 해골 소환 스킬의 소환수 숫자가 +1 증가.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60 이상, 마법사만 착용 가능.
-거래 불가.
변화한 아이템 스펙을 보고 언럭키가 눈을 부릅떴다.
‘뭐야. 이것도 진화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어?’
그레고녹의 홀은 레전더리 아이템 중에서도 스펙이 좋은 편이었다.
헌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한 단계 더 좋아지다니?
사신극검 때의 경우를 한 번 겪었음에도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언럭키는 자세히 스펙을 살폈다.
전과의 비교점은 두 개였다.
하나는 마법 공격력.
기존 120이었던 게 125로 늘어났다. 현재 직업이 네크로 엠페러였으니 이 마법 공격력은 해골들의 공격력이 늘어나는 것과도 비례했다.
두 번째는…
<기초 계급 해골 소환 스킬의 소환수 숫자가 +1 증가.>
바로 이 효과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기초 계급 해골 소환이란 해골 병사나 해골 궁수 같은걸 뜻했다.
당장 그 두 스킬의 소환수 숫자가 하나씩 더 늘어난다니.
언럭키가 다루는 해골들의 전투력을 생각했을 때 그건 단순히 숫자의 증가가 아니었다.
전략 전술의 폭이 훨씬 커지며 부대의 전투력이 급증한다는 걸 뜻했다.
“오오…신상이 반응하다니….”
반오 사제는 눈을 부릅뜬 채 언럭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제들의 말이 정말이었군요…. 전설과 연관 된 분이시라니….”
사제가 언럭키의 두 손을 꼭 붙잡았다.
“형제님과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하하…. 예. 저도 참 좋습니다.”
언럭키가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
세례를 주관했던 반오 사제는 언럭키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인자하게 웃어보였지만 공경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데, 신상이 반응을 보이자 그때부터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반오 사제는 분타 전체를 이끄는 인물이라 다른 사제들도 그를 윗사람처럼 모셨는데, 언럭키만큼은 반오 사제가 자신과 동등하게 대한 것이다.
그 덕분에 언럭키는 그에게 조금 편하게 정보를 캐물을 수 있었다.
교단 본부는 어디인지, 다른 분타의 위치나 소속 구성원들의 숫자 등.
다만…아쉽게도 쓸 만한 건 없었다.
-아르만시아 형제님께서는 궁금한 게 많으시군요.
-꿈에 그리던 교단 분타에 왔으니까요.
-허허.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저 또한 답변드릴 말씀이 크게 없습니다.
반오 사제 역시 본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극히 적었다.
리바 델 레이는 폐쇄적인 집단이었다. 스스로를 극히 숨기고 지령은 위에서 아래로만 하달된다.
윗사람의 정체는 전혀 모르고 오직 같은 신을 모시는 것으로만 연결이 되어있다.
그 폐쇄성 때문에 외부 조직원인 아르만시아나 수련 사제들의 자세한 정체 또한 이들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언럭키가 수월하게 잠입해올 수 있던 비결이지만,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건 아쉬웠다.
‘씁. 여기만 오면 바로 퀘스트 완료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네.’
생각보다 진행이 쉬웠다.
언럭키가 뭐라고 꼬치꼬치 캐물어도 사제나 부제들은 군말 없이 대답해주었다.
의심도 하지 않았다.
신상이 선택한 사제를 의심하는 건 신성 모독이다. 십년지기 보다 더 깊은 믿음을 주었다.
“흐음….”
언럭키는 고민에 빠졌다.
퀘스트가 턱 하고 막혔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뭔가 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알아내야 성공하려나?
아니면 사제들의 개인 신상 정보를 조금 더 캐낼까?
어쨌거나 여기는 적진인 만큼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저어, 사제님.”
언럭키의 시중을 들기 위해 옆에 있던 부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 고민이 있으시다면 저라도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네?”
부제는 공손한 자세로, 결코 선 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 표정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사제님께서 하시는 고민이라면 분명 필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제가 사제님께 약간의 도움을 드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 뭐….”
그렇긴 한데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내가 이 교단을 조사하러 왔다! 라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크흠. 그저 교단에 어떻게 하면 더 봉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부제님께 괜한 걱정을 끼쳐드렸군요.”
“괜한 걱정이라니요. 아닙니다.”
부제가 손사래를 쳤다.
“그나저나 교단에 봉사하고 싶으시다니…. 역시 사제님은 생각하시는 것도 남다르시군요.”
“하하.”
“봉사라…. 그러고 보니 저번에 반오 사제님께서 고민하시던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이 분타 주변에 몬스터의 굴이 생겨난 것 같다고 하더군요. 교단의 수련 사제들이 벌써 여럿 실종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다고 합니다. 퇴치하러 가긴 가야겠는데 함부로 갈 수도 없으니….”
몬스터들의 굴?
‘설마 던전?’
언럭키가 부제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부제님!”
“네?”
“그거 제가 하겠습니다!”
그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불꽃이 넘실거렸다.
지난 이틀 넘는 시간동안 몬스터 잡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
감질맛 나게 한 마리씩 튀어나오는 걸 보고 있으니 오히려 중독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 그건 현재 진행형이었는데 이제는 퀘스트마저 막혔다.
시간 낭비를 엄청나게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시원하게 사냥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니.
이건 무조건 가야하지 않겠는가!
“저한테 말씀하셔봤자…. 그건 반오 사제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저는 바빠서 먼저 가봐야겠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럭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신전 내부를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