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화
여러 매체에서 마법사 직군의 휘두르기(물리)는 훌륭한 파괴력을 보여 주곤 했다.
허나 아쉽게도 월드 사가에는 그게 힘들었다.
높은 자유도를 부과하니 가능은 하겠지만, 그 대가로 지팡이의 내구도를 깎아먹는 것이다.
마법사의 지팡이는 굉장히 정교한 물건이다.
작은 충격에도 내구도가 팍팍 떨어지는데 그걸 강하게 휘두른다?
아이템 파괴되기 딱 좋다.
당연히 언럭키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스킬이 없어도 이만한 스탯이라면 일정 수준 이하의 전사들은 맞짱떠서 충분히 이길 것 같네.’
그렇게 생각만 했다.
뭐, 어쨌거나 훌륭하게 직업 체인지를 성공했다.
상태창을 확인한 후에, 어제 전부 다 보지 않고 일단 껐던 메시지들을 추가로 불러왔다.
-띠링!
[현재 직업 : 네크로 엠페러]
[직업 특수 효과가 존재합니다.]
[네크로 엠페러(레전더리) 보너스가 발동됩니다.]
[지팡이, 완드 종료의 무기 사용 시 마법 공격력 200% 상승.]
[디버프 계열 스킬들의 효과 150% 상승.]
[디버프 계열 스킬들의 지속시간 100% 상승.]
[소환물 소환 계열 스킬들의 효과 150% 상승.]
[소환물 소환 계열 스킬들의 지속시간 100% 상승.]
[소환물 소환 계열 스킬들을 유지하는데 드는 마나 50% 감소.]
[소환물들이 죽인 적으로부터 얻는 경험치 +10% 상승.]
[기본 스킬로 ‘해골 병사 소환’ 이 주어집니다.]
[기본 스킬로 ‘해골 궁수 소환’ 이 주어집니다.]
[기본 스킬로 ‘쪼그라드는 근육’ 이 주어집니다.]
[기본 스킬로 ‘체력 약화’ 가 주어집니다.]
[기본 스킬로 ‘둔화’ 가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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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에 대한 부가 설명들.
이전에 얻었었던 ‘검왕’과 ‘사신’처럼 ‘네크로 엠페러’ 역시 레전더리 직업이다보니 설명이 주르륵 이어진다.
이것 하나하나가 귀중하기에 언럭키는 집중해서 꼼꼼히 눈여겨봤다.
보다보니 얼추 감이 잡혔다.
‘해골들을 소환해서 전투하고 뒤에서 디버프를 날리는 스타일이군.’
직업 네임을 들었을 때부터 이렇게 예상하긴 했다.
걱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두 직업은 결은 조금 다르지만 어쨌거나 근접 전투를 베이스로 했었다.
헌데 갑자기 후방에서 싸우는 마법사라니.
‘초반에는 스타일 적응하느라 좀 빡세겠어.’
당분간은 조금 감을 잡아봐야겠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특히나 한 개의 특성이 언럭키의 눈을 사로잡았다.
-소환물들이 죽인 적으로부터 얻는 경험치 +10% 상승.
경험치 10% 상승.
월드 사가는 레벨이 오를수록 더럽게 경험치 얻기 힘든 구조이다.
그렇기에 이런 특성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게 있다면 어떻게든 적응해서 잘 해나가 봐야지.’
다인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게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인데 경험치 상승까지 붙어 있다니.
잘만 키우면 지금까지의 그 어떤 직업보다 레벨업 속도가 빠를 수도 있겠다.
***
직업 체인지가 성공적으로 완료된 뒤, 언럭키는 곧바로 움직였다.
리바 델 레이 분타에 잠입해서 정보를 캐오는 퀘스트. 이걸 위해 많은 걸 포기했다.
더 시간 낭비 할 것 없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했다.
우선 마법사용 노멀 등급 로브를 하나 구입했다.
깊숙이 눌러쓰니 입매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언럭키는 그 상태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사실 당연한 게, 지금 그의 직업은 네크로 엠페러. 어둠 속성을 다루는 흑마법사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일 것이다.
도시 내에서 발각된다면 최소 추방이고, 범죄를 저질렀다가는 바로 감옥에 투옥될 터였다.
‘이크. 피해가야지.’
도시 내부를 걷던 언럭키가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경비들을 보고 슬쩍 벽 쪽에 붙었다.
지금은 경비들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에휴. 내 신세야. 이래서 사람이 죄 짓고 살지 말라는 거군.’
원래 언럭키는 명예 수치가 높았기에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다녔다.
NPC 경비들은 그를 보며 존경의 눈빛을 보내거나 가볍게 목례했는데, 대우받는 그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범죄자라도 된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음? 거기 잠깐!”
각을 맞춰 걸어가던 경비병 중 한 명이 언럭키를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차림새가 수상하군. 모자를 걷어보도록.”
언럭키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면, NPC들은 거의 사람처럼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도시를 지키는 그들의 눈에 언럭키는 충분히 수상했다.
뒤집어 쓴 검은색 로브, 뭐가 급한지 빠르게 걷는 발걸음, 자신들이 다가가자 벽에 붙어서는 모습까지…
누가 보더라도 나 수상해요! 라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
“다시 한 번 말한다. 모자를 걷어라. 또다시 지시에 불응한다면 체포하겠다.”
언럭키가 머뭇거리자 경비들이 슬쩍 창을 들이밀었다.
어쩔 수 없이 언럭키는 옅은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으로 천천히 모자를 걷었다.
제발 마주 본 것만으로 문제가 되지 않게 빌면서.
“헉!”
경비들은 언럭키의 얼굴을 본 순간 헛숨을 들이켰다.
창을 분분히 내린 그들이 고개를 숙였다.
“명예로우신 분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못 알아 봬서 죄송합니다!”
명예 수치를 올리면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가 바뀐다.
고위 귀족들은 걷는 것만으로도 품위가 느껴지는데, 언럭키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얼굴에서 고귀함이 보이는 수준이었다.
일반 유저들은 알아보기 힘들고 NPC들은 ‘저 사람 뭔가 있다!’ 라고 생각할만한 정도.
언럭키가 얼굴을 드러낸 순간 그들이 고개를 숙인 건 그런 까닭이었다.
“크흠. 아닐세. 도시를 지키는 게 자네들의 일인데 뭐라 할 수는 없지. 오히려 훌륭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니 칭찬해야 하겠군.”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비들은 다시 한 번 짧게 목례한 뒤 물러났다.
떠나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언럭키는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큰일 날 뻔 했군.’
카르마 수치가 높았다면 명예고 뭐고간에 붙잡혔겠지만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언럭키는 서둘러 도시를 빠져나갔다.
***
도시 텔르흐렌을 나서면 황무지가 펼쳐진다.
언럭키는 그 황무지를 묵묵히 걸었다.
보통 유저들도 도시 바깥을 나가긴 한다.
몇몇 사냥터들은 도시 외부에 자리해 있으니까.
허나 그 너머까지 나가진 않았다.
월드 사가는 방대한 오픈 월드 게임이다.
굳이 워프 게이트를 통해서만 도시를 넘어가지 않아도 지도와 나침반이 있다면 걸어서도 갈 수 있었다.
물론 그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시 바깥에 펼쳐진 황무지나 초원에는 몬스터 밀집도가 굉장히 낮고 드물게 등장한다.
사냥을 원하고 레벨업을 원하는 유저 입장에서는 괜히 넓기만 넓고 효율은 떨어지는 쓰레기같은 장소!
‘그래도 배경은 진짜 이쁘네.’
언럭키가 걷다가 고개를 들어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황무지 위로 해가 떠있는 자연 경관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요즘엔 아예 레벨업은 포기하고 이런 여행을 즐기면서 낚시 같은 소소한 취미를 즐기는 소수의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갔다.
특히나 언럭키는 현실의 몸이 닭장 고시원에 갇혀 있었기에 더욱 감동이었다.
‘물론 나는 이런 걸 즐길 수는 없지만.’
현실의 부자들은 굳이 월드 사가의 레벨업에 목매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는 있는 그대로 지구에서 즐기기 힘든 것을 즐기는 편이라는데.
언럭키는 치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감성에 맞지도 않았고.
어쨌거나 언럭키는 계속해서 황무지를 걸었다.
‘우연히 던전 같은 거라도 하나 안 발견하려나?’
그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반쯤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행운의 무지개 능력은 뜬금없이 발동하는데, 어쩌면 이 황무지에서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씩 암살자 중에서도 탐험가 쪽으로 스킬을 키운 자들은 이런데서 던전이나 유적지를 발견하곤 했다.
구매자만 잘 찾으면 큰 돈이 되었는데, 언럭키 역시 그런걸 생각했다.
‘제발 하나만 떠라. 부탁이다 부탁!’
언럭키는 더 기운차게. 내심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걸음을 옮겼다.
***
사냥터보다는 몬스터 집적도가 굉장히 낮지만, 도시 바깥 평야에서도 몬스터는 등장한다.
“캬아아아….”
언럭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집채만 한 크기의 도마뱀이었다.
꼬리와 혓바닥이 흔들거리는 놈이었는데 덩치만 큰 게 아니고 꼬리 끝과 혀끝에서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반갑다 야.”
언럭키는 놈을 보며 활짝 웃었다.
슬슬 가만히 걷기만 하는 게 지겨워지고 있었는데 이런 놈이 나타나주다니.
[플레임 테일 도마뱀]
-레벨 : 62.
현재 언럭키의 레벨과 2밖에 차이 안 나는 상대.
몸풀기로 딱 좋다. 안 그래도 새로운 직업에 대한 적응을 해봐야 했으니.
“해골 병사 소환.”
언럭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스킬을 사용한 즉시 들고 있던 레전더리 아이템, ‘그레고녹의 홀’에서 불길한 빛이 흘러나왔다.
검은빛은 주변에 퍼지더니 땅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잠시 후, 땅에서 시커먼 뼈다귀 손이 튀어나왔다.
-덜그럭 덜그럭.
텅 빈 눈두덩이에서는 붉은 귀화를 뿜어내는, 온통 검은색 뼈로 이루어진 해골들.
네 구의 해골 병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뼈로 된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놈들의 모습은 척 보기에도 무시무시했다.
‘일반 네크로맨서들이 보여 주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군.’
미튜브에 보면 소수이지만 어둠 속성 직업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있긴 했다.
그 중, 네크로맨서들이 보여주는 해골은 보통 빈약하거나 어딘가 약해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그도 그럴게, 사람의 몸은 뼈와 근육, 지방으로 이루어져 부피가 크다.
반면에 해골 병사는 뼈밖에 없으니 덩치가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눈앞에 검은 해골들은 그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해골 병사 소환]
-스킬 등급 : 레어.
-스킬 효과 : 고대 전설적인 악명을 가졌었던 ‘네크로 엠페러’가 소환하는 해골 병사는 특별하게 검은 뼈를 지니고 있다.
-10레벨 당 소환할 수 있는 해골 병사의 숫자가 한 구씩 늘어난다.
-스킬 지속 시간 : 20분(+20분)
-소환 가능한 해골 병사 숫자 : 6.
기본으로 주어지는 해골 병사 스킬의 등급이 레어였다.
네크로 엠페러 특성 덕에 지속 시간은 2배.
여섯 구를 소환할 수 있었지만 일단 지금은 능력을 보기 위해 네 구만 소환했다.
“가라.”
언럭키가 지시를 내리자 해골들이 땅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동시에 언럭키는 뒤로 물러났다.
근접 전투 능력이 약한 네크로맨서 계열은 소환수만 앞으로 내세운 뒤 안전하게 뒤로 빠져 있어야 한다.
당연히 지금의 언럭키도…
‘…나도 빠져야 되나?’
문득 든 생각이 발걸음이 멈칫거렸다.
해골 병사들이랑 같이 들어가서 지팡이로 후드려 패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곧 고개를 젓고는 예정대로 움직였다.
지금은 죽자 살자 하는 전투가 아니라 테스트이다.
뒤로 물러난 그는 디버프를 준비했다.
해골 병사만으로는 버티는 것도 힘들 테니 상대를 약화시켜야 했다.
때문에 당장 스킬을 펼치려고 했지만…
‘…왜 이렇게 잘 싸워?’
언럭키가 살짝 당황한 채 앞을 바라봤다.
-덜그럭 덜그럭.
-콰직! 서걱!
디버프를 걸 세도 없이, 해골 병사들이 몬스터를 도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