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화
갑작스레 나타난 퀘스트.
‘사이드 퀘스트? 이건 또 뭐야.’
사이드 퀘스트 ‘사신극검의 진화’.
언럭키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였다.
여전히 웅웅 울리고 있는 사신극검의 아이템 정보를 열었다.
[사신극검]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공격력 + 91 상승.
-착용자의 힘 능력치 + 5, 체력 능력치 + 5, 마력 능력치 + 10 상승.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을 시 데미지 + 50% 상승.
-특수 스킬 ‘비검’ 사용 가능.
-호르헤른 가문의 선조가 그 당시 최고의 암살자로 군림하던 ‘사신’을 죽이고 획득한 단검이다. 노획 도중에 검이 부러졌었고 후에 복원되었다. 허나 대장장이 실력의 한계로 그 성능이 많이 하향되었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30 이상.
화려한 스펙이다.
레벨 제한이 30인데, 지금은 그 두 배인 60에 가까워졌음에도 여전히 부족하지 않았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이 레벨대의 유니크 아이템이 공격력 면에서는 더 좋을 수도 있겠으나, ‘비검’ 이나 종합적인 능력치 상승을 보자면 여전히 대체 불가능이었다.
‘그런데 이게 진화를 한다고?’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꾸준히 월벤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하지만 처음 듣는 소리였다.
[사이드 퀘스트 : 사신극검의 진화]
-퀘스트 등급 : X.
-퀘스트 설명 : 사신극검의 본래 주인인 ‘사신’ 의 기운이 짙게 느껴지는 장소에 도착했다. 기운이 풍겨오는 장소를 찾고 사신극검의 본래 힘을 깨워라.
-퀘스트 보상 : 적정량의 경험치, 사신극검의 진화.
‘진화? 퀘스트 보상이 진화야?’
이게 진화를 한다고?
언럭키가 단검을 내려다봤다.
마치 지금이라도 앞으로 가자는 듯 여전히 진동하고 있는 사신극검.
여전히 부족하지 않은 스펙인데, 여기서 더 진화를 하겠다니.
“이건 못 참지.”
언럭키가 히죽 웃더니 걸음 속도를 조금 더 빨리했다.
-촤악!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데미지 300% 상승!]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
가로막는 놈들이 픽픽 스러져갔다.
***
“형제들아. 우리의 목표가 머지않았다.”
은신처 가장 깊숙한 곳.
복면을 뒤집어쓴 암살자들이 가득 차 있는 그곳의 분위기는 뜨겁게 과열되어 있었다.
암살자답게 소리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눈이 붉게 충혈되고 공기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먼 옛날 우리를 핍박했던 텔르흐렌의 영주도 이제 끝이다. 사신님의 복수를 할 때가 왔다.”
알폰소 형제단의 먼 조상은 과거 전설적인 살수 ‘사신’의 추종자 중 한 명이었다.
비록 그의 인정받는 부하는 아니었지만 옆에서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었다.
그 당시 사신의 위명은 천지를 진동시켰으며, 그렇게 따라다니는 암살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신의 죽음 이후, 추종자들의 미래 역시 어지러워졌다.
영주들은 추종자들을 핍박하고 처형하는 등, 사신의 흔적 자체를 지워버리려고 했다.
알폰소 형제단의 선조들 역시 그렇게 죽어갔으며,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렇듯 지하로 피신해 명맥을 이어나갔다.
“사신님의 힘이 담긴 구슬이다. 이게 있다면 영주에게 복수할 수 있는 확률이 극도로 높아질 터!”
사신이 전설적인 암살자였던 이유는 그의 암살 실력이 있었다.
설사 지하 깊은 곳에 숨더라도 사신의 검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런 사신의 힘이 깃든 구슬이었다.
알폰소 형제단은 이 힘으로 텔르흐렌 영주에게 복수를 한 뒤, 지상으로 나설 생각이었다.
“단장.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 형제단의 암살자 한 명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 부복했다.
“무슨 일이지?”
“침입자입니다.”
“!”
알폰소의 눈이 부릅떠졌다.
항시 감정을 숨겨야 하는 암살자이지만 이번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설마 영주의 졸개인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저희 형제단원들을 죽이며 전진하고 있더군요.”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면 최소한 기사는 아니란 말이군.”
명예를 추구하는 기사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는다.
특별한 임무를 맡은 게 아닌 이상 설사 방랑기사라도 스스로의 명예를 드러내는 법.
그런 점에서 신분을 밝히지 않는 상대라면 그냥 떠돌이일 가능성이 높았다.
“우연찮게 들어온 건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차라리 잘됐다. 사신님의 힘을 미리 시험해본다고 생각하면 편하겠지.”
알폰소가 구슬을 바라봤다.
사람을 홀리는 주홍빛이 안에서 일렁거렸다.
“단장님이 직접 나서실 겁니까?”
“일단 환영은 너희들이 해 줘라. 단원들의 칼날도 못 막아서야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있겠나.”
“알겠습니다. 사실 단장님이 나설 일은 없을 겁니다. 저희 선에서 처리할 테니까요.”
“괜찮다.”
알폰소가 그 말을 끝으로 손을 까딱였다.
모여 있던 형제단원들이 스르륵 어둠 속으로 사라진 다음, 침입자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
언럭키에게 알폰소 형제단의 적들은 쉬웠다.
일반몹은 아예 은신 대결에서 상대가 안 되었으니, 경험치 수급을 그냥 해가는 느낌이었다.
허나 어느 순간 놈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조직적인 연계와 더불어, 한 명씩 강한 놈이 등장한 것이다.
[알폰소 형제단 단원]
-레벨 : 61
일반 암살자들의 레벨은 이렇듯 60~61 정도를 왔다갔다한다.
[알폰소 형제단 간부]
-레벨 : 63
그러다가 한 번씩 언럭키도 섬뜩한 공격을 하는 놈이 있었다.
진격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어지간한 공격은 몸으로 막았는데, 간부들의 일격은 HP가 꽤 큰 폭으로 깍였다.
‘제법이네?’
갑옷의 성능과 언럭키의 스펙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왜 빅드래곤 길드원들이 제대로 지도도 못 만들고 픽픽 죽어나갔는지 알겠다.
‘일반 길드원들 수준이라면 거의 한두 방 만에 죽었겠어.’
암살자들의 조직적인 공격. 거기에 간부의 한 방은 한순간에 파티를 와해시켰을 것이다.
언럭키마저 위협을 느꼈음 말 다했다.
-스스스!
그래서 언럭키도 암살자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어둠 속에 은신한 다음, 멀찍이서 단검을 날렸다.
투척 예술이 걸린 단검들이 환상적인 궤적을 그리며 알폰소 형제단원들에게 쏘아진다.
-푹! 푹!
“큽!”
“커헉….”
방어력이 약한 암살자들은 이걸로도 커다란 데미지를 입었다.
그 틈에 언럭키는 간부를 향해 직접 돌격했다.
아무리 놈이 강하다고 해도, 1대1로 붙는다면 질 수가 없다.
-콰앙!
“끄으윽….”
언럭키의 몸통 박치기를 맞은 간부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관련 스킬이 없어 데미지는 크지 않았지만 스턴 상태에 빠졌다.
그 틈에 언럭키가 놈의 목에 사신극검을 찔러 마무리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
간부가 죽으니 나머지 놈들까지 마무리하는건 금방이었다.
죽은 몬스터들 사이에서 언럭키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크! 로버트님이 이 장면을 보셨어야 하는데!”
완벽하게 암살자다운 전투였다!
어딜 누구보고 암살은 컨셉인 줄 알았다니 뭐니 하는 건지.
뭐가 됐건 상대만 전멸시키면 그게 암살 아니겠는가.
힐끗 경험치바를 본 언럭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간부 놈들은 강한 만큼 훨씬 더 짭짤하네?’
안 그래도 폭발하듯 차오르는 게이지는 이제 그 도를 넘어섰다.
워낙 레벨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조금 전에 레벨업 했는데도 또 하게 생겼다.
언럭키는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이 던전을 구석구석, 단 하나도 놓치는 곳 없이 전부 다 훑겠다고.
어차피 빅드래곤 길드를 위해 공략법과 지도도 만들어야 하니, 일석이조였다.
***
몇 시간동안 언럭키는 던전 전체를 돌았다.
더 이상 미니맵에 밝힐 곳이 없었다.
공략률은 99%. 남은 한 곳은 보스룸 뿐이었다.
“아. 여기가 진짜 끝인가.”
언럭키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던전에 입장한 직후 레벨 한 개가 올라 56.
그리고 지금은 추가로 2개가 더 올라 58 레벨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최고의 던전!
그게 바로 이 알폰소 형제단원들의 아지트였다.
허나 그 꿀단지도 이제 끝났다.
던전 내부의 탐사를 마쳤다.
잠시 기다려봤지만 던전 속 몬스터들은 리젠되지 않았다.
남은 건 눈앞을 가로막은 커다란 바위뿐인데, 손을 갖다 대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보스룸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이런 좋은 곳을 벌써 끝내고 돌아가야 하다니.
어린 시절, 보육원 원장님이 무리를 해서 딱 한 번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원장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몇 가지의 놀이기구만 태워주었다.
돈도 없어서 자유이용권이 아니라 겨우 3개의 놀이기구를 타는 이용권만 구매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놀고, 오후가 되어 돌아가는 길에 더 놀고 싶은 마음이 어찌나 들던지.
지금이야 이해하지만 그 당시에는 선생님들이 야속했다.
헌데 지금 드는 기분은 그 때와 비슷했다.
“에휴. 어쩔 수 없지.”
그러나 그때와 달리 지금의 언럭키는 어른이다.
아쉬움을 털어내고, 그가 보스룸의 입장에 동의했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보스룸을 가로막고 있던 바위가 옆으로 치워졌다.
-저벅.
언럭키가 내부로 입장했다.
***
-쿠르르릉!
기관 장치가 작동하며 적이 들어왔다.
알폰소는 상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장이 특이하군.’
단검을 패용한 것을 보면 같은 업종의 종사자인가 싶었는데 두터운 판금갑옷을 입고 있었다.
영 이상한 상대였다.
물론 복장 같은 게 중요하진 않았다.
“어디서 온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여기까지 오다니. 실로 굉장하다.”
형제들이 모두 죽었다고 말하는 알폰소였지만 정작 목소리는 평온했다.
말만 형제단일 뿐, 쓰고 버리는 장기말에 불과한 부하들이었다.
오히려 기뻐했다.
“영광으로 생각하라. 무려 사신님의 힘을 마주하는 첫 제물이 되는 것을!”
어차피 영주를 암살할 때 필요한건 숫자만 많은 부하들이 아니었다.
정말 강력한 한 명의 암살자만이 그런 대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 마치 전설 속의 사신처럼 말이다.
지금 들어온 적은 영주를 잡으러 가기 전, 시범 상대로 충분하겠지.
활짝 웃은 알폰소가 구슬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파지지직!
알폰소가 들고 있던 구슬에서 전류와 함께 반발력이 피어났다.
언럭키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난 건 그 순간이었다.
-띠링!
[사신의 기운이 흘러나오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사신극검이 과거의 전설, 사신의 힘이 담겨있는 구슬과 ]
구슬에서 빛이 나더니, 알폰소의 손에서 휙 하고 빠져나왔다.
그러더니 그대로 언럭키의 단검에 찰싹 달라붙었다.
“?”
알폰소는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 아니 내 구슬이 왜…?”
어처구니없어서 중얼거려 봤지만 떠난 구슬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슬은 점점 더 단검에 달라붙었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듯, 둘은 단단히 결합했다.
그 직후.
[퀘스트를 성공하셨습니다.]
[사신극검이 진화를 시작합니다.]
-파앗!
사신극검에서 주홍빛이 폭발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