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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빨로 레벨업-67화 (67/218)

#067화

‘이게 무슨…!’

갑작스레 가슴팍에서 올라오는 격통에 아르만시아는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이런 통증을 느끼는 게 얼마만이던가.

늙은 몸으로는 버틸 수 없는 고통이었다.

게다가 체력도 낮아서 이 한 번의 공격에 그대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우웅!

그때 잡고 있던 왕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이한 검은빛은 아르만시아를 휘감더니, 상처를 어느 정도 회복시켜주었다.

“쳇. 회복 능력도 있었나.”

언럭키가 어둠 속에서 스르륵 나타나며 중얼거렸다.

기습을 한 대가로 은신이 풀렸다.

성공적인 기습이었건만, 상황이 막 좋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큰 데미지를 입힌 것 같더니, 놈이 정신을 차린 것이다.

“쿨럭 쿨럭. 이런 빌어먹을 놈이…감히 누구의 옥체에 손을 댄 줄 아느냐?”

“옥체라고 할 정도까진 아닌 것 같은데.”

언럭키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아르만시아의 몸은 누가 봐도 볼품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본인도 아는지 그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쿵!

[일어나라!]

그가 왕홀로 의자 팔걸이를 찍자, 검은 마력이 바닥을 적셨다.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덜그럭

곧이어 바닥에서 해골들이 몸을 일으켰다.

텅 비어있는 두 눈두덩이에서 귀화를 넘실거리는 해골 병사들.

어떤 놈은 뼈로 된 검을 들고 있었고, 또 어떤 놈은 창을 들었다.

“언데드!”

어느새 옆에 다가온 헤탄이 대경해 소리쳤다.

“네크로맨서였나!”

중세 판타지 세계관인 월드 사가에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

허나 어딜 가나 그렇듯, 죽은 자를 다루는 사람은 배척받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 고대에 있었던 최초의 흑마법사로부터 그 뿌리가 시작된 저주받은 이들.

삶을 핍박하고 죽음을 이용하는 그들은 생명체라면 누구나 다 싫어했다.

시종일관 껄껄 웃던 헤탄의 얼굴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벌레가 두 마리였군. 얼마나 되든 상관없지. 너희들도 내 병사로 만들어 주마!”

아르만시아가 홀을 가볍게 휘젓자 해골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그럭 덜그럭!

언럭키와 헤탄이 그에 맞서 반격했다.

-쾅!

-콰드드득!

방패와 단검을 휘두르자 해골들이 손쉽게 박살났다.

아르만시아가 위엄 있게 외친 것과 달리, 해골 병사들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광신도들보다 약간 더 강한 정도?

언럭키나 헤탄 수준에게는 거기서 거기였다.

그러나 해골 병사들을 손쉽게 부수고 있음에도 언럭키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경험치를 안 주네?’

기껏 죽였는데 경험치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이 해골들은 몬스터가 아니라 소환수로 분류되어서일 터.

기분이 나빠졌다.

지금 무임금 노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후후. 잘 싸우는구나. 그렇다면 어디, 지금부터도 잘 싸우나 두고 보겠다.”

아르만시아가 음침한 웃음을 흘리더니 다시금 왕홀을 휘저었다.

-띠링!

[흑마법 디버프 ‘정신 침식’에 노출됩니다.]

[흑마법 디버프 ‘체력 약화’에 노출됩니다.]

[흑마법 디버프 ‘허약한 근육’에 노출됩니다.]

검은빛이 번쩍이더니 언럭키의 눈앞에 메시지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그게 뭔지 읽기도 전부터 몸에 반응이 느껴졌다.

시야에 안개가 낀 듯 흐려지고 숨이 가팔라졌으며, 몸이 무거워졌다.

‘디버프? 이런 젠장.’

과거 흑마법사 베르멘베거와 싸웠을 때처럼, 아르만시아 역시 디버프를 사용했다.

허나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

검왕은 직업 특성상 디버프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허나 사신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특별한 방어용 아티펙트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걸리게 된다.

물론 이깟 디버프 좀 받는다고 해골 병사한테 당할만한 스펙은 아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군.’

언럭키는 생각을 바꿨다.

사실, 여태껏 자신은 대충 싸우고 있었다.

정면대결 같은 건 검왕일 때야 하는 거지, 지금은 사신 아닌가.

사신에게는 그에 걸맞은 전투법이 있었다.

스펙으로 무작정 깔아뭉갤 수 없으니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헤탄님. 앞에서 시선 좀 끌어주세요.”

“제길…. 무언가 방법이 있나?”

헤탄 역시 디버프에 당한 상태라 컨디션이 안 좋은지 인상을 찡그렸다.

“예.”

“알겠네. 내가 해 봄세.”

대답과 동시에 헤탄이 크게 방패를 휘둘렀다.

-콰콰앙!

계속해서 소환되는 해골 병사들이 우수수 밀려났다.

“이 놈들! 모조리 쓸어 주마!”

커다란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단박에 이목을 집중시킬 만했지만, 해골들에게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르만시아의 시선이 헤탄에게 집중됐다.

언럭키가 그 틈에 뒤로 물러나 은신에 들어갔다.

주변에 널린 게 어둠이다.

그 안에 잠긴 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특수 스킬 ‘비검’이 발동합니다.]

-쐐애액!

언럭키가 손을 휘저었다.

사신극검을 포함한 총 네 자루의 단검이 번개처럼 아르만시아를 향해 쏘아졌다.

“어림없다!”

아르만시아가 버럭 외치며 왕홀을 들어올렸다.

검은빛이 번쩍이더니 배리어가 생겨났다.

쾅! 소리와 함께 사신극검과 부딪친 배리어가 상쇄되어 사라졌다.

“으음.”

아르만시아는 살짝 질린 표정이었다.

단검 던지기 한 방으로 배리어가 사라지다니.

그래도 막았으니 다행이지만…

“!”

-푹푹푹!

그때 날아온 단검 세 자루가 아르만시아의 몸통에 틀어박혔다.

“크후욱….”

그가 숨넘어가는 비명을 질렀다.

저 멀리서 고요한 표정으로 여기를 노려보고 있는 언럭키가 보였다.

‘투척 예술’ 스킬로 함께 던졌던 단검이 배리어가 부서진 후에 시간차로 날아온 것이다.

‘무슨 단검을 이렇게 귀신같이….’

아르만시아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공포감이 스쳐지나갔다.

***

은신, 암슴, 게릴라 전투.

암살자 유저가 해야 하는 것들이다.

언럭키는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모습을 숨긴 채 끊임없이 아르만시아를 괴롭힌 것이다.

멀리서 단검을 던지고, 다시 되돌아가 숨었다가 어느 순간 뒤에서 습격하고, 이쯤이면 괜찮다 싶을 때의 틈을 노리고 다시 암습이 날아오고…

인식의 틈을 쪼개는 공격이 이어졌다.

치명상도 여러 번 입혔다.

아르만시아의 근접 전투 능력은 형편없었다.

언럭키의 접근을 알아채지도 못했고, 방어력도 없다시피 했다.

때리는 족족 맞은 것이다.

그러나 왕홀이 굉장히 까다로웠다.

보석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올 때마다 배리어가 생겨나 공격을 막아내고, 치명상을 입혔다 싶으면 상처를 치유해준 것이다.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아르만시아는 이미 골백번은 더 죽었을 터.

죽음의 위기를 여러 번 넘겼지만, 아르만시아의 정신은 점점 피폐해졌다.

‘저 놈은 사신인가?’

그는 시종일관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어둠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하는 마음이 그를 잠식해나간 것이다.

사신.

아르만시아는 모르겠지만, 그는 왜 직업 이름이 그렇게 붙었는지 제대로 체험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병사들이여 나를 지켜라! 저 괴물을 막으라고!”

결국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아르만시아가 비명을 질렀다.

-덜그럭 덜그럭!

“으하핫. 어딜 가려 하느냐!”

그러나 해골 병사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헤탄에게 꽉 붙들려 있었던 것이다.

전장의 배테랑 소리를 듣던 군인이 헤탄이다.

방패를 다루는 솜씨만큼은 예술의 경지에 올라 있었는데, 실력이 허접한 해골 병사들로는 그를 쳐내고 언럭키를 노리러 갈 수가 없었다.

아르만시아에게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육체 능력은 비루먹은 당나귀 꼴이었기에 직접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지금이야 잘 막고 있었지만, 이렇게 야금야금 깎여나가다가 왕홀의 힘이 떨어지면 죽을 터.

그의 시선이 힐끗 왕홀의 보석 부분으로 향했다.

원래는 진한 검은빛이 나오고 있었는데, 지금은 색이 많이 옅어졌다.

힘이 거의 끝나간다는 뜻이다.

“안 돼…. 사, 살려 줘!”

결국 아르만시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서 계속 버티고만 있을 수는 없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옥좌 뒤편으로 허둥지둥 도망쳤다.

여기에 더 있다가는 죽기밖에 더 할테니, 도망칠 생각이었다.

“흐억! 헉! 헉!”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사제가 된답시고 좋아라 할게 아니고 육체 단련좀 할 걸 그랬다.

뒤늦게 후회가 찾아왔다.

“으으….”

걸어가면서 연신 뒤를 돌아봤지만 놈이 쫓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위에 가득 찬 어둠이 무서웠다.

언제 저 안에서 녀석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리고.

“어디까지 갈 셈이야?”

“으헉!”

언럭키는 어느새 나타나 정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놀란 아르만시아가 뒷걸음질 치는 순간, 그가 유령처럼 다가왔다.

아르만시아는 본능적으로 왕홀을 들어올렸다.

“와, 왕홀이여. 나를 지켜라!”

그러나 왕홀은 더 이상 반응이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아이템이라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

그가 우려했던 것처럼 힘이 다 떨어진 것이다.

아르만시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푹!

언럭키의 단검이 아무런 저항 없이 그에게 틀어박혔다.

***

-푹!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데미지 300% 상승!]

사신극검이 아르만시아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왕홀에서는 더 이상 빛이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공격을 막는 배리어가 생겨나지도 않았고, 상처도 그대로였다.

“내, 내가…이렇게…가게 되다니….”

피가 주륵주륵 나오는 가슴팍을 내려다보며 아르만시아가 원통한 듯 중얼거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사제가 되고 총단에 들어가 고위층까지 되는걸 꿈꿨건만.

정신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덧없음이 느껴졌다.

그는 곧 툭 하고 고개를 떨궜다.

-띠링!

[보스 몬스터 ‘부제 아르만시아’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업!]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정보원 헤탄에게 돌아가 정산을 받으십시오.]

레벨업 이펙트로 몸에서 빛이 번쩍였다.

“후우.”

언럭키가 참았던 한숨을 내뱉었다.

까다로운 적이었다.

아무리 공격해도 무슨 좀비마냥 죽지 않고 계속 살아있는데, 아주 질려버렸다.

“네크로맨서가 원래 본인도 좀비가 되는 직업이었어?”

헤탄이 잘 버텨 주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기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해골 병사들에게 쫓겼다면 마음껏 은신한 채 공격하는 게 어려웠을 테니까.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만시아는 까다로웠다.

몇 번은 죽일만한 데미지를 넣었는데도 배리어가 막고 회복시키고…

나중엔 마음속에 오기가 가득해졌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사신극검은 어차피 회수 기능이 있으니, 투척 예술로 날렸던 단검만 최대한 회수하며 죽어라 공격한 것이다.

그래도 힘들었던 사냥이었던 만큼, 보상도 컸다.

퀘스트 성공은 원래 예상했던 것이다.

레벨업도 뭐. 이만한 보스몹을 잡았으니 단숨에 레벨업하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언럭키가 주목한건 다른 것이었다.

“하핫.”

죽은 아르만시아의 옆에 데굴 하고 굴러다니는 왕홀.

아르만시아가 그토록 소중하게 잡고 있던 왕홀은, 더 이상 사이한 빛을 뿜어내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럭키는 웃음이 나왔다.

-파앗!

왕홀에서는 그에게만 보이는 빛.

‘보라색이라니. 으하핫!’

영롱한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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