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화
-쾅!
“크윽…!”
새롭게 나타난 몬스터.
‘리바 델 레이 수련사제’는 평범한 광신도들과 달랐다.
무려 언럭키의 단검 투척을 막아낸 것이다.
“어라? 막았어?”
언럭키는 상당히 놀랐다.
대충 던졌다고는 해도 지금 자신의 스펙이 어느 정도인데, 이걸 막다니.
물론.
-푹푹푹!
이어서 날아든 3개의 단검이 머리, 명치, 고간을 순서대로 뚫고 들어갔다.
스킬 ‘투척 예술’ 로 보낸 공격들이다.
놈도 여기에는 버티지 못했다.
허나 언럭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거, 아무래도 진격 속도가 좀 줄어들겠네.’
저런 녀석이 더 나타난다면 이전처럼 학살하는 수준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느려지겠지.
‘시간이 괜찮으려나?’
로버트가 남기고 간 시간은 겨우 몇 시간 정도.
그 시간이 지나면 대여 시간이 끝난다.
교대하지 않고 남아 있어도 되겠지만, 그랬다가는 도시 경비들이 출동할 것이다.
카르마 수치가 점점 쌓이며, 운이 나쁘면 수배자까지 될 지도 모르지.
그러니 어떻게든 탐색 시간을 단축시킬 필요가 있었다.
내부가 얼마나 넓을지 모르니 말이다.
‘아니면 일반 광신도들만 처리해서 길을 뚫고 가야할 수도 있겠어.’
강해보이는 놈들은 그냥 따돌리고…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어!?”
그러나 곧이어 차오른 경험치를 보며 언럭키의 눈빛이 돌변했다.
광신도들도 나쁘지 않은 경험치를 주었지만, 리바 델 레이 수련사제는 그 급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거의 1.5배나 되는 양!
“…다 죽여버리겠다!”
언럭키의 눈빛이 반쯤 회까닥 돌변했다.
경험치를 이렇게나 퍼 주는데 이걸 두고 어떻게 간단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광신도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수련 사제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럭키의 눈에 수련사제들은 더 이상 까다로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맛있게 차려진 밥상. 보약이었다.
[특수 스킬 ‘비검’이 발동합니다.]
-쐐애애액!
사신극검이 허공을 휘가르며 적들을 공격하고, 언럭키는 전장 한복판으로 들어가 날뛰었다.
탐색 시간을 줄여야 하지만 경험치를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맞으면서 때워야지 뭐.’
피하고 치는 게 아니라 맞으면서 친다!
동선 낭비를 줄이며 시간을 최소화했다.
믿는 건 강인한 체력 수치와 레전더리 갑옷뿐이었다.
-쾅! 쾅! 쾅!
아무리 단단한 갑옷을 입었다고 해도 암살자다.
적당한 적이라면 모를까, 수련 사제는 반응속도도 좋았고 공격력도 한가락 했다.
HP가 서서히 줄어드는 게 보였다.
그럴수록 언럭키는 더욱 투지를 불태웠다.
은신, 기습, 정면 공격, 투척 예술, 비검 등.
현재 가지고 있는 암살자의 능력을 총동원했다.
레전더리 직업 ‘사신’ 의 기본 특성들이 움직임을 뒷받침해 주었다.
게다가 여기에는 언럭키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으리얏!”
-꽈앙!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헤탄이 끼어들었다.
그가 방패로 밀어친 곳에 있던 수련 사제들이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헤탄님?”
“언제까지 뒤에 있으라고 할 셈인가? 심심해 죽겄으이.”
껄껄 웃은 헤탄이 커다란 방패를 장난감처럼 휘둘렀다.
철제 방패에 맞을 때마다 놈들이 퍽퍽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전투력이 상당하네?’
언럭키가 눈을 번뜩였다.
근육질의 덩치를 봤을 때도 한가락 할 거라 생각했는데, 과연 대단했다.
앞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탱커가 있으니 그가 더욱 활개치고 다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표정이 다급해진 언럭키가 소리쳤다.
“헤탄님! 그냥 저 혼자서 하겠습니다! 그 대신 혹시나 뒤에서 있을 기습을 염려해 주십시오!”
헤탄이 끼어들자마자 들어오는 경험치가 줄어든 것이다.
NPC도 파티원 취급이 되어서 경험치가 분산되었기 때문.
그걸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허어. 이렇게 싸우는 와중에도 뒤를 걱정한다고? 백전노장이나 보일법한 판단력이로다….”
헤탄은 그런 언럭키의 모습에 감탄했다.
보통 전투에 들어가게 되면 머리가 하얘지고 눈앞의 적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거기서 이성을 차갑게 유지하는 사람은 드문데, 이 젊은 친구는 그걸 해내고 있었다.
‘과연 호르헤른님께서 인정한 모험가답다.’
보면 볼수록 호감이었다.
헤탄은 그의 말대로 언럭키의 등을 진 채 뒤를 경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광신도들이 나타났다.
“저기 이단들이 있다!”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가축의 먹이로 만들어라!”
-쾅!
“어딜!”
헤탄은 철벽처럼 그들을 막아냈다.
그러면서 언럭키의 통찰력에 소름이 돋았다.
‘굉장하군!’
오는 길에 발견하지 못한 비밀 통로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놈들은 거기서 나온 거겠지.
방비를 안했어도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만, 꽤 힘든 전투가 되었을 터.
헤탄의 언럭키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
“껄껄껄. 이 늙은 몸은 사료로 써봤자 맛도 없을 건데. 그만 돌아들 가시게.”
헤탄이 신난다는 듯 방패로 광신도들을 찍어대며 웃었다.
한편, 언럭키 역시 뒤편에서 나온 적들을 보며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아니…내 아까운 경험치들이….’
헤탄을 물러나게 하려고 한 말이었는데 설마 진짜로 뒤에서도 튀어나오다니.
언럭키는 헤탄에 의해 광신도와 수련 사제들이 쓰러질 때마다 아쉬워서 속이 쓰렸다.
***
“이것이 ‘그 분’의 힘인가….”
어두컴컴한 옥좌 위.
늙수그레한 남자가 감격스런 표정을 지은 채 앉아있었다.
전체적으로 쇠약한 노인네의 모습이었고 입고 있는 옷도 볼품없었다.
도시에서 봤다면 노숙자로 오해할만큼.
그러나 한 가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짤막한 지팡이같은 것. 왕홀(王笏)이었다.
“정말 길었구나.”
노인의 이름은 아르만시아.
오랫동안 ‘리바 델 레이’의 수련 사제로 지내고 부제까지 올라섰다.
그 뿐이랴.
왕홀을 발견한 업적으로 ‘사제’ 직으로 올라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조만간 교단 분타로 넘어가 세례를 받아, 정식으로 임명만 되면 되었다.
“후후.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지. 아암. 사제직은 시작일 뿐이야.”
아르만시아의 눈에서 붉은 광망이 번뜩였다.
왕홀. 이건 그냥 단순한 지팡이가 아니다.
한 때 그들이 모시는 신께서 직접 사용한 적이 있는 천고의 보물!
이것만 있다면 단순히 사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교단의 고위직까지 올라서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아직 이 보물의 힘을 10%도 채 쓰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숙련되는 날에는 바뀔 것이다.
‘그나저나 네르센의 폐광산에 있던 그 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자신이 텔르흐렌에서 왕홀을 발견한 것처럼, 네르센의 폐광산에도 ‘그 분’과 연관된 유적이 있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사실 그런 지역은 굉장히 많았는데, 교단에서 입신양명 하고 싶어 하는 수련 사제들이 스스로 파견 나가 보물을 발굴하는 데 힘썼다.
좋은 유물을 발견하면 바로 사제급이 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오랫동안 교단에 봉사하며 먼저 부제가 되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힘든 나날이었다.’
아르만시아 역시 수십 년 동안 유물을 발굴하느라 젊음과 전재산을 탕진했다.
당연히 고생도 많이 했다.
방해를 받지 않게 근처에 있는 순진한 마을 주민들을 속여 사이비 광신도가 되도록 만들었고, 유물을 발굴하는 위치가 들키지 않도록 애썼다.
그러다가, 이제서야 빛을 보게 생겼다.
교단의 고위층이 되면 젊음도 새로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교단의 힘은 굉장했으니까 말이다.
‘그럼 이 지긋지긋한 텔르흐렌과도 작별이지.’
모든 게 잘 풀린 건 아니다.
문제도 많았다.
마을 주민들을 광신도로 만든 건 좋았으나, 신을 너무나 믿어버린 나머지 놈들은 더 이상 자신의 통제도 따르지 않았다.
알아서 마을에 머무르며 외부인을 공격했고, 이 유적을 신이 강림한 장소라 여겨 지키고 있었을 뿐.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이상한 종교 의식들을 자기들끼리 펼쳤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웠지만 말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자신을 신의 사자라고 믿었기에 다행인데, 통제하는 순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광신도들은 이미 건들 수 없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쿵! 쿵!
-…아아아!
아르만시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 멀리 위쪽으로 향하는 통로에서 괴성이 들렸다.
“또 지랄들이군. 빨리 여기를 뜨던가 해야지 원.”
으레 있는 일이다.
사람 잠도 못 자게 시끄럽게 하는 것은.
한숨을 쉬며 푸념한 아르만시아는 애써 신경을 다른 데로 돌렸다.
어쨌거나, 네르센의 폐광산에도 자신처럼 사제가 되기 위해 애쓰는 놈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건 오래 전이었지만, 내심 동질감을 느끼는 자였다.
과연 놈은 어떻게 됐을까….
뭐, 잘 하고 있겠지.
“나는 <리바 델 레이>의 총단에 갈 것이다. 거기 꼭대기에 올라주마.”
아르만시아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흠….’
언럭키가 어둠 속에서 그런 아르만시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
몇 시간동안 광신도와 수련 사제들을 빠르게 처치하며 동굴 깊숙이 전진했다.
어느 순간 적들이 뜸해진다 싶더니, 커다란 공동에 도착했다.
“여긴….”
“쉿!”
무의식중에 입을 여는 헤탄을 향해 언럭키가 검지를 들어보였다.
캄캄한 공동이었지만 그의 시야는 어둠을 꿰뚫고 저 멀리 앉아있는 아르만시아에게 향했다.
‘저 놈이 퀘스트에 연관된 놈인 것 같은데.’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멋부린 의자에 앉아있지만 추레한 외모의 늙은이.
다른 광신도들과 달리 그의 눈빛은 음험했지만 깨끗했다.
미쳐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언럭키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다행히 공동은 어두컴컴해서 그에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노인의 뒤편으로 다가갔다.
그는 오랫동안 혼자 지냈는지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는게 아니라 입 밖으로 내뱉어댔다.
‘왕홀? 리바 델 레이의 총단?’
몇 가지 키워드를 듣는 순간.
-띠링!
[퀘스트가 새롭게 갱신됩니다.]
[퀘스트 : 리바 델 레이 부제 처치.]
-퀘스트 등급 : 유니크.
-퀘스트 설명 : 정보원 헤탄과 함께한 광신도들의 마을에서, 사교도를 이끄는 자를 발견했다. 그에게서 리바 델 레이라는 조직명을 들었다. 놈을 처치하고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라.
-퀘스트 보상 : 적정량의 경험치, 헤탄의 보답.
-퀘스트 성공 시, 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퀘스트가 새롭게 변했다.
단순 수색에서 적을 처치하는 걸로.
언럭키의 눈빛이 달라졌다.
여전히 노인은 혼자서 중얼중얼 하고 있었다.
슬쩍 보니 별 특별한건 없어 보인다.
옷가지는 낡았고, 몸은 비쩍 말랐으니까.
다만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 같은 게 특이했다.
짧은 지휘봉같은 지팡이였는데, 그 끝에 달려 있는 보석에서 사이한 검은빛이 흘러나왔다.
‘육체 능력이 강한 스타일은 아닌 것 같고. 마법사 계열인 것 같은데, 저 지팡이가 심상치 않네.’
잘못 거리를 줬다가는 어떻게 반격할지 모른다.
머릿속에서 견적이 나왔다.
언럭키가 품속에서 사신극검을 꺼냈다.
여전히 적은 그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한달음에 뛰어간 그가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푹!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데미지 300% 상승!]
“커헉!”
아르만시아가 가슴팍을 부여잡은 채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