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화
“아니 뭐 이런걸 다…크흠. 딱히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언럭키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이 날만을 위해 암살자로서의 능력을 키워왔다는 듯, 서기관이 내려놓은 돈주머니를 챙겼다.
소리를 들었을 때도 괜찮다는 걸 알았는데, 무게도 상당히 묵직했다.
‘역시 영주 쪽 관계자들은 통이 크단 말이야.’
언럭키는 절로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애썼다.
***
귀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록관을 만나는 일은 굉장히 빨리 끝났다.
채 10초도 안 걸려서 언럭키가 이래도 되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어차피 네르센 영주님께서 이 놈들을 붙잡았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면 죽은 것과 다름없는데, 굳이 기록을 길게 늘릴 필요는 없지요.
-그런데 왜 저를 불러서…
-현상금이 지급되지 않습니까. 그 증거는 남겨 놔야 해서요.
그러니까, 공무원의 비애라는 뜻이다.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의 입장에서 문제 될 건 하나도 없다.
네르센의 영주는 편지에 구체적인 신원 같은 건 하나도 적어놓지 않았다.
그는 언럭키가 비밀 임무 때문에 떠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쉐도우 나이트라고 동네방네 떠들 것도 아니고.
“아주 좋군.”
언럭키가 활짝 웃었다.
서기관이 건넨 액수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또 마냥 적지도 않았다.
원래 그 두 놈은 잡범인데, 영주 암살미수죄가 추가되어 현상금이 올라가서 이 정도라고 한다.
이런 꽁돈은 언제나 환영이다.
‘이놈의 직업은 또 언제 돈 써야할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언럭키가 빙긋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제 진짜 볼일을 볼 차례였다.
***
베키가 말한 장소로 갔다.
도시 텔르흐렌에서 호르헤른 가문의 정보원이 머무르는 장소.
특이하게 이번에 그가 있는 곳은 오두막이었다.
전혀 귀족가의 정보원처럼 보이지 않는, 나무 오두막.
‘아니. 그래서 정보원이 여기 있는걸 수도 있겠군.’
최소한 절대 귀족의 정보원이 머무를 것 같지는 않아보였으니 말이다.
-탕탕!
“계십니까? 네르센에서 베키님의 의뢰를 받고 왔습니다.”
언럭키가 나무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곧 반응이 있었다.
“그대가 베키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오두막에서 나온 사람은 근육질에 산적 수염을 기른 장년인이었다.
베키와는 분위기가 영 딴판이었다.
그녀는 고귀한 귀족가의 여식 같았는데, 이 남자는 당장 산에 가서 나무해 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잠깐만 기다리게. 장작 패고 있던 게 남았거든.”
“…….”
진짜로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패는 모습을 보며 언럭키는 할 말을 잃었다.
위장이라면 정말로 훌륭했다.
“엇차!”
남자는 남아있던 장작을 금세 다 쪼갰다.
도끼질을 할 때마다 커다란 근육이 꿈틀거렸다.
“후우. 개운하군.”
도끼를 나무 등에 박아 넣고 땀을 한 번 훔친 그는, 그제서야 언럭키를 바라봤다.
“그래. 어서 오게. 나는 헤탄이라고 하네. 여기서는 나무꾼 일을 하고 있지.”
생긴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나무꾼이었냐.
-띠링!
[퀘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헤탄이 자기소개를 하자마자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도시에 가서 정보원과 접선하라는 간단한 퀘스트였기에 주어지는 경험치는 많지 않았다.
레벨업 한 번도 못할 정도.
언럭키는 이해는 했지만 괜히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연계 퀘스트인데 좀 팍팍 퍼주지. 쪼잔하게.’
바로 직전에 퀘스트 완료로 5개나 되는 레벨이 올랐었기에 더욱 비교가 되었다.
“베키님의 의뢰라면 그거겠지? 고대 흑마법사의 추종자 놈들 말이야.”
“알고 계시는군요.”
“베키님한테 서신을 받았거든. 정보원들끼리는 꾸준히 서로 소통해야 하니까.”
헤탄은 언럭키를 데리고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겉으로 볼 땐 투박했지만 내부는 꽤 아늑했다.
간단한 차를 내어준 헤탄이 언럭키가 마주 앉았다.
“놈들의 정체가 고대에 죽은 흑마법사를 모시는 단체다…. 사실 그걸 듣고 바로 생각나는 게 있었네.”
“뭡니까?”
“광신도들. 텔르흐렌의 골칫덩이이지.”
헤탄의 말에 언럭키 역시 사전 조사 때 봤던 게 기억났다.
그가 말하는 건 ‘광신도의 마을’ 이었다.
언럭키의 머릿속에는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있었다.
왜냐하면…
‘텔르흐렌에서 유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사냥터니까.’
무슨 신을 모시는지는 몰라도, 눈이 벌개진 광신도들이 등장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몬스터들이 아주 훌륭했다.
상대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 경험치는 짭짤하고, 리젠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여러모로 유저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갖춘 사냥터인 것이다.
“베키님의 보고서를 보면 대장 격으로 보이는 놈이 종교 단체 소속인 것 같다더군.”
“다른 부하들이 ‘부제’라고 칭하는걸 들었습니다.”
부제는 보통 사제의 일처리를 도와주는 자를 뜻했다.
“만약 그 끈이 이 도시로 이어져있다면 광신도 마을이 연관되어 있을 거라 생각되네. 거길 조사해 보지 않겠는가?”
-띠링!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Y/N]
물을 게 뭐가 있나.
당연히 예스지.
“알겠습니다.”
언럭키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세한 퀘스트 창이 나타났다.
[퀘스트 : 광신도의 말을 탐색]
-퀘스트 등급 : 유니크.
-퀘스트 설명 : 정보원 헤탄은 자신의 직감으로 광신도들의 마을에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을에서 수상한 흔적을 찾아라!
-퀘스트 보상 : 적정량의 경험치, 헤탄의 보답.
-퀘스트 성공 시, 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언럭키의 시선은 다른 곳보다 먼저 퀘스트 보상 항목으로 향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마 다른 유저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겠지.
‘흐흠. 경험치와 보답이라.’
경험치는 유니크 급 퀘스트이니 지난번처럼 만족할 만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헤탄의 보답이었다.
‘저 아저씨가 뭐 귀중한 걸 가지고 있을까?’
아무리 위장이라지만 나무꾼인데.
보수랍시고 장작더미 같은걸 주면 곤란하다.
물론 명색이 호르헤른 가문의 정보원이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자, 그럼 가세.”
헤탄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예? 어딜요?”
“어디긴. 방금 자네도 좋다고 하지 않았나. 같이 광신도 마을 조사하러 가야지.”
-쿵!
옷을 입은 헤탄이 장농에서 플레이트 메일과 커다란 강철 방패를 꺼내 내려놓았다.
“베키님이 그대가 암살자라던데, 앞을 지켜 줄 전위가 필요하지 않겠나 하핫.”
“그냥 정보원 아니셨어요?”
“아니. 원래는 기사 지망생이었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방패병이 되었지. 전장에서 굴러먹다가 전역하고 정보원이 된지는 얼마 안됐어.”
헤탄이 팔근육을 꿈틀거리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대의 앞을 든든하게 지켜주겠네.”
***
헤탄은 꽤나 수다스런 남자였다.
둘은 광신도들의 마을까지 가는 동안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베키님의 의뢰는 까다롭지는 않았나?”
“뭐 딱히요. 그런데 왜 아까부터 베키님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같은 정보원이고 나이는 베키씨가 훨씬 어릴 텐데요.”
“음. 자네 몰랐나? 베키님은 호르헤른님의 조카일세.”
“!”
‘어쩐지….’
그제서야 그녀의 귀족스런 분위기가 이해가 갔다.
단순히 관리를 잘 하고 교육을 잘 받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녀 역시 귀족이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 분이 왜 정보원 같은 일을…”
“어렸을 때부터 이쪽 일에 흥미를 느끼셨다더군. 그래서 가문 어른들이 말리는데도 정보원부터 시작하고 있지. 그 분들은 위험할 까봐 전전긍긍하지만 실제로 실적도 잘 나오고 있고.”
“…….”
얘기를 들으면서 언럭키는 고민했다.
혹시 함께하면서 뭐 실수한 건 없었겠지?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도시 밖으로 나와, 광신도들의 마을 근처에 다다랐다.
그 앞에는 유저들이 바글거렸다.
파티원을 구하거나 스스로를 홍보하는 사람들.
사람이 워낙 많았기에 목청껏 소리쳐야 해서 사냥터 앞은 시장바닥이었다.
“음. 어째 여기는 모험가들이 항상 많단 말이야. 아예 들어가는 곳을 통제하고 있으니….”
헤탄이 혀를 찼다.
텔르흐렌 역시 초보자 지역으로 분류되긴 하나, 여기서부터는 사냥터를 막 줄서서 들어가지는 않는다.
도시를 몇 개 통과하면서 다른 도시들로 분산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냥터의 특성이었다.
‘광신도들의 마을 말고 다른 사냥터들은 이렇게 붐비지 않는다고 하던데.’
광신도가 워낙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몬스터이기에 스펙에 자신 없는 유저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몰려들었다.
스펙이 좋아도 편하게 사냥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면 이곳으로 왔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광신도들의 마을은 이전 도시들에 버금가는 적체를 보여주었다.
“저희도 줄 설까요?”
말을 하면서도 언럭키는 회의적이었다.
사냥터에 입장하는 줄이 너무나 길었다.
게다가 그들은 안에서 광신도들의 뒷배가 있는지 조사를 해야 하는데, 한두 시간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그럴 수는 없네. 언제 기다려서 들어가겠나. 내가 해결하지.”
헤탄이 커다란 방패를 집어 들었다.
“뭘 하시려고요?”
“저들을 쫓아내야지. 앞에 몇 명 후려치고 들어가면 누가 우리를 막을 겐가.”
“아니….”
언럭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랬다가는 바로 수배가 될 겁니다.”
“괜찮네. 나는 호르헤른 가문의 정보원이야. 임무 중에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하면 텔르흐렌의 귀족들도 뭐라 하지 못 해.”
“그럼 저는요?”
“…….”
헤탄이 입을 꾹 다물었다.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그가 의뢰를 받고 있다고 해도 호르헤른 가문 소속이 아니다.
무조건 보호해 주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헤탄님. 제가 다른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그럴 필요 있을까? 그냥 앞에 몇 놈 쥐어 패주고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그러면 이 쪽이 곤란해지지 않나.
‘정보원이라더니 이렇게 무식하게 행동해도 되는 거야?’
“…헤탄님. 이건 노파심에 여쭤 보는 건데, 아까 전에는 전역한지 얼만 안됐다고 하셨죠?”
“음. 그렇지.”
“얼마나 되셨나요?”
“어디 보자….”
헤탄이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1주일 정도 됐군.”
“……?”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 일이 내가 정보원이 된 이후 처음 받는 걸세. 으허헛.”
헤탄은 그러면서 껄껄 웃었다.
언럭키는 저도 모르게 마른 세수를 했다.
‘이 사람한테 뭘 맡기면 안 되겠어.’
그랬다간 난장판이 될 것이다.
언럭키는 몇 번이나 설득해서 헤탄에게 일단 자신이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 후, 그는 길게 늘어진 대기 줄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사냥을 하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돈 많은 부자를 노리는 자들도 많았다.
고급스런 장비를 입은 언럭키가 다가오자 그들은 눈을 빛냈다.
“줄 대신 서드립니다. 사냥터 1시간 이용에 5000골드입니다.”
언럭키의 표정이 변했다.
시세는 매일 바뀌지만 보통 100골드에 1만원 정도였다.
즉.
‘1시간에 50만원이라고?’
만약 10시간을 쓴다고 하면 500만원을 내야 한다.
그럴 수는 없었다.
언럭키는 대답도 않고 뒤로 물러났다.
대리인들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지만 어차피 손님은 많았다.
세상에는 사냥을 편하게 할 수 있다면 그런 거금을 턱턱내던지는 갑부가 한 둘이 아니었다.
언럭키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지.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데.’
그랬다간 진짜로 헤탄이 날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병사로 지냈다니 레벨 50 언저리의 유저들 쯤은 손쉽게 이길지 몰라도, 후폭풍이 문제였다.
절대 그대로 나둬서는 안 된다.
그 순간이었다.
-툭툭.
누군가 언럭키의 어깨를 건드렸다.
“?”
뒤를 돌아본 언럭키는 상당히 놀랐다.
“벨라님?”
네르센에서 갑옷 수리를 맡겼던 대장장이 유저.
벨라가 긴 백발을 늘어뜨린 채 무표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남이 볼 때는 무표정이었고 벨라에게는 꽤나 반가워하는 눈빛이긴 했지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언럭키가 반갑게 물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벨라는 은인이었다.
갑옷을 고쳐주고, 단검집도 만들어준 아주 훌륭한 은인!
게다가 뛰어난 대장장이이니 친해지면 앞으로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더욱 열심히 반가운 척을 했다.
“…….”
벨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언럭키가 쓴웃음을 지었다.
‘죽어도 입은 안 여는 군.’
그래도 먼저 아는 척한 걸 보면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여기는 왜 오셨어요?”
언럭키의 물음에 벨라가 안쪽을 가리켰다.
“사냥터 들어가시게요?”
끄덕 끄덕.
하긴. 유저가 여기에 온 이유라면 그것밖에 없을 것이다.
“근데 줄이 길잖아요. 어느 세월에 이걸 기다려서 들어갈런지….”
그 말에 벨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사냥터를 가리켰다.
그 제스쳐가 뭔지 고민하던 언럭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혹시 줄을 안기다리고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인가요?”
이번에도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
언럭키의 눈빛이 변했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 해답이 봉리 것도 같았다.
=덥석.
언럭키가 절박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벨라님! 혹시 동행인 안 필요하신가요? 제가 옆에서 잘 보필하겠습니다!”
“…….”
벨라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무표정이 지워지고, 그 대신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