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레드 몽키는 사실 상당히 까다로운 몬스터이다.
일단 놈들은 최소 5마리 이상으로 무리 지어 다녔다.
다구리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월드 사가가 게임이라고 해도, 숫자가 많으면 부담이 된다.
심지어 그게 레벨 50의 몬스터가 무리를 지어 다니는 거라면, 어지간해서는 피해야 한다.
어디 그뿐일까.
레드 몽키는 보통 숲에 서식하는데, 나무 위에서 돌이나 단단한 과일을 던지는 식의 공격을 한다.
멀리서 깔짝거리며 공격하는, 아주 까다로운 타입인 것이다.
물론.
“끼익! 끼익!”
“캬아…!”
언럭키에게는 상성이 아주 최악이었다.
-촤악!
언럭키의 단검이 레드 몽키 한 마리의 목을 긋고 지나갔다.
-촤악!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데미지 300% 상승!]
은신 후 첫 번째 일격이다.
놈의 HP로는 감히 감당할 수 없을만한 데미지였기에 그대로 나무에서 추락했다.
“캬아아아!”
살아남은 레드 몽키들이 괴성을 지르며 언럭키에게 노려봤다.
은신을 간파할만한 능력이 없기에 선공은 내줬다.
그러나 모습이 드러난 이상, 그 때부터 레드 몽키들의 돌팔매질이 이어졌다.
-따다다당!
언럭키는 히죽 웃었다.
“간지럽다 자식들아.”
그래. 간지러웠다.
칼날도 아니고 고작 돌팔매? 단단한 과일을 던지는 공격?
체력수치 101에 레전더리 갑옷을 입고 있는 언럭키에게는 우습기만 했다.
언럭키가 손을 놀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단검들이 춤추듯 날아갔다.
-푸푸푸푹!
레드 몽키들이 줄줄이 땅으로 떨어졌다.
운 좋게 치명타를 피한 놈들도 원킬이었다.
치명타로 데미지 증폭이 되지 않더라도 언럭키는 이미 충분한 오버스펙이었다.
하물며 이번에 집사를 잡아내며 업적도 얻고 아이템도 추가로 생겼으니…
언럭키가 나뭇가지를 밟고 훌쩍 뛰었다.
한 나무의 레드 몽키들을 전부 처리했으니 그 다음 나무로 뛴 것이다.
“키, 키릭!?”
레드 몽키들이 날듯이 점프해오는 언럭키를 보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몽키도 아니고 인간이 저렇게 날아올 수가 있나?
이유는 언럭키의 발에 찬 새로운 아이템.
‘바람 정령의 신발’ 덕분이었다.
민첩 + 15 상승에 이동 속도 +9% 상승.
현재 암살자 직업이기에 안 그래도 빠르고 몸놀림이 유연한 언럭키이다.
바람 정령의 신발은 여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평소였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는 미친 몸놀림까지 보여 준 것이다.
-푹!
-콰직!
언럭키의 칼날에 레드 몽키들이 또다시 목숨을 잃었다.
그 후, 그는 땅으로 내려섰다.
다음 나무들은 위에서 점프해서 이동할만한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드 몽키들은 더욱 몸을 움츠렸다.
언럭키가 바닥에 내려선 순간.
-스르륵.
그의 모습이 허공에 동화되듯 사라졌기 때문이다.
은신이 발동되자 레드 몽키들의 긴장감이 더욱 커졌다.
-콰직!
“캬악!”
레드 몽키 한 마리가 구슬픈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나무 위에 올라온 언럭키의 단검이 놈의 목젖을 찌른 후였다.
레드 몽키들은 미칠 노릇이었다.
날쌔고 은신까지 가능해 위치 파악도 힘든데, 자신들의 공격은 통하지도 않을 만큼 단단하다.
이렇게 되면 결과는 하나밖에 없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
눈앞에 쉴 새 없이 나타나는 메시지를 한 쪽으로 밀어내며 언럭키가 활짝 웃었다.
“모두 내 경험치가 되어라!”
***
컵라면은 얼마 전까지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레벨업에 열중했었다.
먼저 네르센으로 향했던 언럭키와 한시라도 빨리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머드 골렘의 영토> 에 갔을 때는,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갑작스레 단검을 들고 있는 건 특이했지만, 직업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몬스터 뚝배기를 2초에 한 번씩 깨버리는 그 모습에, 카메라맨임에도 멍하니 입만 벌리고 쳐다봤는데.
그 와중에 용케 초점을 흐리지 않고 사냥 장면을 잘 담았는데, 그것만으로도 그가 훌륭한 PD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그런 컵라면은 고작 하루 만에 언럭키와 헤어졌다.
그가 집사를 잡으러 떠나고, 그 뒤에는 영주성 뒤편 숲 사냥터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주가 그를 쉐도우 나이트이자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자격 없는 평범한 유저를 영주성 내부로 함께 데려가기는 어려웠다.
억지를 부리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언럭키는 쉐도우 나이트인 척 하고 있는 상황.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었다.
그렇게 컵라면은 또 혼자 남게 되었는데, 그럼 그가 할 게 없어졌냐?
아니다. 정 반대로 너무나 바빴다.
게임 속이 아닌, 현실에서 말이다.
“네, 네. 지금 첫 번째 영상 검토는 끝냈고요, 수정할 부분 체크해서 회신했습니다. 두 번째 영상도 지금 보고 있는데 이건…”
컵라면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저, 이한영은 시계를 흘끗 보더니 다시 스마트폰 너머의 상대에게 말했다.
“2시간은 더 걸릴 것 같아요.”
-2시간…알겠습니다. 그때쯤이면 세 번째 영상도 완성될 테니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네.”
이한영이 떨떠름한 음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통화를 종료한 뒤 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퀭한 눈가와 수척한 얼굴.
이 모든 게 이용승을 도와서 밤새 편집한 결과였다.
‘이 사람은 괴물인가?’
언럭키의 플레이 스타일이 워낙 독특하다보니, 소스로 뽑아먹을 영상이 많았다.
문제는 그걸 후처리 할 편집자였는데, 보통 영상이 많으면 순차적으로 천천히 작업을 하기 마련이다.
헌데 이용승은 그러지 않았다.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새벽마다 영상을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심지어 그 퀄리티들은 하나같이 다 훌륭했다.
카메라맨이자 PD로서 이한영은 검수를 맡았는데, 볼 때마다 감탄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확실히 편집자로서의 능력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잠 좀 자자고요. 제발….”
낮에는 월드 사가에서 레벨업에 매진한다.
지금도 언럭키를 따라가는 게 벅찬데, 하루에 14시간 이상 그 역시 사냥터에서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밤 12시 즈음부터는 이용승이 보내는 영상들을 확인했다.
당연히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한번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나는 낮에는 레벨업에 열중하고 밤에는 PD업무를 보느라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전 하루걸러 하루꼴로 밤을 새고 있습니다.
툭하면 밤새는 게 일상이란다.
같이 일을 해본 결과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됐다.
그래서 이한영은 투덜거림을 멈췄다.
‘그래도 뭐, 보람은 있으니까.’
피곤한 와중에도 이한영은 웃음이 나왔다.
내일 공개할 이 영상.
이것만 생각하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으니 말이다.
‘이건 지금까지 영상들보다 무조건 잘 될 거야.’
자신의 지난 인터넷 방송 경력과 PD 생활을 걸고 장담할 수 있었다.
‘역대급으로 잘 되겠지. 만약 최고 조회 수가 안 나오면 내가 PD 때려치…진 않겠지만, 어쨌거나.’
이한영은 그만큼 확신했다.
이 영상은 역대급으로 파괴력이 있다고!
***
-띠링!
[NEW!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등록되었습니다.]
[제목 : 인스턴트 던전에서 1위 기록을 한 방법은?]
[4시간 뒤에 최초로 공개됩니다.]
언럭키 채널을 구독해 둔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메시지가 갔다.
“어?”
영상 제목을 확인한 구독자들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이, 이번 영상 설마…인스턴트 던전 영상인가?”
“미친…!”
이한영이 자신했던 게 바로 이것이었다.
인스턴트 던전.
아직은 초보자라고 볼 수 있는 언럭키의 이름이 꽤 뜨고, 미튜브 구독자가 확 늘어난 사건이었다.
원래는 탑랭커인 ‘피바라기 광전사’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언럭키가 쟁탈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달성했는지 월벤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졌었다.
심지어 아직도 몇몇은 그 사건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워낙 광대하고 플레이하는 유저도 많은 월드 사가인지라, 새로운 사건은 매일같이 생겨난다.
어제의 이슈가 오늘은 흔적도 없이 묻히는 게 일상다반사.
그럼에도 언럭키의 이름이 간간이 나오는 건, 모두 다 네르센의 기록 쟁탈 때문이었다.
1년 넘는 시간동안 깨지지 않은 탑랭커의 과거 기록.
도대체 무슨 수로 그걸 깬 걸까?
언럭키의 미튜브 영상들을 보면 그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실력도 훌륭하고, 직업도 뭔지 모르겠지만 대단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렇게 기대를 모은 유망주들이 무지하게 많았다는 거지.>
<역대급 유망주다, 조만간 랭킹 10위권에 들어갈 인재가 나타났다, 1티어 길드들이 영입 전쟁을 치른다…. 이런 호칭을 받았던 사람이 한둘이냐고.
<그 사람들 전부가 피바라기 광전사의 기록은 결국 넘지 못했지.>
그래서 언럭키의 이름이 더욱 화제가 된 것이다.
아무도 깨지 못했던 탑랭커의 유망주 시절 기록을 넘어서다니.
<그러면 이 언럭키라는 놈이 앞으로 탑랭커가 될 수 있다는 건가?>
<웃기고 있네 진짜. 초반에 반짝 하고 무너진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두고 봐야겠지만, 벌써부터 랭커랑 비교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음.>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미튜브 최초 공개 영상은 실시간 채팅이 가능했기에, 거기에서는 언럭키에 대한 말들이 난립했다.
“아, 진짜. 우리 언럭키님 랭커 될 수 있는데, 빡치게 하네?”
이한영이 쾅 하고 키보드를 내리쳤다.
소수의 언럭키 탑랭커 가능 설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이한영이었다.
“영상 공개만 해봐라. 말들이 전부 바뀔 거다.”
4시간은 금방 흘렀다.
<이제 시작한다!>
<떴다!>
영상이 시작됐다.
네르센의 인스턴트 던전은 박쥐 형태의 몬스터, 뱃맨이 나오는 동굴이다.
이미 퍼질대로 퍼진 정보. 여기를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중요했다.
시청자들이 흥미진진한 기색으로 영상에 집중했다.
과연 무엇을 보여 줄까?
언럭키의 손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단검이 허공을 주르륵 가로질렀다.
-푹! 푹! 푹! 푹!
동굴 천장에 붙어있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박쥐들이 픽픽 떨어진다.
그 사이에서 사신극검은 물고기처럼 허공을 유영하며 자유롭게 놈들을 찢어놓았다.
-콰지직!
그 결과.
[현재 기록 : 00분 05초.]
첫 번째 무리의 박쥐들이 전멸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5초였다.
<어…?>
<저게 지금…뭐하는 거야?>
채팅 창에 갈고리 모양이 쉴 새 없이 나타났다.
무슨 화려한 스킬을 썼을까 기대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런 건 없었다.
그 대신 단검들이 유도미사일처럼 박쥐들을 후려 패는 장면만 반복되었다.
단순한 투척이었지만 핀포인트로 쏘아지고 공격력이 너무 강했다.
거의 멈추지 않고 달리면서 단검을 던져대는데, 벳맨들이 쉴 새 없이 죽어나갔다.
게다가 비검으로 쏘아진 어느 단검 한자루는 춤을 추며 날아다니더니 놈들을 학살했다.
가끔씩 언럭키가 직접 놈들을 상대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를 제외하면 속도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기록 : 13분 21초.]
언럭키는 13분만에 인스턴트 던전을 통과했다.
그 말도 안 되는 모습에 채팅창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그것도 잠시.
화면이 까맣게 암전하자 폭발하듯 불타올랐다.
<얼탱이 없네 진짜ㅋㅋㅋㅋ무슨 암살자가 저렇게 싸워.>
<내 평생 본 암살자중에 제일 어이없다 ㅋㅋㅋㅋㅋ.>
허탈한 채팅이 이어진다.
암살자는 저렇게 무쌍을 찍는 직업이 아니다.
은신한 뒤 치명타를 꽂아야 한 방에 처치가 가능하고, 그 외에는 도망다니거나 투척으로 견제하는 정도였다.
저렇게 단검을 쉴 새 없이 던져대며 마구 학살하는 직업이 아니란 말이다.
<저게 암살이냐? 걍 눈에 보이는 놈들 다 죽이면 그게 암살이야?>
<나 바로 캐삭하고 새로 뽑으러 간다. 이제 보니 암살자가 월드 사가에서 제일 사기적인 직업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