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화
언럭키의 몸에서 빛이 연달아 번쩍였다.
레벨업 할 때 짧게 발생하는 이펙트였다.
그 숫자가 무려 8번.
‘와…. 장난 아니네.’
레벨 40이었던 그가 단숨에 48로 껑충 뛰어올랐다.
전에 벨라가 망치질 몇 번으로 5레벨이나 올랐다고 질투했었는데.
자신은 한 술 더 뜨고 있었다.
‘역시 레전더리 퀘스트야. 실망을 시키지를 않아.’
퀘스트 보상은 다양했다.
영주에게 받은 업적과 랜덤 스킬북, 지금 받은 경험치와 또 곧 받을 예정인 베키의 보상까지.
한 가지의 강력한 아이템 대신 좋은 것들 여러 개를 받는 건데, 기분은 좋았다.
“정말 찾아오셨군요. 그것도 이렇게 빨리….”
베키는 언럭키가 건넨 서류 뭉치를 받아들고 눈을 반짝였다.
지금껏 일을 해온 신뢰도가 있었으니 믿기야 했겠지만, 그래도 반신반의하고 있었으리라.
“사실 걱정을 좀 했습니다. 갑자기 영주성 쪽이 소란스러워져서 무슨 문제가 터지지 않았나 싶었거든요.”
평화로운 영주성에 문제가 생길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언럭키가 집사를 들쑤시겠다고 움직인 직후에 이렇게 되었으니 베키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의뢰를 완수하신 건가요?”
“하하…그냥 뭐, 운이 좋았습니다.”
언럭키는 어물쩡 대답을 넘겼다.
호르헤른 본인 정도라면 모를까, 고작 정보원인 베키가 영주성내부의 사정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궁금해 했지만 언럭키가 대답을 피하니 그녀 역시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베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은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의뢰 성공 보수입니다.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언럭키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상자에서는 파란색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최소 유니크. 잘만 하면 레전더리 하급 수준이다.’
언럭키의 눈이 반짝였다.
지난 몇 달간의 경험으로 색깔만 봐도 유추할 수 있었다.
기대감을 잔뜩 품은 채 그가 상자를 열었다.
안에 있는 건 부츠 한 켤례였다.
[바람 정령의 신발]
-아이템 등급 : 유니크.
-아이템 효과 : 이동 속도 + 9% 상승.
-민첩 능력치 + 15 상승.
-바람 정령이 봉인되어 있는 신발이다. 착용자는 정령의 능력을 일부 이어받는다.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40 이상.
-거래 불가.
‘오. 민첩 상승 신발이잖아?’
암살자나 궁수 계열 유저의 주력 스탯이 민첩이다.
그걸 15나 올려주는데다가 이속 증가가 9%나 붙어 있었다.
속도의 차이가 곧 실력의 차이인 법.
아무리 강해도 맞추지 못하면 헛것이다.
특히나 지금은 암살자 계열의 직업이었기에, 딱 좋은 아이템이라 할 수 있었다.
-팔락. 팔락.
언럭키가 아이템을 보며 감탄하는 동안 베키는 그가 건넨 자료를 살폈다.
“으음. 역시 집사가 놈들을 후원했었군요. 자료를 보면…아마 영주직 찬탈을 하려는 듯합니다. 반역…이죠.”
말을 하면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살폈다.
반역. 감히 입 밖으로 내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단어.
만약 근처에 기사라도 있었으면 당장 잡혀서 감옥으로 압송되더라도 할 말이 없다.
“반역은 실패했습니다.”
“당연히…네?”
당연히 그렇겠죠, 라고 말하려던 베키는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 저렇게 단정 지을 수가 있지?
“집사는 반역을 시도하려고 했고, 실행에 옮기기 전에 붙잡혔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제가 감찰 기사 한 명과 함께 집사를 붙잡았으니까요. 감히 반역을 꾀한 집사는 영주에게 넘겼습니다.”
“!”
베키가 떡 하고 입을 벌렸다.
평소의 이지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 아니…제가 한 의뢰는 집사가 폐광산 조직을 후원했는지만 알아오라는 거였는데….”
“어찌됐건 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죠.”
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떨떨한 기색으로 이해하려고 애쓰던 그녀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후우. 언럭키님은 언제나 제 예상을 뛰어넘는군요. 앞으로 도시가 소란스러워지겠네요.”
그러면서 그녀는 빠르게 서류를 끝까지 넘겼다.
“얼핏 살피긴 했지만, 이로써 확실한 게 있습니다.”
“뭐죠?”
“폐광산의 추종자들. 그들은 훨씬 더 큰 조직입니다. 고대 흑마법사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지금껏 여러 번 있었는데 이 놈들은 그 본체가 꽤 큰 것 같군요.”
베키는 폐광산의 조직원들을 고문해 정보를 빼냈다.
그들의 조직체계나 윗선이 누구인지.
뚜껑을 열어보니 그들은 조직에서도 하위 계급이었다.
그나마 부제로 불리던 자가 그나마 말단 조직원 느낌이었지만, 그 역시 본단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피라미일 뿐이었다.
“혹시나 집사가 그 본단과 연관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영주직을 위해 이들을 후원했던 것 같군요.”
“그러면 본단의 정체는 알 수 없다는 것이군요.”
“예. 하지만 이대로 묻어둘 수는 없죠. 이들은 케세인 공작가의 가주를 죽였습니다. 호르헤른님은 복수를 원하십니다.”
베키의 눈빛에 의지가 깃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언럭키님이 이들의 본단을 추적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부제와 연결된 끈은 도시 ‘텔르흐렌’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띠링!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Y/N]
새롭게 메시지가 나타났다.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호르헤른님의 원수라면 저에게도 원수입니다. 제가 그들을 찾아내겠습니다.”
도대체 이 연계 퀘스트의 끝이 어디일까?
알 수 없지만 언럭키는 최대한 따라가 볼 생각이었다.
귀족과 연관되어 있고 성공할 때마다 보상을 무지막지하게 퍼주는 퀘스트의 연속.
이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가야했다.
베키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의뢰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시 텔르흐렌으로 넘어가면 호르헤른 가문의 정보원이 있을 겁니다. 그 분을 만나 보세요.”
-띠링!
[퀘스트 : 도시 텔르흐렌의 정보원과 접선]
-퀘스트 등급 : 레어.
-퀘스트 설명 : 폐광산의 조직원들로부터 그 끈이 도시 텔르흐렌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도시 텔르흐렌의 정보원과 접촉하여 그 윗선이 누구인지 파악하자.
-퀘스트 보상 : 약간의 경험치.
-퀘스트 성공 시, 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
도시 텔르흐렌은 레벨 50부터 입장 가능한 도시이다.
현재 언럭키의 레벨은 48.
일단 먼저 50레벨을 찍는 게 우선이다.
이것도 퀘스트를 성공해 대량의 경험치를 받은 덕분이었지, 아니었다면 한참 오래 걸렸을 것이다.
베키와 헤어진 뒤, 언럭키는 도시 내부를 걸으며 생각했다.
‘어느 사냥터를 가야 하나.’
올려야 하는 레벨은 2개.
누군가는 고작 2레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언럭키는 얼마 전 <머드 골렘의 영토>에 가서 고작 하루도 안 되어 2레벨을 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38레벨이었고 지금은 48레벨이다.
올려야하는 경험치의 차이가 말도 안 되게 달렸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사냥터의 문제도 있었다.
‘네르센에서 고레벨을 위한 사냥터는 <어린 하피의 둥지> 밖에 없는데.’
날개가 달린 비행형 몬스터, 하피가 출몰하는 장소이다.
어린 하피라서 레벨은 49~50 사이이긴 한데, 여기는 인기가 굉장했다.
경험치도 많이 주고, 무엇보다 40후반의 유저들이 갈 만한 사냥터가 여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넓지도 않아서 몬스터보다 유저 숫자가 많은 곳.
오랫동안 줄서서 기다려야 하고, 그게 싫다면 또 돈을 써야한다.
그렇게 들어가더라도 몬스터 수급 문제가 힘들다니.
아주 지옥 같은 장소이다.
‘게다가 나랑은 상성도 그리 좋지 않지.’
하늘 위에서 깃털로 공격하는 게 하피의 특성이다.
당연히 궁수나 마법사 계열의 원거리 유저가 상대하기 좋았다.
검사는 원거리 스킬이 필요하고 암살자야 뭐…
‘날개라도 있지 않은 이상 은신 후 기습 같은 건 통하지도 않겠고. 투척도 사정거리가 그리 길지 않으니…’
그리 좋은 사냥터는 아니다.
경험치 좀 얻자고 갔다가는 복장 다 뒤집어 질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험치를 약간 포기하고서라도 조금 레벨대가 낮은 사냥터 중에 하나 골라가야 되나?
그러나 월드 사가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보다 낮은 레벨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획득 경험치가 극악으로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고레벨 유저들이 이전에 지나친 도시로 되돌아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데, 무조건 본인 레벨대 이상의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장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경? 이런 곳에서 뵙는 군요.”
그때 길을 걷던 언럭키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영주성 정규 복장을 입은 병사였다.
“충성!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그때 영주성으로 안내해 주셨던 분이군요.”
언럭키가 집사의 집무실을 뒤적거릴 때, 영주의 명으로 그를 영주성까지 안내해 준 병사였다.
“예 맞습니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병사는 영광이라는 듯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헌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만….”
“음.”
언럭키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려 했지만 문득 생각을 바꿔먹었다.
혼자서 끙끙 앓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좋은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적당히 사정을 설명했다.
수련을 목적으로 한, 적당한 몬스터들이 있는 곳을 찾고 있다고.
“아, 임무에 가시기 전에 가볍게 몸 푸는 장소를 원하시는군요?”
“뭐…비슷합니다.”
언럭키는 대충 얼버무렸다.
병사는 그를 강력한 기사로 알고 있을 텐데,
“아무리 몸풀기라고 해도 기사님 수준이라면 몬스터들이 어지간히 강해서는 안되겠군요.”
“크흠. 그렇지요.”
“혹시 영주님의 사유지는 어떠십니까? 영주성 뒤편의 조그마한 숲이 있는데, 거기 있는 몬스터들이 저희 영지에서 가장 강력한 놈들일 겁니다.”
“……! 그렇습니까?”
언럭키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영주성 뒤편의 숲에 사냥터가 있다니.
처음 듣는 소리이다.
“예. 모르셨나보군요. 실제로 기사님들이 재활 훈련 중에 많이 이용하기도 합니다. 영주님께 말씀만 하시면 이용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렇군요.”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맙다고 말한 뒤 발걸음을 돌렸다.
목적지는 영주성이었다.
***
집사의 처리 문제 때문에 영주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행히 감찰 기사 핸더슨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영주성 뒤편의 숲을 이용하겠다는 요청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아 거기? 지금은 아무도 안 쓰고 있을 테니, 마음껏 이용하시오.
그 결과, 언럭키는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기는…천국인가?”
[레드 몽키]
-레벨 : 50.
털 색깔이 붉은색인 원숭이들.
레벨 50 수준의 레드 몽키들이 나무위에 뺵빽하게 올라타 있었다.
반면에 유저는 오직 자신 혼자뿐이었다.
그도 그럴게, 영주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유저가 누가 있겠는가.
명예 수치를 많이 높인 고레벨 유저라면 모를까, 일반 유저들은 구경조차 못할 것이다.
이 숲은 그런 영주성 뒤편에 있었으니, 일종의 숨겨진 사냥터였다.
오직 언럭키만을 위한 사냥터!
“노다지가 바로 이런 거구나.”
눈앞에 가득한 레드 몽키들.
누군가는 이게 공포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언럭키는 달랐다.
그가 번개처럼 양 손으로 단검을 뽑아들더니 쉴 새 없이 집어던졌다.
-퍼퍼퍼퍽!
단검에 맞은 레드 몽키들이 우수수 추락한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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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르륵 차오르는 경험치바.
하피보다 주는 경험치도 많다.
“하하핫! 영주 만세다!”
언럭키가 다시 한 번 양 손으로 단검을 꺼낸 채 환호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