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화
퀘스트의 갱신.
이 메시지가 나타난 적은 전에도 몇 번 있었다.
퀘스트 진행 도중에 새로운 정보를 얻거나 하는 식의 분기점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조건과 보상이 변했다.
‘레전더리 퀘스트로 진화했어?’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식으로 퀘스트 등급 자체가 뛰어오른 적은 없었다.
세부 내용을 읽어 본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를 만하네.’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단순히 집사를 조사하라는 것에서, 집사와 싸워 이기란다.
게다가 그는 영주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이 도시의 2인자.
아무리 기습한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소? 쉐도우 나이트가 도와준다면 든든할 거요.”
기사 핸더슨은 얌전히 언럭키의 답변을 기다렸다.
고민하던 언럭키는 남몰래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예.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선택지가 없었다.
이대로 퀘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유니크 퀘스트 때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레전더리 퀘스트로 진화까지 했으니 더욱 그러했다.
게다가 중요한 점.
‘퀘스트 보상 항목에 영주의 보상이 추가되었어.’
이건 주목할 만했다.
단순 도시 귀족인 호르헤른조차 옆에 있다 보니 떡고물이 그렇게 떨어졌는데, 무려 도시의 주인이 해 주는 보답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좋은걸 주겠지.’
언럭키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러나저러나 해야 할 일.
차라리 전력을 다해 해보자!
“하하. 잘 생각하셨소. 그럼 어서 가십시다. 집사 놈이 대비할 시간을 줄수록 승산이 떨어질 테니.”
“예.”
두 사람이 이동했다.
***
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건물.
희끗한 백발에 염소수염을 한 깡마른 중년인이 창밖을 내다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후후. 그 꼴 보기 싫은 감찰 기사 놈들이 지금쯤이면 다 죽었겠지?”
“물론 그럴 겁니다 영주님.”
“어허.”
옆에 있던 하인이 고개를 숙이자 염소수염 노인은 애써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췄다.
“아직 나는 집사야. 그리고 나중이 되더라도 영주가 아니라 섭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걸 몰라?”
“죄송합니다. 이 도시의 주인으로서 너무 잘 어울리는 모습인지라 저도 모르게 그만…”
“크흐흠. 듣기는 좋군.”
집사 카에록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지 입꼬리가 더 크게 씰룩였다.
그 역시 이 하인이 아부를 떨려고 한 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들어도 좋은 말이었다.
영주.
“영주 자리는 원래 내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장자랍시고 멍청한 형님에게 내린 게 문제였지.”
그 때 얼마나 분을 삼켰던가.
객관적으로 봐도 형님은 자신에 비해 많이 모자랐다.
아마 자신이 영주가 되었으면 도시를 더욱 크게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계승으로 기사들은 모두 형님을 따랐고, 결국 자신은 껍데기뿐인 2인자.
집사 자리에 앉게 되었다.
형님이 함께 영지를 꾸려나가자며 제시한 자리였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다보니 기회가 이렇게 오는군.”
그 때로부터 거의 20년이 흘렀다.
형님이 뜻하지 않은 병으로 급사하고, 그 어린 아들이 영주직을 계승했을 때.
비로소 움직여야 할 때라는 판단이 들었다.
20년간 갈고닦은 정치력을 모두 발휘했다.
집사로서 능력을 보여 줬기에 그를 따르는 기사들이 꽤 있었다.
그들부터 설득해서, 결과적으로 도시 내의 기사들 전부에게 중립 선언을 받아 냈다.
어린 조카에게 남은 건 무조건 영주에게 충성하는 3명의 감찰 기사뿐.
집사의 기사들까지 중립을 선언한지라, 3명의 감찰 기사만으로도 무력의 추는 조카에게 넘어가 있었다.
아무리 뒷골목 왈패들을 몰래 휘하에 거뒀어도, 그들로서는 정면 대결로 기사 한 명조차 이길 수 없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집사였기에, 감찰 기사들이 사사건건 눈에 밟혔다.
놈들을 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놈들의 동선을 미리 파악하고 영주성 내 요리사를 매수해 독을 타고, 2중의 암습을 가했다.
그 결과 두 명은 이미 처치했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한 명 역시 조만간일 것이다.
“으하핫. 다시 생각해도 아주 속이 시원하구나.”
“저…그런데 집사님. 혹시 쉐도우 나이트들은 걱정 안 되십니까?”
“쉐도우 나이트?”
“예. 음지에서 활동하는, 영주 직속의 암살자들 말입니다.”
하인은 찝찝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쉐도우 나이트.
영주성에서 일하는 자들은 그 이름을 한 번씩은 들어본 적 있었다.
기사라고 하기에는 하는 일은 암살자에 가깝지만, 영주의 밑에서 갖은 궂은일을 담당하는 자들.
심지어 그들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아서 더 무섭게 느껴졌다.
감찰 기사들을 처치했어도 아직 쉐도우 나이트가 남아 있을 것이다.
“푸흐흐. 쉐도우 나이트는 다 죽었다.”
“예?”
“그러니까 내가 죽은 형님을 멍청하다고 하는 것 아니냐. 그 형님은 충성스러운 쉐도우 나이트들을 무리해서 운용하다가 전멸시켰어. 아주 바보 같은 일이지.”
집사는 염소수염이 푸르르 떨릴 정도로 낄낄거렸다.
“형님도 그 후로 깨달은 게 있는지 감찰 기사들은 조심스럽게 다루더군. 하지만 뭐, 나한테는 잘 된 일이라고 해야 하나? 그 덕에 내가 영주 자리를 노려볼 희망이 생겼으니까.”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
“!”
그들이 있던 건물 1층에서 폭음이 터졌다.
문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곧이어 밑이 소란스러워졌다.
집사가 있는 곳은 5층이었는데,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시끄러웠던 것이다.
비명 소리,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칼날끼리 부딪치는 쇳소리 등.
“무슨 일이야!”
“최,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당황해 소리치는 집사를 뒤로한 채 하인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봐! 무슨 일인데 그래! 웬 소란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이딴…”
하인의 점점 멀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집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뭐지? 습격? 도대체 누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찝찝한 기분이 전신을 휘어 감았다.
***
-서거거걱!
과연.
감찰 기사 핸더슨의 실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집사. 다 이겼다고 너무 안일했군. 이딴 쓰레기들만으로 본진을 지키고 있다니.”
핸더슨이 칼을 튕기며 안으로 훌쩍 들어갔다.
이미 그의 주변에는 도륙된 사체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우웅!
핸더슨의 칼에서 푸른 빛무리가 솟아올랐다.
동시에 채찍처럼 휘둘러진 검기가 주변을 휩쓸었다.
“끄아아아!”
“끄르르륵…!”
뒤따라가면서 언럭키는 생각했다.
‘이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개꿀 퀘스트였잖아?’
솔직히 오기 전까지는 적잖이 긴장했다.
분명 힘든 싸움이 펼쳐질 것이고, 높은 확률로 퀘스트를 실패할 것이라고 말이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잘못하면 집사에게 사로잡혀 감옥에 갇힐 수도 있었다.
기약 없는 수감 생활.
유저 입장에서는 지옥이리라.
그렇기에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든지 은신 쓰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핸더슨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해.’
영지 무력의 끝판왕. 기사.
왜 유저고 NPC고 할 것 없이 그들을 두려워하며, 기사의 콧대가 그렇게 높은지 알겠다.
그들은 강했다.
검기를 줄기줄기 뽑아내며 휘두르는데, 단 한 명도 그를 막지 못했다.
검을 맞대는 순간 검과 목이 함께 잘렸고, 방패로 막아도 솜옷처럼 찢어졌다.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부럽다….’
언럭키가 선망의 눈으로 핸더슨을 바라봤다.
지금 이렇게 몰아칠 수 있는 이유는, 모두 다 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기는 유저들도 배울 수 있는 스킬이었다.
최소 100레벨 이상의 유저들만 배울 수 있고, 가격이 더럽게 비싸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검기 스킬이 경매에 한 번 나오면 기본가가 1억이라고 했나?’
고개가 절로 흔들어질 만한 금액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물이 없어서 못 구했다.
마나 소모가 크긴 하지만 스킬 시전 도중에는 공격력이 큰 폭으로 상승.
심지어 숙련도에 따라 그 위력은 훨씬 더 증폭된다.
핸더슨의 모습을 보니 그만한 돈의 값어치를 하는 것 같았다.
-슈왁!
-콰지직!
풍차처럼 검을 휘젓던 핸더슨이 어느 순간 동작을 멈췄다.
1층에 있던 모든 적들이 죽은 것이다.
가볍게 숨을 고른 뒤 핸더슨이 말했다.
“집사는 아마 5층에 있을 거요. 내가 먼저 길을 뚫을 테니 뒤에서 엄호해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핸더슨의 말에 언럭키는 한층 더 공손하게 대답했다.
뒷골목에서 다 죽어나갈 때는 별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장난이 아니다.
실제로 보니 절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게 되었다.
핸더슨은 그 후로 2층부터 5층까지 스트레이트로 돌파했다.
가로막는 놈들 중에 단 일검을 버티는 자가 없었다.
언럭키는 중간에 한 번씩 도망치려는 놈들에게 단검을 던져 줬을 뿐이다.
사신극검을 이용한 ‘비검’은 공격력이 일품이다.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데미지 300% 상승!]
게다가 동레벨 최강을 자랑하는 능력치답게, 한 방에 한 명씩 픽픽 죽어나갔다.
핸더슨은 그런 언럭키를 보며 감탄했다.
“역시 쉐도우 나이트. 명불허전의 실력이시군.”
“…….”
두 사람은 금세 5층 언저리까지 도착했다.
5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하인 한 명이 벌벌 떨고 있었다.
“해, 핸더슨 경? 어, 어떻게….”
“눈에 익은 자로군. 분명 집사 옆을 따라다니는 하인이었지? 위에 집사님은 계신가?”
“…….”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 그 표정으로 대답이 되었으니.”
핸더슨이 성큼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하인은 도망치려 했지만 검기를 피하지 못했다.
몸이 이등분되어 죽은 그를 뒤로한 채 핸더슨이 마침내 5층에 도착했다.
-콰앙!
화려한 문을 부수고 핸더슨이 안으로 난입했다.
“집사. 내가 왔소. 남을 죽이려고 했으면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생각은 했나 몰라?”
소리치며 들어간 핸더슨이었지만 방 내부는 조용했다.
고급스러운 양탄자가 깔려있고 화려한 장식품들이 여기저기 존재하는 커다란 방.
그러나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핸더슨의 얼굴에 처음으로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이런. 벌써 도망쳤나?”
빠르게 온다고 온건대, 집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급하게 창가로 다가가 고개를 내밀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길가를 거니는 사람들이 빽빽해서, 사실 저 사이에 집사가 있더라도 쉽게 발견하기 힘들어 보였다.
“으음…. 상황이 곤란하게 되었군. 이보시오. 일단 밖으로 나가서 수색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도와줄 수 있겠소?”
말을 하면서도 핸더슨의 표정에는 자신이 없었다.
고작 2명이서 사람이 저렇게 많은 도로 한복판의 흔적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집사가 이렇게 빨리 도망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흠.’
그러나 언럭키는 핸더슨의 말에 답하는 대신, 방 안으로 움직였다.
그가 멈춘 곳은 업무를 보는 용도로 쓰는 커다란 원목 탁상 앞이었다.
아까부터 언럭키의 시선 한켠에는, 이 밑에서 빛이 아른거리는 게 보이고 있었다.
핸더슨을 구해줬을 때처럼 초록색 빛이었다.
빛이 나오는 곳은 책상의 아래쪽 바닥.
‘이거….’
감을 잡은 언럭키가 다리에 힘을 준 다음, 거세게 발을 내질렀다.
-콰지직!
크게 발을 내리친 공간의 나무가 부서지면서, 그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아닛!?”
핸더슨이 깜짝 놀라서 언럭키를 쳐다봤다.
그가 곧 나지막이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오. 설마 이런 비밀 통로가 있다는 걸 한 눈에 알아보실 줄은 몰랐소. 역시 쉐도우 나이트로군!”
“하하….”
언럭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어서 가시지요. 여기서부터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음. 부탁하겠소.”
어두컴컴한 계단 밑은 오히려 언럭키에게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이번에는 언럭키가 앞장서서 집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