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화
언럭키는 방금 전에 들었던 말을 복기했다.
‘저 놈이 자기 입으로 영주의 감찰 기사라고 했지.’
감찰 기사라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영주 휘하의 기사들 중 하나이지만, 조금 더 직속으로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영주의 명령만 받으며 비밀스럽게 움직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다른 귀족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쉽게 말해 영주가 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해결사랄까.
‘저 복면인들은 간덩이가 부었나 보군.’
아무리 암습이라지만 무려 영주의 기사를 죽일 생각을 하다니.
유저인 자신조차 후환이 두려워 감히 그러지는 못한다.
나중에라도 들키면 감옥에 투옥될 텐데, 실력이 되도 피해가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도 기사를 죽이려고 할 정도면…
‘그만한 뒷배가 있거나, 반드시 죽여야 할 상황이라는 뜻이지.’
아마 이쪽은 후자일 것이다.
“흐흐. 머저리들.”
감찰 기사는 죽기 직전의 상황인데도 킬킬거리며 웃었다.
“집사의 자금이 이미 여러 군데로 흘러가는 정황을…쿨럭. 파악했다. 나 말고 다른 감찰 기사들이 영주님께 보고를 드릴 거야. 그러면 너희들이 모시는 집사는 끝이야.”
“우리는 집사님을 모시지 않는다.”
복면인들이 입을 열자 기사는 더욱 크게 웃었다.
“푸핫. 모시지 않는다면서 집사님? 집사님? 호칭 정리부터 똑바로 하는 게 어때?”
“…….”
할 말을 잃었는지 잠시 입을 다무는 복면인들.
그러다 둘 중 한 명이 말했다.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어차피 영주에게 그 정보는 넘어가지 않는다.”
“귓구녕이 막혔냐? 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다른 감찰 기사가 정보를 전달해 줄 거라고 했잖아.”
“모든 감찰 기사가 지금 너와 같은 꼴로 골목을 굴러다니고 있을 거다. 영주는 아무런 소식도 받아들지 못하겠지.”
“뭐…?”
기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복면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군. 시간상 네가 마지막일 테니, 저승에 가면 네 동료들과 안부 인사 나누도록.”
“이 자식들이 진짜…!”
감찰 기사 핸더슨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억울했다.
칼에 찔리지만 않았어도.
아니, 언제 당한건지도 모를 독을 섭취하지만 않았어도, 저까짓 놈들은 단 칼에 베어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손발이 저릿저릿해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대로 끝인 건가….’
핸더슨은 죽더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눈을 부릅뜨고 날아오는 복면인들의 검을 바라봤다.
그 순간.
-푹!
-서걱!
“……?”
암살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
언럭키는 복면인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쓰러트렸다.
직업 덕에 은신 능력은 놈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던 게 언럭키이다.
아마 녀석들은 자신들이 암습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겠지.
그렇기에 단숨에 달려들어 끝냈다.
한 놈에게는 사신극검을 투척하고, 나머지 놈에게는 직접 다가가 급소를 찌른 것!
‘장비는 별로 좋은 게 아니군.’
공격력은 모르겠지만 방어력은 형편없었다.
한 방씩 맞고 그대로 둘 다 죽었으니까 말이다.
복면인들을 쓰러트린 뒤, 언럭키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이거.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기회가 왔어.’
무려 기사를 구해주었다.
구함을 받은 기사, 핸더슨은 멍청한 표정으로 언럭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니…. 당신은 누구….”
“괜찮으세요?”
“예, 예. 괜찮…아니, 괜찮지만 않고 죽을 것 같긴 하지만….”
어찌나 당황했는지 핸더슨은 횡설수설했다.
언럭키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우연히 도시에서 기사를 만날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지 봐왔었다.
실제로 그만한 실력들을 갖추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 주저앉아서 입만 벌리고 있는걸 보니 그 갭이 너무 커 보였다.
“이거 좀 드세요.”
언럭키가 인벤토리에서 빨간색 체력 포션을 꺼내 주었다.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투자라고 생각하니 기꺼이 건넬 수 있었다.
월드 사가에서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은 필수품인 동시에 굉장히 비싸다.
부자들은 펑펑 쓰면서 쉽게 사냥하겠지만, 언럭키가 그렇게 했다가는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의 사냥 스타일은 피격을 거의 당하지 않은 채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
그렇게 하면 깔끔하고 아무런 소모품의 소비가 없다.
다만 위급 상황을 대비해 인벤토리에 가지고 다니긴 했는데, 그걸 준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감사하오.”
핸더슨은 고개를 숙인 뒤 포션을 받아 조심스럽게 입에 흘려 넣었다.
팔이 저려서 뚜껑을 따고 입에 넣는 그 동작조차 힘들었다.
간신히 포션을 먹은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효과가 빠르게 도는지 금방 움직일 수 있었다.
“끄응.”
“벌써 움직여도 됩니까? 아직 배에 단검이 꽂혀 있는데?”
“이 정도는 기합으로 버틸 수 있소.”
핸더슨이 단검을 뽑아내며 말했다.
처음에는 피가 콸콸 흐르더니, 곧 아물었다.
아무리 포션 효과가 돌고 있다지만 너무나 빠른 회복 속도였다.
‘역시 기사라는 건가?’
아무리 동레벨 고스펙인 언럭키라도, 기사와 붙으면 이길 수 없다.
최소한 레벨 100은 넘긴 후에야 어떻게 해 볼만 할 것이다.
영주 휘하의 기사들이 그런 존재였기에, 유저들이 얌전히 도시에서 설치지 않고 NPC들의 통제에 따르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소.”
“뭘요. 돕고 사는 세상인데요.”
“조금 전에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영주님 직속의 감찰기사 핸더슨이라고 하오. 그대는 누구시오?”
핸더슨이 날카롭게 쳐다봤다.
언럭키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뭐라고 말해야 할까?
뭔가 수를 내면 이 기사와 합세해서 집사에 대해 조사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대답하기 곤란하시오?”
“아, 그게 아니라…”
“하긴. 그럴 거라 생각했소.”
“?”
핸더슨은 갑자기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쉐도우 나이트.”
“?”
“영주님 휘하에서 움직이는 쉐도우 나이트에 대해서는 얼핏 들어본 적이 있지. 은신과 암습, 정보 수집을 주로 한다지?”
“…….”
“내가 죽기 직전에 딱 구한 걸 보면 미리 알고 왔다는 건데, 집사의 암습을 미리 알아채고 올만한 자들은 그들밖에 없지. 그대는 쉐도우 나이트가 아니요?”
“아니….”
언럭키는 당황했다.
저게 뭔 소리야?
그러나 핸더슨은 더 이상 언럭키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스스로 말하면서 더욱 확신을 가졌다.
“어쨌거나 고맙소. 쉐도우 나이트들의 소식은 진작에 끊겨서 이미 사라진 줄 알았건만, 이렇게 보기 될 줄은 몰랐소.”
“예, 뭐….”
언럭키는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혀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일개 모험가라고 얘기하는 순간, 그의 대우가 달라질 것이다.
구해줘서 고맙다고 보답은 하겠지만 퀘스트 해결의 기회는 잡기 어려워질 게 뻔했다.
그렇기에 언럭키는 입을 다물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쉐도우 나이트가 나를 살려줬다면, 영주님께서 아직 여력을 숨기고 계신 거였군.”
“…꼭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가? 뭐가 됐든 일단 움직이지 않겠소?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으니.”
핸더슨은 포션 한 병으로 몸이 어느 정도 회복했는지 멀쩡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걸 살짝 신기하게 쳐다보던 언럭키는 그를 따라 함께 이동했다.
***
핸더슨은 상당히 말이 많은 기사였다.
“사실 지금까지 영주님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너무 힘들었소. 조금 더 뜻을 함께해 주는 동지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쉐도우 나이트가 이리 도와주니 너무 든든하오.”
“음. 그렇군요.”
“솔직히 다른 기사들이 중립을 선언했을 때는 배신감을 많이 느꼈지만 그들에게 뭐라 할 수 없는 게…”
처음에는 살짝 걱정했다.
입을 열었다가는 쉐도우 나이트가 아니란 걸 들킬 텐데, 너무 입을 다물고 있자니 수상하게 보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기우였다.
‘입은 다물고 있지만 명예 수치가 열일을 하니까.’
지금껏 올렸던 명예 수치.
거기에 얼마 전에 퀘스트 보상으로 베키로부터 ‘호르헤른 가문의 문장’을 받았다.
지금도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는 그 아이템은 명예 수치를 10 상승시킨다.
그 결과, 가만히 있어도 기품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게 명예로운 기사처럼 보인다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핸더슨이 짐작하는 언럭키의 정체는 쉐도우 나이트.
음지에서 활동하기에 명예적이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판단했고, 그렇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아. 걱정이군.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도시 전체가 혼란스러워질 텐데.”
핸더슨은 끊임없이 입을 열었다.
그 덕에 의외로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지금 영주는 영주가 된지 고작 1년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성인도 아니고, 나이는 고작 13세.
전대 영주가 급사하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뒤를 잇게 되었다.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집사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집사는 전대 영주의 동생이다.
그는 현 영주가 너무 어려서, 다 클 때까지 자신이 대리로 통치하겠다고 떠들고 다녔다.
쉽게 말해서 섭정을 펼치겠다는 것.
원래부터 집사를 따르는 자들이 많았기에 그 의견에는 힘이 실렸다.
반면에 소년 영주는 성품이 인자하지만 유약해서 단호하지 못했다.
물밑에서 둘의 기 싸움은 1년간 이어졌고, 결국 기사들이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영주에게 남은 건 고작 3명밖에 안 되는 직속의 감찰 기사 뿐.
반면에 집사를 따르는 기사들 역시 겉으로는 중립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가 음지에 따로 모아 둔 수하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영주님의 3명밖에 안 되는 감찰 기사도 지금쯤 다 죽었겠지. 아, 혹시 나 말고 다른 감찰 기사들도 이렇게 구해주었소?”
핸더슨의 질문에 언럭키는 긴장했다.
여기서 잘못 대답했다가 나중에 말이 다르면 굉장히 골치 아파진다.
‘…아마 다 죽었을 거야.’
자신이 초록빛을 보고 따라오지 않았다면 핸더슨은 죽었다.
복면인들의 말을 떠올려보면, 다른 감찰 기사들은 전멸했다고 보는 게 맞다.
언럭키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핸더슨이 한숨과 함께 얼굴을 떨구었다.
“후우. 역시 그렇군. 하긴, 쉐도우 나이트의 명성이 오래전부터 안 들린 걸 보면 그 쪽도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움직이지 못했던 거겠지.”
그 후로 핸더슨은 고민했다.
그가 말이 없어지니 언럭키 역시 자연스럽게 상념에 잠겼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나.’
퀘스트 목표는 집사를 조사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가 폐광산의 조직들과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내야했다.
혼자서는 깰 확률이 극히 낮았지만, 이 감찰 기사 옆에 붙어있다 보면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면서 졸졸 쫓아다녀야겠군.’
언럭키가 그렇게 다짐했을 때였다.
상념에 빠져있던 핸더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쉐도우 나이트 양반. 혹시 내가 조사하던 게 뭔지 알고 있소?”
“모릅니다. 그건 왜 물으시는지?”
“쉐도우 나이트의 정보력이라면 이것도 알고 있나 싶었지. 나는 집사 휘하의 병력에 대해서 조사했소. 그가 어느 정도 수준의 병력을 뒷구멍에 숨겨 놓았나 캐보았지.”
“그렇군요.”
“음지의 쓰레기들을 많이도 모아 놨더군. 대놓고 강한 놈들이 아니라, 기습을 하거나 독을 쓰는 놈들 말일세.”
핸더슨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지금이 기회라고 보고 있소.”
“예?”
“집사는 나를 포함한 감찰 기사가 전부 죽었다고 생각할 테니, 경계심이 많이 떨어져있을 거요.”
“그렇긴 하겠죠.”
“그러니 지금 그를 공격할 생각이오. 기습해서 집사를 사로잡고, 그가 지금껏 했던 악행들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는 거지. 그러면 중립을 지키던 기사들도 영주님의 편에 설 것이오.”
핸더슨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언럭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사실 영주성 내부의 사정은 유저이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핸더슨이 그렇게 말하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흠. 집사와 핸더슨이 치고받는 사이에 뭔가 내 퀘스트를 깰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한 번 눈치를 살살 보다가 움직여봐야겠다.
그 순간 핸더슨이 그를 쳐다봤다.
“그래서 말인데, 나와 함께 집사를 공격하러 가 주겠소?”
“예?”
언럭키가 눈을 끔뻑였다.
이건 당연히 거절해야 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도 아니고.
거기가 어디라고 끼란 말인가?
그 순간이었다.
-띠링!
[퀘스트가 새롭게 갱신됩니다.]
[‘유니크 퀘스트’가 ‘레전더리 퀘스트’로 진화합니다.]
[퀘스트 : 집사 처치.]
-퀘스트 등급 : 레전더리.
-퀘스트 설명 : 감찰 기사 핸더슨은 집사를 공격할 생각이다. 성공하면 집사의 모든 증거물은 영주의 손에 들어갈 것이고, 실패하면 집사는 영주의 섭정이 될 것이다. 핸더슨을 따라 집사를 처치하고 폐광산의 추종자들과의 연관 증거를 찾자.
-퀘스트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베키의 보답, 영주의 보답.
-퀘스트 성공 시, 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
‘아니 뭔….’
언럭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