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화
언럭키는 머드 골렘의 영토에서 미친 듯이 사냥에 열중했다.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 차오르는 걸 보면 아마 모든 유저들이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탱커 한 명 딜러 두 명.
최소 3인 이상의 파티를 맺어 들어오는 곳인데 혼자서 휩쓸고 있었다.
그 경험치를 몰아서 받으니 성장세는 일반 유저들의 3배!
게다가 사냥 속도를 놓고 봐도 언럭키는 굉장히 빨랐다.
탱커 역할을 본인이 수행하고 딜러진 역할도 본인이 하는데, 설상가상 그 딜은 훨씬 더 높았다.
나중 가서는 손이 익숙해져서 사냥 시간보다 몬스터 찾으러 돌아다니는 시간이 더 길 정도였다.
‘넓어서 줄 설 필요 없는 사냥터라 좋아했는데. 이런 단점이 있었네.’
몬스터 밀집도가 너무 낮았다.
다른 파티들은 한 마리 사냥이 오래 걸리고 전투가 끝난 뒤에 휴식을 하는 동안 리젠이 되느라 상관없다.
그러나 언럭키는 워낙 빠르게 돌아다니는지라 몬스터 찾는 게 버겁게 느껴졌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띠링!
[레벨업!]
“크. 이거지!”
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레벨이 하나 올랐다는 것!
“그래. 괜히 대장장이 직업 부러워할 필요가 뭐가 있어.”
벨라가 레벨업 5개 한 것 따위는 전혀 부럽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럽긴 했다.
‘누구는 몇 시간동안 개고생하며 돌아다녀야 레벨 하나 오르는데, 누구는 하루 망치질 좀 했다고 레벨 5개씩 오르고 말이야.’
벨라는 아이템을 다 만들어준 뒤, 고개만 꾸벅 숙여 보이고 떠났다.
그대로 도시를 떠나는 게이트에 몸을 실은 것이다.
그걸 토대로 그녀는 레벨 50을 달성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즉, 레벨 5개가 올랐던 때는 45레벨이었다는 뜻.
평범한 유저였다면 족히 몇 주는 사냥터에서 고생해야 올릴 수 있는걸 한 방에 해결하다니.
미래의 대우도 그렇고. 아무리 생각해도 대장장이가 최고인 것 같다.
‘아니야. 괜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그는 고개를 휘휘 저어 잡생각을 날려보냈다.
지금 상황에 집중하는 게 훨씬 건설적이다.
그 순간이었다.
-귓속말(컵라면) : 언럭키님. 저 레벨 30 찍고 네르센 도착했습니다.
‘오?’
컵라면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
스트리머 컵라면.
아니. 이제는 총괄 PD(예비) 컵라면이라고 해야겠지.
언럭키가 퀘스트 때문에 먼저 떠난 뒤, 그 역시 열심히 레벨업을 해서 쫓아왔다.
이제는 진짜로 PD로서 언럭키를 담당해야 하는데 이렇게 뒤쳐져 있으면 되나.
비록 언럭키같은 레전더리 직업은 아니지만, 그 역시 레어 직업을 가졌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언럭키를 따라올 수 있었다.
“컵라면님.”
“하하. 이렇게 다시 뵈니 반갑군요.”
두 사람은 웃는 낯으로 인사했다.
시작의 도시에서 우연찮게 만난 것을 인연으로 여기까지 같이 온 두 사람이다.
이제는 꽤 친해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제가 언럭키님 시간을 너무 빼앗은 거 아닙니까? 사냥터에 계시다고 들었는데.”
“괜찮습니다. 마침 저도 카메라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현재 언럭키의 미튜브 채널은 상당한 성장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총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미튜브 스트리머에게 총알이란 곧 재미있는 영상.
이미 준비 중인 영상이 몇 개 있었지만, 괜히 안심하다가 언제 다 떨어질지 모르니 더욱 준비해야 한다.
“그쵸. 네르센의 인스턴트 던전 1위를 하셨다는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네리즈 기록을 꺾으셨는지. 허 참.”
피바라기 광전사 네리즈.
탑티어 랭커 중 한 명인 그의 초보 시절 기록을 언럭키가 부숴버렸다.
심지어 1년 넘는 시간 동안 깨지지 않았던 기록인데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럭키가 네리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보는 건 무리이다.
저레벨에서 반짝 하고 떴었던 신성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리즈의 기록을 꺾었으니, 그 가능성만으로 화제가 되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언럭키가 슬쩍 웃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 굳이 입 아프게 떠벌릴 필요는 없었다.
‘실력도 실력인데 겸손도 하시군.’
컵라면은 그런 언럭키의 태도를 보고 감탄했다.
이제는 자신의 고용주가 될 사람인데, 이런 훌륭한 인성을 가졌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곤란하시다면 더 이상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제가 사냥하던 곳이 있습니다. 따라오시죠.”
“알겠습니다.”
***
“그어어어어-!”
-푹!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머드 골렘의 거대한 동체가 무너지며 진흙이 비처럼 쏟아내렸다.
또다시 막대한 경험치를 획득한 언럭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컵라면은 도저히 웃지 못했다.
“허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할 말이 너무나 많았다.
‘언럭키님은 검사 아니었나? 전투 스타일이 왜 저렇게 바뀌었지?’
아니. 물론 이것도 신기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도대체 저게 뭐야. 탱커야 암살자야?’
단검을 다루는 걸 보면 레어급 직업 ‘달빛 암살자’인 자신보다 더 잘 다룬다.
근데 웃기는 건 정면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같은 암살자 입장에서는 어찌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또한, 자세히 보면 암살자의 전투법과는 상당히 달랐다.
단검을 투척하거나 은신 후 기습하는 실력은 일품이었는데, 그 후에는 탱커처럼 앞에서 들이댄다.
처음 봤을 때는 언럭키님이 미친 줄 알았다.
얼마 전까지 봤던 언럭키의 플레이들을 떠올려 봐도 예술적인 공방이 대단했지, 이런 무식한 싸움은 아니었다.
이런 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전투였다.
“언럭키님. 도대체 직업이 뭔가요? 제가 알기로 분명 검사였는데….”
“하하. 제가 좀 특이한 직업이긴 합니다.”
“이렇게 주 무기가 휙 바뀔 수 있는 직업이라니. 무조건 유니크 등급이겠군요.”
컵라면이 확신을 담아 말했다.
“뭐, 그렇죠.”
언럭키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이제 컵라면은 그의 사람이라고 봐도 되었다.
무작정 숨기기보다는 함께 비밀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거 참. 검사였다가 암살자가 된 것도 신기한데, 암살자가 탱커처럼 전투라니. 1년 반 동안 월드 사가 영상이 수도 없이 미튜브에 올라왔지만, 이런 건 분명 처음일 겁니다.”
그리고 처음인데 재미있는 영상은, 더욱 화제가 되는 법이다.
컵라면은 떠들면서도 자신의 일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최적의 각도로 언럭키의 활약상을 모두 담아내고 있었다.
“그나저나 미튜브 채널에 언럭키님 신분은 언제 밝히실 겁니까?”
“신분이요?”
“에이. 이제 저 총괄 PD 시켜주신다면서요. 그런데 계속 숨기실 거예요?”
컵라면이 슬쩍 웃었다.
전부터 가지고 있던 고민인데 물어보기 실례라서 지금까지는 참고만 있었다.
허나 이제는 슬슬 이 정도 얘기는 해도 괜찮지 싶었다.
앞으로의 계획도 의논해야 하니까.
“진짜로 모르겠어서 하는 말인데요?”
언럭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컵라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대형 길드에서 밀어주는 유망주 아니세요?”
“아닌데요?”
“그럼 그렇게 좋은 직업 얻은 게, 길드의 지원을 받은 게 아니었던 겁니까?”
“예.”
“…그러면 혹시 재벌 3세라던가….”
“그랬으면 이렇게 하루 종일 게임만 했겠습니까. 나가서 건설적인 사업을 했겠지.”
“…….”
컵라면이 멍하니 입을 살짝 벌렸다.
자신이 언럭키를 오해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 드는 의문이 있었다.
“아니. 잠깐만요. 재벌도 아니고 길드의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면. 최소 유니크 이상으로 추정되는 직업은 어떻게 얻으신 겁니까?”
월드 사가의 직업 뽑기 시스템은 악명이 자자하다.
마음에 안 들면 캐릭터를 재생성 해야 하는데, 그 때마다 돈이 2배씩 늘어났다.
당연히 저런 좋은 직업을 뽑으려면 반복해서 직업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만한 돈을 대려면 뒷배에 거대 자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컵라면의 질문에 언럭키는 어깨를 으쓱였다.
“뭘 어떻게 얻어요. 그냥 운이 좋았던 거죠.”
“…….”
컵라면은 할 말을 잃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행운빨로 저런 직업을 얻었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 더러운 똥망겜 월드 사가….”
그가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갑자기 언럭키가 너무나 얄미워 보였다.
‘하필 왜 아이디는 언럭키로 지은거야?’
누구 놀리나?
***
“으으. 죽겠다 진짜.”
박세훈이 앓는 소리를 냈다.
밥을 먹다 말고 이용승이 그를 쳐다봤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그는 한창 먹던 숟가락까지 내려놓았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운동과 식사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이용승의 성격 상, 먹는 도중에 식기를 내려놓는 일은 잘 없었으니까.
오죽하면 보통 식사 중 대화는 백현과 박세훈 둘이서만 나눴다.
“아니. 힘들어.”
박세훈이 한숨을 푹 쉬며 공용 부엌 식탁에 앉았다.
밥그릇에 한 공기를 퍼 온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밥이랑 김치밖에 없네. 오늘은 시리얼 없나?”
“그 때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특식 주는 날이었잖아요. 그나저나 형님. 얼굴이 너무 안 좋으신데요? 바쁘세요?”
“응. 장부 검토 하는데, 오랜만에 하는 거라 눈알 빠지겠다.”
“누구 장부요?”
“누구겠냐.”
박세훈은 그러면서 맞은편에서 얌전히 밥을 먹고 있던 백현을 가리켰다.
그러자 백현이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일감을 너무 많이 드렸나보네요.”
“아아. 백현 씨한테 뭐라 하는 거 아니야. 나야 뭐, 부업 뛰고 좋은 건데. 다만 시간이 너무 없어서 문제지.”
이 고시원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월드 사가 작업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하루 16시간 정도 되는 극한의 반복 노동.
거기에 더해 추가로 부업을 하려면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박세훈은 안 그래도 부족한 휴식 시간을 쪼개느라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나중에 성 팀장 그 자식이 딴지 못 걸게 하려고 장부를 처음부터 뒤집어엎다 싶이 하고 있는데, 이걸 새벽에 짬짬이 하려니까 피곤해 뒤지겄다.”
“그러니까 형님. 형님도 저처럼 운동 하세요. 백현 씨도 요즘 몸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잖아요.”
월드 사가를 위해 백현은 매일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운동을 했다.
맨몸 운동과 그가 준 철봉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뿐이었지만, 꾸준히 하니 그것만으로도 변화가 있었다.
“저도 편집하느라 툭 하면 밤새거든요? 그런데 저는 멀쩡해요. 이게 다 운동의 효과입니다 형님.”
“닥쳐 이 근육돼지 새끼야. 너나 많이 해라. 그 고릴라 같은 몸뚱이를 얼마나 더 키우려고 그렇게 하는 건지….”
박세훈은 질색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호리호리한 그는 평소에도 운동을 상당히 싫어했다.
이용승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크흠. 아쉽군요. 이제 저와 형님 모두 백현 씨에게 고용된 입장인데, 운동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너나 해.”
“그래야죠 뭐. 아, 참. 백현 씨. 오늘 올라갈 미튜브 영상 편집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용승이 백현을 쳐다봤다.
“아 그래요? 퀄리티는 괜찮게 나왔나요?”
백현이 살짝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인스턴트 던전 1위의 여파로 미튜브가 흥행하고 있었다.
이 때 올라갈 영상에 따라 그 흥행에 물살을 저을지, 아니면 그대로 다시 뒤로 복귀할지가 결정된다.
항상 그랬지만 이번은 특히나 더 영상이 재밌어야 한다는 뜻이다.
“네. 그럼요. 이번 건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백현을 보며 이용승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장난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