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화
백현은 박세훈과 자금 관리를 위한 계약을 체결한 뒤, 아침을 먹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지금 시간은 오전 6시 반.
오늘 하루도 힘차게 출발할 시간이었다.
백현은 접속 전에 자신의 미튜브 채널을 들어가 봤다.
“어…?”
순간 깜짝 놀란 그가 눈을 깜빡였다.
“이거 왜 이래?”
하루 만에 조회 수가 엄청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원래도 ‘스트리머 언럭키’ 계정은 높은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고정 팬층이 서서히 증가하고 인기 급상승 영상에까지 올라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24시간 동안 구독자 수 그래프는 특히나 급격하게 치솟았다.
‘뭔 일이야 이거.’
백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원래 그는 억지로라도 월드 사가 외적인 일에 관심을 끄려고 노력했다.
사실 미튜브 구독자 증가 폭이나 조회 수 상승은, 한 번 중독되면 계속 볼 수밖에 없다.
새로 고침 할 때마다 조회 수가 계속 올라가는데, 그 뽕은 겪어본 사람만 아는 것이다.
월벤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슬슬 나오고 있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런 걸 보면서 히죽거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봤자 시간낭비밖에 더 되겠는가.
쓸데없이 거기에만 매달리기 싫어서 백현은 일부러 신경을 껐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알아볼 필요는 있는 법.
월벤을 뒤적거리다보니 상황을 파악했다.
‘네르센의 인스턴트 던전 1위를 먹은 거. 이거 때문이었구만.’
어제의 일인데 월벤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이게 생각보다 더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중요한건 인스턴트 던전 1위가 아니다.
1년 넘는 시간동안 깨지지 않았던 피바라기 광전사, 네리즈를 이겼다는게 중요했다.
탑티어 랭커 중 한 명인 네리즈의 명성은 그만큼 대단했다.
백현은 정산 페이지를 잠시 멍하니 구경했다.
구독자가 늘어나며 최신 영상은 물론이고 옛날 영상까지 조회 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미튜브에서 조회 수는 곧 돈이다.
‘이거…정산되면 수익이 굉장히 짭짤하겠는데?’
재료값이 너무 오바됐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오히려 메꾸고도 남겠다.
백현의 입가에 실실 미소가 걸렸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 이대로만.”
이제 중요하게 남은 건 하나 뿐이었다.
레전더리 갑옷의 완성!
백현이 기대감을 애써 누르며 접속기에 몸을 뉘였다.
***
-땅! 땅! 땅!
망치로 두드릴 때마다 쇳불이 터져 나왔다.
뜨겁고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고성이 연달아 뿜어지는 건 덤이었다.
‘행복해.’
그럼에도 벨라는 마음이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하하호호 웃으며 남들과 억지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보다, 오히려 이렇게 혼자 고생하는 게 더 좋았다.
게다가 이건 고생도 아니다.
망치질을 할 때마다 갑옷은 껍데기를 벗고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등줄기에 쾌감이 흐를 정도로 짜릿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무아지경 속에서 망치를 휘둘렀을까.
-띠링!
[갑옷의 복구를 완벽하게 성공하셨습니다.]
[압도적인 수준의 작업물을 완성해냈습니다.]
[‘신의 망치질’ 숙련도가 0.4% 상승합니다.]
“후아.”
벨라가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망치를 내려놓았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결국 끝까지 오는데 성공했다.
“…해냈다.”
굳이 메시지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낡고 부서지기 직전이었던 갑옷이, 지금은 번쩍번쩍했다.
이걸로 레전더리 직업 스킬인 ‘신의 망치질’ 숙련도가 0.4%나 올랐다.
처음 캐릭터를 만들어서 여기까지 올 동안 겨우 0.38%의 숙련도를 올렸다.
-띠링!
[레벨업!]
[레벨업!]
.
.
[레벨업!]
무려 5개나 되는 레벨까지 올랐다.
한 방에 레벨 50이 된 것이다.
대장장이 직업의 특성이었다.
그들은 사냥터에서 경험치를 쌓는 대신, 자신의 작업물에 따라 경험치를 갖게 되었다.
당연히 레전더리 등급의 아이템 수리 경험 정도면 폭발적인 레벨업이 가능했다.
“크흠. 실례합니다.”
그리고 그 즈음, 언럭키가 다가왔다.
사실 그는 조금 전에 공방에 도착해서 벨라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워낙 집중하고 있어서 말을 걸기 조금 뭐해, 끝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린 것이다.
벨라를 바라보는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니…대장장이 직업 이거. 개사기 아니야?’
작업을 지켜보는 과정에서부터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녀가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자신이 사다 준 재료들이 펑펑 날아가고 있었다.
무려 2000만원 어치가 말이다!
가슴이 아파서 도무지 더 지켜보기가 어려웠다.
눈물샘에 찔끔 눈물이 고이는데, 더 어이가 없는 건 그 다음이었다.
세상에.
망치질 좀 했다고 레벨업을 하다니!
게다가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5번이나 레벨업을 했다.
그녀의 레벨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적지는 않을 텐데.
‘고작 아이템 한 번 수리했다고 저 정도면, 일반 유저들은 허탈해서 사냥터 나가겠나….’
물론 언럭키도 좋은 사냥터에서 빡세게 사냥하면 하루에 레벨 5개를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얼마 전에 갔던 폐광산이 그러했다.
몬스터 사냥 + 보스몹 사냥 + 퀘스트 완료 경험치까지.
그렇게 하니 5개 이상의 레벨을 올렸다.
하지만 그건 올마스터라는 자신의 직업 덕에 가능한 거고, 레전더리 퀘스트였으니 되는 거였다.
일반 유저는 꿈도 꿀 수 없다.
게다가 대장장이의 대우는 또 어떠한가.
실력 있는 고레벨 대장장이는 품귀 현상이 너무 심하다.
1티어 급 길드에서도 길드장이 굽신거리며 모셔가려 하는 건 흔한 얘기였다.
장비의 중요성이 굉장히 중요한 월드 사가이기에, 그걸 다루는 대장장이들의 가치 역시 엄청났다.
‘아 씨. 나도 대장장이나 할 걸.’
벨라를 보고 있으니 급격하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불만도 솟구쳤다.
‘아니. 명색이 올마스터라더니, 망치질은 못하나?’
쓸데없이 칼질이나 하지 말고 생산직 능력이나 갖출 것이지.
‘에휴. 하긴 내가 뭘 바라냐.’
역시나 ‘언럭키’ 하다.
괜히 그 닉네임으로 지었겠는가.
언럭키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비록 재료값 2000만원이 허공으로 날아갔고, 의뢰를 한 대장장이 유저는 자기 혼자 레벨을 5개나 올렸지만…
그래도 아이템이 완성되지 않았는가!
언럭키의 시선이 벨라의 작업대로 향했다.
“그거…완성된 거죠?”
한 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빛을 내뿜고 있는 검은색 갑옷.
고대 갑옷인지라 주술적 의미가 새겨진 건지, 특이한 문양이 전체적으로 음각되어 있었다.
“…….”
벨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무아지경의 망치질 시간이 지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마음에 장벽이 감싸여졌다.
어제 재료를 받을 때만 해도 고맙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다시 눈도 보기 어렵다.
언럭키는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벨라를 보며 그러려니 했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녀에게서 친절함을 바라진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와 한 대화라고는, 간신히 통성명 정도 한 게 전부였다.
닉네임 벨라. 그녀에 대해 아는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거면 됐다.
언럭키에게 필요한 건 그녀의 실력이었으니 말이다.
“제가 한 번 봐도 될까요?”
“…….”
벨라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고는 갑옷을 들어 내밀었다.
언럭키는 조심스럽게 갑옷을 받아들었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첫인상은 가볍다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살짝 두드려봤는데 단단함이 느껴졌다.
곧 그의 눈에 아이템 정보가 나타났다.
[고대 흑기사의 판금갑옷]
-아이템 등급 : 레전더리.
-아이템 효과 : 방어력 + 92 상승.
-힘 능력치 + 15 상승, 체력 능력치 + 20 상승.
-갑옷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 한 내구도 자동 복구.
-경량화(패시브) 적용.
-아이템 설명 : 고대의 흑기사가 사용하던 판금갑옷이다. 천옷처럼 가볍고 튼튼하며 고장나도 자동으로 복구가 되는 명품이다. 그렇기에 이 갑옷을 입은 자들은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대장장이가 복원했기에 아이템의 성능이 거의 완벽히 되살아났다.
-갑옷을 입지 못하는 직업군도 착용 가능.
-아이템 착용 제한 : 레벨 35 이상.
-거래 불가.
‘허억…!’
언럭키가 속으로 절로 헛숨을 들이켰다.
솔직히 기대는 했다.
들어간 돈이 장난 아니었고, 저 말없는 대장장이 여자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을 만들어 줄지 말이다.
하지만 이건 예상을 뛰어넘었다.
‘방어력이 91인데 힘이랑 체력 상승폭이 왜 저래?’
이 레벨 대에서 91의 방어력이면 최상위 탱커들도 보여주기 힘들다.
그것만으로도 레전더리 갑옷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능력치 상승량도 장난이 아니었다.
이것만으로도 레벨이 5개 상승한 것과 같은 효과였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이 있었다.
경량화(패시브) 효과로 현재는 암살자 계열인 자신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탱커나 입는 판금갑옷을 암살자가 입게 되다니.
그 시너지 효과가 어떨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감사합니다. 굉장한 실력이시네요. 여기 대장장이 NPC가 왜 그렇게 극찬했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물론 저는 그 전부터 벨라님이 성공할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언럭키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조금 전까지 그녀를 질투하던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렸다.
“…….”
언럭키의 진심을 담은 칭찬에 벨라의 귓가가 살짝 붉어졌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입가에 자그맣게 미소가 걸렸다.
***
[퀘스트 : 갑옷 수리.]
-퀘스트 설명 : 폐광산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악의 조직을 소탕하고 그 수장을 사로잡았다. 그가 소중하게 발굴하던 갑옷의 정체를 알기 위해 갑옷을 복구하라.
-퀘스트 보상 : 베키의 보답.
-퀘스트 성공 시, 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언럭키가 정보원 베키로부터 받았던 퀘스트였다.
그때는 엄청 좋아했었다.
‘어차피 수리해야 할 갑옷이었는데 퀘스트를 내려주고, 조금이지만 골드도 보태줬으니까.’
하지만 껍질을 까고 보니 조금 달랐다.
베키가 보태준 골드로는 택도 없이 모자랐다.
무려 20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써야 했으니 말이다.
‘퀘스트 하나 깨려면 돈을 이렇게나 써야하다니. 진짜 거지같은 게임이란 말이야.’
물론, 아이템 성능이 그 이상으로 뽑혔으니 잘 되었지만.
“베키님. 갑옷의 수리를 끝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보원 베키의 응접실로 간 뒤, 언럭키가 갑옷을 보여 주었다.
베키는 작은 붓 같은 걸로 갑옷의 표면을 살살 훑어냈다.
조그마한 통에 미세하게 떨어진 가루들을 담았다.
베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복구가 잘 되었군요. 이 정도면 호르헤른 가문의 연구소에서 이 아이템의 연원을 제대로 추적할 수 있을 겁니다.”
-띠링!
[퀘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업!]
[레벨업!]
언럭키의 몸에서 빛이 번쩍였다.
무려 2개나 되는 레벨의 상승.
그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이 맛에 퀘스트 하는 거지!’
아이템도 얻고 레벨업도 하고.
돈 써서 쓰리던 속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건 작지만 제가 드리는 보답입니다.”
베키가 조그마한 표식 같은걸 건넸다.
“뭐죠 이건?”
“언럭키님이 명예롭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표 같은 겁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언럭키에게 베키가 웃어보였다.
[호르헤른 가문의 문장]
-아이템 등급 : 레어.
-아이템 효과 : 명예 수치 + 10 상승.
-해당 아이템은 인벤토리에 보관해 놓아도 효과가 적용됩니다.
‘오!’
뜻밖의 수확에 언럭키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껏 명예 수치 덕에 경비병 NPC들에게 얼마나 잘 대우 받았던가.
게다가 따로 착용할 필요도 없이 인벤토리에만 넣어둬도 되니, 이건 앞으로 두고두고 쓸 만했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언럭키님에게 맡기고 싶은 의뢰가 있습니다. 물론 동의하신다면요.”
-띠링!
[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Y/N]
“당연히 동의합니다. 제 뼈가 으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하겠습니다.”
언럭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귀족가의 연계 퀘스트이다.
지금까지의 보상은 매우 훌륭 그 자체였는데, 당연히 계속 가야지.
언럭키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그러나 베키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의뢰는 조금 위험합니다.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으니, 실력을 더 키워서 오시는 게 어떨까요?”
-띠링!
[해당 퀘스트의 레벨 제한은 40입니다.]
[레벨 부족으로 연계 퀘스트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언럭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곧 표정 관리하며 웃었다.
“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현재 레벨은 38.
40까지는 두 단계 남아 있을 뿐이다.